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민자의 삶을 다룬 영화 두 편 : 국 (國, Gook, 2017), 그리고 미스 퍼플 (Ms. Purple, 2019)
한국 이민자의 삶을 다룬 영화 두 편 : 국 (國, Gook, 2017), 그리고 미스 퍼플 (Ms. Purple, 2019)
  • 뉴스M 편집부
  • 승인 2021.05.25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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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엽 교수(워싱턴앤리 대학 정치학 교수) 기고

최근 미국에서 아시안들을 향한 증오범죄가 폭증하면서, 아시안 차별의 역사에 대한 글을 하나 쓰기도 했고, LA폭동을 비롯한 한인들의 삶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유학생으로 미국에 와서 오랫동안 살고 있지만, 사실 같은 한인이라도 1세, 1.5세, 그리고 2세는 정체성 면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이 영화 두편은 어린시절 미국으로 이민와서 미국 사회에 정착하고 살아온 1.5세의 삶을 다룬 영화들인데, 완성도도 매우 높고, 한인들의 삶을 섬세하고 날카롭게 관찰하고 있어 매우 인상깊게 보았다. 

한인들은 대체로 "모범적 소수인종의 신화(Model Minority Myth)"를 내면화 하는 경향이 강하고, 미국 사회속에서 성공해서 주류사회에 편입하고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고자 하는 욕망이 강한데, 그런 분위기에서 간과되어 온, 실패한 아메리칸 드림의 이야기와 인종갈등이라는 다소 어두운 소재를 진지하게 다뤘다는 면에서, 매우 의미 있는 영화들이었다. 두 영화 모두 저스틴 전 감독의 작품으로 한인 1.5세인 본인의 경험과 고민이 담겨있기도 하다.​

1. 국 (國, Gook, 2017): 1992년 LA폭동을 소재로 한인 1.5세들의 삶과 한흑 갈등을 다룬 영화

영화 "국" 포스터
영화 "국" 포스터

일라이(저스틴 전)와 다니엘(데이비드 소) 형제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신발가게를 운영하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월세는 몇달째 밀려있고, 살기 위해서 장물로 나온 신발들을 몰래 떼어다가 팔고 있기도 하다. LA의 흑인 동네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데, 일라이는 근처 멕시코계 불량배들에게 얻어 맞기도 하고 다니엘은 흑인 불량배들에게 늘상 얻어 터지고 있다.

신발가게를 운영하는 일라이 (저스틴 전)
신발가게를 운영하는 일라이 (저스틴 전)

한편 11살 흑인 소녀 카밀라(시몬 베이커)는 큰 오빠와 언니랑 살고 있는데, 학교는 주로 땡땡이 치고 정붙일 데가 없어서 주로 일라이 형제의 가게에 와서 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가게 일을 돕는다. 오빠와 언니는 카밀라가 이들 가게에 가는걸 싫어하는데, 흑인 소녀가 굳이 한인 형제들과 어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 사람은 손님이 없을때 같이 우스꽝스러운 춤도 추면서 가족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근저 잡화점은 다른 한인인 김씨 아저씨가 운영하고 있는데, 전형적인 꼰대 느낌으로 종종 물건을 훔쳐가는 흑인들에게 밉살스럽게 대한다. 카말라는 김씨 가게에서 몰래 트윙키(미국 사람들이 자주 먹는 싸구려 과자)를 훔치고, 김씨 아저씨가 신발가게에 와서 난리를 치는데, 일라이는 그게 뭘 대수냐며 카밀라 편을 들고 김씨 아저씨를 몰아낸다. 일라이는 카밀라에게 새 신발을 선물로 주는 등 그녀를 따듯하게 대해주고, 아버지의 유품에서 찾은 카밀라가 나온 사진을 건네준다.

카말라를 연기한 배우 시몬베이커. 아역배우인데 놀랍도록 연기가 자연스러웠다. 
카말라를 연기한 배우 시몬베이커. 아역배우인데 놀랍도록 연기가 자연스러웠다. 

