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행과 탈영토화의 분기점에서
퇴행과 탈영토화의 분기점에서
  • 김기대
  • 승인 2021.11.06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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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 파워의 퇴행을 걱정하며

 

 

윤석열 후보가 국민의 경선에서 차기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그의 지지층에게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이유라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윤석열이 쏟아내는 저주의 언어와 무속의 행태에는 복수심이 가득차 있다. 박근혜를 잡아 넣은 것은 윤석열이지만 그가 과거를 ‘회개’ 하고 칼을 휘둘러 것을 기대하는 박의 지지자들은 그를 칼잡이로 선택했다.

한때 윤을 정권의 차기로 밀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소문이 자자했었다. 그래서 윤의 주변 인물로 정부 탄생에 공이 주모 기자를 비롯해서 몇몇의 이름이 거론되었었다. 조국교수를 차기로 세우려는 친문세력의 시도를 좌절시키려는 비문세력들에게 윤의 칼은 필요했다. 소문은 소문일 어느 것도 밝혀진 것은 없지만 만의 하나라도 사실이라면 밀려난 윤에게도 복수심은 탑재되어 있다.

다시 한번 소문이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문제 삼을 점은 조국차출설이다.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차기로 거론된 인물들이 집권에 성공한 적이 없다. 박정희 시절에는 김종필 이후락 등이 밀려났고 전두환은 노신영 노재봉 같은 인물들에게 기대를 걸었지만 6.29 선언을 통해 노태우가 부상했다. 노태우는 박철언을 생각했지만 김영삼이 꿰찾고 김영삼은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음으로써 김대중에게 유리한 국면이 형성되었고 김대중이 측근들은 ‘후단협’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노무현을 흔들었지만 그가 대통령이 되었다

정동영은 득표 전략을 반노무현으로 삼는 실책을 범함으로써 역대 최대 패배라는 오명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명박 박근혜는 지금 감옥에 있다. 다시한번 가정해서 만약 조국 차출설이 사실이었다면 오늘의 사태가 것에 대해 문대통령의 측근들은 심각하게 반성해야 한다. 성공 전례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밀어 부쳤던 그들의 시도는 자력으로도 부상할 수 있는 한 뛰어난 인재를 멸문지화에 이르게 했기 때문이다.

복수의 대열에는 언론도 몫한다. 무너진 언론의 신뢰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제 최저점까지 내려 왔다. 대안 언론들의 취재력은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대단하다. 언론은 지형을 자리로 돌려 놓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윤석열의 당선 이후 쏟아내는 기사제목들은 거의 주문에 가깝다. ‘역대 최다 득표율’( 국민의 전신 정당들 안에서만 그렇다는 말이다) , ‘역대 최대 선거인단’(민주당 선거인단숫자에 턱없이 못미친다) 등으로 선동한다. 땅에 떨어진 검찰권력의 복수심도 크게 몫할 것이다.

민주사회에서 권력의 이동은 있을 있는 , 자신이 지지하는 진영이 집권에 실패했다고 해서 당장 나라가 망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는다. 보수 세력은 자칫하다 베네수엘라 꼴이 난다고 호들갑을 떨어 왔지만 대한민국이 베네수엘라가 되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다. 다만 브라질은 있을 것이다. 개혁의 상징인 룰라 대통령을 사법 검찰 권력이 ‘깐부’가 되어 잡아 넣은 일은 강건너 불구경보다는 가까이 있다.

보수 세력에 의한 개혁의 저지가 초래할 결과는 소프트 파워의 퇴행이다.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대한민국의 경제적 위상이 하루 아침에 땅에 떨어지는 일은 없겠지만 보수 극우 정권이 실행하는 여러 조처들은 시민의 창의적 요구들을 상당히 위축시킬 것이다. 21세기 메타버스와 AI, 수소차가 거론되는 시점에 복수가 의제가 되어버린 선거판을 어떻게 봐야할지 암담할 뿐이다.

또한 김대중 정부부터 시작된 개방적 문화 정책은 노무현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활짝 꽃을 피웠고 영화 ‘기생충; ‘오징어 게임’, BTS 세계적 선풍은 아티스트의 개별 능력만으로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개방과 자유가 소프트 파워를 키웠고 상호적으로 소프트 파워는 대한민국의 위상을 상당히 높여 놓았다.

들뢰즈는 이러한 변화를 탈영토화로 설명한다. 기존의 답보적인 형태의 영토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영토를 향해 날개 하는 것이다. 그러나 보수 기득권 세력들은 영토를 벗어난 시도들을 다시 그들이 통제 가능한 영토에 가두려고 한다. 이른바 재영토화다.

일본풍, 꽃이 핀 자두나무, 히로시게 목판화의 모작, 반 고흐
일본풍, 꽃이 핀 자두나무, 히로시게 목판화의 모작, 반 고흐

 

일본은 철저한 쇄국 정책을 쓰던 에도 막부시대에 조차 데지마(出島)에 네덜란드 무역부를 둠으로써 유럽과의 접촉 창구를 남겨 두었다. 고흐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일본 풍의 그림들도 때의 접촉 창구를 통해서이다. 그러다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문화는 명실상부한 아시아의 대표 문화가 되었다. 하지만 지난 십수년간 아베 정권의 퇴행적 정책은 일본을 뒷걸음치게 하고 있다.  한 때 세계적 수준이었던 일본의 영화와 애니매이션, 대중음악은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에서처럼 수백년의 전통도 십여년만에 무너지는 것이 소프트 파워의 흐름이다.

대한민국은 여러 면에서 일본의 턱밑까지 따라 왔다. 시간은 일본에 비한다면 초고속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것이 무너지는것도 초고속일 있다는 말이다.

국민의 경선결과를 보면서 문화적 퇴행을 걱정하는 것은 비단 나만의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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