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음향기기)와 교회
마이크(음향기기)와 교회
  • 최태선 목사
  • 승인 2021.06.05 0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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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반 호흡 반.

이젠 익숙해진 말이다. 가수라면 누구나 이것을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이것을 연습하고 실전에 사용한다. 이렇게 소리를 완벽하게 내야 진짜 가수다운 소리가 나온다. 그런데 이것은 최근에 와서야 유행이 되고 사용되기 시작한 발성이다.

그러면 왜 예전에 가수들은 소리 반 호흡 반을 몰랐을까.

간단하다. 소리 반 호흡 반이 제대로 들리려면 성능이 좋은 마이크가 있어야 한다. 마이크가 없이 소리 반 호흡 반을 해보라. 그것이 들릴 리가 없고 오히려 피아니시모에 실패한 소리처럼 인식될 것이다. 당연히 청중들은 그런 창법에 매료될 리가 없고 가수들도 그런 창법을 시도할 리가 없다. 그러니까 소리 반 호흡 반이라는 것은 마이크라는 문명의 이기의 발달이 만들어낸 새로운 창법이라고 할 수 있다.

설교 또한 마찬가지이다. 마이크의 등장은 설교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발전시켰다. 설교에 기교가 더해졌다.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는 것은 듣는 이를 피곤하게 만든다. 강조점을 만들기도 어렵다. 하지만 마이크가 없던 시절에는 청중들에게 들리게 하려면 크게 소리를 질러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부흥사들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강약이 있어야 하고 높낮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마이크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마이크를 가장 잘 사용하는 이가 탁월한 설교자가 된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라. 이런 기교가 정말 필요한 것인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용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교가 발달하면 내용을 잠식한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그래서 감정선을 잘 자극하면 눈물이 나고 그 순간 그것을 은혜로 인식하게 된다. 나는 이것을 가짜 은혜라고 생각한다. 진짜 은혜는 눈물 한 방울을 흘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 재를 뿌리고 겉옷을 찢게 만든다. 그것은 곧 마음의 깨달음이다. 여기서 말하는 마음이란 인간 존재의 중심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마이크와 같은 문명의 이기의 사용이 복음의 메시지 역시 증폭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증폭된 복음의 메시지는 폐부를 찌르지 못한다. 인간의 중심인 마음에 다다르지 못한다. 결국 피상적인 사람들이 되게 만들고 소비자들이 되게 만드는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을 보라. 그들은 설교를 듣고 변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를 즐긴다.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라. 당신은 설교를 즐기고 있지 않은지.

내가 쓴 글을 읽고 사람들은 찔린다는 말을 가장 많이 한다. 내가 가장 글을 잘 쓰기 때문인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실제로도 나는 내가 써놓은 글이 내가 느끼고 깨달은 복음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전하지도 못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내게 내가 쓴 글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감동과 깨달음을 주신다. 그러나 나라는 도구를 거치면서 그것이 희석된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주님께 송구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런 내 글을 보면서도 사람들이 찔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내용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느 날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 교회를 떠올리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유대인들이 오래도록 그래 왔고 아미시와 같은 공동체 역시 그렇게 하고 있다. 퀘이커와 같은 이들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문명의 이기들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새로운 문명의 이기들이 나올 때마다 그들은 세밀한 검증작업을 진행한다. 그들이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것은 복음의 잠식이다. 그 문명의 이기를 사용함으로써 복음의 잠식이 일어날 가능성을 다각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안식일 계명을 준수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들을 보면 우스꽝스러운 것이 하나둘이 아니다. 엘리베이터 단추를 누르는 것을 일하는 것으로 해석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사는 아파트는 금요일 일몰 시간이 되면 매 층마다 자동으로 멈춘다.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냉장고 문을 여는 것이 일이기 때문에 냉장고에서 차가워진 물을 꺼내려면 유대인이 아닌 누군가가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 사람에게 냉장고 문을 열어 달라는 부탁을 하려는 것이다. 얼마나 어리석어 보이는가.

아미시 역시 마찬가지다. 아미시는 새로운 문명의 이기들이 등장할 때마다 그것의 사용 여부와 사용을 하는 경우 용도를 결정한다. 그들이 염두에 두는 것 역시 복음의 잠식이다. 그것을 사용함으로써 얻는 것과 잃는 것을 면밀히 살핀 후에 복음의 편에서 사용 여부와 용도를 결정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자동차도 사용하지 않고 핸드폰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것이 복음의 삶을 사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복음이다. 특히 그들은 산상수훈을 그들의 삶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생각한다.

이런 노력이 없으면 문명의 발달과 문화가 복음을 잠식한다. 그렇게 이루어진 복음의 잠식은 인식이 불가능하다. 무의식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사람들이 스스로 그것을 선택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무너뜨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아무런 저항 없이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져 자연스럽게 반 복음적인 삶의 방식이 정상적인 것으로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마이크라고 하면 무언가 노털이나 꼰대 같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어쨌든 나는 음향기기의 발달이 복음의 잠식을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오래 전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에서 기타나 드럼의 사용이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 적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그것들의 사용을 망설이는 교회는 없다. 나는 기타나 드럼의 사용이 반 복음적이라고 단정을 짓는 것은 아니다. 세련되고 강력한 전자 음향이 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탁월하게 기여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것이 정말 영적으로 유익하기만 할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대형교회에서는 그런 분위기를 이용하여 세련된 예배를 진행한다. 그런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설교자가 소리 소리를 질러야 들리는 마이크조차 없는 예배에서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어렵다고 생각한다. 특히 버터처럼 부드러운 소리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큰 소리는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들 것이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라도 나는 마이크가 없는 교회들이 생겼으면 좋겠다. 일단 마이크가 없으면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가 없다. 목소리만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교회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커질 수가 없을 것이다. 목소리만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교회는 기본적으로 관계가 우선이 될 수밖에 없다. 신앙이란 관계의 회복이다. 가장 먼저는 물론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그 다음은 자기 자신이다. 그 다음은 타인이다. 한 가지가 더 남았다. 피조세계가 그것이다. 나는 이 네 가지 관계의 회복이 신앙의 회복임과 동시에 창조의 회복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을 성서는 ‘하나님의 아들(딸)’이라고 선언한다.

코로나로 대면예배가 현저하게 제한을 받고 있다. 교회들은 그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심지어는 종교탄압이라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물론 얼마든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현상이 새로운 교회를 향한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교회는 무분별하게 문명의 이기들을 아무런 생각 없이 수용해왔다. 그래서 얻은 결과가 무엇인가. 가장 분명한 것은 그것이 교회의 대형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커진 교회들을 하나님의 은혜요, 성령의 역사로 인식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정 반대로 인식한다. 그것은 ‘신앙의 자유(313, 밀라노 칙령)’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변질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복음은 잠식되었고 교회는 본질을 상실했다. 나는 가톨릭이던 개신교이건 어디건 교회가 예수의 제자들의 모임이라는 어떠한 증거도 보지 못한다.

코로나로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분들 가운데 몇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곳들이 이곳저곳에 생겨났다. 그런 분들은 자연스럽게 마이크 없는 예배를 드린다. 나는 이것이 우리 시대의 성령의 인도하심이라고 생각한다. 두런두런 나누는 복음 이야기들이 다시금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불을 붙이게 될 것이고 마음에 복음의 불이 붙은 사람들은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일을 위해 일하고 달리게 될 것이다. 나는 그런 예배, 그런 그리스도인들을 더 많이 보고 싶다. 그들은 마이크(음향기기)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원점에서 돌아보는 그리스도인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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