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성공스토리여야 했을까?
꼭 성공스토리여야 했을까?
  • 김기대
  • 승인 2021.09.28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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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기억(기적)과 머문 기억(철도원)

 

다른 마을과 연결시켜 주는 도로가 없어 기찻길을 따라 외부로 나가야만 하는 마을, 정작 마을에 기차역은 없다. 준경(박정민 ) 기차역을 세워달라는 54번째 청원편지를 청와대에 보내 놓고 누이와 함께 고등학교 입학식에 간다. 고등학교에서 새로 만난 물리 교사와 라희(임윤아분) 도움으로 기차역을 세워달라는 청원편지를 계속 보내는 동시에 기차로도 닿을 없다고 생각해 새로운 세계에 눈떠간다. 본래 우주에 관심은 많아서 천재소리를 듣는 준경이었지만 우주는 닫힌 마을에 사는 소년이 꿈꿀수 있는 유일한, 그러나 닿을 없는 공간이었다. 물리교사와 라희의 등장은 우주만큼 이나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준경에게는 불가능하지 않은 기차역 너머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다. 준경의 꿈을 응원하는 누이와 달리 아버지는 그의 꿈에 무관심하다.

기차역과 준경의 가족사가 지루하리만큼 신파로 흘러가다가 영화 말미에 결국 기적같이양원역 세워지고 준경은 유학의 길에 오른다.

주민들의 청원으로 양원역이 세워진 것은 맞지만 이야기 전개는 허구인 영화기적’(감독 이장훈) 내용이다.

기적 보면 오르는 영화들이 많다. ‘식스센스(감독 M. 나이트 샤말란, 1999)’ 그렇고 나이가 역전되는 데서는인터스텔라(감독 크리스토퍼 놀런, 2014)’ 생각난다. 무엇보다도 비슷한 영화는철도원(감독 후루하타 야스오, 1999)’이다.

 

2대째 철도원 생활을 하고 있는 사토 오토마츠는 호로마이역의 역장이다. 아내 시즈에와 유키코가 병으로 숨을 거두던 때에도 철도원의 임무에 충실했던 오토마츠 역장은 호로마이 역을 지나는 기차의 운행이 중지된다는 결정을 듣는다. 외부 세계로 나가 새로운 일을 하도록 충고하며 일자리까지 소개하던 친구의 도움도 마다하던 그는 어느날 눈덮인 기찻길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

철도원에서 인형과기적에서 트로피, ‘철도원에서 역사에 찾아와 놀고 가던 소녀와기적에서 준경의 누이, 아내와 아이의 죽음은철도원이나기적 같다. ‘기적 감독은 양원역만의 새로운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 내기 보다는 기존의 영화, 특히철도원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차용했다.

철도원 감동적인 영화로 소개되지만 보기에 따라 이데올로기적 의도가 너무다 뚜렷하다. 흑백으로 처리되는 영화의 장면에 나오는 기관사는 일제 강점기 한반도와 만주국을 질주하던 시절의 기관사를 떠올리게 한다. 게다가 전후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기까지 자리에서 몫을 다한 일본인들에 대한 찬사도 비켜가기 어렵다. 병원에 아내가 아이의 시신을 안고 돌아왔을 때도 오토마츠 역장은 호로마이 역의 근무기록부에이상무라고 쓴다. 그는 작은 역의 역장으로 안되는 승객의 안전을 위해 책임을 다했다는 말이다. 마지막에도 역장은 그가 평생 헌신했던 철길위에서 목숨을 거둔다.

감동을 떠나 과거의 영화에 멈추어 서버린 일본의 기억 처리 방식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과거사를 반성하기는 커녕 과거의 영화로 돌아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우익의 시대 동안 일본은 뒷걸음질 쳤다. 게다가 호로마이 역의 표지판에는 다음 표지판이 없다. 여기가 마지막역으로 곳이 없다는 마치 일본의 운명같은 장면을 감독은 이미1999년부터 예고했던 것일까?

반면 양원역 표지판에는 다음역과 이전역이 표시되어 있다. 양원역은 멈추어 서서 곳이 없는 기차역이 아니라 어디로든 뻗어 나갈 있는 곳이다. 또한 준경의 아버지는 준경의 어머니가 죽던 열차 운행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자책한다. 호로마이 역의 근무기록부에이상 없음이라고 것과 달리기적에서 아버지는 그날 자기의 판단은 정상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어느 집단이라도 개인의 슬픔까지 포기하라고 강요할 없는 평범한 진실을기적 아버지는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야 깨우쳤다. 그는 더이상 규칙과 명령에 무조건 따르는 공직자가 아니라 아직 정차 승인도 나지 않은 양원역에 무단으로 10분이나 기차를 세우는 아버지가 된다. ‘철도원 기억에 머물렀다면기적 기억을 창조적으로 재구성한다.

 

하지만철도원 군국주의 이데올로기를 지우지 못했던 것처럼기적역시 한국 사회 가장 위험한 이데올로기를 지우지 못했다. 바로 성공 이데 올로기다. 그냥 평범한 고교생 준경이의 노력으로 양원역이 세워졌으면 안되었을까? 굳이 성공신화를 집어 넣어야 감동이 완성된다는 감독의 강박이 작동한 부분이다. 감독의 전작인지금 만나러 갑니다(2018)’처럼 만들지 못했던 점이 내내 아쉽다. 역을 세우는 것과 같은 '하찮은 '일에 성실한 소년이었기에 전국에서 유일하게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에 간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면 하찮은 역을 끝까지 지키는 호로마이 역의 역장이 주는 감동보다 못하다. ‘기적 감동이 아니라 교훈이 되어 버린다.

미국 유학장면도 그렇다. 굳이 미국유학을 성공의 정점에 놓을 필요는 없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88년에는 그게 성공의 정점에 있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관객들에게 그것은 정점이 아니다. 실제로 그런 성공신화가 있었다면 모를까 굳이 만들어가면서까지 당시의 신화를 오늘의 관객들에게 주입할 필요는 없다. 영화 주민들의 감동을 극대화 하고 싶었으면고시 패스 낫지 않았을까? 경상북도라는 지리적 특성을 고려하면 말이다. 그건 너무 뻔한 스토리가 아니냐고 반문할 사람이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도긴개긴이다.  닫힌 마을과 광활한 우주, NASA장학생을 연결시킨 거라고? 그거야 말로 억지로 꿰맞춘 견강부회다.

 

기적 대한 평점. 3.5/5

기적 LA지역에서는 CGV에서 상영중이며, ‘철도원 유튜브에서 Poppoya(칙칙폭폭같은 일본 의성어) 검색하면 무료로 관람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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