일라이는 어떻게든 장사를 해서 살아보려고 하는데, 동생 다니엘은 장사엔 관심이 없고, R&B 가수가 되고 싶어한다. 신발을 사러 온 흑인 여자아이들과 노닥거리다 여자를 꼬시려고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신발을 깎아주는 걸 보고, 일라이는 분통이 터져 두 사람은 다투게 된다. 형과 싸운 다니엘은 가게를 뛰쳐나오는데, 동네에서 카밀라의 오빠인 키쓰(커티스 쿡 주니어) 패거리에게 걸려 두들겨 맞고 돈과 운동화도 뺏기게 된다. 얼굴에 멍이든 다니엘은 흑인 친구에게 가서 자기 노래를 녹음 하는데, 옆집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어가는 등, 일은 잘 풀리지 않는다. 녹음비를 낼 돈도 없는 다니엘은 흑인 친구에게 엮여서 다운타운으로 따라가게 되는데, 영화는 이날 우리가 잘 아는 1992년 LA 폭동이 벌어지는 것으로 설정한다.

동생 다니엘을 연기한 데이비드 소. 실제 가수라고 한다. 
동생 다니엘을 연기한 데이비드 소. 실제 가수라고 한다. 

​간단히 LA 폭동을 설명하면, 속도위반으로 붙잡힌 흑인 남성 로드니 킹을 백인 경찰이 가혹하게 구타해 청각까지 잃게 되고, 이 사건은 고질적인 차별에 시달리던 흑인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게 된다. 그런데 재판결과 경찰들은 무죄로 풀려나고, 흑인들의 분노가 폭발한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주류 매체들은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두순자 사건을 집중 조명하는데, 이는 한인 여성으로 슈퍼마켓 주인이었던 두순자 씨가 흑인 소녀를 도둑으로 오인해 싸움 끝에 총으로 쏜 사건으로 (영화에서는 김씨 아저씨와 카밀라의 다툼이 이 사건을 연상시킨다), 미디어는 이 사건을 부각해 백인 경찰에 대한 분노를 한흑 갈등으로 치환한다. 또한 경찰은 백인 부유층 거주지인 베버리힐스는 철통같이 방어하고, 반면 흑인 지역과 백인 지역 중간에 위치한 한인타운은 방치해, 흑인들은 6일간 한인타운을 습격하고, 이로 인해 2,200군데 한인 상점이 불타고 파괴될 정도로, 전쟁터가 되어버린다. 영화는 간접적으로 LA폭동을 묘사하며 인물들의 삶과 관계에서 이런 인종갈등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묘사한다.

다니엘은 멋모르고 다운타운에 갔다가 폭동과 약탈의 혼란속에 흑인들에게 두들겨 맞는데, 그 지역을 지나던 김씨 아저씨가 그를 차에 태워서 구해주고 가게로 데려다 주는데, 아저씨를 비롯한 한인들은 혼란의 와중에 무전으로 서로 연락하고 있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일라이는 사이가 안좋았던 김씨 아저씨를 보고 다시 화를 내는데, 아저씨는 담담하게 담배를 건네며, 옛날 이야기를 해준다.

일라이와 김씨아저씨. 감독겸 주연배우인 저스틴 전과 그의 아버지 전상철씨
일라이와 김씨아저씨. 감독겸 주연배우인 저스틴 전과 그의 아버지 전상철씨

​(스포일러 있음) 김씨 아저씨는 일라이 형제의 아버지와 같은 해병대 동기였고 이민 와서도 처음에 같이 가게를 운영했던 것. 김씨는 지금처럼 흑인 손님들을 밉살스럽게 대하지 않았고 열심히 일하며 친절하게 대했었는데, 어느 날 정성스레 신발끈까지 매준 흑인 손님이 새 신발을 신고 달아났고, 놀라서 멍하니 그걸 보고만 있었다고 한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흑인들과 점점 사이가 안좋아졌고 지금처럼 퉁명스러운 사람이 되었던 것. 김씨는 이후 다른 가게를 운영하는데, 어느 날 일라이 형제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신발가게에 강도가 들고, 돈을 내 주지 않는 아버지와 흑인 여자 종업원이 강도에게 살해되었던 것. 김씨는 그 이야기를 하며 자신이 같이 일했으면 너희 아버지가 살아있었을지도 모른다며 회한이 담긴 말을 해 주고 떠난다.

​그런데 아버지 가게에서 일하다 같이 총에 맞아 죽었던 여자가 바로 카밀라의 엄마였던 것. 일라이가 카밀라에게 준 사진이 바로, 과거 일라이의 아버지와 카밀라의 엄마, 그리고 어린 카밀라가 같이 가게에서 찍은 거였다. 카밀라는 엄마는 죽었지만 어린시절의 기억이 있는 신발가게에 와서 일라이 형제를 가족처럼 생각하며 이들과 어울렸던 것인데, 반면 아들 키쓰는 엄마의 죽음에 대한 원망을 일라이의 가족에게 돌리고 이들 형제를 원수처럼 대해 왔던 것.

