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을 안수한게 아니라 '예수'의 옷에 손을 댄 것
윤석열을 안수한게 아니라 '예수'의 옷에 손을 댄 것
  • 편집부
  • 승인 2021.09.22 03:4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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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와 위반

설교는 김기대 목사(LA 평화의 교회) 2021 9 19 설교를 요약한 것입니다.- 편집부

헨리 코스터 감독의 1953 성의’(The Robe)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리처드 버튼, 시먼즈, 빅터 마추어가 주연을 맡은 예수의 마지막 옷에 대한 이야기다. 로마 장교 마르셀리우스(리처드 버튼 ) 자신의 병사들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옷을 나눠 갖는 장면을 보고 미안한 마음에 옷을 자신이 가져왔다가 사건을 계기로 예수를 믿고 결국 순교에 이른다는 내용의 영화다.

예수의 마지막 옷에 대한 관심은 종교 개혁 이전, 그리고 이후의 가톨릭 교회에서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탈리아 토리노 성당에 있다는 수의에는 예수의 얼굴로 추정되는 이미지가 나타나 있으며 독일 트리어 성당에는 통으로 짜서 나눌 없는 속옷이 보관되어 있다. 옷들이 탄소동위원소 연대 측정법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석가모니의 진신사리처럼 종교의 고유한 문화라고 생각하면 된다.

오늘 본문(마가 5:25-34) 나오는 예수의 옷은 어떤 옷일까? 예수가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벌옷을 가지지 말라고 했으니 분의 옷도 벌이었으리라. 그렇다면 입었던 옷도 그날의 그옷이었으리라!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있었다. 피가 멈추지 않는 , 혹시 현대 의학에서 말하는 피가 멈추지 않는 혈우병은 아닐까? 하지만 아니다. 혈우병은 남성에게만 나타나는 증상이다. 여성은 단지 유전인자만 갖고 있다.

니콜라이2세 가족(좌)과 라스푸틴(우)
니콜라이2세 가족(좌)과 라스푸틴(우)

역사상 가장 유명한 혈우병 환자는 러시아의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 2세와 왕후 알렉산드라 사이에서 태어난 알렉세이 황태자다. 영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빅토리아 여왕의 가계에는 혈우병 유전자가 있었는데 알렉산드라는 빅토리아의 손녀다. 아들의 혈우병이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과 영국 성공회 가문의 여성이 러시아 정교회의 문화속에서 느끼는 외로움 등이 괴물 라스푸틴과 가까이 하는 계기가 되었다. 라스푸틴이 무슨 수를 썼는지 몰라고 아들의 병은 나았고 라스푸틴은 러시아 국정 농단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단지 라스푸틴 때문이라고는 없겠지만 모순이 쌓인 러시아 사회에서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났고 황제의 가족은 모두 혁명 이후 처형당했으니 세계사를 바꾼 혈우병이라고 부를만 하다.

오늘 본문의 환자는 생리불순 또는 하혈증 환자다. 공동번역 성서는 혈루증을 하혈증으로 번역하고 있다. 레위기는 여성의 생리를 부정한 것으로 여겨 생리가 끝난지 8 차에 제사장에게 집비둘기 마리를 제물로 바쳐야 했다. 하물며 여인은 그것이 12년째 지속되니 얼마나 그의 삶이 지난했겠는가!

12라는 숫자도 많은 것을 함의하고 있다. 12, 이스라엘의 거룩한 숫자다. 그런데 켜켜이 쌓인 거룩의 강박이 멍에로 작동하는 시대가 예수의 시대였고, 사도 바울이 그렇게도 깨려고 하였지만 지금까지 이어지는게 거짓거룩 문화다.

게다가 의사들은 여인의 병을 고치지 못했다. 1세기 의사들에게 현대의학적인 접근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그들 또한 나름의 치유방법은 있었을 , 그러나 부정한 여인이 다가오는데 두려움이 앞서 최선을 다할리가 없었다.

여인이 예수의 옷에 손을 댄다. 그녀를 옥죄고 있던 오랜 금기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 것이다. 순간 예수는 몸에서 힘이 빠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여인의 처절한 금기의 위반, 에너지가 전달되자 예수는 전율했다. 그러니 예수는 여인을 칭찬할 밖에 없었고 결국 병이 나았다.

의상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고찰’(김혜남)이란 논문에 따르면 의상에는 토테미즘적인 기능도 있다고 한다. 여성은 혹시라도 옷에 손을 대으면 병이 치유될지도 모른다는 토테미즘에 기초해서 예수에게 다가 갔을 것이다. 미신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에게는 금기의 위반이 전율로 느껴졌고 마침내 여인에게 믿음이 너를 고쳤다 선포한다.

그러므로 본문을 가지고 예수는 입고 있던 옷에 손만대어도 치유의 기능을 발휘하는 인물이라고 설교한다면 목사들은 토테미즘의 사제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목사들이 그렇게 설교한다.

한국의 목사들이 쉽게 착각하는 중의 다른 하나는 안수다. 안수는 송인규가복음과 상황에서 설명해 놓았고, 뉴스M에도 기사가 있다. 목사들은 그들에게 대단한 초자연적 능력이 있다거나 마치 사도적 기능을 계승받은 (이거 신사도 주의 아닌가?)처럼 활동하는데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송인규도 지적했듯이 안수는친밀감 본질이다.

조용기 목사의 장례식장에서 벌어진 김장환, 김삼환 등등이 장례식장에서의 윤석열에 대한 안수가 주요 언론에안수라는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단어까지 써가면서 기사화되었다. 그건 안수도 아닐 더러 안수의 신학적 의미와도 관계가 없다.

그럼 뭘까? 목사들에게 윤석열은예수였다. 그들은 윤석열 예비 후보가 그들의 기득권과 권력을 가장 유지시켜줄메시아 보았다.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사람이 붐비는 곳에서 용감하게 예수에게 다가갔던 여인처럼 사람이 붐비는무려조용기의 장례식장에서 그들은 메시아에게 다가가 그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다. 여인은 남성, 제사장, 사회 기득권층에게만 유리하게 작동하는 금기를 위반하기 위해 손을 대었고, 장례식의 남자들은 바로 그것을 유지시켜 달라고 메시아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다.

신앙이란 바로 이런 헛된 금기를 깨는 것인데 금기를 유지시켜 달라는 목사들에게 많은 군중들이 매달리는 서글픈 시대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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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기 2021-09-27 08:41:41
대체 뭐하는 짓인지... 이러니 기독교가 욕을 먹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