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비드-19, 백신으로도 안되면 이제 어쩔 것인가?
코비드-19, 백신으로도 안되면 이제 어쩔 것인가?
  • Young S. Kwon
  • 승인 2021.08.21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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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석 목사 칼럼
백신도 무력화시키는 인간의 이기심과 오만
이웃과 공동체조차 제물로 삼는 인간의 자유는 무엇인가?

 

전자 현미경으로 봐야만 보일 정도로 미세한 바이러스(SARS-CoV-2) 하나 때문에 1년 반여 동안 2억 명 넘는 사람들이 코비드-19에 걸렸고, 400만이 넘게 어이없는 죽음을 맞았습니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사람까지 합하면 이보다 더 엄청난 숫자가 될 터인즉, 우리는 지금 유사 이래 가장 불안정한 난세를 살고 있다 하겠습니다. 아마도 전 지구적으로 확산한 이번 전염병은 그야말로 역대급으로서, 이후로도 기록이 쉽사리 깨어질 것 같지 않습니다.

권영석 목사, 한국 학원복음화협회 전상임대표
권영석 목사, 한국 학원복음화협회 전상임대표

이에 대한 대처를 위해 인류가 지혜를 모아 짠 전략이란 게 처음에는 고작 마스크 쓰는 것 말고는 별것이 없었습니다. 감염된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분비물에 노출되지 않도록 일단은 사람을 만나지 않거나 분비물의 유효 배출 거리 이상으로 간격을 유지함으로써 어떻게든 바이러스를 차단하는 것이 고작이었지 않습니까? 게다가 비근한 예로 좀비와도 다르게 누가 바이러스를 보유/보균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마당에 일단은 나 외엔 경계대상일 수밖에 없었으니, 사람을 피하고 상시로 마스크를 쓰고 다녀도 불안을 끼고 살아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다가 작년 말부터 백신이 비상 승인(emergency use authorization)되어 본격적으로 예방 접종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현재로서는 백신이야말로 인류가 바이러스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하겠습니다.

거리 두기와 마스크 착용, 손 씻기 등이 소극적인 방어 전략이라면, 백신은 바이러스와 싸울 수 있는 훨씬 더 적극적인 대응책인 셈입니다.

이렇게 보면 백신의 개발이야말로 그동안의 축적된 최첨단의 과학적 지식과 의료 기술의 응축물인 셈입니다. 인간이 쌓아 온 과학과 기술 문명에 일말의 희망을 걸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고 ‘그래도 역시 과학이 해결책이다’라는 재확신을 가능하게 하는 희대의 사건이었다 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SARS(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바이러스(SARS-CoV-1, 2002-2004)의 출현으로 이미 촉발되기 시작하였던 RNA 백신 개발의 성공이야말로 감염병 분야에서는 엄청난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사 이래 인간 문명과 과학의 획기적인 발명품인 셈입니다. 

게다가 달리 뾰족한 치료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는 예방접종이야말로 유일무이한 대처법인 셈이니, 한시라도 빨리 백신을 통해 우리 몸 안에 저항력을 갖추는 길만이 나도 살고 이웃도 살리고 나아가서 인류 공동체가 이 괴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름길이라 할 것입니다.

산술적으로만 생각하면, 백신 보급률이 70%를 상회하는 시점부터는 소위 집단 면역(Herd Immunity)이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지역은 백신이 보급되지 않는 상황에서 또 다른 지역은 백신이 남아도는데도 접종을 꺼린 나머지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각종 변이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돌파 감염”(break through infection) 사례까지 생겨남으로 집단 면역은 커녕 애초의 그 공포스럽던 감염자 폭증(暴染, exponential) 사태로 회귀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더구나 코비드-19의 최근 변종인 델타는 인체 세포에 착상하는 확률이 이전 변이들보다 확연히 더 높아진 바이러스로 단시간 내 빠른 전파율을 자랑하고 있어서 코비드-19에 대한 대처 방식을 전면 재조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유행성 독감처럼 일종의 계절성 유행병으로 간주하여 때에 맞춰 정기적으로 예방주사를 맞고 방역 수칙을 철저히 생활화하여 경계 태세를 평생 늦추어서는 안 될 것으로 보입니다. 마스크가 마치 물이나 공기처럼 인간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essentials)이 될 모양새니 숨 쉬는 것 자체가 참으로 성가신 일이 될 것입니다.