집에 온 카밀라가 가진 신발이 일라이가 준 것임을 알게된 키쓰는 불같이 화를 내고, 패거리를 이끌고 일라이의 가게에 쳐들어 오는데, 카밀라는 무슨일이 생길까 두려워 하다가, 엉겁결에 집에 있는 총을 가지고 일라이에게 달려와 소식을 알려준다. 키쓰는 신발만 빼앗아 가려고 하다가, 다시 돌아와 화염병으로 가게를 아예 불살라 버리려고 하는데, 이에 놀란 카밀라가 총을 가지고 뛰어오다가 발이 걸려 넘어지며 자신이 총에 맞게 된다. 이들은 카밀라를 응급실로 데려가는데 . . .

마지막 장면은 일라이와 다니엘이 신발가게를 바라보다가 일라이가 화염병에 불을 붙여 스스로 가게를 태워 버리면서 끝나게 된다.

영화의 제목인 국(Gook)은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미군들이 동양인들을 비하해서 부르던 용어로, 흑인들을 향한 ‘N word’ 처럼 동양인들에게 매우 모욕적인 표현이다. 흑인 동네에서 미움을 받는 형제들의 차에 누군가 스프레이로 'Gook' 이라고 써 놓는데, 무슨 뜻이냐고 묻는 카밀라에게 일라이는 그것을 '한국'이나 '미국' 처럼, '나라(國)'라는 뜻이라고 얼버무린다. 'Gook'이라는 영화의 제목은 해묵은 한인들과 흑인들 간의 갈등을 대변하기도 하고, 타국(國)에서 살아가는 이민자의 처지와도 연결되는 것 같다.

영화가 참 인상적이어서 조금 더 찾아보니, 감독이자 주연인 일라이를 연기한 저스틴 전 감독은 유명한 틴 로맨스 영화 트와일라이트 시리즈에서 에릭 요키로 출연한 배우로 많이 알려졌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전 감독의 아버지가 영화에서 김씨 아저씨를 연기한 전상철 씨인데(그러고 보니 두 배우 얼굴이 좀 닮았다), 1960~1970년대 한국에서 아역배우로 매우 유명했고, <공처가 삼대>(1967), <당신>(1969), <떡국>(1971) 등에 출연했다고 한다. 어떤 이유로 가족들이 미국으로 다 이민을 왔고, 전상철 씨는 영화의 내용처럼 LA에서 신발가게를 운영했다고 한다. 저스틴 전 감독은 자신이 11살이었던 LA 폭동 때 실제로 가게가 약탈을 당했었으며, 그 경험이 영화에 담겨있다고 인터뷰 하기도 했다. 아마도 전상철 씨는 연기를 오래전에 그만 둔 것 같은데, 아들의 설득으로 출연했다고 한다. 동생 다니엘을 연기한 데이비드 소는 실제 가수이도 하다고.

일라이와 카일라의 뒷모습을 담은 이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일라이와 카일라의 뒷모습을 담은 이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영화는 2017년 1월 21일 세계 최고의 독립영화제인 선댄스 영화제에서 상영되고, 넥스트 부문 관객상을 수상하는 등, 큰 주목을 받았었다. 전 감독은 1981년 생으로 상대적으로 나이도 젊은 편인데, 매우 섬세한 시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는 등장인물들도 적고 저예산 독립영화 느낌이긴 하지만, 일라이, 다니엘, 카일라 역을 맡은 세 배우의 연기가 탁월하고 자연스럽다. LA폭동이라는 실제 역사를 인물들의 이야기와 잘 엮어내고 한인들의 고단한 삶과 한인들과 흑인들 간의 갈등 등을 매우 인상깊게 담아내서 감독의 자질이 비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흑백으로 촬영되었는데, 전체적으로 LA 폭동이나 한인들의 삶을 회고하는 듯한 느낌도 준다.

영화의 슬픈 결말은 일라이, 다니엘, 카밀라가 우스꽝 스러운 춤을 추며 가족처럼 즐거운 한때를 보내던 장면과 오버랩 되며, 무척 애틋하고 슬픈 감정을 느끼게 해 주었다. 같은 인간으로 사랑하고 존중하지 못하고, 미국 사회의 빈곤과 차별속에 비극적 결말을 맞은 인물들의 이야기. 마지막에 나오는 영화의 음악이 이런 스토리와 어울려 마음에 깊이 남았다. 한국에도 좀 알려진 데이비드 최의 "Little more time"이라는 곡이다. 노래는 마치 슬픈 역사와 인물들의 상처를 위로하며 화해와 희망이 찾아올거라는 메시지를 주는 듯 하다. (압축적이고 생략적인 시나 노래 가사를 번역하는게 사실 좀 어려운데, 정확히 다 이해는 안되지만, 대략 의미를 옮겨 보았다.)

