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활동가 시우 씨는’양심적 병역거부자’다. 시우 씨는 2017년 11월 종교적·정치적 신념을 이유로 현역병 입영을 거부했고, 검찰은 그를 병역법 위반혐의로 기소했다. 

1심은 유죄였다. 하지만 2심 판단은 달랐다. 2심 재판부인 의정부지법 제4-1형사부는 기소 3년 만인 2020년 11월 무죄를 선고했다. 시우 씨의 입영거부 사유가 정당하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었다. 

이어 지난달 24일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원심을 확정했다. “피고의 신념과 신앙이 내면 깊이 자리 잡혀 분명 한 실체를 이루고 있어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하고 있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이로서 시우 씨는 3년 8개월 여 만에 법정 싸움을 마쳤다. 

그런데 주목할 점이 하나 있다. 대게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하면 ‘여호와의증인’ 종파를 얼른 떠올리기 일쑤다. 실제 병역거부자 대부분이 여호와의증인 신도다. 

하지만 시우 씨는 여호화의증인과 거리가 멀다. 시우 씨는 개신교 교단인 대한성공회 신도다. 참고로 대한성공회는 세계성공회의 일원이다. 여호와의증인이 이단 교파로 분류되는 반면 대한성공회는 주류 교단 중 하나다. 

즉 ,시우 씨는 비여호와의증인이며 현역병 입영 대상으로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받은 첫 사례인 것이다. 대법원도 판결 직후 낸 보도자료에서 “단순히 기독교 신앙(교리)만을 근거로 병역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 사건은 기존의 종교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 사안과는 구별된다”고 설명했다. 

시우 씨의 판결은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MBC, <한겨레>, <경향> 등 주요언론들이 시우 씨 무죄판결 소식을 주요 뉴스로 다뤘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시우 씨는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은 채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기자는 시우 씨가 출석하는 대한성공회 정동 서울주교좌 성당 주임사제인 주낙현 신부를 통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시우 씨는 섭외에 흔쾌히 응했다. 기자는 시우 씨와 서울주교좌 성당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최근 근황이 궁금하다. 재판이 끝나 홀가분하지 않은가? 

먼저 그간 번역이나 논문 작성 등의 일을 해왔는데 해오던 일을 하면서 지낸다. 무엇보다 재판이 잘 마무리되어 홀가분하다. 무죄 확정까지 3년 8개월이 걸렸는데, 2018년 11월 대법원이 종교나 양심을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로 봐야한다고 판단했음을 감안하면 무척 오래 기다렸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려야 했을 일일까 하는 생각에 착잡하다.

또 마냥 기쁘지는 않다. 2월 말 병역을 거부했던 동료 두 명이 유죄가 확정되어 수감 중이기 때문이다. 나와 비슷한 경로를 밟아왔는데, 결과는 갈렸다. 무죄 선고를 기대했는데 유죄가 확정되니 속상한 마음이었다. 

-. 이번 판결은 우리 사회에 파장을 몰고 왔다. 언론도 이번 판결에 주목했다. TV나 다른 신문에서 인터뷰 섭외가 오지 않았나? 

일단 개인 보다는 메시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언론 노출을 자제하는 편이다.  

-. 양심적 병역거부자임을 입증하는 게 무척 까다롭다고 알고 있다. 폭력성이 강한 온라인 게임이 판단 기준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선례가 없었기에 어려웠다. 2018년 대법원은 종교적 이유의 병역거부자와 개인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로 범주를 나눠 지침을 냈다. 종교적 이유를 내세운 병역거부자의 절대다수는 여호와의 증인이고 따라서 대법원은 이들의 사례를 근거로 지침을 구성했다. 

법원은 지침에 따라 병역거부자가 언제부터 신앙생활 했고, 가족이나 친구 중 병역거부자가 없는지, 모든 삶의 중심이 (여호와의 증인) 교회에 있었는지 등 여러 사항을 고려한다. 하지만 일반적 신념의 경우 종교적 사례에 준해 처리한다고 했을 뿐 구체적인 지침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지적대로 검찰이 게임 유통회사가 다루는 모든 게임을 조회했다. 또 ‘n번방’ 사건과 시기적으로 겹친 탓에 카카오·블리저드 등 IT기업 웹하드에 대해서도 조사가 이뤄졌다. 다른 병역거부자는 금융거래 내역을 조회 받아야 했다. 

뿐만 아니라 수년간 위치도 조회 당했다. 검사가 특정했던 곳은 성당이었다. 매주 성공회 성찬례 예식에 참석했느냐를 보기 위해서였다. 수년 간 봤던 영화와 인터넷으로 구매한 책 중에 폭력적인 내용이 없었는지도 들여다봤다. 

‘종교적 신념’ 검증하려 위치추적까지? 