개인 면역을 넘어서 집단 면역이 다 같이 공생하는 길이었는데, 어째서 인간은 이토록 자기중심적이고 “나 먼저”-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요? 백신이 없어서 못 맞는 사람들은 논외로 하더라도, 유효 기간이 지난 여분의 백신을 버리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예방접종을 안 하겠다는 사람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심지어 백신 맞으면 상당한 금액의 복권 추첨권을 주거나 개인당 몇백 불씩 보상금을 준다고 해도 굳이 맞지 않겠다니 말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백신을 맞는 것이 상책일 것 같은데, 어째서 이런 도착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위대한 발명품인 백신을 무용지물로 만들면서까지 굳이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것은 왜일까요?

일면 생각하면, 법적 강제력을 동원해서라도 억지로 주사를 맞히던 왕정 시대 내지 군부 독재 시대의 획일주의는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다는 단적인 증거라고 주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책임질 수도 없는 자유의 극대화로 인해 결국은 무책임한 개인이 양산되고, 이런 뒤틀리고 왜곡된 개인들의 총화인 집단 전체가 결국 영원히 감염병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면, 이런 자유는 그야말로 개나 줘버려야 할 것입니다. 

물론 다시 미국 얘기입니다만 문명화된 백인에 의해 문명화되지 못했던 흑인이 기니피그처럼 실험 대상으로 악용되었던 트라우마가 남아 있어서 흑인들의 백신 접종률이 백인은 물론 타인종보다 특히 저조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정은 인종 차별주의를 새삼 상기시키는 아픈 기억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FDA가 황급하게 비상 승인을 하였을 정도로 다급한 상황인데 소위 지도층/정치인들까지 나서서 백신에 대한 불신을 조장했습니다. 그리고 바이러스와 백신에 대한 전문지식이 결핍할 수밖에 없는 일반 시민들도 그에 동조 내지 부화뇌동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그 사이 코비드 바이러스는 진화(進化)에 진화를 거듭하여 이제는 진화(鎭火)하기가 더욱더 어렵게 된 지경입니다.

지금으로서는 최첨단인 백신 처방을 거부하겠다니 달리 무슨 방책이라도 있는 것입니까? 인간 문명의 위대한 책사(策士)라고 할 수 있는 과학을 불신하기로 한다면, 무엇인들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하늘만 쳐다보고 기우제를 지내야 했던 원시 미신 시대로 되돌아가겠다는 것입니까? 페스트가 유럽 대륙을 휩쓸던 당시 너무나 절박한 나머지 교회마다 기도회로 모였던 것이 도리어 역병 확산의 진원이 되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결국 백신이나 과학에 문제가 있기보다 우리 인간의 마음이 문제이며 불신이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미세 바이러스 하나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인간의 육체적 취약함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백신을 개발해 놓고서도 백신을 맞지 않으려는 마음이 문제이며, 이웃은 어찌 되든 나 혼자/먼저 안전을 확보하고자 하는 이기심이 근본적인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기만 했어도 코비드 역병은 벌써 정복되었을 것입니다. 옆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마스크도 안 쓰고서 큰 소리로 떠들어 댄다면 좋겠습니까? 턱스크만 걸치고 있는 이웃집 사람을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대접받는’ 느낌이 들겠습니까? 다들 백신을 맞는데, 유독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이 같은 직장/학교/아파트 안에 있다면 마음이 불편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다들 같은 마음일 텐데도 역지사지가 이리도 안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굳이 마스크 쓰기를 거부하고, 백신 맞기를 거부하는 것은 무슨 심산일까요? 다 같이 살 수 있는 길을 두고 굳이 나 혼자 사는 길을 가려다가 결국 다 같이 죽게 된다면, 이는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오 나아가서 나쁜 사람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궁극적으로는 나-먼저주의 내지 나-혼자주의로 변질하여 버린 개인주의가 우리 사회가 퇴보와 파멸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 원인(遠因)임은 틀림없겠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안전마저도 확보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굳이 그 길을 고집하려 드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마도 쉽사리 예상치 못했던 한 가지 변수로, 현대인들의 ‘과학주의’ 사고방식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간을 이처럼 바보로 만든 주요인 중 하나가 바로 과학인 셈이니, 아이러니라 하겠습니다. 100% 완전한 것을 추구하는 과학주의 시대의 현대인들, 1+1은 반드시 2가 되어야 하며, 2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용납될 수 없는 디지털 세대의 과학주의자들에게 과학은 약이 아니라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과학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이 과학주의자들은 그저 과학으로는 안 되고 완벽한 과학이어야만 비로소 신뢰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백신의 부작용으로 죽느니 차라리 코비드로 죽겠다. 왜냐하면, 백신 거부권은 나 스스로 선택한 것이니, 혹 죽음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하더라도 내 자유와 권리를 지키려다가 그리된 것이면 이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기적인 개인주의와 과학주의가 결합하면서 현대인들은 도리어 비과학적이고 어리석은 인간으로 전락해버린 느낌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과학주의란 과학과는 별개입니다. 바이러스의 성질에 맞추어 그에 대항하는 항체를 형성할 수 있도록 우리 몸의 세포를 과학적으로 그리고 안전하게  자극하게 만드는 백신을 개발하는 것이 과학의 과제라면, 완벽한 백신이 나오기 전에는 백신을 맞지 않겠다는 것이 곧 과학주의의 문제입니다.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코비드의 현실에 맞춰 얘기해 보자면 이런 과학주의적인 사고방식이 도리어 과학을 거부하는 태도를 형성하였으며, 첨단 과학을 거부하고 나면 남는 대안이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무조건 백신을 거부하려는 막무가내식의 어리석음으로 치닫게 한 것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드는 대목입니다.

