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뒤끝] 양심적 병역거부, 신학적 고민 필요하다
[뉴스뒤끝] 양심적 병역거부, 신학적 고민 필요하다
  • 지유석
  • 승인 2021.06.25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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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비여호와 증인 병역거부자 첫 무죄 인정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24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정아무개 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 MBC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24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정아무개 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 MBC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24일 대법원에선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해 의미 있는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24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정아무개 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피고인의 신념과 신앙이 내면 깊이 자리 잡혀 분명한 실체를 이루고 있어,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이번 대법원 판단은 여러모로 의미 있다. 일단 양심적 병역거부 하면 얼른 여호와의 증인이 떠오른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로 기소됐다가 최종 무죄선고를 받은 정 씨는 개신교 교단인 대한성공회 교인이다. 

여호와의 증인이 이단교파로 분류되는 반면, 대한성공회는 세계성공회의 일원이며 엄연히 개신교 주류 교파다. 즉 정 씨는 비여호와의 증인이며 현역병 입영 대상으로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음 인정받은 것이다. 

정 씨의 사례는 적잖은 함의를 던진다. 먼저 개신교, 특히 주류 보수 교단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단 교파의 주장쯤으로 치부해왔다. 보수 색채가 강한 교단(내지 개교회)의 경우 군입대를 공공연히 고무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이 지점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교회가 이래도 되는 건가?

하나님 나라는 평화가 넘쳐흐르는 나라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를 이렇게 그린다. 
 
"늑대가 새끼 양과 어울리고 표범이 숫염소와 함께 뒹굴며 새끼 사자와 송아지가 함께 풀을 뜯으리니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암소와 곰이 친구가 되어 그 새끼들이 함께 뒹굴고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리라." - 이사야 11:6~7 (공동번역 성서)

이사야 선지자가 그린 하나님 나라는 평화가 넘친다. 현실 세계에서 새끼 양, 숫염소, 송아지는 각각 늑대, 표범, 사자 등 맹수의 먹잇감이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에서는 양과 늑대가 어울리고, 표범이 숫염소와 함께 뒹군다. 

이뿐만 아니다. 암소와 곰의 새끼들이 함께 뒹굴고 새끼 사자가 소의 먹이를 먹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완전히 해체되는 순간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이사야 선지자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초월되고, 강자와 약자가 서로 조화를 이루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라는 것이다. 

정교회·가톨릭·개신교를 아우르는 그리스도교는 이 같은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앞장서는 종교다. 예수 그리스도 스스로 자신을 평화의 사도라고 규정했고, 평화를 이루는 이는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울 것이라고 선포했다. 

정 씨가 속한 대한성공회라고 예외는 아니다. 정 씨의 판결 직후, 서울주교좌성당 주임사제인 주낙현 신부는 사실확인서를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주 신부의 사실확인서는 2심 판결 즈음해 페이스북에 공개한 것인데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자 재차 공개한 것이다. 주 신부는 사실확인서에 이렇게 적었다. 

“대한성공회는 세계성공회의 일원으로서 성공회의 평화주의운동에 깊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특히, 20세기 중반, 영국 성공회의 평화주의 운동을 성직자들과 청년 신자들이 주도하였고, 양심적 병역 거부 운동의 시발점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미국 성공회는 1960년대와 70년 대 초, 시민인권운동과 반전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베트남 파병 반대와 입대 거부 운동에 적극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세계성공회는 각국 성공회의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아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세계성공회 주교회의(Lambeth Conference)에서 평화주의운동를 향한 지지와 양심적 병역 거부에 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드러냈습니다.”

평화의 복음은 한반도 상황에 고스란히 적용이 가능하다. 남북 분단은 외부세력(구체적으로 미국)이 우리 민족에게 일방적으로 짊어지운 고통이다. 그럼에도 우리 민족은 70년 넘는 세월 동안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눠왔다. 이 와중에 남북의 젊은이들은 가장 소중한 젊음의 시간 중 일부를 군복무에 바쳐야 했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해 볼 때, 평화의 종교인 그리스도교가 남북 갈등 해소에 앞장서야 하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정 씨 측 변호인인 임재성 변호사는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는 판례가 변경된 이후에도 특정 종파 문제처럼 다뤄져 왔다"면서 "하지만 오늘 판결을 통해 여호와의 증인이 아닌,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인정받을 수 있는 계기가 열렸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임 변호사의 지적대로 양심적 병역거부는 특정 종파, 개신교계 안에선 이단 종파의 일로 치부돼 왔다. 그러나 대한성공회의 전통에서 보듯 양심적 병역거부는 그리스도교의 평화주의와 맞닿아 있다. 

하지만 개신교 주류를 차지하는 보수 교단은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가 공론화될 때 마다 여호와의 증인 교파를 이단시 하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런 행태가 혹시 지난 수 십 년간 반공 정권과 한통속이 되어 북한을 악마화하고, 적개심을 고취하는데 앞장섰던 과거 때문은 아닐까?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개신교계, 아니 이 나라 그리스도교가 분파를 초월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깊이 있는 신학적 고민을 해주기 바란다. 무엇보다 병역을 신성시 하며 군입대를 장려하고 애국심을 고취하는 분위기는 없어야 할 것이다. 

비록 대법원에서 무죄 판단을 받았지만 정 씨는 36개월 동안 교정시설에서 복무해야 한다. 오랜 기간 이어진 법정 공방으로 심신이 지쳐 있을 정 씨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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