오두막 공동체와 세이비어교회
오두막 공동체와 세이비어교회
  • 최태선 목사
  • 승인 2021.01.09 0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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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제 마음에 마치 고향처럼, 집처럼 생각되는 공동체가 있습니다. 경남 산청에 있는 ‘오두막 공동체’입니다. 제가 쓴 글에서 오두막 공동체를 보고 제가 가보지 않은 그곳에 다녀오신 분들이 있습니다. 제 글을 보고 오두막 공동체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저를 그곳 이재영 선생님에게 소개하고 오신 분도 있습니다. 제 소개를 듣고 이 선생님이 저를 만나보고 싶다는 말씀도 하셨다고 전해주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에 있는 교회들 중에 오두막 공동체가 가장 성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공동체이건 마찬가지이지만 자립이 가장 힘든 일입니다. 오두막 공동체는 자립을 위해 양계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잘 되어 자립을 하고도 남는 돈이 생기자 공동체에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습니다. 임금을 안 주고 일을 시켜먹었다고 고발하는 이들까지 등장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 이재영 선생님은 양계를 통해 얻은 수익 가운데 공동체 운영에 필요한 재정의 70%만을 사용하고 남은 돈을 도와야 할 곳을 위해 사용하였습니다. 모자라는 30%는 후원에 의존하거나 절약으로 충당하기로 한 것입니다. 언뜻 생각하면 참 어리석은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재영 선생님의 결정이야말로 영적인 사고에서 나오는 현명한 판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교회들이 이재영 선생님과 같은 사고를 가지고 교회의 재정을 운영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모든 교회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부패와 타락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교회에 부가 축적되는 순간 교회는 그 쌓인 부로 인해 부패하고 타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의 부패와 타락은 부가 쌓이는 순간 시작된다는 사실을 그리스도인들은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합니다.

초기교회의 부패와 타락은 신앙의 자유와 함께 찾아왔습니다. 신앙의 자유와 함께 교회는 재산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고 효율적인 바실리카 건물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안에 부와 효율이 자리하는 순간 교회의 순수성은 사라지고 부패와 타락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교회사 속에서 반복되는 그리스도교 역사가 되었습니다. 어느 교회건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부자가 되는 순간 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 맘몬의 신전이 된다는 것이 그리스도교 역사가 증언하는 사실(팩트)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하여 교회가 가난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모든 교회 안에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그 정 반대의 길을 선택합니다. 그래서 교회들이 그렇게 위용을 자랑하는 건물들을 경쟁적으로 짓고, 화려함과 편리함을 내세워 쥐어 짜듯이 헌금을 강조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런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경쟁과 효율입니다. 경쟁과 효율을 내세우는 교회는 이미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의 정체성을 완전히 상실한 교회 아닌 교회입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보이는 모든 부조리와 타락과 부패는 돈으로 인한 것입니다. 교회가 돈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좇다가, 믿음에서 떠나 헤매기도 하고, 많은 고통을 겪기도 한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참으로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성서가 기록될 당시에는 돈을 사랑하다 믿음에서 떠난 사람이 “더러” 있었습니다. 오늘날은 그 반대가 되었습니다. 돈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더러 있는 그리스도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두막 공동체의 당연한 결정이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고 위대해 보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잘 생각해 보십시오. 성서가 기록될 당시에는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 더러 있었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돈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그런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가 부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그 반대가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교회 안에 돈을 사랑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존재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할 것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교회의 부의 축적은 교회를 조직으로 만들어 부조리를 낳게 되고 교회의 교회됨을 유지하는데 장애요소가 됩니다. 오두막 공동체의 이재영 선생님은 그것을 잘 파악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부와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 섬기는 종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부와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는 것을 자랑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성령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런 교회의 목사들이 교인들을 섬긴다고 말하지만 그걸 섬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말 영적인 시각장애인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섬기는 종이 아니라 지배하고 다스리는 대인들이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도 그걸 카리스마라고 하고 영적인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단히 죄송한 표현이지만 목사의 좀비가 된 것입니다.

교회는 부를 축적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된 것은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지 않는 곳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이들이 있다면 교회가 부를 축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가난한 이들은 교회의 축복입니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교회의 부조리와 부패와 타락을 방지하는 소금입니다. 가난한 이들을 무시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을 외면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외면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이 함께 할 수 없는 교회는 그리스도와 함께 할 수 없는 교회입니다. 이것이 부와 전적으로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일궈낸 문화가 성공과 권력에 대한 공허하고 환상적인 약속에 불과하다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어느 날 우리가 예수의 음성을 듣고 어디든 예수를 따르겠다며 작은 공동체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게 될 때,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고통 받고, 억압받고, 가난한 이들의 필요에 의해 마음이 열리며 꽃피게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더럽고, 못 배우고, 의지력이 없고, 우리보다 못하다고 경멸하는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시작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천하고 늘 실패하는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들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세이비어교회의 고든 코스비 목사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한 번 천천히 한 문장, 한 문장, 한 단어, 한 단어를 잘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얼마나 복음으로부터 멀어지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까. 우리가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리스도로부터, 복음으로부터 멀어지려고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가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돈 때문입니다.

오늘날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헌금 없는 교회를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헌금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헌금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신앙의 시금석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돈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은 추상적이 될 수 있고 위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돈을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것은 구체적이고 분명합니다. 돈을 미워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가장 명확한 증거입니다.

헌금은 돈을 미워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방법입니다. 만일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처럼 그리스도인들이 헌금을 하지 않고 직접 가난한 이들을 도와보십시오. 그런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자기의라는 영적인 함정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결국 그런 사람들은 세상의 인정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어 자신이 한 일들을 침소봉대하여 나발을불(선전) 수밖에 없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집과 밭을 팔아 그 판값을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다 놓은 것은 돈을 미워함과 동시에 돈이 가지고 있는 마력魔力을 제거한 것입니다.

헌금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돈을 무력화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헌금 없는 교회가 아니라 제대로 헌금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헌금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액수로 판단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액수가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을 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자기의 생활비 모두를 드린 과부를 보시고 가장 많이 하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는 돈의 마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보여준 오두막 공동체에 찬사를 보냅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이비어교회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모든 진정한 예수의 제자들이라면, 그런 사람들의 공동체에서라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제가 교회의 꿈을 버리지 않는 것은 가난해지려는 교회야말로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런 교회를 여간해서는 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부족한 저 같은 사람에게도 그 길을 가게 하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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