물론 불완전한 과학을 믿기 보다는 완전한 과학이 출현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마음은 십분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생명체/유기체(organic being)에 100%란 가당찮은 허수이자 허황한 기대치에 불과하며 바이러스도 유기체이기에 변종이 생겨나는 게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상호의존적인 피조물(mutual being)인 인간은 피차가 고립된 진공 상태에서는 그리 오래 생존할 수 없도록 고안해 놓으셨기에 일단 골든 타임을 놓치고 나면 나 자신은 물론 이웃과 사회 전체를 파멸로 몰아넣고 맙니다.

과학주의는 말하자면 더 이상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의 통합적인 사고방식의 영역이며 인격(character)과 윤리-도덕(morality)의 영역입니다. 코비드 백신이 아무리 첨단 과학의 소산물이라 해도 과학주의의 필터를 통과하지 못하게 되면서 결국 무용지물이 될 위기에 처한 것은 결코 백신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결국 인간성의 문제임을 반증해 준다고 하겠습니다. 백신 물량을 선(先) 확보한 국가들이 한결같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집단 면역을 형성할 골든 타임을 놓치고 돌파력/감염력이 엄청나게 업그레이드된 변종 바이러스로 진화할 시공간을 허용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 백신 선진국들이 자국민들의 추가(booster) 접종을 앞다투어 예고하고 있으니, 그렇지 않아도 대부분 후발국에서는 물량이 태부족하여 백신 전쟁도 불사하려는 상황인데 그 후진국들을 ‘내버려 둔’ 채로 혼자만 안전 하고자 하는 태도가 WHO를 선봉으로 하는 국제적인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런 이기적인 태도 역시 과학(팩트)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과학주의 사고방식을 내재화한 집단 이기주의의 소산이란 점에서 인간은 이기적 개인주의를 뼛속 깊이 내재화하고 있는 구제 불능의 종이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듭니다. 만일 백신 미접종 국가에서 또 다른 ‘독종의’ 변이들이 생겨나서 선진국으로 옮겨/건너오게 되면 그동안의 쌓아 놓은 면역력은 또다시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백신의 안전성이 아직은 의심되니, 확진율이 빠르게 증가하든 말든 자신만은 접종을 거부하겠다고 하는 개인이나, 백신 한 번 맞은 것으로는 불안하니 다른 나라 사람들은 한 번도 못 맞았든 어쨌든 백신을 두 번 세 번 맞히겠다고 하는 국가나, 따지고 보면 자기 생각과 욕심을 앞세운 나머지 인간의 보편적인 상식을 무시할 정도로 무지해진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과학과 기술을 포함한 인간 지성이란 그 자체로 별도로 존재하는 처방전(prescription)이 될 수는 없고, 인간성(character)을 드러내고 북돋우는 통로이자 표현 수단(description)이라고 하는 제 자리를 지킬 수 있게 통제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과학을 포함한 인간 지성은 이기적인 과학주의자/지성주의자들에 의해 무용지물이 되거나, 아니면 이기적인 탐욕주의자의 손아귀에서 치부의 수단으로 전락하여 도리어 이웃을 착취하는 악용지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코비드-19의 전 지구적 역병은 결국 인간의 존재 방식의 문제 곧 우리는 과연 어떤 인격의 소유자인지 목하 그 민낯을 들춰내고 있으며, 무엇이 어디서부터 삐뚤어졌고 어떻게 하면 이를 다시 바룰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답안지를 고쳐 쓸 기회를  한 번 더  제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회개하라 종말이 가까웠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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