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서 목소리 내라고요? 그런 시선이 폭력입니다”
“남아서 목소리 내라고요? 그런 시선이 폭력입니다”
  • 지유석
  • 승인 2021.01.30 04: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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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장애인이란 이유로 목회실습 ‘배제’ 당한 유진우 씨

"대학원에 들어와서 느낀 건 '장애인'으로서 사역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장애인 당사자에 대한 제도, 또는 사역할 수 있는 교회가 없어서 나중에 목사안수를 받아도 과연 제가 사역할 수 있는 교회가 있을지 걱정과 근심이 들었습니다. 대학원 교수님들에게 사역지를 구해달라고 요청을 해도 '기다리라'는 답변만 돌아오고 변한 건 없었습니다. 또한 제가 알던 목사상과는 너무나도 다른 목사들이 있어서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목회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다녔던 유진우 씨가 학교에 낸 자퇴서에 적은 자퇴사유다. 

유진우 씨는 장애인이란 이유로 목회실습에서 ‘배제’ 당했다. 이에 유 씨는 다니던 한신대 신대원을 자퇴하고 고향 군산으로 내려왔다. 유 씨는 고향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유진우 씨는 장애인이란 이유로 목회실습에서 ‘배제’ 당했다. 이에 유 씨는 다니던 한신대 신대원을 자퇴하고 고향 군산으로 내려왔다. 유 씨는 고향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유 씨는 중증뇌병변장애인이다.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유 씨는 어린 시절부터 목회자를 꿈꿨다. 그래서 한일장신대학교를 거쳐 한신대 신대원에 진학했다. 그런 유 씨가 세 번째 학기 종강이 얼마남지 않은 지난 해 12월 자퇴를 결심한 것이다. (한신대 신대원은 올해 1월 18일 유 씨를 제적처리했다)

목회자가 되기 위해선 일선 교회에서 목사수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에 유 씨는 2019년 1월부터 10월까지 12개 교회에 지원서를 냈지만, 어느 곳에서도 유 씨를 받아주지 않았다. 유 씨가 자퇴를 결심한 건 바로 이 같은 이유에서다. 

유 씨는 자퇴 후 고향인 전북 군산으로 내려왔다. 그는 고향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또 장애인 지원단체와 협력해 국가인권위원회, 그리고 한신대가 속한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교단 등을 상대로 진정서를 내는 등 대응도 준비 중이다. 

기자는 지난 26일 군산에서 유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아래는 유 씨와 나눈 일문일답. 

-. 이번 일은 장애인 관련 이슈를 주로 다루는 <비 마이너>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이후 <국민일보>에도 소개됐었다. 이후 기장 교단이나 학교 측에서 반응이 나왔나?

보도 이후 여러 곳에서 연락을 받았지만 교단에서 온 연락은 없었다. 왜 이렇게 반응이 없는지 궁금하다. 혹시 '저러다 말겠지'라고 치부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 기장 교단 하면, 진보성향의 장로교단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교단에서 장애인 목회자 양성에 미온적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솔직히 너무 화가 난다. 내가 왜 이런 상황에 처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다른 한편으로 한 순간에 17년 간 꿈꿔온 목사의 꿈이 무너져 허탈하다. 

-. 일각에선 학교를 떠나기 보다 남아서 목소리를 내는 게 더 나은 방법이라는 시선도 없지 않다. 

몇몇 교수님들도 같은 말을 했다. 그런데 이런 시선은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난 이미 상처 받을대로 상처 받았는데, 학교는 꿈쩍도 안하는데, 내가 남아서 목소리를 내봐야 무슨 소용 있을까 생각했다. 이런 생각에 자퇴를 결심한 것이다. 

-. 자퇴 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에 내려왔다.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목회자의 꿈을 정말 포기했는가?

일단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그런데도 목회자가 되고 싶고 이런 열망은 여전하다. 내 소망은 목사이지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학교에 돌아갈 수 없다. 설혹 돌아간다고 해도 여전히 학교 안에 차별이 둥둥 떠다니는 지경이라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다.

