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망령된 일인가?
무엇이 망령된 일인가?
  • 박성철 목사
  • 승인 2021.01.09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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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를 "주"라 고백을 하더라도 인간은 문화적 차이로 인한 왜곡된 신에 대한 이해, 즉 신인식(Gotteserkenntnis)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교회 내에서 흔히 사용되는 "망령된 일" 혹은 "망령된 짓"이라는 표현도 좀더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말에서 "망령"(妄靈)이란 "늙거나 정신이 흐려서 말이나 행동이 정상을 벗어남, 또는 그런 상태"를 가리킨다.

알츠하이머(혹은 치매)와 같은 질병에 대한 치료가 불가능하던 과거에는 이런 종류의 질병을 앓는 노인들을 대가족 제도 하에서 가족들이 전적으로 보살펴야 했는데, 그 때나 지금이나 그것은 가족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문에 우리 말에서는 '망령된 일' 혹은 '망령된 짓'이라는 표현은 비정상적인 행위나 경악할만한 일을 일컫는 모욕적인 표현이었다.

한글개역개정판에도 "망령된 일" 혹은 "망령된 짓"이라는 번역이 종종 등장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한글개역개정판에서 "망령된 일" 혹은 "망령된 짓"이라는 표현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잘 사용하지 않는 행동에도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한글개역개정판에는 "망령된"이라는 표현이 총 12번 등장한다.

구약성서에서 이 표현이 가장 먼저 등장하는 데는 바로 구약성서의 여호수아 7장 15절의 아간의 범죄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리고성 전투에서의 대승리 후 손쉽게 점령할 줄 알았던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한 여호수아는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제비를 뽑아 범죄한 사람을 찾는다.

아간은 여리고성 전투 후 그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라는 명령을 어긴 채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그 무게가 오십 세겔 되는 금덩이 하나를"(수 7:21) 취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채 자신의 욕심을 따른 아간의 행위에 대해 한글개역개정판 번역자들은 "망령된 일"이라고 표현하였다.

한국교회에서 설교시간에 종종 사용되는 도덕적 의미의 "망령된 짓"은 한글개역개정판에는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사사기 19-20장의 '어떤 레위 사람과 그 첩'의 이야기에서 "망령된"이라는 표현이 4번 등장하는 데 이 때 레위 사람의 첩에 대한 강간을 "망령된 일"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이야기를 제외하면 거짓(잠 6:19), 불의(잠 19:28), 무례와 교만(잠언 21:24), 거짓말(단 2:9), 율법에 어긋남(딤전 1:9), 장자권을 판 에서의 행위(히 12:16) 등과 연관되어 있다.

사실 사사기 19-20장에 등장하는 표현들도 그 레위인이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나그네의 신분에서 정주민들의 폭력에 피해를 입은 사건이었다.

나그네에 대한 보호를 율법의 중요한 덕목으로 삼았던 당시의 문화 속에서 그 강간 사건은 사회적 권력의 역학관계 속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행위를 하거나 거짓을 앞세우는 행위를 "망령된 일" 혹은 "망령된 짓"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오늘날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적절한 듯 하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많은 목사들이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사람들의 행동이나 목소리에 대해 "망령된 짓"이라는 딱지를 쉽게 붙인다.
하지만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내세우고 자신의 잘못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다는 식으로 미화하는 목사들의 언행이야 말로 진정 "망령된 짓"이 아닐까?

박성철목사 페북에서 옮겨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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