​David Choi, "Little More Time"

(from "Gook" soundtrack)​

I hear the voices all around

Echoing the fears within my thoughts

If I'm dreaming

You know

I could see the light on the other side

Everything's gonna be alright

Oh I could see the light on the other side

Everything's gonna be alright

Just a little more time

Can't help but look at yesterday

Wondering when I gave it all away

If I'm dreaming

You know

I could see the light on the other side

Everything's gonna be alright

Oh I could see the light on the other side

Everything's gonna be alright

Just a little more time

Wish I could say

It's not too late

Everything's down

To love or hate

I see a child

Inside your face

I know

I know

I could see the light on the other side

Everything's gonna be alright

Oh I could see the light on the other side

Everything's gonna be alright

With just a little more

Just a little more time

Little more time

Just a little more time

조금만 더 기다리면

 

어디를 가든,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내 맘 속의 두려움을 반영 하듯이.

내가 꿈을 꾸고 있다면 . . .

내 말 이해하죠?

저 멀리서 빛이 비춰 오네요.

이제 모든게 괜찮아 질 거에요.

아, 저 반대 편에서 빛이 비춰 옵니다.

이제 모든게 괜찮아 질 거에요.

조금만 더 기다리면.

 

지난날을 생각합니다.

언제쯤 모든걸 다 놓아 버렸던가를...

내가 꿈을 꾸고 있다면 . . .

내 말 이해하죠?

 

저 멀리서 빛이 비춰 오네요.

이제 모든게 괜찮아 질 거에요.

아, 저 반대 편에서 빛이 비춰 옵니다.

이제 모든게 괜찮아 질 거에요.

조금만 더 기다리면.

 

아직 너무 늦지는 않았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래요.

결국 모든 건,

사랑할 것이냐, 미워할 것이냐의 문제.

당신의 얼굴에서 어린 아이를 봅니다.

알겠어요.

이제 알것 같아요.​

 

 

저 멀리서 빛이 비춰 오네요.

이제 모든게 괜찮아 질 거에요.

아, 저 반대 편에서 빛이 비춰 옵니다.

이제 모든게 괜찮아 질 거에요.

조금만 더 기다리면.

 

 

 

 

2. 미스 퍼플 (Ms. Purple, 2019)

미스 퍼플 역시 저스틴 전 감독의 영화로 LA의 한인 1.5세의 삶을 다루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케이시(티파니 추)는 침대에 누워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를 힘겹게 돌보며 코리아타운 노래방에서 도우미로 일하고 있다. 피아노에 재능이 있어서 대학에 다니기도 했던 그녀는, 어떻게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걸까? 영화는 케이시의 삶을 그리며 중간 중간 플래시백으로 그녀 가족의 이야기를 알려준다.

케이시 아버지(제임스 강)는 아내와 두 자녀를 데리고 LA로 이민을 왔는데,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은 것 같고, 케이시의 엄마는 무능력해 보이는 남편과 두 자녀를 버리고 집을 나가 돈 많은 다른 남자를 만나 살고 있었다. 아내에게 버림받고 절망한 아빠는 명절날 어린 케이시와 오빠 캐리(테디 리)에게 한복을 입히고 함께 엄마의 집에 찾아가 돌아와 달라고 비굴하게 사정을 하는데, 엄마는 이들을 모른척 하며 문을 닫아버렸었다. 아빠는 유독 캐이시를 예뻐했고, 오빠인 캐리는 냉대했는데, 오빠가 사춘기가 되자 폭력까지 가하면서 갈등했고 오빠는 집을 뛰쳐나가고, 그럴수록 아빠는 더 케이시에게 나에겐 너 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주입했던 것.

