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 장로는 왜 대통령이 되려 할까?
최재형 장로는 왜 대통령이 되려 할까?
  • 김기대
  • 승인 2021.09.17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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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은 가이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니까

미담이 많았다. 아들 둘을 입양했으며 다리가 불편한 친구를 고등학고 대학교 내내 부축해서 다니면서 함께 사법고시에 붙었다. 훌륭하다. 정말? 이런 미담이 폄하의 대상은 아니지만 자녀를 입양하고 많은 돈을 희사한 연예인들은 많다. 아직도 장애인 시설이 부족하긴 하지만 요즘은 불편한 친구를 업고 다녀할 일은 많지 않아 그런 이야기들이 들리지 않는 뿐이다.

그럼 미담이 많은 직업군의 차이는? 최재형의 미담과 연예인들의 그것의 결정적 차이는 시혜냐 나눔이냐의 차이다. 최재형은 그가 걸어온 이력으로 봤을 사회 지도층인사의 책임감(그는 청소년시기 부터 지도층이 되려는 열망이 강했을 터이니) 때문에 시혜성으로 선행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선행은 책임의 무게에 짓눌려 그런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나아가서 이렇게 입양도 안하고 힘듯 벗도 돕는 사람들은 모두 계도가 필요한 교육의 대상으로 보인다.

최재형 장로
최재형 장로

훌륭한 법관이었다. 진보진영에서 좋아할 만한 판결도 있었다. 그것이 문재인 정부에서 감사원장으로 뽑힌 이유였으리라. 2011 1223 재일동포 간첩사건 재심에서 최재형은 가혹행위 끝에 거짓 자백을 것을 보고 “당시 우리나라가 분단 상황에서 남북이 첨예한 긴장관계를 유지했던 등을 고려하더라도, 피고인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법원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느낌을 지울 없다”고 사과했다.

정말 훌륭한 법관인가? 그를 감사원장에 천거한 사람들은 그의 무죄 선고에 방점을 찍을 것이 아니라당시 우리나라가 분단 상황에서 남북이 첨예한 긴장관계를 유지했던 등을 고려하더라도 방점을 찍어어야 했다. '고려하더라도'라니! 첨예한 남북 대치상황에서는 고문이 어느 정도 용인될 있다는 내심을 드러낸 것 아닌가?  다만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에서는 그게 너무 심했다는 것이다. 청와대 인사팀의 독해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정해진 법전에 따라공평무사(?)’하게 선고를 내려오다가 갑자기 자기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 권력을 갖게 됐다. 어떻게 해야 모르는 상황에서 월성 원자력 발전소 조기 폐쇄 결정 이라는 감사건이 그의 손에 들어 왔다. 대법원 판사를 안해본 경력을 만회라도 하려는 그는 무리한 감사를 했고 결과 문재인 정부가 부정과 부패에 무능하기까지 정부로 보이기 시작했다. 최재형의 나이와 경력을 고려하면 그가 대법관을 하지 못한 것은 의외다. 현재 김명수 대법원장은 그보다 3살 아래에 고시 기수도 2기 늦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그 점이 발탁의 이유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당신을 뒤늦게 알아보고 발탁할 터이니 그에 걸맞게 충성을 다하라고, 감사원장은 이회창처럼 최소한 대법원 판사 노릇은 해본 사람들이 갈 수 있는 자리라고, 그런데 그는 자신을 알아봐준 정부의 등에 비수를 꽂았다. 

미담건과 마찬가지로 그에게는 모든 정책이 계도의 대상으로 보였다.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은 “최 원장은 질문마다 ‘준비가 됐다’고 말하는 습관이 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완벽주의’에 해당하는데, 비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모범답안이 아니면 하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한겨레 신문에서 밝혔다.

맞는 말이다. 그는 완벽주의자라는 소리를 듣기에 충분할 정도로 이른바스펙 뛰어나다. 남산국민학교를 나온 것으로 보아(교회는 신촌교회인데? 최후보가 그랬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당시 명문국민학교를 보내기 위한 위장 전입이 밥먹듯이 일어날 때이기는 했다). 남산에 살았다면 당시 남산 주변에는 일본 사람들이 버리고 적산가옥이 많았다. 어느 정도 생활 수준이 되어야 적산가옥을 분양받을 있었으니 최소 중상층의 삶은 살았을 것이다. 중상층이 살던 동네는 학구열도 높아 남산국민학교는명문 중학교를 보내는 명문 초등학교에 속했다. 경기중학교를 준비하던 그에게 청천벽력같은 정책이 발표되었다. 그는 중학교 무시험 1기로 한영중학교에 입학해 그의 성에 안차는 학창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평준화 이전의 경기 고등학교에 진학한 그는 서울법대를 나와 대통령후보 경선에까지 나왔다.