-. 이야기를 들어보니 인권침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가혹한 점이 없지 않다. 그런데 어딘가 어색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조회해서 무엇을 입증하겠다는 것일까? 검찰의 조사 과정은 병역거부자가 얼마나 바른 생활을 했는지 검증하는 듯하다. 나 역시 중, 고교 시절 생활기록부도 냈다. 

그런데 이 같은 조사 과정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에게 전형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여호와의 증신 신도들은 세례, 입교 등 교인 자격 유지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이 교파 안에서 성실하게 생활했으면 입증할 체계가 존재한다. 반면 비 여호와의 증인에겐 입증 체계가 없다. 그래서 무척 단순한 방식으로 평판이 좋았는지, 성실하게 생활했는지를 검증하는 것이다. 

하지만 ‘군사훈련 받지 않겠다’, ‘폭력적 방식으로 관계 맺지 않겠다’는 신념이 타당한지 검증해야 하는데 전체관람가 영화 등을 기준으로 삼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 이와 관련, 법원은 “병역거부자가 깊고 확 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신념과 관련한 문제에서 상황에 따라 다른 행동을 한 다면 그러한 신념은 진실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적시하고 있다. 

또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아도 검사가 기소를 취하하거나 무죄를 선고하지 않는다. 검찰은 병역거부자가 잘못했다는 입장이기에 피고인의 위치는 취약하다. 문턱이 무척 높다. 

-. 현재 성공회 교회에 출석한다. 다른 주류 교단, 특히 보수 장로교단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불온시 한다. 

어린 시절부터 20년 넘게 보수 장로교단인 예장통합 교단 교회에 다녔다. 그러다 2012년 성공회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교단을 옮긴 건 병역거부에 대한 고민이 이유였다. 대학시절 선교단체에서 생활했는데, 그 시절부터 병역거부에 대한 고민을 확장해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역 교회에서 이런 고민을 나누기 어려웠다. 신앙공동체에서 고민을 나누고 지지와 격려를 기대하는 쉽지 않았다. 오히려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군 복무를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담임 목사는 단호했다. 

-. 성공회 교회에선 지지나 격려를 받았는가?

아주 조심스럽다. 병역거부 자체가 부담스러운 의제인데다, 성공회 교회가 군소 교단이기에 그저 신도 한 사람의 고민에 불과했다. 다만 이런 고민을 할 수 있고, 이런 고민을 품고 있을 때 교회적으로 도움이나 안내를 받을 수 있을지, 또 교회사 중에 비슷한 고민을 가진 이들이 어떤 선택을 내렸고 교회가 어떻게 조율해줬는지 등의 로드맵을 바랐다. 

다행히 사제님과 교우들이 잘 배려해줬다. 교회 분위기가 개방적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다만, (병역거부를) 고민할 때 가치판단을 유보하고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태도를 보여줬는데 이 자체가 위로가 됐었다. 어쨌든 나의 고민이 완전히 수용되지는 않더라도 나눌 수는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 무죄가 확정됐지만 교정시설에서 36개월을 대체복무해야 한다. 이를 두고도 논란이 없지 않다. 

개인적으로 아쉽다. 세계적으로 가장 긴 대체복무 기간인데다 교정시설로 단일화 돼 있어서다. 합숙복무 의향을 밝힌 곳이 교정시설 밖엔 없어 이렇게 제도 설계가 된 것으로 안다. 

무엇보다 복무 영역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 대체복무제의 취지는 공동체에 참여하는 다양한 방식을 열어 놓겠다는 것이다. 군사적 방식이 아닌, 한 사회가 유지되기 위한 필수 노동이 필요한 영역은 많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돌봄·간호·의료·복지 영역 등이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하지만 정치권이 의지가 없으면 쉽지 않다. 첫 걸음을 뗐다는 게 중요하지만, 다양한 방식을 열어야 한다. 제도정비를 확실하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 끝으로 교회가 병역거부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한다고 보는가? 

정의, 평화 등은 교단과 관계없이 그리스도교의 근간을 이루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돌봄, 사랑, 평화, 공동체 등은 병역거부를 고민하도록 한 씨앗이었다. 

무엇보다 평화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전쟁을 겪었고 군사적 긴장이 높은 지역에서 신앙생활하는 신앙인이라면 예수께서 ‘이웃을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의 지향은 분명하다는 판단이다. 

지향은 명확한데 실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할까? 원수랑 함께할 수 없으니 군사적 힘의 경쟁을 통해 우리의 영토와 안전을 지키는 것이 먼저일까? 아니면 다 같이 식탁에 초대하는 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것일까? 이런 고민이 활발해지는 게 바람직하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병역거부를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각자 삶의 위치에 따라 내리는 선택은 다를 수 있지만 이런 의문을 품는 건 중요하다. 이렇게 고민할 때, 교회가 넉넉한 버팀목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