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와 정부 그리고 그리스도인
LH와 정부 그리고 그리스도인
  • 최태선 목사
  • 승인 2021.03.12 08: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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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직원들의 땅 투기가 화제가 되고 있다. 국민들과 특히 농민들은 여기에 분노하고 있다. 정부는 이 사건이 서울과 부산의 보궐선거에 악영향을 미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똑같은 사건을 놓고 보는 시각이 제각각일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이다. 그래서 사람은 모름지기 생각을 해야 한다. 물론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을 하고 판단을 하고 그것이 바르다고 여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생각은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보라는 말이다. 

먼저 LH 직원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자. 자신이 LH 직원이 되었다고 상상을 해보시라. 자신의 일을 하다가 얻게 되는 정보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 않을까. 누구라도 그런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 자신이 직접 그 정보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그 정보를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이 누구일까. 가장 먼저는 직계 가족일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가까운 친구나 그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자본가일 것이다. 결국 직접은 아니더라도 자신이 얻게 된 정보를 이용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청백리를 상상한다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고 생선이 하나도 없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더구나 일탈의 대가가 평생 자신이 그 직장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의 총합계를 넘어선다면 그 유혹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단연코 없다. 한 탕 하고 집행유예 정도의 대가를 지불하기만 하면 자손에게 물려줄 몫까지 챙길 수 있다. 그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오래 전 일이다. 나는 위관장교로 군에서 예산을 관리하고 집행하는 부서에서 일을 했다. 매달 월말이 되면 담당 선임하사가 거래하는 곳의 매출액에 따라 일정 비율의 돈을 걷어온다. 그 돈은 선임하사가 먹는 것이 아니다. 그 돈을 사령관과 부사령관을 필두로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에 근무하는 방위병에 이르기까지 직무의 정도에 따라 나누어주었다. 부대의 다른 부서로도 술값이나 협조에 대한 대가가 나갔다. 나도 매달 당시 내 중위 월급 정도의 돈을 받았다. 

내가 그 돈을 받지 않을 수는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직무를 내세워 직접 업자들로부터 술을 얻어먹거나 돈을 뜯어내지 않는 것이었다. 만일 내가 그때 그 돈의 수령을 거부하거나 양심선언을 했다면 나는 불명예제대를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LH 직원들의 일탈은 일종의 구조적인 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익을 공유하는 무언의 카르텔이 그들 전체를 아우르고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짐작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은 사회를 본 적이 없다. 어디건 자신의 직무와 관련된, 관습이 된 비위가 없는 곳은 없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가장 근본적인 특징이다. 

LH 직원들의 일탈을 보고 분노가 치미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분노를 엉뚱한 곳에 돌려서는 안 된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몰려든다. 이익이 있는 곳에 똥파리들이 들끓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특히 그 비난을 정부를 향해 돌리고 책임을 묻는 것은 또 다시 그와 같은 비리들이 이어질 수 있는 빌미를 주는 것이다. 국민의 힘이 정권을 장악하면 그와 같은 비리들이 저절로 사라지는가. 그럴 일은 없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철저한 법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다. 직무를 활용하여 얻은 이익을 모조리 환수하고 그에 대한 엄정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의 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잘 보라. 법을 만들어야 할 사람들이 이권에 가장 밝은 사람들이다. 꼭 땅투기는 아니더라도 그들이 직간접으로 이런 불의에 연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함바식당도 그런 예의 하나일 뿐이다. 드러나지 않았지만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는 모두 이런 구석이 있다. 그러니 이러한 불의를 막을 수 있는 법의 제정이 쉽지 않다. 

국민들은 분노하는 것에 정력을 낭비하지 말고 이러한 법의 제정을 촉구하고 그것의 추이를 면밀하게 주목하면서 그 결과를 선거에 반영해야 한다. 결국 LH의 비리를 막을 수 있는 사람들은 국민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LH 직원이 내부망에 올린 글을 참고해보라. 이익의 총합이 평생 회사를 다니며 얻을 수 있는 수익의 총합보다 많다면 누가 그 일을 하지 않겠는가. 또 불만이면 LH로 이직을 하라는 말도 잘 생각해보라. 화만 낼 일이 아니다. 그들의 말은 합리적이다. 국민들도 거기에 합리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그따위 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그런 일탈이 손해가 될 수 있는 법의 제정을 촉구하고 실제로 그런 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여론이나 투표권 등의 국민이 가진 힘과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할 것이다. 

정부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언급한 것처럼 LH 사장이었던 사람이 LH 직원의 부정에 연루되지 않았을 개연성은 제로다. 그러므로 하루라도 빨리 그를 해임해야 한다. 정부가 선거를 염두에 두지 않을 도리는 없다. 그러나 선거에 염두를 두면 둘수록 선거는 불리해질 것이다. 포기할 것은 포기할 줄 아는 것이 정치다. 모든 것을 얻으려 한다면 결국 독재밖에는 답이 없다. 국정원의 사찰을 부활시키고 검찰을 정부의 시녀로 만들고 언론을 장악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이 정부의 지향점이 될 수 없다. 따라서 과감하게 도려낼 것을 도려내고 책임질 것을 책임질 자세를 보이는 것이 정부가 가져야 할 태도이며 그것이 가장 좋은 결과를 이루어낼 것이다. 

갑자기 엉뚱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이 모든 일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람은 그리스도인들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짠 맛을 되찾게 하겠느냐? 짠 맛을 잃은 소금은 아무데도 쓸 데가 없으므로, 바깥에 내버려서 사람들이 짓밟을 뿐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세운 마을은 숨길 수 없다. 또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다 내려놓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다 놓아둔다. 그래야 등불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환히 비친다.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

소금과 빛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존재 자체로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고 세상의 악을 드러내 스스로 성찰하게 함은 물론 세상이 잘못된 곳임을 인정하고 세상으로부터 돌아서서 하나님 나라를 향하게 만들어야 하는 근본적인 사명을 지닌다.

국회에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는가. 그러나 그들은 국회를 정화하지 못한다. 그들만 그러겠는가. LH에는 그리스도인이 없는가. 그들도 LH를 정화하지 못한다. 정화는커녕 그들의 부패의 선봉에 있지 않을까. 그렇게 성공하고 그렇게 돈을 벌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간증을 하고 있지 않을까.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무한책임감을 느낀다. 내 탓이다. 내 잘못이다. 내가 소금과 빛으로서의 나의 정체성과 사명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행사하지 못해서 LH의 일탈이 일어났다!

세상은 자체가 어두움이라는 것이 성서가 말하는 세계관이다. 그 어두움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빛으로 산화되는 그리스도인들이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소금과 빛인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그것을 보여줌으로써 불의하지 않은 다른 나라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다. 교회는 그 일의 전진기지가 되어야 한다. 

억장이 무너진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세상의 선봉장이 되지 않았는가. LH 사건을 통해서도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들리지 않는다면 머리에 재를 뿌리고 겉옷을 찢으라. LH 직원들의 불의보다 정부의 무능력보다 그리스도인의 직무유기가 더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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