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태우 국가장 중 나온 ‘화해·용서’, 거센 후폭풍
고 노태우 국가장 중 나온 ‘화해·용서’, 거센 후폭풍
  • 지유석
  • 승인 2021.11.02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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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정 NCCK 총무 기도에 개신교계 반발, 사퇴 촉구 연서명 운동도
고 노태우 씨 국가장이 지난달 30일 논란 속에 끝났자만 NCCK 이홍정 총무(사진 맨 왼쪽)가 국가장 순서 중 기독교 장례 예전에서 한 기도가 거센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 SBS뉴스 화면 갈무리
고 노태우 씨 국가장이 지난달 30일 논란 속에 끝났자만 NCCK 이홍정 총무(사진 맨 왼쪽)가 국가장 순서 중 기독교 장례 예전에서 한 기도가 거센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 SBS뉴스 화면 갈무리

고 노태우 씨 국가장이 지난달 30일 논란 속에 끝났다. 하지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이홍정 총무가 국가장 순서 중 기독교 장례 예전에서 한 기도가 거센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 총무는 예전 중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규명하고 양심과 진리가 이끄는 역사의 부활을 꿈꾸며, 용서와 화해의 자리로 나가기 위한 선한 노력들이 거듭해서 좌절되고 있는 오늘, 사죄의 마음을 남긴 고인의 죽음을 계기로 전두환 씨를 비롯한 집단 살해의 주범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이 총무의 기도 내용이 알려지자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반발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NCCK 회원 교단에는 속한 A 목사는 “부끄러운 날이다. ‘우리 광주는 그럴 수 없다!’는 절규를 짓밟고 하나님, 용서와 화해 이런 말로 5.18영령들을 가스라이팅(상대방의 자주성을 교묘히 무너뜨리는 언행 - 글쓴이)할 셈인가?”라고 탄식했다. 

역시 NCCK 회원 교단에서 활동 중인 B 목사도 “NCCK 총무라는 이가 ‘개인 자격’으로 한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고 기도하는 것에 대해 토를 달 생각이 없다. 하지만 ‘NCCK 총무’라는 공식 직책을 걸고, 쿠데타의 수괴이자 5·18의 학살자를 떠나보내는 국가장에 참여해 기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층위의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 같은 분노는 급기야 공식 성명으로 이어졌다. 먼저 한국기독청년협의회는 10월 30일 입장문을 내고 이 총무를 규탄했다. 입장문 중 일부를 아래 인용한다. 

“NCCK 이홍정 총무는 노태우 국가장을 강행하는 정부에 대한 반대와 문제제기는 고사하고, 직접 참석하여 섣부른 화해와 평화를 이야기하며, 쿠데타의 주범을 애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중략)

(이 총무가) 대승적인 통합과 화해의 차원에서 참석하였다 할지라도, 그것은 학살 당사자의 철저한 사죄와 국민적 납득이 선행되었을 때 용인될 수 있다. 노태우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여전하며, 국가장에 대한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사죄의 진의를 국민들이 납득하지 못한 상황에서, 노태우 국가장에 참석한 이홍정 총무의 행보를 규탄한다”

이어 31일엔 ‘이홍정 총무의 노태우 영결식 추모기도를 규탄하는 에큐메니컬 2030 활동가 일동’이 이 총무의 사퇴를 촉구하는 온라인 연서명 운동을 시작했다. 

‘2030활동가 일동’은 “사죄하지 않은 노태우를 용서할 수 있는 대리인은 없다. 광주 영령 앞에 무릎 꿇지 않은 채 아흔 살 나이로 결국 세상을 떠난 이에 대한 공적 애도는 불가하다”며 이 총무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홍정 총무, 만류 뿌리치고 ‘화해·용서’ 기원했나?

고 노태우 씨 국가장이 지난달 30일 논란 속에 끝났자만 NCCK 이홍정 총무가 국가장 순서 중 기독교 장례 예전에서 한 기도가 거센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 SBS뉴스 화면 갈무리
고 노태우 씨 국가장이 지난달 30일 논란 속에 끝났자만 NCCK 이홍정 총무가 국가장 순서 중 기독교 장례 예전에서 한 기도가 거센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 SBS뉴스 화면 갈무리

급기야 NCCK 안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NCCK 여성위원회(위원장 최소영 목사)는 1일 규탄 성명을 냈다. 

NCCK 여성위는 해당 성명에서 “노태우는 5월 희생자와 유가족, 아직도 행방불명된 가족의 소재를 찾으며 애타게 기다리는 이들, 민주화를 위해 걸어온 분들, 국민에게 사죄한 적이 없다”며 “이 총무가 언급한 노태우의 사죄는 본인의 사죄가 아닌 가족의 사죄일 뿐이다. 사실이 아닌 것을 기정사실화하는 건 또 다른 가해”라고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이 총무에게 “5.18 희생자와 유가족, 그리고 기독인으로서 신앙을 가지고 민주화를 위해 헌신해 온 모든 이들에게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전국목정평)도 이날 낸 성명에서 “'사죄의 마음을 받은 5.18유가족의 마음'이라는 표현은 철저히 가해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말입니다. 유가족은 용서 한 적이 없는데 누가 누구를 용서했다는 것입니까. 이것은 유가족에게 가한 또 다른 가해”라며 “추후 (이 총무의) 명확한 입장을 예의주시하겠다”고 경고했다. 

NCCK는 진보성향의 개신교 교단 연합체로 알려져 있으며, 차별금지법·비정규직 철폐 등 첨예한 사회 현안에 개혁적 목소리를 내왔다. 

NCCK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은 지난해 5월 ‘5.18 진상 규명을 위한 고백과 증언 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고백과 증언 운동을 시작하면서 NCCK는 “역사바로세우기와 과거청산을 위한 몇 차례의 노력이 있었지만, 여전히 5·18민주화운동의 핵심쟁점들에 대한 진실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아직까지도 관련자 처벌이 미비하거나 명백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NCCK의 성격과 활동상, 그리고 5.18 관련 기존 입장을 감안해 볼 때 이 총무가 국가장에서 한 기도는 배치되는 지점이 없지 않다. 

무엇보다 고 노태우 씨가 사죄의 마음을 남겼다는 대목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NCCK 여성위, 전국목정평 등이 지적했듯 고 노태우 씨는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5.18에 대해 침묵했고, 오히려 회고록에선 5.18을 폄하하는 듯한 입장을 취했다. 

이 총무가 내부 반대에도 참석을 강행했다는 정황도 불거졌다. 복수의 NCCK 회원 교단 목회자들은 “내부 만류와 항의전화가 있었음에도 이 총무가 참석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 같은 비난 여론에 대해 이 총무는 1일 오전 기자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서 “나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만 전해왔다. 자신의 기도가 불러온 파장을 감수하겠다는 의미로 읽혀질만한 대목이다. 그러나 이 총무는 내부 만류에도 참석했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답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파문은 쉽사리 진정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2030활동가 일동’은 1일 자정까지 연서명을 받은 뒤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연지동 NCCK 사무실을 방문해 서명을 전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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