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결투는 아직 진행중
최후의 결투는 아직 진행중
  • 김기대
  • 승인 2021.10.29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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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The Last Duel 리뷰

 

영화 ‘라스트 듀얼(The Last Duel 최후의 결투, 감독 리들리 스콧, 2021년)’의 시놉시스(Synopsis) 보았을 영화는 라쇼몽(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1950년)의 아류라고 생각했다. 일본 건축물의 형태인 라쇼몽(羅生門)에서 폭우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남자가 며칠 있었던 사무라이의 죽음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데 그 진술이 각각 다르다. 죽음의 형태, 살해 현장의 등장인물도 다 달라서 결국은 무당을 동원해 귀신까지 소환해 내지만 귀신의 진술도 다르다는 라쇼몽은 일본의 패전 이후 전쟁의 원인과 결과를 놓고 다투는 일본내 여론의 난맥상을 보여주는 명화다. 장(멧 데이먼 분)과 자크(아담 드라이버 분), 그리고 마르그리트(조디 코머 분) 세 사람의 법정 진술은 목격자였던 라쇼몽의 등장인물과 달리 모두 당사자들이라는 점에서 아류는 아니었다.

'라쇼몽'이 패전 이후 철학의 흐름인 객관주의 즉 이성주의의 한계를 말하고 싶었다면 '최후의 결투'는 주관주의 즉 인식론으로 풀어가는 영화다. ‘최후의 결투’의 리뷰들은 하나같이 세 명의 진술 중 누구의 말이 진실인가를 묻는다. 리들리 스콧 감독에게 철저하게 희롱당한 리뷰다. 여기서 누구의 말도 진실이 아니다. 모두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은 말하지 않는다. 현대 법정에서도 피고에게 불리한 진술은 하지 않을 권리가 있는데 자신이 말했다고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를 묻는 것 자체가 영화를 오독한 결과다.  

영화는 장과 자크, 마르그리트 세 사람의 법정 증언을 3개의 챕터로 나누어 보여준다 사건을 설명하는 동일한 장면이 조금 지루할 정도로 반복된다. 카메라 앵글의 변동도 없이 같은 장면을 반복하는 데서, 그래서 러닝타임도 150분이나 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묘한 자신감이 읽힌다.

1386년 12월 29일, 파리의 시민들은 생마르탱 성당 앞에 설치된 결투장에 모여 장과 자크의 결투를 지켜본다. 그러면서 장과 자크의 우정이 어떻게 결투까지 오게되었는지 영화는 시간을 뒤로 가져간다.

장과 자크는 둘도 없는 친구다. 장은 몰락해 가는 가문을 지키기 위해 모든 전장에 참여해서 공을 세우려고 노력하지만 승리의 기억은 희미하다. 반면 자크는 전쟁에 참여하더라도 침착하게 전황을 파악하고 합리적으로 대처한다. 지역 유지 피에르가 무뚝뚝한 전쟁광 장 보다는 자크를 총애하는 것이 장의 마음에는 늘 걸린다.

돈이 필요한 장은 한 때 영국편에 붙었던 이른바 친영파 집안의 사위가 된다. 아내 마르그리트의 집안에서는 친영파의 불명예를 씻기 위해서라도 애국심 높은 장이 필요했다. 장은 이 결혼 전에 아내와 아들을 잃은 경험이 있다. 원작 소설인 에릭 제이거의 마지막 결투에는 이야기가 설명되고 있다는데 영화에서는 아들과 아내를 잃었다는 이야기, 자크가 장의 아들의 유아세례식 대부였다는 정도만 나온다.아마도 자신의 명예를 위한 전쟁을 치르느라 아내와 아들을 소흘히 했을 것이다.

 

<1 >장의 입장

 

장이 집을 비운 사이 자크가 쳐들어와 마르그리트를 겁탈한다. 아내의 이야기를 들은 장은 분노하고 결국 자크 편을 드는 피에르를 믿을 없어 왕에게 사건을 가져 간다. 앞에서 펼쳐진 진술은 각기 다르다.

장은 성폭행 당한 아내의 안위보다 그동안 피에르의 후광을 입은 자크에 대한 복수심으로 재판을 성사시켰다. 장이 아내로부터 받은 토지를 피에르가 뺏어서 자크에게 적도 있다. 친영파의 과오가 있는 장의 장인에게는 사위에게 준다는 약속보다 그의 생사가 중요했다. 이런 일들로 그동안 켜켜이 쌓였던 증오가 아내의 성폭행에 모두 투사된 채로 재판에 임한다.

