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사는 사회
사람들이 사는 사회
  • 최병인
  • 승인 2021.07.06 0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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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철창에 앉아서 김정은이 보내준 ‘귀한 강아지’를 돌보는 문재인 집사! 어째 철창 안이 참 편안해 보이네요.”

전여옥이 문대통령이 북한에서 온 풍산개 마루가 낳은 새끼 7마리를 돌보는 모습의 사진을 보고 한 말이다.

참 무섭다. 어떻게 이런 잔인한 말을 부드럽게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정쟁이 무섭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지독하게 만드는 건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안다. 전직 두 대통령이 감옥에 가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그토록 신봉하고 절대시하는 헌법에 의해 사법적 재판을 받은 결과이다. 돈 없는 사람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말하고, 서로의 입장 차에 따라 휘어진 법의 잣대를 고발한다. 그럴 수 있다. 사람은 편기를 가지고 시선은 입장 차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건 그런 정쟁이 빚어내는 현상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로 보인다. 한 마디로 이렇게 잔인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었다는 사실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더구나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야당의 대변인을 뽑는 토론 배틀 ‘나는 국대다’의 심사위원이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뽑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적어도 자신만큼 지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독설은 우리 사회의 가장 확실하게 요구되는 기본이 되었다. 대통령 출마를 선언한 사람이 우리 정부를 탈레반에 비유한다. 정말 그의 말대로 우리 정부가 탈레반과 같다면 그런 말을 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가. 탈레반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공개적으로 참수형에 처한다. 그 사람에게 목을 한 번 만져보라고 하고 싶다. 목이 붙어 있다면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직접 확인해보라는 것이다.

그걸 수사적인 표현이라고 주장하지 말라. 그런 말을 해야 살아남고 성공할 수 있는 사회는 얼마나 끔찍한 사회인가. 그들이 그토록 적대시하는 북한을 보라. 그들이 하는 말과 말투를 보라. 얼마나 지독하고 잔인한가. 거기서 남북이 혈통이 같음을 확인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정말 우리 민족은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하는 민족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안타깝다. 북한은 독재체제가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다. 그런데 남한까지 그러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번 정부가 독재라서 그렇다고 말하지 말라. 머리가 있다면 잘 생각해보라. 어느 정부에서 국정원의 활동이 가장 부각되었는가. 이번 정부라고 대답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이번 정부처럼 국정원의 존재가 미미했던 적이 있었는가를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없다. 그래서 이번 정부에서 검찰이 그토록 날뛴 것이 아닌가. 그것은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국정원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잃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정치에도 ‘노이지 마케팅’이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을 잘 안다. 또 그것이 소수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사실도 안다. 그러나 선을 넘어간다면 자신들이 내뱉은 ‘노이지 마케팅’이 자신에게도 돌아온다. 그것은 왔다 갔다 하면서 마침내 우리 사회를 함께 살 수 없는 사회로 만들 것이다. <사람, 장소 환대>의 저자 김현경의 말에 따르면 인간은 사회로 들어와 사람이 된다. 그런데 사회로 들어와 인간이 악마가 된다면 그곳이 바로 지옥이다.

내가 지금 자기편을 들고 있다고 말해도 할 말은 없다. 나는 촛불집회에 열심히 참여했고, 지금의 대통령을 선택한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무조건 모든 것에 대하여 이 정부 편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이 정부가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도모하는 일에 유익한 결정을 내릴 때 지지하고, 그 반대의 선택을 할 때 거기에 저항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정부를 대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나는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할 때 민간인 학살이 있었던 마을을 찾아가 위령비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기를 권했고, 지난 서울과 부산의 재보궐 선거에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말기를 바랐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사안에 따라 선택적으로 지지하거나 저항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정부를 대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자신의 의지를 표명하는 방식 역시 달라야 한다. 반대의 경우에도 독설을 쏟아내는 방식이 아니라 애정 어린 충고와 단호하게 불의에 대처하는 열정을 드러내야 한다. 그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끈질긴 설득의 과정이어야 한다.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성서의 내용이 있다.

“내 말을 잘 들으십시오. 육체의 욕정을 채우려 하지 말고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십시오.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은 육정을 거스릅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육정이 빚어내는 일은 명백합니다. 곧 음행, 추행, 방탕, 우상 숭배, 마술, 원수 맺는 것, 싸움, 시기, 분노, 이기심, 분열, 당파심, 질투, 술주정,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것, 그 밖에 그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내가 전에도 경고한 바 있지만 지금 또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일삼는 자들은 결코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맺어 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 이것을 금하는 법은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에게 속한 사람들은 육체를 그 정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으니 우리는 성령의 지도를 따라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잘난 체하지 말고 서로 싸움을 걸지 말고 서로 질투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늘 정치 이야기를 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말씀을 잘 묵상해보라.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것들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치가들이 그토록 지독하고 잔인해지는 것은 그들이 육체의 정욕을 채우려 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육체의 정욕을 채우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결국 정치란 육체의 정욕을 채우려는 것이 아닌가. 이 말씀에서 열거하고 있는 정욕이 빚어내는 일의 목록을 천천히 음미해보라. 그것을 음미하며 기가 막힌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그 사람 역시 육체의 정욕을 채우려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와 사회는 경계가 무너졌다. 도무지 교회가 교회라는 사실을 알 수가 없다. 오히려 세상보다 더 정욕을 채우려는 곳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제 나는 그런 교회를 드러내고 고발하는 일에 신물이 난다. 그렇지 않은 교회가 없기 때문이다. 교회의 체제 자체가 정치적이 아닌가. 정치란 육체의 정욕을 채우는 가장 대표적인 방식이다. 그것은 사회건 교회건 마찬가지이다.

어떤 목사들은 그런 지적을 하는 내 글을 보고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는 고백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고백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교회의 현장에서는 그런 고백으로 이루어지는 변화가 있을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키는 역할밖에 할 수 없다. 그래서 그런 교회들은 해체되는 수밖에 없다.

정쟁이나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을 떠나 잘 생각해보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사람들이 사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는가.

“어떤 개체(인간)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회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하며, 그에게 자리를 만들어주어야 한다.”(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 지성사, p.31)

나는 우리 사회가 인간이 들어와 사람이 되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이 들어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지독하고 잔인한 말을 내뱉는 그런 사람이 된다면 그것은 사회가 아니라 지옥이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사회가 지옥이 되는 것에 저항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주장으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지도를 따라 살아갈 때 가능하다. 상상을 해보라.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열매를 맺고 그것을 드러낼 때 우리 사회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가 될 것이다. 그 사회가 바로 하나님 나라가 아닌가.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라는 사명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이것이 내가 육체를 그 정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은 그리스도인들을 그토록 사무치게 보고 싶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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