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부와 청빈
청부와 청빈
  • 최태선 목사
  • 승인 2021.01.31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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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글의 주제가 많이 다가왔다. 그 중 두 개의 주제가 머리를 들락거렸다. 어느 것을 주제로 삼아야할지 결정하기 어려웠다. 한참을 망설이자 그 두 개의 주제가 하나가 되었다. 이럴 때 나는 은혜를 경험한다.

하나는 포도원 주인 역할을 하는 이민복이라는 분의 이야기다.

참 아름다운 이야기다. 이분은 정신지체 장애인들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제공한다. 특히 어느 곳에서도 일할 수 없었던 정신지체 장애인 선생님들이 일할 수 있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우선 그곳은 노동 자체가 목적인 일자리이다. 인간의 노동은 삶을 위한 수단의 역할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 자체가 인간을 인간 되게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인간됨의 일부이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사회적 존엄과 소속감을 느낄 수 없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의 정체성은 비인간화이다. 노동하지 않는 인간은 인간답게 살 수 없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우리는 그동안 노동을 착취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습관에 길들여져 있다. 그래서 노동하지 않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맘몬의 가장 은밀한 유혹 가운데 하나이다. 노동하지 않는 인간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반드시 비인간화 된다.

아주 오래 전 이야기이다. 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았다. 대학교 졸업반이었던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군 면제를 받으려고 했다. 돈을 준비해 놓고 아는 사람을 통해 병무청 직원에 접근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위험한 일이라 거절을 당했다. 하지만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특권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방위라도 받기를 원했지만 결과는 현역 입영 판정이었다. 대학생이 아니라면 정상적으로 방위 판정을 받는 등급이었다. 하지만 대학생은 무조건 한 단계를 올려 판정을 하던 시절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조금은 낙담한 마음으로 나오는데 어떤 사람 하나가 울면서 뛰어나갔다. 이유는 군 면제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무학이었다. 당시 무학인 사람은 면제 판정을 받았다. 그 사람은 내가 그토록 바라던 군 면제 판정을 받았는데 기뻐하지 않고 세상이 끝난 것처럼 울면서 뛰어나갔다. 그에게 군 복무는 그의 인간됨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그는 그 인정을 받지 못했다.

노동도 이와 같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노동 없는 삶이 로망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인간됨을 인정받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된다. 정신지체 장애인들에게는 정말 인간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절대적인 시금석이 된다. 노동을 통해 존엄과 사회적 일원으로서의 소속감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히즈빈스라는 커피전문점은 장애인 선생님들을 고용하고 그들을 여러 다른 사람들과 연결하여 그분들로 하여금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정말 아름다운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늘 말하는 하나님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시작은 한동대와 포스코이다. 히즈빈스의 대표인 이민복님은 한동대 출신으로 한동대 교수 중 한 분의 지도로 이 일을 하게 되었다. 그 일을 포스코가 후원하여 시작하게 되었다. 이 대표는 청부론에 크게 감동을 받아 이 일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내가 생각하던 일자리 창출과 같은 내용을 이들은 시작했고 나는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다른 커피 전문점들과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코로나로 심한 운영난을 겪고 있다. 나는 이들이 하는 일이 잘 되기를 바란다. 이들의 시작과 동기는 청부였다. 이런 일들이 가능하고 이런 일들을 많이 하기 때문에 청부론을 추앙하는 이들의 교회들은 ‘높은 뜻’이라는 형용사를 달고 있다.

다른 이야기는 중증 뇌병변장애인인 유진우님의 이야기이다.

유진우님은 신학대학원을 다녔다. 그러나 그는 교회에서 일할 수 없었다. 다른 신대원생들과 똑같이 대접을 받을 수 없었다. 교회에서 일할 수 없으면 신학대학원을 졸업해도 목사가 될 수 없다. 그는 결국 3학기를 바치고 신대원을 그만두었다. 안타까운 이야기이다.

그는 일할 수 없었다. 그는 주체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서 나는 진정한 인간됨이 어디까지인가를 보게 된다. 우리는 위에서 이야기한 히즈빈스만으로도 대단한 성취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일이다. 진정한 인간됨은 차별이 없는 주체가 되는 자리에 이르러야 한다.

오래 전부터 나는 고아원엘 드나들며 그곳을 도왔다. 그곳 출신 아이들 가운데 공부를 하여 그 고아원에서 일하게 된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은 그것으로 그들이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다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그렇게 그곳에서 일하게 된 사람들이 그곳의 책임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들 가운데 누군가가 그곳의 원장이 되는 날을 나는 기다리고 기도한다.

나는 이것으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청부에서 시작하는 일과 청빈으로 하는 일의 차이를 보실 수 있기를 바란다. 청부에서 시작한 일에서 equity가 이루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와 복지와의 차이이다.

히즈빈스의 이 대표는 장애인들을 장애인 선생님으로 부른다. 내가 노숙자들을 노숙자 선생님으로 부르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들의 방식은 나와 다르다. 이들은 청부가 되어 이런 아름다운 일들을 한다. 그러나 나는 거지가 되어 이런 일들을 하려는 것에서 차이가 난다.

어쩌면 내가 하려는 방식은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끝날 수도 있다. 나는 하나님께서 일하시기를 기다린다. 이것이 나무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일 이 대표가 정말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면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 장애인 선생님 가운데 한 분에게 대표자리를 물려주고 자신은 그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의미의 equity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는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청부론에 매료되고 또 사회적으로 칭송을 받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스도의 방식이라고 주장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방식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의 방식이고 더 엄밀히 말한다면 맘몬의 방식이다. 돈으로서 가능과 불가능이 갈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일들을 통해서도 섬김이 가능하다. 더 많은 일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 섬김은 성서가 말하는 ‘섬김’이 아니다. 그것은 ‘자선과 시혜’이다. 그 일은 희생으로서 가능한 일이 아니라 힘과 영향력으로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히즈빈스와 같은 곳이 있어 고맙다는 생각을 하지만 내가 하려는 일을 포기할 수 없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진정한 하나님의 정의, 그들이 말하는 공정함(equity)은 장애인이나 작은 자들이 주체가 될 수 있느냐에 그 관건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언제든 효율을 생각한다. 더 많은 out put을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는 그런 효율이나 out put이 아무런 전제가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을 하면서도 그것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인간 회복은 단순한 인간 회복이 아니라 영혼까지 회복되는 전인적인 회복이다.

나는 그 근본적인 차이가 청부와 청빈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의 길은 비움의 길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비움의 길을 가야 한다. 어느 것이 비움의 길이겠는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청부가 비움의 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히즈빈스와 같은 곳들을 예로 들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포도원은 오직 청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오늘도 나는 장애인 선생님들이 주체가 되고 장애인 신학생이 목사가 될 수 있는 포도원을 꿈꾼다. 그곳은 말씀대로 큰 자가 작은 자들의 노예가 되어 발을 씻는 곳이다. 내 생이 다할 때까지 그런 일이 이루어질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일이 내게서 이루어지지 않을지라도 주님은 반드시 그 일을 이루실 것이라고 믿는다. 청부로서 가능한 일은 하나님 나라의 일이 될 수 없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오직 청빈에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청빈에서 이루어지는 포도원을 향해 간다. 주님께서 이 일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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