그는 잠자리에서도 마초(Macho).여성의 감성은 고려하지 않은채 혼자만의 욕구를 해소한 다음에 마르그리트에게 좋았냐고 묻는다. 그의 캐릭터에 어울리지 않는 질문인데 이유는 영화 뒤에서 밝혀진다. 14세기 프랑스에서는 여성이 절정을 경험한 잠자리에서만 임신이 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잃은 아들 때문에 후손이 급한 장에게는 마르그리트가 절정을 느낀 것이 중요했다. 그에게 섹스는 오로지 배설과 임신을 위한 도구였을 뿐이니 그녀에게 시간이 즐거웠을 리가 없다.

남성다움 가문을 위한 책임의식이 남자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한 장의 모습에서 미션(감독 롤랑 조페, 1986)’ 노예상인 로드리고(로버트 드니로 ) 자신의 애인을 보잘 없고 나약해 보이는 동생에게 빼앗기는 장면이 오른다.

 

<2> 자크의 입장

 

부와 명예, 매너까지 가진 자크는 마르그리트에게 눈에 반한다. 전쟁과 그로 인한 재화의 축적만 강조하는 장에게는 아까운 여인이라고 생각한 자크는 장이 집을 비운 사이 집에 처들어가 그녀를 성폭행한다. 신부들이나 구사하던 라틴어를 구사하고 책이야기를 하던 고상한 남자 자크도 성폭행을 때는 오히려 장보다 더하면 더했지 나이스 가이 아니었다.

자크는 상호 합의된 관계였다고 주장하는데 여기는 마르그리트 친구의 증언도 몫한다. 그녀가 자크를 향해서 생겼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모든 여성들이 자크를 잘 생겼다고 말하는 자리에서 오히려 그녀는 잘생기긴 했지만 믿을 사람이 못된다 했었는데 친구의 증언에 뒤의 발언은 빠졌다.

게다가 성폭행 후에 자크는 자리를 뜨면서 장이 알면 당신을 죽일지도 모르니 함구하라고 이야기한다. 자크에게 마르그리드트 죽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안위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3> 마르그리트의 입장

 

마르그리트의 진술의 내용은 남자는 그래!’였다. 거친 남편과 합리적인 자크는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여성을 위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자신의 야망을 이루고 안위를 걱정하는 이중성은 장이나 자크나 다름 없었다. 마르그리트가 장에게 성폭행 사실을 알렸을 장의 진술에서는 아내를 포옹하면서 자신이 집을 비운 잘못이라고 자책하는 걸로 되어 있지만 아내의 진술에는 자신에게 처신을 잘하라며 목을 졸랐고 자크의 흔적이 아내에게 남아 있으면 안된다며 남편의 당당한성폭행을 했다.

결혼 이야기가 나올 때에도 아내보다는 장인으로부터 받을 유산에 골몰했던 , 당시 파리에서 유행하는 옷이라고 가슴파인 옷을 입고 남편을 맞았을 옷을 갈아 입으라는 장의 행위도 진술된다.

 

사람 말은 모두 진실이 아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만을 골라서 했을 뿐이다. 아내의 성폭행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도구화하는 장의 모습에서 여성 자신의 피해나 아픔 보다는 진영을 위해 도구화 하는 야만이 겹쳐진다. 자크의 모습에서 이른바 상호 합의 대한 남성들의 시각도 옅보인다. 마르그리트를 페미니즘 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장이 집을 비웠을 영지를 장보다 관리 하는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정도로 페미니즘을 이야기한다면 오히려 페미니즘에 대한 모독이 아닌가? 자신이 피해자라는 당당하게 알리는 용기는 높이 살만하지만 역시 남편의 야망에 의해 변질되었다. 

현재 상영중인 영화이므로 결말은 생략하고 결론을 말하면 이렇다.

진실은 가해, 피해, 남성, 여성,계급에 좌우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어느 분야에서든지 진실을 규명하는길은 멀고도 험하다. 진실은 주관적이냐 객관적이냐? 주관과 객관의 최후의 결투는 아직 진행 중이다.

 

<의문점 하나> 자크는 장의 집에 몸종도 없이 마르그리트 혼자만 있다는 어떻게 알았을까? 고부갈등이 있던 장의 어머니가 잠시 외출할 때 몸종들도 모두 데리고 나가는데 며느리에게 덫을 놓은 것은 아닐까? 하지만 누구의 진술에서도 음모는 언급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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