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의 싸움
권력과의 싸움
  • 최태선 목사
  • 승인 2021.03.06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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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누군가의 글에서 윤석열과 전광훈이 똑같다는 내용의 글을 보았습니다. 기억에 남아 있는 걸 보니 제가 거기에 공감한 것이지요. 그 글의 취지는 그 둘이 제 맘대로 날뛰는 만무방이라는 의미에서일 것입니다.

그런데 윤석열은 전격 사임했습니다.

그는 머지않아 격세지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권력을 틀어쥐고 있다가 그 권력을 놓으면 어떻게 되는가를 실감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 허무감을 사람들은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에 담아놓았습니다. 누구나 동의할 수밖에 없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윤석열이 그토록 끈질기게 버텼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아내와 장모의 사건의 공소시효가 언제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도 그런 일들의 안전이 보장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물러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물러나기 직전 대구를 방문했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더 큰 권력에의 의지입니다. 현재 가지고 있는 권력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법무부장관 나부랭이들한테 시달리는 것이 못마땅했을 것입니다. 현직 대통령을 잡아다 치도곤을 치르게 할 수 없는 것도 답답했을 것입니다. 결국 호랑이를 잡기로 마음먹은 것입니다.

윤석열이 정치판을 몰라도 정말 한참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철수님이 헤매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나 봅니다. 반기문님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아무리 천운이 필요한 자리라고 해도 국민 모두가 그 천운을 알아볼 수는 없습니다. 천운이 있다고 뚝딱 대통령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걸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허경영이 같은 인물이 하나 더 등장하게 되겠지요. 허경영이 자신이 활동하는 곳을 하늘궁이라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허무맹랑한 사람을 추종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신기할 뿐입니다. 참으로 인간이란 기묘막측 하다는 생각 외에는 달리 이해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이것이 권력의 속성이라는 사실입니다. 권력은 사고를 마비시킵니다. 자신 외에는 달리 해법이 없다고 믿게 합니다. 그리고 적절한 때가 되면 그 사람을 몰락시킵니다. 박근혜씨의 경우가 그러할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특권 속에서 헤엄을 치던 그녀가 물을 만나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냥 편하게 드라마를 보며 살았으면 좋았을 사람입니다. 그러나 권력은 그런 그녀의 사고를 마비시킵니다. 자신이 국민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게 만들고 우주가 자신을 위해 돌아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독재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이 국가와 국민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연재해와 기아로 수많은 국민이 죽어가도 독재자는 자신의 아방궁을 짓느라 여념이 없고 온갖 쾌락을 섭렵하느라 시간이 모자랍니다. 참으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은 자리가 독재자의 자리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권력의 완성형은 북한 김씨 일가입니다. 이들처럼 오래 권력을 유지하고 이어가는 독재자들은 없습니다. 김씨 일가를 자세히 보면 권력이 보입니다. 권력의 속성을 알 수 있습니다. 김씨 일가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연산군을 공부해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노골적이라는 측면에서 아주 좋은 반면교사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바로 이 권력과의 싸움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인간을 적대자로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로 하는 것입니다.”

개역한글은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은 정사와 권세라는 단어로 번역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훨씬 더 이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세와 권세라는 말은 권력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의 정체성이 바로 권력을 추구하여 권력을 가지게 된 실체들입니다. 우리(그리스도인)의 싸움은 바로 이들과의 싸움이며 그것은 곧 권력과의 싸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권력과 싸우는 사람들입니다. 그 의미는 권력을 가진 자들을 적으로 여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권력 자체를 적으로 삼으라는 말입니다. 권력이 발붙일 수 없는 나라를 건설하라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권력을 무력화시키는 도구가 바로 섬김입니다. 성서가 말하는 섬김이란 단순하게 남을 대접하고 돌보는 것이 아닙니다. 성서가 말하는 섬김이란 권력을 무력화할 수 있는 완전한 방법입니다. 힘을 가진 자가 힘이 없는 자의 종이 되어 섬긴다면 권력이 더 이상 발붙일 수 없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전혀 다른 나라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의 이 말씀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왕으로서 마땅히 사람들의 섬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님은 세상의 통치자들과 지배자들과 달리 지배하고 다스리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대야에 물을 떠다 허리에 수건을 동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분입니다.

저는 늘 성찬식보다 세족식이 그리스도교의 표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성찬식은 구원을 상기시키지만 세족식은 하나님 나라를 상기시키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과정입니다. 구원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우주의 가장 끝자리까지 그리스도로 통일될 때까지 구원의 역사는 계속될 것입니다. 이것이 성서가 말하는 역사의 끝, 종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종말을 지구 종말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지구 종말의 현상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짜 종말은 온 우주의 통일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10절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임이 분명하다면 이 말씀을 꼭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의 종말은 끝이 아니라 완성이며 새로운 시작입니다.

세상은 권력이 지배하는 영역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권력이 침범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세상보다 더 권력이 공고한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이 지배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전광훈입니다. 윤석열은 물러났습니다. 하지만 전광훈은 여전히 끄떡도 없습니다. 그가 가진 영향력과 힘이 너무도 공고해서 그를 이단으로 지목조차 할 수 없답니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오늘날 교회가 세상보다 더 공고한 권세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목사들을 보십시오. 그들 가운데 교인들의 발을 씻어주는 목사를 보셨습니까. 나귀 새끼를 타고 다니는 목사를 보셨습니까. 지팡이와 두 벌 옷과 전대도 가지지 않는 목사를 보셨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목사들이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 한통속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결론을 제시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고 여러분의 결론을 내리십시오.

윤석열은 물러나도 전광훈은 끄떡도 없습니다.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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