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죽이지 않는다.
아무도 죽이지 않는다.
  • 최태선 목사
  • 승인 2021.01.12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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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셰계로교회가 폐쇄되자 구역예배를 활성화하겠다면서 구역예배를 카타콤예배로 부르겠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냥 아무 데나 갖다 붙이면 되는 이름이 아닙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의 박해를 피해 지하로 숨어들게 된 것과 방역지침을 어긴 행정조치로 대면예배를 비교하는 머리는 도대체 무슨 머리인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카타콤예배라 명명한 구역예배를 드리다 잡히면 붙잡혀 온갖 잔인한 방식으로 사형을 당합니까.

오늘날 풍요의 삶을 누리는 우리는 카타콤이라 불리는 지하에서의 생활이 어떤 삶이었는지 상상할 수 없습니다. 다행히 저는 반지하에서 한동안 산 적이 있습니다. 그땐 밤이 되면 좋았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 지하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인식한다는 것은 그곳이 단순히 습하거나 어둡기 때문만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주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베트남 사람들은 지하의 삶의 비애를 우리보다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오랜 기간 지하생활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베트남 공산당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는 아무도 지하에서 살지 않습니다. 그 삶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생명이 위협받지 않았다면 그들은 결코 지하로 파고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더구나 베트남은 지하세계를 미국을 상대로 싸울 수 있는 저항의 공간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미국은 두려워서 지하로 내려갈 수 없었습니다. 지하세계이지만 그들 나름의 자유와 힘이 보장되는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카타콤은 제가 살던 반지하나 우리가 베트공이라고 불렀던 베트남 사람이 살아야 했던 지하굴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곳입니다. 그곳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은 끊임없이 로마로부터의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했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방어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피하고 숨었습니다. 카타콤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 다시 말해 그들이 소유하게 된 영원한 생명이 현세의 생명보다 중요하다는 믿음의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세계로교회 교인들의 믿음이 초기 그리스도인처럼 생명을 거는 그런 믿음일까요.

그것처럼 웃기는 생각은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다만 세계로교회라는 종교조직의 일원으로서 영원한 생명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는 것일 뿐입니다. 그들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처럼 모두가 도망간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사람들도 아닙니다. 만일 코로나의 사망률이 치명적으로 높다면 과연 그래도 그들이 모이려고 할까요.

착각은 자유라지만 오늘날 교회는 너무도 그 증상이 심각합니다. 물론 전에도 이미 그것을 보았습니다. 전광훈이 자신을 본훼퍼라고 하면서 순교를 운운하며 모두 순교하러 가자고 말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만일 그들이 우리나라의 육칠십 년대에만 살았더라도 그런 소리를 입 밖으로 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시체조차 찾지 못할 실종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것도 그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을 경우입니다. 저는 도무지 그 사람들이 정말 그렇게 죽을 정도로 모진 고문을 이겨낼 만큼 절절하고 강한 믿음을 가졌다고 상상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한 마디로 양냥이를 떠는 것입니다. 죽이지도 않고 불이익도 당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갖다 붙이고 떠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신천지조차도 하지 않았던 일들을 그들은 하고 있습니다. 정말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그런데 그런 미친개 같은 사람들이 많아도 너무 많습니다. 그것이 그동안의 교회의 열매라는 생각을 하면 정말 서글퍼질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차라리 속아주는 일만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서로를 송사하는 모습을 보고 바울이 한 이 말에는 정말 중요한 하나님 나라의 대원칙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 백성은 폭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공권력이라는 말의 의미는 공적으로 사용되는 폭력이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 폭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또한 당하라는 말 역시 대단히 중요한 원칙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당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영성은 수동의 영성입니다. 세계로교회와 그들을 동조하는 교회와 목사들이 그토록 많은 것은 그동안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수동의 영성에 대해 문외한임과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힘을 추구하는 자들이 되었음을 명징하게 드러내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기도원운동이 순수한 기도운동이 되지 못한 것은 그동안의 기도원에서 행해지던 기도가 힘을 추구하는 기도였기 때문입니다. 힘을 성령의 능력이라고 믿는 왜곡된 믿음이 한국교회를 장악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힘과 능력을 추구하면서 오직 약함을 통해서 작동하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신교 교회들은 사막의 교부들이나 수도원운동에 대한 연구와 공부가 필요합니다. 물론 그런 운동들 가운데도 잘못된 흐름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동방교회 서방교회 기도의 정수는 관상기도라는 사실만을 알아도 오늘날 개신교 기도원운동이 얼마나 바알과 아세라의 기도인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돈을 매개로 하나님과 거래하는 기도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사람들의 기도입니다. 한 번 물러나 잘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기도가 어떠했는가를. 제 말에 동의할 수 없다면 오늘날 세계로교회와 같은 교회에서 드리는 ‘주여 삼창기도’를 한 번 눈을 뜨고 관찰을 해보십시오. 한 번 자리를 옮겨가며 그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외치는 기도의 내용을 한 번 들어보십시오. ‘주시옵소서’를 소리 질러 외치는 저마다의 고함소릴 듣고도 그래도 그것이 욕망의 기도라는 걸 발견하실 수 없다면 그냥 그 길을 가십시오.

어쨌든 코로나로 드러나는 교회의 실상은 그동안 한국의 개신교 신앙이 얼마나 철저하게 왜곡되었는지를 보기에 충분합니다. 아직도 그렇지 않은 많은 교회들이 있다고 그렇지 않은 목사들이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그 사람은 희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제 신앙의 두 기둥은 가난과 비능력입니다. 가난의 신비와 비능력의 신비는 배우기가 심히 어렵습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신앙은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사실은 죽는 것보다 더 두려운 자유의 선택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의 사십 년간의 훈련을 잘 마쳤지만 가나안에서 새롭게 시작한 하나님의 백성의 삶에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을 잠식한 것이 바로 폭력과 능동의 신앙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왕이신 하나님께 인간 왕을 요구하였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지키고자 바알과 아세라와 같은 이방신들을 위한 산당을 세웠습니다. 입으로는 여호와가 자신들의 하나님이라고 외쳤지만 실상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바알과 아세라였습니다.

똑같습니다. 오늘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 역시 바알과 아세라의 총화가 된 맘몬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비폭력과 수동의 영성을 아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세계로교회로 인근 지역에 사는 분들이 몰려든다고 하였습니다. 전형적인 산당의 모습입니다. 산당은 힘과 영향력을 추구하는 곳이기 때문에 싹쓸이를 추구하는 곳입니다. 진정한 교회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처럼 마지막 살 한 조각, 피 한 방울까지 아낌없이 내어주는 곳입니다.

생각해보면 은혜입니다. 우리는 세계로교회나 전광훈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다툴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을 경멸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평화를 도모하는 일에 매진하고,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고 하나님 나라의 샬롬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기 위해 기꺼이 가난과 비능력(무력함)을 선택하는 일이 바로 지금 진정한 예수의 제자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 되시게 하는 일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깨닫는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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