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우리교회
분당우리교회
  • 최태선 목사
  • 승인 2021.04.29 21: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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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우리교회가 교회를 30개로 쪼갠다는 기사를 보았다. 부목사들과 15명의 선발된 외부 목사들을 포함해 29곳의 새 교회와 분당우리교회를 합치면 30개가 된다. 

끝없이 커지려는 욕망을 보인 1세대 대형교회인 순복음교회에 비하면 진일보했다. 그러나 과연 분당우리교회가 하고 있는 일이 의도대로 이루어질지는 미지수이다. 

가장 먼저 걸림돌은 교회를 결정하는 선택권을 교인들에게 맡긴 것이다. 자율이라는 명목이 주어졌지만 그것이 과연 의도대로 될지는 모르겠다. 

이미 오래 전에 하용조 목사님의 온누리교회에서 시도한 적이 있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의 방식보다 온누리교회의 방식은 훨씬 더 강력했다. 하용조 목사님은 온누리교회에 다닌지 7년이 넘은 교인은 무조건 다른 교회로 가시라는 설교를 했다. 그런데 그 설교 이후 하목사님을 쳐다보지 못하는 교인들이 생겼다. 7년이 넘었는데 교회를 떠나지 않은 교인들이다. 그 교인들이 하도 불편해해서 하목사님은 자신의 요구를 철회했다. 7년이 넘어도 그냥 다녀도 된다는 설교를 다시 한 것이다. 

또 실제로 온누리교회를 떠나 작은 교회로 옮긴 교인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래서 작은 교회가 갑자기 몰려온 청년들로 북적이는 교회도 생겨났다. 개인적으로 작은 교회를 선택한 교인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옮긴 교회에 녹아들지 않았다. 그들은 그곳에서도 온누리교회 교인이었다. 언젠가는 돌아갈 날을 기다리는, 그래서 옮긴 교회의 교인이 아니라 돕기 위해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었다. 이런 교인들의 마음에는 우월감이 자리했다. 자신이 온누리 출신이라는 자부심을 은연중에 내비치는 교회 안의 이방인이었다. 그들에게 새겨져 있는 교회의 디엔에이는 철저하게 온누리교회의 것이었다. 

분당우리교회의 경우 새로 생겨나는 교회들이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보았다. ‘우리’라는 단어를 교회 이름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프랜차이즈와 같지 않은 것이 아니다. ‘우리’라는 단어를 감추면 감출수록 오히려 더 ‘우리’라는 교인들 머릿속의 디엔에이는 강화된다. 

그러면 어쩌라는 말이냐고 반문할 것이다. 대답은 간단하다. 애초에 커지지 말았어야 한다. 물론 그것을 임의로 막을 방법은 없다. 나는 지구촌교회와 샘물교회의 경우에도 그런 원칙을 지키려는 것을 보았다. 샘물교회는 수평이동을 금지했다. 그러나 그걸 막을 도리는 없었다. 샘물교회가 수평이동을 막으면 막을수록 교인들은 샘물교회를 더 사모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러면 어떻게 애초에 커지지 않는 교회가 될 수 있을까.

간단하다. 성서에 기록된 초기교회와 같은 교회를 목표로 삼으면 가능하다. 즉 진짜 예수의 제자들의 교회가 되면 된다.

세이비어교회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세이비어교회에는 인턴 교인과 정식교인, 그리고 그 둘 중 아무것도 아닌 교인들이 있다. 다시 말해 누구든 세이비어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하지만 인턴교인이 되려면 소정의 과정을 거치고 서약을 하게 된다. 그 서약의 내용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사실 인턴교인이 되는 것도 어렵다. 그렇게 인턴교인이 된 후 정식교인이 되려면 가일층 엄격한 기준이 요구된다. 거기에는 자신의 모든 재산과 재능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겠다는 서약이 들어있다. 그리고 실제로 세이비어교회 교인들은 초기교회와 같이 유무상통하는 교회를 이루어냈다.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줄 수 있는 교회가 되었다. 

그 결과 세이비어교회의 정식교인 수는 백오십 명을 넘은 적이 없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애초에 커질 수 없다는 말의 의미이다.

조금 더 설명해 보자. 세이비어교회의 사업 가운데 주택사업이 있다. 대략 팔백 채 정도의 주택이 그 사업에서 사용된다. 그런데 그 주택의 대부분을 교회에 기증한 부동산 사업자가 있다. 그러나 그 주택사업자는 세이비어교회의 정식교인이 아니다. 아니 아닌 것이 아니라 못되었다. 그가 자신의 모든 재산과 재능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하겠다는 서약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교회가 커진 것은 애초에 교회가 커지려는 디엔에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 디엔에이를 가진 교회가 아무리 교회를 쪼개고 또 쪼개보라. 결코 쪼개지지 않는다. 쪼개지더라도 분당우리교회라는 디엔에이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애초에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디엔에이가 심겨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이제라도 발견해야 한다. 

이찬수 목사님은 남은 교인이 오천 명이 넘으면 자신이 사임하겠다는 선언을 하셨다. 비장한 결심을 하셨다. 그러나 이 선언으로 그분은 더 존경을 받으시는 스타목사님이 되셨다. 그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그 일이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사임하겠다는 말씀이 엄포로 반복되지 않을까. 이것이 내 예상이다.

내가 세이비어교회에 감탄한 것 가운데 하나는 내가 고든 코스비 목사님의 이름을 오래도록 기억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세이비어교회에 관해 알게 된 후에도 고든 코스비 목사님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나는 이것이 세이비어교회의 진정한 교회 됨이라고 생각한다. 세이비어교회에는 스타목사님이 없다. 그들 가운데 영웅도 없고 엘리트도 없다. 모두가 평등한 하나님 나라의 디엔에이가 그 교회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선언으로 이찬수 목사님 개인의 명망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찬수 목사님이 과거 설교에서 하셨던 말씀대로 자신의 입으로는 떠나라고 하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떠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무의식의 바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잘못된 것은 이 모든 일을 인위적으로 했다는 사실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곳이다. 인간이 모든 것을 결정하면 성령의 몫이 남지 않는다. 나는 지금 분당우리교회가 하는 일이 바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성서는 한 손이 하는 일을 다른 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성령이 일할 수 있는 여지가 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인간은 자신에게 도취되는 존재이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바리새파 사람들을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의 삶을 곱씹어보라. 그들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한 신앙인들이었다. 나는 그런 그들이 그야말로 종교의 달인들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예수님으로부터 어떤 판단을 받았는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와 같은 율법의 더 중요한 요소들은 버렸다. 그것들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했지만, 이것들도 마땅히 행해야 했다. 눈 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 낙타는 삼키는구나!"

나는 분당우리교회의 분립이 율법의 더 중요한 요소인 정의와 자비와 신의를 추구하는 선택이기를 바란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그런 삶을 드러내기를 즐겼다. 자랑스러울 만 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서 내려졌던 예수님의 판정을 기억하시길 바란다.

다시 한 번 반복한다. 진정한 교회는 애초에 커질 수 없다. 아무리 나누어도 커질 수 있는 교회의 디엔에이는 사라지지 않는다. 세상의 칭송을 받고 한국 기독교사의 한 획을 긋는 교회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남은 자들의 역사라는 사실이다. 그 사람들은 주님 앞에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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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2021-05-01 18:11:56
하용조 목사님입니다 하영조가 아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