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의 어처구니없는, 예상된 몰락
트럼프 대통령의 어처구니없는, 예상된 몰락
  • Young S. Kwon
  • 승인 2021.01.09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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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석 목사 칼럼
권영석 목사 (전 학복협 상임대표)
권영석 목사 (전 학복협 상임대표)

위대함이란 무엇보다 진정성에 기반하여야 하며, 바로 이 때문에 때로는 진정성 자체가 곧 위대하다고도 하는 것입니다. 위대함을 조작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니, 조작질 자체가 이미 위대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을 동원하여 진리를 거짓으로 바꿀 수는 없으며, 패배를 승리로 둔갑시킬 수는 없습니다. 팩트란 영원히 불가역적인 실재이며, 더구나 선거에서는 진정한 승자가 실재로 따로 건재하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궁극적인 권위란 선거에서 나오도록 되어 있으며, 따라서 선거에서 승자는 언제나 유권자 곧 국민이어야 합니다. 작금의 의사당(capitol) 폭력 진입 사태는 미국 역사상 초유의 어처구니없는 일이긴 하지만, 사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껏 쌓아왔던 거짓의 아성이 자가당착적으로 안에서부터 무너져 내린 ‘기승전’의 예상된 수순에 불과하였다 할 것입니다.

진정성에 자신이 없을 때 종종 동원하게 되는 수단이 바로 힘/완력이란 것입니다. 합법적 정당성(rule of law)에 기반한 논리나 설득으로 되지 않을 때 무력이나 폭력을 동원해 보지만, 그러나 그 자체가 이미 논리적으로나 합법적으로 자신/확신이 없다는 패배/실패의 반증일 뿐입니다. 이 때문에 아무리 부당한 일을 당한다 해도 폭력을 동원하게 되면 정당성이 반감되고 맙니다. 비폭력 항거나 평화적 시위는 사실 ‘어려운’ 일이기보다는 달리는 대안이 없는 ‘유일한’ 해결책이라 하겠습니다. 목소리 크기나 주먹의 크기가 진리가 되고 정의가 되는 사회는 인간의 생태계가 아니라 동물의 왕국보다 못한 야만 사회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작금의 의사당 난입 사건은 군대는 물론 전 국민을 대표하고 대변하는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 자신에 의해서 추동되었다는(획책까지는 아니어도) 점에서 참으로 웃지 못할 해프닝이었다 할 것입니다. 만일 참으로 부당하고 부정과 거짓으로 점철된 선거였다면, 경찰도 동원할 수 있고 방위군도 동원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지닌 대통령이 어째서 과격한 지지자들을 부추겨서 의사당에 불법적으로 난입하여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확정 절차를 폭압적으로 방해하도록 추동할 수 있단 말입니까? 혹 야만적인 독재 권력 하에서가 아니라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 절차는 헌법에 명시된바 미국과 미국민의 정체성에 관계된 것이기에, 이런 무도함은 반란 내지 쿠데타로 정죄 받을 수밖에 없다 하겠습니다. 우리가 대리인으로 뽑아 세우고 믿고 맡겼던 대통령이 이렇게 무법하고 무도(無道)한 엉터리 대통령이었다면 대체 공화당은 뭘 하고 있었던 것이며, 미국 민주주의는 어디로 사라진 것입니까?

트럼프 대통령 개인으로 보자면, 한마디로 자기 발등을 자기가 찍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의 극단적인 사례를 남겼다 할 것이니, 일생 거짓을 일삼으면서도 ‘불행히도’ 한 번도 그 거짓된 아성이 무너져 내리는 처절한 경험을 해보지 못한 극단적 나르시시스트의 병리적 기행(奇行)이었다고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을 듯합니다. 패배를 패배로 인정하는 것도 용기이며, 상대방의 승리를 진정으로 축하하는 그런 용기 있는 사람은 사실 져도 함께 이기는 것입니다. 엄밀하게는 패배를 패배로 인정할 줄 모르는 사람은 링에 올라올 자격도 없다 할 것이니, 트럼프 대통령이야말로 패배할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었다 할 것입니다.

임기 만료를 보름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에 탄핵소추를 당할 수치스러운 상황에 놓였으니, 자업자득치고는 너무 가혹하다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자신의 분수를 넘어 자신을 아주 대단하고 위대하게 인식하는 사람의 나르시스틱한 거짓된 자아는 사실 언제라도 그 가면이 벗겨질 수 있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취약한 자아라 하겠습니다.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였던 것보다 훨씬 더 수치스러운 종말을 맞이하고 말았으니, 나르시시스트가 되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역시 감수해야만 하니, 어찌 보면 사람은 사필귀정의 역사적 존재이며, 뿌린 대로 거두는 이치는 멀리 보면 만인에게 한 치의 예외도 허용하지 않는다고 할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과 야망이란 결코 가치 중립적일(value-free) 수 없습니다. 야망의 충족이나 성공 자체가 곧 무슨 대단한 성취로 간주하여선 안 된다는 말입니다. 어떤 야망이며 무슨 성공이냐에 따라 평가는 완전히 엇갈릴 것입니다. 야망을 극대화하여 대통령까지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야망이야말로 가치 없는(valueless) 사욕에 불과했으며, 그가 성취한 것은 기껏해야 이기주의적 성취 자체를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하며 나아가서 사악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뿐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어떻게 이런 인격과 교양의 소유자가 민주주의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 대통령까지 될 수 있었던가 하는 점입니다. 법적 제도적 장치나 경선을 통한 여과 장치는 어째서 이처럼 무력화되었으며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트럼프 씨는 여론의 뭇매를 포함하여 자신의 값을 이미 톡톡히 치르게 된 셈이지만, 미국의 손상된 이미지는 이제 무엇으로 다시 회복할 것이며 이에 대한 책임은 대체 누가 져야 하는 것일까요? 돈 좀 있고 거짓말 좀 잘하는 것으로 많은 사람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이미 아니었던 것이 아닐까요? 미국이 민주 사회 본연의 건강한 시스템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제도나 절차를 보수하고 강화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생태계(socio-political ecosystem) 전반을 재점검하고 그동안 미국 사회가 지향해 온 핵심 가치가 무엇이었던 건지 돌아보고 헌신을 재다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만일 그리만 된다면,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고통받아 온 지난 세월이 절대 헛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이리 보면, 물론 한 국가의 흥망성쇠는 대통령 혼자 책임질 일도 또 책임질 수도 없겠지만, 그렇기에 온 국민이 다 함께 협력하기로 선서하는 것이 취임식의 본디 취지이겠지만, 바이든-해리스 행정부 4년의 과제는 결코 만만치 않다고 할 것입니다. 바라기는 미국 사회가 하루빨리 진리와 정의 그리고 자비와 같은 핵심 가치를 회복하여 서로 신뢰하고 존경하며 피차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충분히 발현하는 합중국(合衆國)으로서 민주 국가요 자유 사회의 궤도로 재진입할 수 있기를 간절히 빌고 또 빌어 봅니다. God bless America, the United St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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