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파멸
신화와 파멸
  • 최태선 목사
  • 승인 2021.10.19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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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결론으로 시작해보자. 기후위기로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 한국은 부동산으로 멸망하게 될 것이다.

대장동 사건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권력을 가진 자들과 돈 가진 자들이 결탁하여 국토를 잠식하고 있다. 윤석렬 같은 분은 경자유전이라는 것도 잘못되거나 별 것 아니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다. 어리석은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이것을 시장의 자유로 인식한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시장의 자유를 자유 전체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량소비, 대량유통, 대량폐기는 지구를 질식 직전에 이르게 만들었다. 이것을 주도한 것이 무엇인가. 경제학이다. 경제학은 가치중립의 학문이 아니라 탐욕을 합리화하는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그것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돈이 주는 달콤한 맛과 쾌락을 억제할 수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이솝 우화의 꿀단지에 빠져죽은 파리와 같이 인간은 꿀맛에 매료되어 죽는 존재들이다. 어쩌면 그렇게 죽는 것을 가장 행복한 죽음으로 아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인간들은 자신의 생각에 절대성을 부여하는 존재들로서 저마다 신화창조의 주역들이 되었다. 하나님은 더 이상 이 시대의 유일신이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신화들을 승인하는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시장의 자유를 진리가 주는 자유와 동일시한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신화창조이다. 시장의 자유가 신화가 된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신앙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빙자해 자신의 욕망을 신화로 각색하는 사람들이 된 것이다.

나는 최근 한 목사가 담임목사가 되어 한 작은 교회를 목회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가 하는 일은 주님의 양들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교회를 신화화하는 일들을 목회로 착각하고 있었다. 자신의 교회를 위하는 일을 하나님을 위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교회라는 이름만 앞에 붙어 있을 뿐 그들이 하는 일은 자신들의 안위와 건강과 부귀영화를 구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이 교회를 다닌다는 사실 하나로 자신들의 구원을 확신한다. 결국 그들이 해낸 일이 무엇인가. 신화의 창조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화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하나님을 신앙하는 일로 착각한다. 김삼환과 오정현만이 아니다. 땅끝 섬 교회 목사까지 모두가 그렇게 되었다.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

이 말씀이 겁나지 않는가.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주님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단순히 교회에 나가는 정도로는 이런 인정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적어도 교회의 골수분자거나 목사 장로 정도는 되어야 이런 인정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이 다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골수분자 신자도 아니고 목사 장로도 아닌 그저 교회에 다니는 정도의 사람들이 다 구원을 받았다고 확신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이야말로 어리석은 만용이다.

목사라면 자신의 교회 교인들에게 그 사실을 일깨우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목회의 본질이 아닐까. 그러나 오늘날 목사는 자신의 교회 신자들이 원하는 것을 무조건 하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무당들이 되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무당들은 하나님의 일꾼인가. 무당들도 웃을 것이다.

오늘의 주제는 부동산이다. 대장동 사건을 바라보면서 우리 시대의 부동산이 시장과 더불어 신화의 또 다른 주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거기에 반기를 드는 인간은 그가 누구이건 시대의 배척을 받는다. 그래서 정부가 다주택자의 양도세를 유예하고 있는 것이다. 대장동 사건에서 불과 몇 백 혹은 몇 천만 원을 투자하고 수백억 혹은 수천억 원을 배당으로 받는 것을 보라. 이것이 시장의 자유인가. 아니다. 이것은 사기이며 도둑질이다.

성서에는 부동산에 대한 섬뜩한 경고가 담겨 있다.

악한 궁리나 하는 자들, 잠자리에 누워서도 음모를 꾸미는 자들은 망한다! 그들은 권력을 쥐었다고 해서, 날이 새자마자 음모대로 해치우고 마는 자들이다. 탐나는 밭을 빼앗고, 탐나는 집을 제 것으로 만든다. 집 임자를 속여서 집을 빼앗고, 주인에게 딸린 사람들과 유산으로 받은 밭을 제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나 주가 말한다.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계획하였으니, 이 재앙을 너희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너희가 거만하게 걸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처럼 견디기 어려운 재앙의 때가 될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사람들이 너희를 두고서 이러한 풍자시를 지어서 읊을 것이다. 슬픔에 사무친 애가를 지어서 부를 것이다. '우리는 알거지가 되었다. 주님께서 내 백성의 유산의 몫을 나누시고, 나에게서 빼앗은 땅을 반역자들의 몫으로 할당해 주셨다.' 그러므로 주님의 총회에서 줄을 띄워 땅을 나누고 제비 뽑아 분배할 때에 너희의 몫은 없을 것이다.

이 말씀을 음미해보라. 이것은 단순히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가 아니다. 새 이스라엘인 그리스도교는 더 이상 민족종교가 아니라 전 우주를 망라하는 확장된 진리의 종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스라엘에 적용되었던 이 예언은 그대로 적용된다. 부동산 투기가 아니더라도 부동산을 통해 돈을 벌려는 생각을 가진 자는 악한 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대로 밭을 가지고 집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의 종국이 바로 이 말씀에 예언되어 있다. 그들의 결국이 예언되어 있다. 경고의 의미로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라.

'우리는 알거지가 되었다. 주님께서 내 백성의 유산의 몫을 나누시고, 나에게서 빼앗은 땅을 반역자들의 몫으로 할당해 주셨다.'

그 다음 결론은 더 무시무시하지 않은가.

그러므로 주님의 총회에서 줄을 띄워 땅을 나누고 제비 뽑아 분배할 때에 너희의 몫은 없을 것이다.

맞다. 부동산 신화는 신화가 맞다. 대장동 사건 하나만으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이 드러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것으로 이재명을 얽어맬 생각을 하지 말라. 이재명의 경험이 부동산 망국을 바로 세우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어쩌면 이번이 대한민국을 바로 세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부동산 신화가 결국은 헛된 망상임과 동시에 욕망과 탐욕의 희생물이 되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부동산 투기를 통해 그것을 부인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라. 그런 사람들의 결국을 앞에 인용하지 않았는가. 간음과 마찬가지로 부동산에 대해 욕망을 가지는 순간 그가 누구이건 주님 앞에서는 불법을 행하는 자가 될 것이다.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팔아서, 그 판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고, 사도들은 각 사람에게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었다."

이것이 신약시대의 부동산 정책이다.

시장의 자유와 욕망의 학문인 경제학이 신화가 되어 초래한 지구멸망의 위기를 보라. 또 다른 신화인 부동산 신화가 가져올 한국의 미래를 상상해보라.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시대의 예언자들이 되어 파국을 선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단순히 예언만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부동산 정책을 따르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모두의 파멸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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