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과 황장수
윤석열과 황장수
  • 김기대
  • 승인 2021.09.09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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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서워?'와 '내가 우습게 보여?'는 같은 의미

종영에도 불구하고 계속 회자되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DP에는 악의 화신이나 다름없는 황장수 병장(신승훈 분)이 나온다. 그는 중학교때까지 유도 선수였다가 애니매이션 작가의 꿈을 안고 입대한 조석봉(조현철 분)을 군생활 내내 괴롭히다가 탈영한 조석봉에 의해 납치되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난 인물이다.

내무반에서 폭군으로 군림하던 황병장은 DP요원 한호열 상병(구교환 분)이 군병원에서 복귀하던 날 충돌한다. 제대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왜 아직도 대장놀이를 하냐는 한호열의 깐죽거림에 황병장은 ‘내가 우습게 보이냐?’는 말로 상대방을 제압하려 들었지만 한상병의 ‘그렇다’는 말에 무너진다. 한마디만 더 하면 끝장 보겠다는 말에 한 상병은 ‘한 마디’라며 황병장의 분노를 다시 자극했지만 결과는 아무 것도 없었다.

황병장은 또한 안준호 이병(정해인 )이 어머니께로부터 받은 편지를 빼앗아 읽으며 안이병을 조롱하는데 이에 화가 난 안이병이 ‘그만 하시죠’로 응대하자 총을 가져오라며 ‘이 XX 죽이고 나도 탈영하겠다’로 자신의 분노를 표출했지만 이 역시 소득없이 끝났다.

황병장의 폭력과 분노는 남성들의 비겁한 자기 표현이다. 그가 의지할 것이라고는 그깟 병장이라는 계급밖에 없는데 그걸 ‘헌 칼’삼아 휘둘러봐도 얻은 소득은 없었다. 제대후 황병장은 편의점 시간제 직원으로 자본의 먹이 사슬에서 비굴한 위치로 돌아갔을 뿐이다.

윤석열과 황병장
윤석열과 황장수

검찰이 그들에게 불편한 언사를 한 정치인과 기자의 판결문을 유출해 야당으로 하여금 고발하게 했다는 이른바 ‘고발 사주’사건에서 불편한 언사의 대상은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이었다. 그러므로 유일한 이해 당사자인 윤석열은 의혹을 받기에 충분한 위치에 있다. 그에 대한 여당과 언론, 시민들의 의혹에 찬 시선이 결코 무리수는 아니다. 하지만 궁지에 몰린 윤석열은 지난 8일 기자회견을 통해서 이 모든 것이 공작이라며 분노를 쏟아냈다. 전달과정에 등장한 사람들의 선택적 기억과 부인을 모두 인정한다 해도 이 문서 자체는 검찰발 문서임에는 틀림없는데도 당시 지휘라인의 정점에 있던 윤석열은 이를 괴문서로 치부하면서 출구를 찾는 비겁한 선택을 한다.

괴문서는 만들어 본 자들만이 뱉을 수 있는 용어다. 공소장을 여러 차레 변경하면서 궁극에는 피의자를 범죄자로 만든 괴문서를 만들어 본 자들만이 할 수 있는 발언이라는 뜻이다. 그는 일단 이런 문서의 유출에 당시 감독자로서 사과부터 해야 하는데 사과는 커녕 변명조차 없다.

게다가 메이저 언론 운운하면서 독립언론을 폄하한다. 이 역시 메이저 대학이라고 불리는 대학 출신들만이 쓰는 용어다. 그의 의식 저변에는 ‘주류’ 또는 ‘메이저’만이 진리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결은 다르지만 메이저를 경험해보지 못한 황병장이 계급의 사슬 위에서 누리는 주류 의식과 같은 의식이다.

기자회견에서 보여준 윤석열의 호통은 황병장의 그것처럼 소득을 기대하지 않은 자의 비겁한 몸부림에 다름 아니다. 그는 내가 우습게 보이냐는 황병장의 말대신 내가 그렇게 무섭냐고 국민들을 겁박하는데 두 말은 비겁한 자들이 흔히 쓰는 상투어다. 내가 우습게 보이냐는 말은 제발 나를 무섭게 봐 달라는 호소이고, 내가 무섭냐는 말은 나를 우습게 보지 말아달라는 애원이다. 왜냐하면 황병장의 횡포나 윤석열의 호통이 우습다는 사실을 가장 잘아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사소한 일로 후임병들을 괴롭히는 황병장이나 피해갈 수 없는 의혹에 마주한 윤석열은 그 횡포나 호통이 얼마나 조롱받을 일인지를 안다는 의미이다.

DP의 마지막에서 황병장은 ‘나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고 울부짖는다. 물론 회한의 울부짖음이 아니라 죽음을 목전에 둔 두려움 가득한 토로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안되는 일’을 ‘그래도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대한민국 검찰이 두려움이든 후회든 애절한 회한을 하는 걸 보고 싶다.

과연 가능할까? 6.25때 쓰던 수통을 아직도 쓰고 있는 대한민국 군대가 변할 수 있을까를 회의하던 조일병의 유언에 가까운 말을 곱씹어 보면 일제 강점기부터 강한 편에 기생해 온 대한민국 검찰이 과연 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나 역시 의심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일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무섭냐는 그 말 저변에 깔린 진심, 즉 내가 우습게 보이냐는 그 질문에 ‘응’이라고 대답하는 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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