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뒤끝] 교황청 향한 유흥식 대주교, 한반도 평화 마중물 역할 기대해
[뉴스뒤끝] 교황청 향한 유흥식 대주교, 한반도 평화 마중물 역할 기대해
  • 지유석
  • 승인 2021.08.02 2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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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그리스도교 사상 첫 교황청 장관, 이웃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원 한다
한국 가톨릭 사제로는 최초로 로마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으로 임명된 유흥식 대주교가 지난 달 29일 장관직 수행을 위해 교황청으로 떠났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한국 가톨릭 사제로는 최초로 로마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으로 임명된 유흥식 대주교가 지난 달 29일 장관직 수행을 위해 교황청으로 떠났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천주교 대전교구장 유흥식 대주교가 성직자성 장관직 수행을 위해 지난 7월 29일 로마 교황청으로 떠났다. 앞서 6월 프란치스코 교종은 유 주교를 성직자성 장관에 임명하고 대주교로 승품했다. 

가톨릭교회는 2천 년 역사를 가진, 세계 최대의 종교 조직 중 하나다. 그리고 성직자성 장관은 전 세계 교구사제와 부제들의 사목 활동을 관리하고 교육을 관장하는 교황청 요직이다. 

성직자성 장관과 비슷한 비중을 갖는 직으론 신앙교리성 장관을 들 수 있겠다. 신앙교리성 장관은 가톨릭 교리 전반을 감독하는 자리로, 전임 베네딕토 교종은 요한 바오로 2세 교종 체제에서 신앙교리성 장관을 지냈었다. 

따라서 한국 출신 가톨릭 사제가 교황청 요직에 오른 건 가톨릭은 물론, 개신교를 아우르는 한국 그리스도교 역사상 큰 의미가 있다.

그래서인지 유 대주교의 성직자성 장관 임명에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축하 인사를 건넸다. 가톨릭 신자이기도 한 문 대통령은 유 대주교에게 "한국 천주교회의 경사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위상을 드높인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는 내용의 축전을 보냈다. 이어 7월 12일엔 청와대를 예방한 유 대주교를 접견했다. 

로마 교황청은 종교 조직이지만 세속 정치에도 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폴란드 출신 요한 바오로 2세 교종은 1980년대 레흐 바웬사의 자유노조 운동을 강력히 지지했다. 이에 힘입어 자유노조 운동은 폴란드 공산정권의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현 프란치스코 교종은 미국-쿠바 국교 정상화를 위해 막후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프란치스코 교종과 가톨릭교회의 역할에 감사의 뜻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유흥식 대주교의 성직자성 장관 임명 이후 프란치스코 교종의 방북 기대감도 고조됐다. 

유 대주교 자신도 교황청에서 남북 관계 개선에 힘쓰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 대주교는 지난 20일 오전 충남 당진 솔뫼성지에서 열린 성직자성 장관 임명 감사미사에서 "한국인이고, 남북이 갈라졌던 아픔을 계속 지니고 살아왔기 때문에 저에게 그런 일이 주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뒷걸음질하는 한국 가톨릭교회

가톨릭 신자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12일 청와대를 예방한 유흥식 대주교를 접견하고, 성직자성 장관 임명을 축하했다. Ⓒ 사진 출처 = 청와대
가톨릭 신자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12일 청와대를 예방한 유흥식 대주교를 접견하고, 성직자성 장관 임명을 축하했다. Ⓒ 사진 출처 = 청와대

하지만 한 명의 그리스도인이자 이웃 개신교 교회(대한성공회) 구성원으로서 이번 일이 마냥 기뻐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심스럽지만, 가톨릭교회가 낮은 곳을 향한 발걸음은 뜸해지고 대신 보수화의 길로 나간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올해 3월 대구 <매일신문>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시민 폭행 장면에 빗댄 만평을 실었다. 이 만평은 즉각 반발을 샀고 <매일신문>은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소유주인 천주교 대구교구는 관련해 묵묵부답이다.
 
시계를 좀 더 돌려보자. 프란치스코 교종이 2014년 8월 한국을 찾았을 때, 교종은 세월호 유가족을 내내 챙겼다. 하지만 정작 한국 가톨릭의 수장인 염수정 추기경은 기자들과 만나 "아픔을 해결할 때 누가 그 아픔을 이용해선 안 된다", "(유)가족들도 어느 선에서는 양보해야 한다"라는 등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을 해 빈축을 샀다. 

염 추기경은 지난 4월엔 동성혼, 비혼 동거, 사실혼 등 법적 가족 범위 확대에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인 가치로 여겨졌던 것과는 매우 다르다, 가톨릭의 신앙과도 어긋난다"며 보수적인 시선을 드러냈다. 반면 프란치스코 교종은 "동성 커플도 법적으로 '시민결합'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착좌 시점부터 개혁 행보로 전 세계에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 점을 고려해 보면, 한국 가톨릭은 거꾸로 가는 셈이다. 

약자 위해 목소리 내온 유흥식 대주교

유 대주교는 중도라는 평가를 받지만, 그간 사형제도 폐지, 일본군 종군 위안부 등 현안에 대해선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유 대주교가 전 세계 교구사제를 관할하는 성직자성 장관직을 수행하는 만큼, 보수 색채가 짙은 한국 가톨릭 사제들에게도 새바람을 불어 넣어주었으면 한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유 대주교의 성직자성 임명이 진정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앞서 적었듯 유흥식 대주교의 성직자성 장관 임명은 한국 그리스도교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일임은 분명하다. 

한 명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심으로 축하하고, 프란치스코 교종을 잘 보필해 성직자성 장관으로 본연의 임무를 수행해 주기 바란다. 특히 유 대주교 스스로 밝혔듯 남북 관계 개선에 중재자 역할을 훌륭히 해주기를 기원한다. 

그래서 로마 교황청이 미국-쿠바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습득한 경험을 잘 살려 남북 정전체제 종식과 평화협정 체결에 큰 역할을 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반도 평화엔 교파가 있을 수 없다. 개신교 교회도 나름의 역할을 찾아야 할 것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와 한국 개신교 교회가 합력한다면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은 한 걸음 더 가까워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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