시간이 흘러 아빠는 병으로 쓰러지게 되고, 누워서 죽을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케이시는 아빠를 포기하지 못하고 비싼 돈으로 간병인을 구해서 집에서 돌보고 있고, 그 돈을 대기 위해 피아노의 꿈과 대학도 그만두고 , 심지어 여자로서의 자존심까지 내팽개친채, 한인 타운 노래방의 호스티스로 일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벌었던 것.​

​그런데 오랫동안 간병인으로 일하며 아빠를 돌바온 라티노 아줌마가 더이상 힘들어서 못하겠다며 호스피스에 맡기라며 일을 그만두고, 케이시는 어쩔 수 없이 집을 나갔던 오빠 캐리에게 연락을 하게 된다. 오빠는 트레일러에서 살면서 피씨방에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때우는 등, 무력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케이시의 부탁으로 억지로 집에 돌아와 자신을 학대했었지만 지금은 무력하게 누워있는 아버지를 돌보게 된다. 그는 식물인간 상태인 아버지에게 소리를 질러 감정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바퀴달린 침대에 아버지를 데리고 햇빛을 쐬게 해주기도 한다. 케이시는 오랜만에 돌아온 오빠와 대화를 나누는데, 담배가 아닌 막대 사탕을 건네주고, 예전에 케이시가 갖고 놀던 장난감 피아노를 꺼내 눌러보는 등, 케이시는 오랜만에 어린시절의 기억과 꿈,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노래방에서 주차를 하는 순수한 라티노 청년 옥타비오는 케이시에게 관심을 보이는데, 케이시는 그의 집에 방문해 화목한 가족, 친척들 사이에서 잠시나마 가족의 정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에게 마음을 다 열지는 못한다. 대신 케이시는 노래방에서 일하다 만난 돈 많은 한인 교포 토니(로니 킴)에게 연결되어, 노래방을 그만두고 개인적으로 그를 만나 관계를 가지며 돈을 받게된다. 토니는 케이시에게 보라색 한복을 사주는데, 이 한복은 케이시가 어렸을 때 엄마를 찾아갈 때 아빠가 입혀준 색동 저고리 한복과도 연결 되고, 영화의 제목 Ms. Purple은 이 보라색 한복에서 나온 것이다. 토니는 자기 집에 아예 들어와서 동거를 하자고 하고, 친구 결혼식에도 데리고 가지만, 케이시에게 자기 친구들과도 돌아가면서 관계를 가지라고 하는 등, 그녀를 돈으로 살 수 있는 노리개 취급하는데, 이에 분노를 느낀 케이시는 그를 떠난다.

그 사이 순간적으로 정신이 돌아온 아빠는 오빠 캐리를 보고 목을 조르고, 캐리는 아빠를 버리고 집을 뛰쳐나간다. 케이시는 간병인을 구해보려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눈물을 머금고 아빠를 호스피스에 맡기기로 한다. 케이시는 다시 노래방에 나갈 수 밖에 없는데, 재수 없게도 토니가 친구들을 데리고 온 방에 들어가고, 이들은 피하는 케이시를 억지로 끌어다 앉히고 토니의 친구는 방에 같이 들어간 처음 노래방에서 일하게 된 여자를 괴롭히고 추행하는데, 순간 분노가 폭발한 케이시는 맥주병으로 그 놈의 머리통을 갈기게 되고, 싸움이 벌어진다.

그녀는 집에 돌아와 보라색 한복을 불태워 버린다. 그리고 옥타비오의 집에 찾아가 잠시나마 그의 가족들과 어울리며 자유를 경험한다. 이제 더이상 아버지가 없는 집에 오빠와 케이시가 자고 있는데, 아버지가 죽어서 영혼으로 찾아온 것인지, 잠든 오누이를 바라보며 담배를 피는 아버지의 모습을 비추며 영화는 끝난다.

영화는 가족내의 역동과 케이시의 힘겨운 삶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는 가족내의 역동과 케이시의 힘겨운 삶에 초점을 맞춘다

조금 심리학 적으로 보자면, 아빠는 엄마에게 버림받은 무력감을 딸에게 집착하며 해소한 것으로 보인다. 케이시에게 색동저고리를 입히고 예쁘다고 거듭 이야기하며, 이런 예쁜 아이를 두고 엄마는 왜 찾아오지도 않냐고 하다가, 두 아이를 데리고 엄마에게 찾아가 매달린다. 모든 순간에 불안한 눈빛으로 아버지를 따라갔던 케이시는 그래도 아버지 옆에서 손을 잡고 있는 반면, 캐리는 엄마에게 외면당하는 상황이 견딜수 없는지 아빠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치듯 가버리는데, 이는 끝까지 아버지를 포기 못하는 케이시와 집을 나가버린 캐리의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 아빠는 한복을 입혀주던 어린 시절의 회상 장면에서 부터, 아들 캐리에게는 전혀 무관심한 모습을 보이고, 사춘기가 되자 아들에게 폭력을 가해 집을 떠나게 만든다. 딸 케이시에게는 집 앞에 보이는 두 그루의 야자수를 보며, 저 나무는 여기서 처음 나란게 아니라 딴 지역에서 옮겨져왔고, 그 처지가 우리 둘 같다며, 이제 세상에는 케이시와 자신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반복한다.