그동안의 대통령 선거에서 유의미한 관심을 가진 후보 중에 스펙만으로 보자면 그가 가장 뛰어나다. 경기고 서울법대 출신의 이회창이 있지 않냐고? 그는 최후보와 달리 아들 병역문제가 걸렸었다. 윤석열이 있지 않냐고? 그는 고교 평준화 세대다. 평준화 이전의 명문고 출신들은 이후 세대를 마치 조선말 서원이 철폐된 뒤의 서생들을 근본도 없이 한학을 공부한 사람들처럼 보았던 것과 비슷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명문서원을 그리워하면서 말이다.

게다가 최재형은 고학력 중산층이 가장 많은 통합측의 신촌 교회 소속이다. 이른바 고지론(기독교인들이 성공해서 사회 지도층을 장악하자는 주장) 최초 발원지가 통합측 목사들 아닌가?

같아도 이런 스펙이라면 기도 중에 대통령에 출마하라는 자신 내면에서 나오는 소리를 하나님의 계시로 착각하겠다. 내가 나서서 무능한 자들이 망쳐 놓은 나라를 바로 잡겠다는 서원이 안나오겠는가?

한국사회의 학력주의가 낳은 가장 병폐다.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수한 학생들이 순수 인문학이나 자연과학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초분야로 나선 우수한 인력들이 자원도 부족한 한국의 인적 자원이 되어 기여를 것은 사실이다(그러니 인문학은 많이 공부할 필요없다는 윤석열의 말이 얼마나 무지한가!). 70년대 중반이후 단과대학별로 흩어져 있던 서울대학이 관악캠퍼스에 모이면서 공룡화되기 시작했고 한국 사회가 어느 정도 성장단계에 들어서니 돈되고 권력되는 전공으로 몰려 들었다.

박정희 정권은 서울대 출신들을 적당히 등용했다. 아직 일제 강점기의 관료들이 남아 있기도 했거니와 4.19 , 한일협정 반대 데모를 하면서 학생들의 의식이 관료계에 매력을 갖지 않을 때이기도 했다. 서울 법대 출신들의역량(?)’ 제일 먼저 알아보고 검사를 수족에 사람은 신직수였다. 불과 36살에 검찰총장에 오른 신직수는 한국대학(지금의 서경대학)출신에, 사법시험 출신도 아니고 군법무관 출신이었기에 그런 약점을 서울 법대 출신들도 메꾸려 했다. 밑에서정치 배운 서울법대 출신의 김기춘은 간첩조작시대를 열었다.

신군부 정권은 관료에 주로 서울법대 출신들을 불러다 써서 육사와 서울 법대의 합성어인 육법당이라는 말이 생겼다. 신군부시대에도 그들에게 무한한 권력을 주지 않아 검찰권은 영화 1987에도 나오듯이 경찰의 눈치를 봐야 했다.

한국사회가 민주화 되면서 검찰권의 독립이 이야기 되기 시작했고 과정에서 검찰 사법권력은 민주화를 역행하면서 야금야금 그들의 권력을 키워 왔고 2021최고의 스펙최재형은 구국의 사명을 띠고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공부가 부족한 까닭이다. 그들이 우수해서가 아니라 시대적 소용돌이 속에서사는 길을 선택하는데 혜안을 가졌을 뿐이다. 사실 서울법대가 경성제국대학의 법문학부 법학계열의 정통 후예라고 생각하는 조차가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로 서울 법대 출신들 중에도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 봤다. 일제 강점기에는 경성제대 법문학부도 있었지만 경성법학 전문학교도 있었다. 별개의 학교가 서울법대로 통합하면서 경성제대출신들이 심하게 반발했다. 국대안 반대 데모에는 여러 다양한 이념들이 충돌했지만 경성제대 법문학부 출신들도 몫을 차지했다. 그들 일부는 월북해서 김일성 대학을 세우는데 일조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최고의 스펙으로 불러 주는 것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스펙들이 걸어온 역사를 보면 결코 나라의 지도자 자리를 내어 줄만큼 신뢰감을 주지 못했다.

최재형 장로는 느닷없이 상속세 폐지를 공약으로 발표했다. 그다운 발상이어서 놀랍지는 않다. 최고의 스펙을 주신 하나님 덕분에 내가 돈을 벌어서내돈 내상()’하겠다는데 가이사의 정부가 끼어드는가 ?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아도 재산은 내가 지킨다. ~ "베리타스 룩스 메아(진리는 나의 -서울대 교훈)! "이며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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