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
축복
  • 최태선 목사
  • 승인 2021.11.12 0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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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가 되기 전 다니던 교회에서 나는 몇 년간 십일조를 가장 많이 드리던 교인이었다. 먼저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간단하다. 교회 입구에 십일조 봉투가 진열되어 있다. 그 달의 십일조를 드리면 액수가 기록되고 도장이 찍힌다. 사람들이 자기 봉투만 찾아가면 그만일 것 같지만 다른 교인들의 봉투도 확인하게 된다. 특히 십일조를 많이 내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십일조 액수에 관심이 많아진다. 주보에도 십일조를 비롯한 헌금을 낸 사람들의 이름이 실린다. 다는 아니지만 많은 교회들에서 헌금 액수의 순서대로 이름을 싣는다. 이런 일이 아니더라도 교회에서는 누가 십일조를 가장 많이 드리는 사람인가가 알려지게 되어있다. 

십일조를 가장 많이 드리는 나는 당연히 교회에서 인정을 받았다. 나는 더 겸손한 척만 하면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었다. 나는 당시 액셀이라는 소형차를 타고 다녔다. 나는 진짜 교인이라는 말을 들었다. 십일조를 오십만 원씩이나 드리면서 액셀을 타고 다니는 내가 진짜 집사라는 것이다. 그런 나를 청년들이 가장 부러워했다. 좋아하기도 했다. 청년들이 결혼을 할 때 축의금을 많이 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끝도 없이 많이 할 수 있다. 

교회에서 돈 많은 사람이 대우를 받는다. 실제로는 헌금을 그다지 많이 드리지 않는 경우에도 언젠간 많은 헌금을 드릴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만으로도 인정을 받았다. 오늘날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헌금 없는 교회를 추구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오늘날 교회는 모든 것이 돈에 의해 결정되고 판단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직접 경험한 일이고 오래도록 지적해왔던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제의 내 글 “가난한 목사”에 내가 알지 못하는 분의 댓글이 달렸다.

예수님도 가난한 사람보다 부자를 더 걱정하신 것으로 ...
목사님의 새해 인사가 새해에는 부자 되세요 라고 하면 그것은 "새해 에는 지옥 가세요"라는 말로 들릴수도...

나는 내 글에 댓글이 달리면 답글을 단다. 그런데 이 댓글에는 무슨 답글을 달지가 망설여졌다. 몇 번을 댓글을 달았다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아무 댓글도 달지 않았다.

그래도 이분은 훌륭한 분이시다. 나와 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완곡하게 표현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훌륭한 개신교 신자를 본 적이 거의 없다. 가난에 대한 내 글에 달린 댓글치고는 정말 따뜻한 댓글이라고 할 수 있다. 가난에 관한 내 글에는 댓글이 없거나 내 글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의 댓글은 그야말로 신랄했다. 빈정거림과 저주는 기본이었다. 그런데 이분은 마치 나를 설득하는 것처럼 댓글을 다셨다. 그래서 내가 오늘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분의 댓글은 오늘날 교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오늘날 교인들의 돈 이해를 잘 드러내고 있다는 의미이다. 먼저 “예수님도 가난한 사람보다 부자를 더 걱정하신 것으로 ...”를 읽으면서 내 머릿속을 지나간 생각은 “가난한 사람보다 부자를 더 걱정하시는 분은 예수님이 아니라 목사님이시다.”라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목사님들이 가난한 사람보다 부자를 더 걱정하신다는 이분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누구건 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 이것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가난을 모토로 삼고 살아가는 내 경우에도 돈은 언제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분의 댓글을 통해 우리 교회에서 부자들을 더 걱정하지 않았는가를 생각해보았다. 그랬다. 분명 부자들을 더 많이 걱정했다. 가난한 분들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무언가라도 해서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무의식적으로 나도 여유가 있는 분들을 더 많이 만나 그분들의 고충을 들었다. 그러니까 나도 부자들을 더 걱정했다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가난한 분들을 외면한 것은 아니었다.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을 돕기 위해 그 식당에 가서 서빙을 하기도 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음식배달을 하기도 했다. 명절이면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는 가난한 분들에게 수표 한 장이라도 드리면서 부모님을 찾아보라고 했다. 병원비가 많이 들어가는 경우는 병원비를 해결해주기도 했다. 

우리 교회의 예배를 멈춘 후 우리 교회를 다니던 집사님 한 분이 내 글에 댓글을 달았다. 여러 교회들을 찾아다녔다고 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 목사나 교회는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예수님 같다는 말을 했다.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이해심이 많다. 목사가 부자들 걱정을 좀 해도 그것을 이해해준다. 문제는 부자들 걱정만 해주고 가난한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다. 솔직하게 생각해보니 나도 부자들 걱정을 더 많이 했다. 그나마 가난한 분들을 걱정하고 작은 나눔이라도 할 수 있었던 것이 무척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님이 댓글을 다신 분을 통해 나를 돌아보라고 하신 것 같다. 고맙고 죄송하다. 주님의 손길이 되어주신 댓글을 다신 분에게도 감사를 드려야 할 것 같다. 돈은 난공불락이다. 내겐 돈을 이길 힘이 없다. 성서는 그 비결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내가 가난을 추구하고 가난에 관한 글을 쓰게 된 것은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이 내게 나의 하나님이 되실 때 우리는 비로소 가난해질 수 있고 가난해진 것을 감사할 수 있다. 비록 흔들릴 때도 있지만 나는 그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목사님의 새해 인사가 새해에는 부자 되세요 라고 하면 그것은 "새해에는 지옥 가세요"라는 말로 들릴수도...”

이 댓글을 읽으면서 나는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이분의 말씀이 예언자의 말씀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이분은 반대로 이 내용을 쓰셨지만 이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은 정말 재미있는 아이러니이다. 

“새해에는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말을 하는 목사님들이 계신 것 같다. 나는 이 덕담이 참람하다고 여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내게 그런 말을 하시는 분들도 없었다. 내가 가는 길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이 "새해에는 지옥 가세요"라는 의미라는 사실을 깨닫지는 못했었다. 그래서 이런 댓글을 달아주신 분이 또 고맙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가난해지게 결단하게 하실 수 있지만 아무에게나 그런 은총을 허락하는 것이 아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그 사람의 속마음을 아실 것이다. 하나님은 삭개오의 속마음을 보셨다. 비록 양심이 그를 찔렀지만 그는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양심을 보시고 하나님이 그의 양심대로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주셨다. 

삭개오 같은 사람의 귀에는 "새해에는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새해에는 지옥 가세요."라는 말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미 마음 밭이 경작되어 있는 사람에게만 그렇게 들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를 생각해보라. 그가 지은 죄가 무엇인가. 그는 율법에 따라 자기상에서 떨어지는 것을 나사로에게 주워 먹을 수 있도록 허락했다. 이것만으로도 그 부자는 대단한 신앙인이었다. 그러나 그가 음부에서 들은 말을 우리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되돌아보아라. 네가 살아 있을 동안에 너는 온갖 호사를 다 누렸지만, 나사로는 온갖 괴로움을 다 겪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는다.”

그의 죄는 살아 있을 동안에 누린 온갖 호사이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온갖 호사를 누릴 정도가 아닌 부자가 되라는 말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온갖 호사를 누릴 정도가 아니라면 부자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새해에는 부자 되세요.”라는 말은 정확하게 "새해에는 지옥 가세요."라는 말과 같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좇은 예수의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고자 할 때 가난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돈주머니와 자루와 신발이 없이 내보냈을 때에, 너희에게 부족한 것이 있더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없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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