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왕이 될 '손'인가
내가 왕이 될 '손'인가
  • 김기대
  • 승인 2021.10.02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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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관상'과 소설 '부적'

 

 

영화관상’(감독 한재림, 2013)에서 조선 최고의 관상가 내경(송강호분)사람의 얼굴에는 세상 삼라만상이 모두 들어있소이다!”라며 사람의 관상이 운명을 좌우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의 관상 실력으로 조선의 정치 중앙 무대까지 진출한 내경은 문종과 단종, 수양대군과 김종서가 만들어내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말려 들어간다. 수양대군(이정재분) 견제하는 김종서의 편에 서게된 재경은 처음 마주친 수양대군의 모습에서이리 연상케 하는 역적의 상을 찾아 낸다. 숙부 수양대군에게 신뢰가 깊은 단종이기에 수양을 경계하라는 김종서의 충언을 듣지 않는 것에 조바심이 재경은 수양에게 접근한다. 단종이 즐겨보는 관상서에 따르면 수양은 역적의 상이 아니므로 관상서에 나오는 역모상을 만들기 위해 재경은 잠들어 있는 수양의 얼굴에 점을 찍는다. 먹물로 문신을 새겨버린 것이다.

모든 것은 수양의 계략이었다. 자신을 따르는 단종을 없었기에 단종의 눈에 일부러 역적처럼 보이게끔 재경에게 덫을 놓았던 것이다. 그의 계획대로 역모점을 발견한 단종은 수양을 경계하기 시작하고 마침내 그것을 명분삼아 수양은 반란에 성공한다. 인생은 바다 속에 던져진 작은 파도같은 것이이서 (시대라는) 바람을 타는 것뿐이라는 재경의 고백처럼 감히 역사를 바꾸려고 재경은 오히려 역사의 흐름에 풀무질을 셈이었다.

 

채널 A 화면 갈무리
채널 A 화면 갈무리

 

윤석열 예비후보의 손에 쓰여진 () 문신이 연일 화제다. 그가 이제까지 보여주었던 함량 미달의 발언과는 다른 차원이다. 권력욕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 사회에서 정권을 잡는 것이 왕이 되는 것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에 많은 시민들은 경악했다. 

그는 지지자가 그려 것을 미처 지우지 못했다고 변명했지만 날카로운 네티즌들은 다른 토론 방송에서도 그의 손에 그런 흔적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문신은 염료가 귀하던 시절 영구적으로 몸에 직접 그린 것이지만 현대에는 헤나(Henna)같은 단발성 문신도 있다.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TV토론회에서 손에 땀이 차는 법인데 번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윤석열 손의 문신이 단발성 문신이라도 상당히 좋은 염료를 것으로 보인다.

본래 고대사회에서 문신은 주술적 부적의 기능을 가진 것이었다. 그러다가 기독교 세계가 시작되면서 문신과 부적이 분리되고, 이런 주술적 문신 기능은 일탈과 탈선의 상징으로 취급되다가 현대에 와서 일종의 패션으로 자리잡았다. 문신을 새기는 사람들은 문양에 나름 의미를 담는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현대 사회 와서도 부적의 기능을 여전히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국에서는 문신이 의료의 영역으로 분류되어 직업 문신사(Tattooist) 들이 고유한 직업군으로 허락해 달라고 청원중이다.

 

윤석열의 전근대적 권력욕은 이런 문신형 부적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감히 문신의 힘을 빌어 역사를 바꾸어 보려고 했던 재경의 시도는 가족의 비극으로 종결되었다. 역사적 정당성을 떠나 어쨌든 수양이 왕이 것은 문신의 힘이 아니라 재경에게 덫을 놓은 그의 계락 덕분이었다. 어떤 정치적 비전이나 책략이 없는 윤석열로서는 다급한 나머지 부적을 새기고 나왔다. 다음 TV토론회에서는 홍준표같은 사람이지금 주머니나 속옷에 부적 지니고 계시죠?“라고 물어보는 장면도 기대해 볼만하다(이미 홍준표 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렇게 물었다).

영화 재경처럼 비극적 운명에서 벗어나려면 윤석열은 칠레 태생으로 멕시코에서 활동한 로베르토 볼라뇨 (Roberto Bolano) 소설부적(2010, 열린 책들)’ 읽어야 한다. 멕시코에 거주하던 우루과이 출신의 아욱실리오는 틀라텔롤코 대학살이 벌어진 1968 경찰기동대를 피해 멕시코 국립대학 여자 화장실에 13일간 숨어 있다가 살아 남았다.  멕시코에서 전설적인 실제 인물이면서 픽션을 가미한 소설은 아욱실리오의 독백 형식으로 전개 된다.
 

화장실에 숨어 지내면서 아욱실리오는 시인, 화가, 여러 거리의 사람들과 멕시코 시티에서 자유롭게 어울리던 장면을 회상하는데 회상에서 때로는 유령도 등장하고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넘나 든다. 멕시코 군대와 경찰의 폭압적인 진압 속에서 자유를 꿈꾼다는 대비인데 자유를 향한 소망은 마치 괴기 소설을 읽는 듯한 두려움도 감내해야 된다는 의미다. 국경과 거주 권리에 상관없이 어울리던 우루과이 이방인의 자유에 대한 열망는 누구도 침범할 없었다. 

아욱실리오가 멕시코 시티에 처음 도착한 연도를 확실히 기억못하는 장면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냄새도 살짝난다. 당연히부적 먼저 쓰여진 소설이다.

그러면 소설의 제목부적 의미는 무엇인가? 그들이 부르던 노래가 그들이 읊던 시가, 멕시코 민중의 삶이 부적이라는 것이다. 부적이란 미래에 대한 어떤 소망을 담고 있는 주술적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은 노래로, 시로, 지난한 삶으로 부적을 삼아 누구도 침범할 없는 자유 세상을 위해주술한다.

윤석열은 어떠한가? 그의 마음에는 독재 정권시절의 향수, 검찰이 막강한 권력을 누리던 시대, 가난한 자는 가난한 음식만 먹어야 하는 시대, 돈안되는 인문학은 쓸데없는 학문으로 취급받는 세상, 육체 노동은 아프리카 사람이나 하는 것같은 생각이 부적처럼 작동한다. 그런 인식의 부적으로는 성에 안차 손바닥에 부적을 담았다. 그가 정말 부적을 지니고 싶으면 갈수록 심해지는 양극화의 모순, 날로 심해지는 지구온난화의 문제, 삶의 터전인 토지가 투기가 되는 그런 문제의식을 부적으로 삼으라. 그런 부적이 기능을 발휘하는시대다.

관상에서 수양은 재경을 향해내가 왕이 상인가라고 묻는다. 영화 말미에 가서는 아들의 죽음을 자기 눈앞에서 지켜 재경에게어찌 관상쟁이가 자기의 운명도 모르는가라고 조롱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 보는 TV에서내가 왕이 손인가라고 묻는 듯하다. 시민들은 '그가 무당(無黨)'층 즉 중도세력을 공략하는 것이 아니라 '무당(巫堂)'층을 공략한다는 조롱으로 화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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