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열매
일과 열매
  • 최태선 목사
  • 승인 2021.03.25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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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아는 분을 한 분 만났다. 이분은 독특한 분이다. 교회를 하신다. 그런데 목사가 아니다. 목사가 아닌 이분이 교회를 하게 되신 이유는 서울대 나온 목사 탓이다. 교회가 너무 교회답지 않게 일을 하니 그 안에서 견딜 수가 없었다. 삼 대째 교회를 다니고 있었지만 그것으로도 교회에 머물 이유가 되지 못했다. 결국 그렇게 나오게 된 몇 가정이 모여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 벌써 4년이 다 되어간다.

다니던 교회에서는 그러다 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그 교회는 견고했다. 그들은 차근차근 복음을 체득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예수님이 원하셨던 공동체, 복음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를 향해 치닫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원래 다니던 교회로의 복귀도 염두에 두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젠 그것이 불가능해졌다. 복음이 무엇이며 교회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걸 알게 되면 기존의 교회의 틀 안에서는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다. 그건 이분의 경우만이 아니다. 누구건 교회가 무엇인지 알게 되면 오늘날 교회를 나갈 수 없게 된다.

나는 그것을 제도권 밖에서 보아왔다. 사실 나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 우리 교회가 성장했더라면 나 역시 그것을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처절한 실패를 경험하고 또 경험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나는 교회를 배웠다. 복음도 다시 배웠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그분을 본이 되게 하신 이유와 의미를 깨닫게 된 것이다. 그것을 알고 나니 다시 예전 제도권 교회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어쩌면 큰 불행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신앙생활을 잘 했을 터였다. 그러나 완전히 야인이 되었다. 아웃사이더라는 단어로는 그 존재의 의미를 담아낼 수 없다. 사실은 아웃사이더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남은 자의 역사가 유일한 진짜 역사이다. 남은 자들은 아웃사이더처럼 보인다. 그러나 남은 자들만이 유일한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일꾼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꿈을 위해 산다.

위에 언급했던 분을 다니던 교회에서 회유한다. 다시 돌아와 성가대 지휘도 하고 나가지 않았다면 이미 되었을 장로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런 일은 평신도들이 꿈꾸는 신앙생활의 로망이다. 누구나 장로가 되어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주님께 드리고 싶은 것이 평신도들의 꿈이라는 건 누구나 똑같다. 그렇게 장로가 되어 교회에 충성하면 죽은 후 금 면류관을 상급으로 받게 될 것이라는 예상도 똑같다.

그런데 정말 그런 신앙생활이 바람직한 것이고 완벽한 것인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젊어서 장로가 되지 않았던 것이 내가 받은 가장 큰 주님의 은혜라고 생각한다. 내가 장로가 되었다면 나는 교회와 담임목사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을 내 신앙의 전부로 알았을 것이다. 나는 교회에서 군림하면서 그것을 섬김으로 알았을 것이다. 그런 나의 희생과 헌신 덕에 세상에서도 잘 살고 죽은 후에는 맨발로 나와 나를 영접하시는 주님을 만나고 맨션 아파트와 같이 크고 화려한 곳에서 영원한 삶을 누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그런 내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는 일은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서는 바로 그런 일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을 음미해보라.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이 하는 말로 미루어보아 장로 정도의 삶을 산 것이 아니다. 이 사람은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살았다. 이 사람이 내세우는 것은 그러나 그가 한 일이다.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일이 아니고 열매다. 이 사실이 중요하다. 열매는 생명의 결정체이다. 생명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일이 아니라 존재의 변화이다. 존재가 변화되어야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이 ‘Doing'이 아니라 ’Being'의 문제라는 걸 잘도 설교하면서도 정작 그 설교를 듣는 사람들은 오직 ‘Doing'에 전념한다.

장로가 되는 것은 존재의 변화가 아니다. 장로가 되어 하는 일도 그래서 열매일 수 없다. 그런 일을 아무리 많이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보듯이 그 일을 자신의 이름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내용도 범상치 않은 일이고, 한 두 번 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아무런 소용도 없다. 그것은 존재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불법이다.

나는 며칠 전에도 영생과 관련된 글을 쓰면서 사마리아 사람의 ‘긍휼히 여기는 마음’에 대해 언급했다. 존재의 변화의 가장 시금석이 되는 것은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다. 그러나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고 권사가 되면 권위가 덕지덕지 쌓인다. 그리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가뭇없이 사라진다. 자신의 신앙생활은 다른 사람을 재는 잣대가 되어 심판의 도구로 작동한다. 표정 역시 근엄해진다. 내 말이 틀리는가. 본인 자신만 모르지 다른 사람들은 다 안다.

돈만 사람을 교만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둘은 둘이 아니고 하나다. 돈이 권력이고 권력이 곧 돈이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돈 없는 사람이 장로가 되기 어렵다. 혹 되는 경우가 있어도 돈 없는 장로는 행세를 하지 못한다. 결국 돈과 장로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헌금을 가장 많이 해보라. 장로가 되는 지름길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장로가 되지 않는 교회를 보지 못했다. 결국 오늘날 한국 개신교에서 장로가 된다는 것은 가장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헌금을 꽤 많이 하는 사람이다.

잘 생각해보라. 돈이 대우를 받는 곳이 어디인가. 그리스도가 머리인 교회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없다. 그런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나는 가끔씩 ‘오만증후군(Hubris Syndrome)'을 언급하게 된다. 권력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든다. 뇌 자체가 변한다. 존재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복음만이 아니다. 돈은 더 쉽게 인간을 변화시킨다. 돈 때문에 변화된 사람은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사라진다.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도 사라지게 만든다. 장로가 되어 일어나는 변화도 마찬가지다.

나는 장로가 되지 않아서 자기 교회 안에 갇히지도, 오만증후군에 감염되지도 않았다. 이 얼마나 다행인가. 세상의 눈으로 보면 패가망신을 했지만 나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생겼다. 극한 가난과 세상의 멸시와 천대가 내 마음을 변화시켰다. 내 존재의 변화는 가난과 멸시와 천대였다. 생각해보라. 주님이 이 땅에서 보여주신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가난이며 멸시와 천대가 아니었던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피하고 싶은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우리의 존재를 변화시킨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사마리아 사람에게 있었던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꿈을 위해 살게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자기 자신이나 자기 교회 안에 갇히지 않는다. 우리의 마음은 온 세상을 향한다. 결국 그 마음은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복지와 안녕을 위해 우리를 일하게 한다. 우리는 내세울 것이 없다.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이들에게 한 일은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일이 된다. 또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이의 존엄을 위해 자신이 한 일을 드러내지 않는다. 한 손이 하는 일을 다른 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 역시 존재의 변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처음으로 장로가 안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만났다. 나는 그분이 교회의 일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그분이 하는 일은 주목을 받지 못할 것이다. 수시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분은 그런 일들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존재가 변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분에게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열매를 볼 것이다. 하나님은 존재의 변화로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통해 당신이 직접 일하신다.

예수님의 말씀을 패러디해서 말하면 ‘이것을 아는 이들은 행복하다’. 일에 도전하지 말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사모하라. 그 과정은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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