아빠는 이민생활에 실패하고 아내에게 버림받았다는 처지로 자존감이 낮고 자기 혐오에 빠진 듯 한데, 그것을 아들에게 투영해 갈등을 빚고, 반대로 아내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딸에게 무의식중에 강요한다. 아버지가 케이시를 성적으로 학대한 것은 아니지만, 거의 그루밍에 가까운 반복적인 메시지로 딸을 자신에게 묶어두고, 그렇게 자란 케이시는 살릴 가망이 없는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인생과 꿈과, 심지어 여자로서의 자존심 마져도 포기하는 등, 일종의 극단적인 일렉트라 컴플렉스를 보인다. 결국 비극적인 가족사와, 아버지의 건강하지 못한 집착이, 두 자녀 모두를 비참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케이시 가족의 특수한 상황을 떠나서도, 1.5세 아시안들에게 자식들을 위한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미국에 와서 고생하며 살아온 부모에 대한 책임감과 그로 인한 고민과 갈등은 매우 심각한 문제로 작용한다. 이민자 가정은, 정착하는 과정에서 겪은 고생으로, 부모들은 자식에 대한 비정상 적인 기대와 보상심리를 보이고, 가족간의 건강하지 못한 고착관계가 형성하기 쉽고, 자식이 영원히 부모곁을 맴돌고 자신이 인생이 아닌 부모의 대리만족을 위한 삶을 살게 만들기도 한다. 전공, 직업 선택이나 배우자 선택 등에서 부모와 심각한 갈등을 겪거나, 아니면 부모에 순응해 꼭두각시 같은 삶을 살기도 한다. 한인으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자신을 끌어당기는 가족주의적인 구심력과, 반대로 미국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인생을 찾고 싶은 원심력 사이에서 자아 분열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자신이 모든 것을 해결해 보려고 안간힘을 써왔던 케이시는 결국 내적으로 폭발하게 되는데, 보라색 한복을 입고 노래방에서 폭주하는 장면은 보기가 매우 고통스럽지만 그녀의 심경을 정말 잘 묘사해 냈다. 영화의 제목도 그렇고 케이시가 한복을 불태우는 영화의 후반부 장면은 매우 중요하다. 아버지에게서 받은 모든 메시지와 왜곡된 사랑을 상징하는 색동저고리의 기억과, 여성으로 견뎌야 했던 모든 착취와 모멸을 상징하는 것이 보라색 한복이라면, 그 한복을 불태워 버리는 장면은 페미니즘 적인 관점에서 그녀가 경험한 모든 조작과 착취의 굴레를 벗어버리는 순간이 아닐까 한다.

한국의 룸살롱, 노래방 문화가 LA 한인 타운에 이렇게 자리잡고 있는 것도 마음이 매우 불편했고, 최근 아시안 마사지 업소의 살인사건도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실패한 아메리칸 드림으로 깨어진 가정의 한인 1.5세들의 삶을 지켜보는것이 매우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외면할 수 없는 한인 사회의 한 단면에 진지한 시선을 던지는 영화가 무척 의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연인 케이시를 연기한 배우 '티파니 추'는 한국계가 아닌 대만계 미국인인데, 주인공 역할의 매우 섬세하게 표현 해냈다. 영화는 케이시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그녀의 기억과 심정을 묘사하는데, 편집이나 촬영도 뛰어나고, 감독의 역량이 비범해 보이는데, 이 영화도 선댄스 영화제에 노미네이트 되었다고 한다.

저스틴 전 감독은 최근 루이지애나 베이유에서 성장한 한인 1.5세의 삶을 다룬 '블루 베이유(Blue Bayou (2021)'라는 영화를 본인이 직접 각본을 쓰고 주연과 감독을 맡아서 찍었고, 스웨덴 출신으로 '엑스마키나' 등 최근 할리우드에서 많은 영화를 찍은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여주인공을 연기해서 금년 9월에 개봉한다니 무척 기대가 된다. 전 감독이 한인들의 삶을 다룬 의미있는 영화들을 계속 만들어주기를 기대해 본다.

금년 9월에 개봉된다는 영화 블루베이유(2021) 스틸컷
금년 9월에 개봉된다는 영화 블루베이유(2021)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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