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구원하는 가난한 사람들
우리를 구원하는 가난한 사람들
  • 최태선 목사
  • 승인 2021.09.03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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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동 쪽방촌 기사를 보았다. 기사내용 가운데 시시포스가 등장하고 고르디우스의 매듭과 알레산더의 검도 등장한다. 사유만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문제라는 말이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이 상징하는 것은 그것이 풀 수 없는 문제라는 의미이다. 알렉산더의 검이 의미하는 바는 그 해결책이 너무도 단순하지만 생각해낼 수 없었던 방식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맞다. 빈곤은 인류의 문제이다. 그러나 단순히 기본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생활수단의 부족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공평 문제를 포함한다. 또 시간과 관련하여 일시적인 빈곤과 그것이 사회 전체의 빈곤으로 이어진 집단 빈곤 그리고 사회가 풍족한데도 일부 개인이 빈곤한 개별적 빈곤 등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는 개인의 시선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하게 분류되어 새롭게 이름 지어질 수 있다.

나는 인류의 빈곤문제는 결국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결핍의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모든 능력은 그것이 무엇이든 미다스의 손과 같다. 결정적인 결함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자 성서의 견해이다. 결국 세상에 절망하지 않은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쪽방촌에 관심을 가지고 그곳에 가서 살면서 <누가 빈곤의 도시를 만드는가>라는 책을 쓴 탁장한님은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쪽방 관리에 소홀하더라도 받아야 할 월세는 예외 없이 수령하는 건물주들의 존재 및 방치된 건물에 거주하면서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피해를 고스란히 입어야 하는 세입자들의 삶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역으로 건물주가 이제부터 건물을 관리하겠다면서 재건축이나 리모델링 등으로 세입자들을 내보내는 순간, 추방되는 당사자들로서는 침묵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동전의 양면이기도 했다. 그렇게 국민의 혈세로 수급자 빈민들에게 제공되는 주거 급여는 모두 부유한 건물주에게 현금으로 유입되면서도 수익은 그림자처럼 잡히지 않는 소위 '빈곤 비즈니스'에 사용되며 탈세의 근원이 되고 말았다." (<누가 빈곤의 도시를 만드는가>, 31쪽)

간단한 내용이지만 많은 것이 담겨 있다. 그가 겪었을 수없이 많았을 시행착오들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 내용에서 보듯이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그곳에 가서 그들과 함께 살만큼 신앙적이기도 한 그이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해결책의 제시가 아니라 문제제기일 뿐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입장에서 한 마디씩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결국 어느 한 면만을 바라보는 불완전한 시각일 뿐이다.

물론 우리는 이 내용에서 쪽방촌의 불의한 현실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건물주들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법적인 방법은 없다. 나는 여기서 고의로 법이라는 단어를 언급했다. 맞다. 나는 지금 테드 제닝스를 생각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법으로는 정의를 구현할 수 없다. 세상에서의 정의는 물론이요 하나님의 정의는 더더욱 불가능하다.

그러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고수하는 수밖에 없는가. 아니다. 각자의 입장에서 파악한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특히 정치에 기대를 가지는 것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부스러기가 꽃이 되다>의 저자 강명순 목사님이 생각난다. 그분은 가난한 아이들의 엄마이다. 1986년 단돈 1000원이 입금된 통장으로 ‘부스러기선교회(부스러기사랑나눔회의 전신)’를 시작해 수만명의 어린이들에게 먹을거리와 학비, 생활비, 의료비를 보탰다. 지금까지 연 인원 1만6000여 명의 개인, 1090여 개 교회, 1150여 기업·단체 이름으로 100억여원을 모금한 부스러기사랑나눔회는 요즘 전국 97개 지역아동센터와 21개 지부, 회원기관을 지원하며 매달 3000여 명의 어린이를 돕고 있다. 그 이야기의 내용이 바로 <부스러기가 꽃이 되다>의 내용이다.

그분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그 일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국회의원이 된다. 정치는 이미지를 위해 그런 사람을 이용한다. 그분은 한나라당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의원이 되었다. 정치에 뜻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답답한 마음에 직접 법을 만드는 국회로 무작정 뛰어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는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분은 자신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준 당대표인 박근혜를 공개적으로 비난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분은 다시 국회의원이 되지 않았다. 정치의 한계를 경험했을 것이다.

“국민의 혈세로 수급자 빈민들에게 제공되는 주거 급여는 모두 부유한 건물주에게 현금으로 유입되면서도 수익은 그림자처럼 잡히지 않는 소위 '빈곤 비즈니스'에 사용되며 탈세의 근원이 되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진면목이며 정치가 가지는 한계이다. 정치는 그 이상을 할 수 없다. 나는 강명순 목사님의 정치 경험에 대해 들을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분명 강 목사님은 그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정치의 한계를 깨닫고 정치의 진면목을 보았을 것이다. 정치란 가장 세상적인 것이다. 여기서 나는 다시 똑같은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세상은 결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

인간이 아무리 박애정신의 화신이 되어도 세상을 구원할 수 없다. 그것이 휴머니스트들의 한계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대단히 중요하다. 오래 전 한 선교사님은 그리스도인들이 휴머니스트들만 못해서야 되느냐며 신학생들을 질타했다. 잘못된 질타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인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식의 사고는 그리스도교를 힘의 종교로 만들고 폭력적인 인간이 되게 만든다. 하나님 나라는 근본적으로 경쟁이 없는 나라이다.

탁정한님도 그러한 자신의 경험을 책에 담아놓았다. 만일 그가 해결책을 찾았다면 이 책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는 지금도 고민하고 있고 빈곤의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그가 한 일을 제시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제시할만한 것이 없지는 않아도 제시할 수가 없다. 완전한 해결책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가 신앙인으로서의 자신의 삶을 잘 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알렉산더의 검처럼 매듭을 단번에 풀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방법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푸는 방식은 오히려 갈등을 심화하고 부작용을 낳을 뿐이며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고도 했다. 감동스러운 증언이다. 그의 진정성이 비로소 그를 신앙에 이르게 한 것이다.

내가 늘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기부족에의 깨달음! 그것이 바로 신앙하는 삶이며 하나님이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것이다. 그는 불가능한 빈곤 퇴치에 도전했다. 그리고 그는 실패했고, 지금도 여전히 실패하고 있다. 그러나 실패로 점철되는 그의 삶이야말로 빈곤에 대한 그의 진정성을 드러낸다.

나는 날마다 민들레국수집의 기사를 읽는다. 민들레국수집이 아무리 커지고, 아무리 완벽하게 사명을 완수해도 노숙자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민들레국수집이 소중한 것은 민들레국수집을 통해 신앙하는 삶이 무엇인가를 사람들에게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나는 탁정환님도 자신의 책에서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데리다가 말한 대로 “종교란 불가능성에의 열정”이다. 민들레국수집 서영남 대표와 같은 분, 동자동 쪽방촌의 탁정환 같은 분들이 있는 한 세상의 희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 그들은 빈곤의 퇴치라는 복음의 요구에 응답하고 있다. 빈곤의 퇴치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불가능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비로소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가난한 사람들을 세상에 존재하게 하시는 이유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지만,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가난하게 사는 이들이 고맙지 않다면 당신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가난하게 산 것 이외에는 다른 어떤 일도 하지 않은 거지 나사로의 구원이 부당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성서의 선언은 그리스도인의 사명선언임과 동시에 모든 이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경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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