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종과 성도
주의 종과 성도
  • 최태선 목사
  • 승인 2021.04.09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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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목회를 하며 실패한 것은 이루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고 다양하다. 오늘은 그 실패 가운데 두 가지를 생각해보려 한다.

첫 번째 실패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종이라는 사실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목사를 주의 종이라고 한다. 그래서 자신들의 지도자인 목사를 주의 종이라고 부르는 것에 부담을 가지고 ‘주의 종님’이라고 호칭하기도 한다. 블랙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종이란 노예이다. 그런데 종에게 님자를 붙인다는 것이 가당한가. 그런 말이야말로 웃기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교인들은 주의 종님이라는 말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 장로님이 대표기도를 할 때 ‘주의 종 목사님을 기억하시고…’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기도가 끝난 후에 목사가 나와 설교를 하기 전에 장로님의 기도를 문제 삼았다. 자신을 군인으로 말하면 부대의 장인데 부하가 부대장을 종이라고 칭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면서 자신을 위한 기도를 할 때는 주의 종이 아니라 ‘주의 사자 목사님’으로 호칭할 것을 명령했다.

이런 목사가 그 교회 목사 하나뿐인 것이 아니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시라고 성서는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목사들은 교회의 머리가 목사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교인들에게 각인시킨다. 물론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시지만 그리스도께서 머리시라는 것은 상징일 뿐 실제 머리는 목사라는 주장을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교인들에게 강조하고 주입시키는 것을 나는 수도 없이 보아왔다. 특히 교회는 위계질서가 분명해야 한다는 점을 함께 강조했다.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곧 목사에게 복종하는 것이라는 사고 역시 마찬가지로 일반화되고 강조되고 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우리 교회가 휴면 중에 들어가면서 나는 목사이면서 목사 인정을 받지 못한다. 그러니까 주의 종인 목사 노릇을 하려면 교회가 있어야 한다. 그런 주장을 따르면 부목사도 주의 종이 아니고 무임목사는 아예 목사가 아닌 것이 된다.

여기서 주의 종인 목사와 주의 종인 목사가 아닌 목사의 하는 일이 첨예하게 갈라진다. 주의 종인 목사가 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고 주의 종이 아닌 목사가 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 아닌 것이 되고 만다. 정말 그런가.

나는 제도권 교회를 떠났지만 제도권 교회의 틀과 형식을 고수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래서 내가 목사 안수를 받은 교단의 예배 모범을 준수하고 가능하면 교단의 법을 존중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우리 교회를 이단으로 의심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복음을 더 깊이 알게 되고 하나님 나라를 알게 된 후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기존의 교회의 틀에는 하나님 나라인 교회를 담아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래서 드리던 예배를 멈추고 새로운 교회로 다시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새로운 교회를 시작조차 하지 못했지만 휴면 중인 기간은 내게 정말 유익하고 필수적인 시간이었다. 예수님이 원하셨던 교회 공동체가 어떤 교회인지를 더 심도 있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교회를 멈춘 이 시간동안 내가 하는 일을 멈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교회, 다시 말해 참된 교회를 향한 전진이었고 새로운 목사로 다듬어지고 빚어지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나는 목사이기를 멈춘 적이 없다. 그리고 내가 진정한 목사로서의 삶을 시작하고 실천한 귀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나를 목사로 인정해주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교회를 하지 않는 나는 주의 종이 아니고 따라서 내가 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시간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주의 종이 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길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은 목사인 내가 이전부터 강조해온 목사와 평신도 간에 아무런 차이나 구별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주의 종은 목사를 칭하는 고유한 호칭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칭하는 공통의 호칭이고 따라서 주의 종인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모든 일 역시 하나님의 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이 일을 알게 하고 확신시키는 일에 실패했다.

그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기존의 목사들의 주장이 워낙 확고하게 교인들의 머릿속에 각인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목사, 특히 담임목사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종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데 실패했다.

두 번째 실패는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성도라는 사실이다.

“나는 로마에 있는 모든 신도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그의 거룩한 백성(성도)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백성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한 것은 그들이 거룩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또 그렇기 때문에 거룩한 백성이 된 하나님의 백성은 실제로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 성서는 그것을 명령하고 있다.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에게 이렇게 일러라. 너희의 하나님인 나 주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거룩은 도달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라 지향점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거룩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해서 이스라엘이 실제로 하나님처럼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바라보며 거룩을 지향점으로 삼을 때 이스라엘의 거룩은 실제로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이스라엘이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처럼 거룩해질 수 없다. 그러나 각자의 노력의 정도에 따라 다르게 거룩이 실제로 그들에게 이루어진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가능과 불가능의 역설에 직면하게 된다. 거룩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 그 불가능에 도전할 때 실제로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에 수렴하게 된다. 실제로 거룩해지는 것이다. 물론 완전히 거룩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각자가 최선의 노력을 한만큼 거룩해진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거룩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 인간의 거룩은 결코 자랑할 수 없다. 인간의 거룩은 태양 앞에 반딧불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인간의 거룩을 당신의 거룩처럼 거룩하게 여겨주신다.

예수님은 그것을 더욱 명확히 목표로 삼게 해주신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하나님의 완전하심이다. 그 완전함을 위해, 그 완전함을 향해 그리스도인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성인인 그리스도인은 없다. 오직 성도인 그리스도인만이 있다. 그것을 인간이 인위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 개신교는 성인을 구분하는 가톨릭의 신학에 반대하면서도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성서의 요구를 근본적으로 부인한다.

나는 교인들이 거룩과 완전함을 향해 나아가도록 하는데 실패했다. 교인들은 스스로 성도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을 겸손으로 이해했다.

명심하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종이며 성도이다. 이 두 가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지 않는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는 없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종과 성도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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