또 화가 나지만 분노의 감정을 내려놓고, 무엇부터 바꿔 나아가야 할지 고민 중이기도 하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해 보여서다. 

차별 ‘둥둥 떠다니는’ 신학교 

-. 앞서 학교 안에 차별이 '둥둥 떠다닌다'고 표현했다. 언제 차별 당한다고 느꼈는가? 

대학원 1학년 내내 학교 시설, 기숙사, 현장목회실습, 목회실습 등에서 내내 차별을 겪었다. 학교 시설과 기숙사 문제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겠는데, 학교엔 자동문이 없어 도움 없이는 문도 열지 못했다. 기숙사의 경우 장애인을 위한 배려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아 기숙사에 들어가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기숙사는 동료 원우님과 소통하고 삶을 나누고, 때론 미래의 목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공간인데 여기서 배제당한 것이다. 

목회실습 또한 배제당했다. 간단히 말해서 목회실습은 일선 교회에 교육전도사로 임명 받아 부서를 맡고 전도사 사역을 하는 걸 뜻한다. 목회실습은 미래의 목회 방향을 잡는데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어떤 목회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아주 중요한 과정이다. 또 (교회로부터) 사례비를 받아 생계를 유지하고 학비도 마련한다. 난 목회실습을 위해 열 곳이 넘는 교회에 지원했는데 전부 서류전형에서 탈락했다. 장애인이라는 게 탈락사유였다. 이것이 장애인 차별이 아니면 뭐가 장애인 차별일까? 

-. 대학원 과정 말고도 이전에 차별 당한 경험이 있다면 말해달라.

학부과정인 한일장신대학교 때 일이다. 이 학교는 장애인 비장애인이 함께 공부하는 학교다. 대학 2학년 2학기 때, 총동아리연합회에서 체육대회를 주최했는데, 학교 운동장이 협소해 인근 운동장을 빌려 체육대회를 치렀다. 주최측에서 9시까지 오면 된다고 하기에 갔었는데, 운동장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출입문이 1, 2층에 있었는데 주최측에서 2층만 개방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 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게다가 체육대회에선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종목이 없어 사실상 '구경꾼' 처지에서 체육대회를 관람해야 했다. 

“남아서 목소리를 내야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대해 유진우 씨는 “그런 시선 자체가 폭력적”이라고 답했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남아서 목소리를 내야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대해 유진우 씨는 “그런 시선 자체가 폭력적”이라고 답했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 혹시 차별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나?

체육대회 때 일에 분노했다. 그래서 꼭 총동아리연합회 회장을 맡아 체육대회를 치러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마침대 회장이 되어 체육대회를 치렀다. 이때 장애인 비장애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종목이 없을까 찾아보다 '론볼'이란 종목을 알게 됐다. (론볼은 공을 굴려 잭이라는 공까지 얼마나 근처에 접근 할 수 있을까를 겨루는 구기종목으로 영국 등 유럽에선 생활 스포츠로 자리잡고 있다 - 글쓴이)

준비과정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장애인 비장애인 학생이 함께 차별없이 경기를 치렀다. 함께 경기를 즐길 수 있었다는 상황이 황홀하기까지 했다. 지금도 그 기억은 생생하다. 

-. 앞으로 계획이나 소망이 있다면 말해 달라. 

궁극적으론 장애인 차별이 없어지는 그 날까지 싸워나갈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거대 권력이나 기득권에 무너기지 보다, 저항해서 싸우지 않았던가? 

지금은 언론 취재 요청이 오면 적극 응한다. 내가 당한 일을 적극 알리기 위해서다. 만약 다른 장애인이 (신학교에) 입학했을 때 또 다른 차별을 마주하면 안 되지 않겠나? 

이렇게 제도와 상황을 바꾸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제도와 환경이 바뀐다면 신학교로 돌아가려 한다. 그래서 구상하고 꿈꿔온 목회사역을 펼치고, 성도와의 교재를 통해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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