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이민 1세 고단함, 이 영화가 담았다 
한인 이민 1세 고단함, 이 영화가 담았다 
  • 지유석
  • 승인 2021.04.21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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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한인 이민가정 그린 영화 ‘미나리’
영화 ‘미나리’ ⓒ 판시네마
영화 ‘미나리’ ⓒ 판시네마

정이삭 감독이 연출한 영화 <미나리>가 화제다. 특히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 윤여정이 미국 배우 조합상 영화부문 여우조연상,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 여우조연상 등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쓸어담다'시피 하면서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양상이다. 

한국 배우가 국제 영화제 연기부문상을 석권하는 건 초유의 일이어서 이 같은 관심은 당연하다. 윤여정은 오는 25일(현지시간) 미국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 후보에도 올라 있는데, 만약 오스카 트로피마저 거머쥐면 새 역사를 쓰게 된다. 

그러나 아쉬움이 없지 않다. 이 영화는 1980년대 미국으로 이민 온 한인 가정의 이야기다. 당시 한국은 그야말로 이민 러시였다. 

기자는 그때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있었는데 중학교 3학년 때 단짝친구가 부모님 따라 이민을 떠났고 다음해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수학 선생님이 교사를 그만두고 역시 미국으로 떠났다. 아마 그 시절 성장기를 보낸 이들이라면 이런 경험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주인공 제이콥(스티븐 연)은 한인 이민인구가 급증하는 데 주목한다. 제이콥은 농장을 개척해 고추 등 한국인이 주로 먹는 채소를 재배하려 한다. 

처음엔 일이 쉽게 풀리는 듯 했다. 그러나 이내 지하수는 바닥 나 버려 집에서 쓸 물을 농장에 댄다. 겨우 작물을 수확했지만, 이번엔 판로를 약속했던 한인이 거래선을 막아 버린다. 이러자 제이콥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이렇게 쏘아 붙인다. 

"대도시 사는 한인들은 믿을 존재가 못돼!"

아내 모니카(한예리)는 외로움을 달래려 현지 교회에 나간다. 그러나 분위기를 보아하니 안 나가느니만 못해 차라리 일을 나가기로 결심한다. 아이들만이라도 교회에 보내지만, 이것도 신앙이 이유가 아니라 딱히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어서다. 

모니카는 공장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 한인에게 한인교회를 개척하는 게 어떤지 넌지시 묻는다. 그런데 동료 한인은 뜻밖의 답을 내놓는다. 도시 한인교회에 상처들이 있어 외딴 아칸소까지 왔다는 게 동료의 답이었다. 

한인 사회에서 교회가 차지하는 비중은 참으로 크다. 교회는 단순히 예배드리러 가는 곳이 아닌 한인들의 사랑방이나 다름없다. 그곳에서 이민 생활의 고단함도 달래고, 정보교환도 하고, 고향의 추억을 나누며 인간관계를 다져나간다. 그러나 문제가 터지는 곳도 바로 교회다. 

이렇게 영화 <미나리>는 고국을 떠나 낯선 미국 땅에 온 이민 1세대의 삶을 제이콥-모니카 가정을 통해 보여준다. 극중에서 제이콥과 모니카는 자주 갈등한다. 

질긴 생명력 보여준 한인들 

영화 '미나리'가 그리는 한인 가정은 이민 1세대 한인가정의 한 단면이다. ⓒ 판시네마
영화 '미나리'가 그리는 한인 가정은 이민 1세대 한인가정의 한 단면이다. ⓒ 판시네마

둘의 갈등은 이민 생활의 신산함에다 서로를 의지하면서도 언제 척질지 몰라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살 수 밖에 없는 한인 공동체의 부조리에서 비롯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이 영화를 다루는 한국 언론은 온통 배우 윤여정의 각종 영화제 수상 소식만 다룬다. 그런데 한인들이 낯선 땅에서 얼마나 불안하고 때론 위험천만한 생활을 하는지는 관심 밖인 듯하다. 하지만 한인들은 특유의 억척스러움으로 미국 땅에 뿌리 내렸다. 마치 질긴 생명력을 지닌 ‘미나리’ 같이. 

지금 미국 한인 공동체는 80년대와는 비교 불가다. 이게 다 영화속 제이콥-모니카 가정이 낯선 미국에서 온갖 신산함을 견디며 일군데 따른 열매다. 이 영화 <미나리>의 가치는 윤여정의 연기라기보다, 80년대 이민 러시로 미국에 와 뿌리내린 한인 사회를 조명한 데 있다.

윤여정의 연기를 폄하하는 게 아니다. 윤여정의 연기는 보편적인 한국 할머니의 모습을 잘 녹여냈고, 그래서 극찬 받을 만 하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한국 관객들이 80년대 미국으로 건너간 동포 한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이 영화를 통해 주목해 주었으면, 그래서 동포애를 느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낯선 이국에서 온갖 차별을 감내하며 뿌리내린 교민들에게 무한한 존경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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