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뒤끝] 한국 민주주의 미래는 브라질의 현재인가?
뉴스 뒤끝] 한국 민주주의 미래는 브라질의 현재인가?
  • 지유석
  • 승인 2021.11.17 0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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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개혁정부의 실패, 윤석열 약진, 그리고 위기의 민주주의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의 기세가 대단하다. 윤 후보는 후보 확정 뒤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오차범위 밖에서 앞서고 있다. Ⓒ 사진 출처 = 국민의힘 홈페이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의 기세가 대단하다. 윤 후보는 후보 확정 뒤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오차범위 밖에서 앞서고 있다. Ⓒ 사진 출처 = 국민의힘 홈페이지

20대 대통령 선거 여야 후보가 확정되면서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된 가운데 국민의힘 대선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기세가 대단하다. 

5일 윤 전 총장은 후보로 확정됐는데 바로 이날 실시된 23개 여론조사 모두 윤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 10%p 안팎의 우위를 보였다. 

열흘 뒤인 15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지난 12~13일 전국 성인 남녀 1009명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결과 윤 후보와 이 후보의 지지율은 각각 45.6%와 32.4%로 나타났다. 열흘 전 여론조사 보다 격차가 더 벌어진 것이다. 

이대로라면 윤 후보의 청와대 입성은 떼놓은 당상이다. 윤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건, 정권 교체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정권 교체는 보수-진보라는 한국 정치의 오랜 진영대결과는 살짝 결이 다른 정권교체다. 

윤 후보는 검찰총장 재임 시절부터 정치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윤 후보가 대통령직을 꿰차면 검찰이 정치를 장악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는 셈이다. 과연 이런 정치과정이 한국 민주주의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 지금으로선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윤 후보가 정치 전면에 나서면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위기의 민주주의>가 자주 소환된다. 페트라 코스타 감독이 연출한 이 다큐멘터리는 브라질 사법부와 거대 재벌, 언론이 지우마 호세프 현 대통령, 룰라 이나시오 다 시우바 전 대통령 등 개혁정부 수장을 차례로 전복시킨다게 뼈대다.

내용을 좀 더 살펴보자.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재임 시절 세르지우 모루 연방판사는 국영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를 상대로 대대적인 수사를 벌인다. 이 수사를 통해 페트로브라스의 자금이 정치권으로 흘러간 정황이 드러난다. 브라질 정치인 다수가 여기에 연루돼 있었다. 

'세차작전’이란 별명이 붙은 모루 판사의 수사는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흐른다. 의회가 ‘세차작전’ 수사망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 지우마 호세프를 희생양 삼기 위해 탄핵을 의결한 것이다. 

지우마 호세프는 "정부 수반이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갈아치우겠다고 저를 고발한 분들의 바람처럼 적법한 일은 아니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국민"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항변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호세프가 낙마하자 전임 룰라가 전면에 나선다. 이러자 모루 판사는 페트로브라스로부터 솔라리스 콘도미니엄을 받았다는 혐의로 룰라를 기소한다. 법원은 유죄를 인정해 2018년 4월 룰라를 투옥한다. 언론은 이 같은 사실을 대서특필하고 대중은 열광한다. 

그 사이 브라질의 위상은 급전직하했다. 이 와중에 코로나19가 엄습한다. 하지만 자이루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사실상 펜데믹 대응에 손을 놓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 스스로 코로나19에 확진돼 격리되는 일까지 벌이진다. 

관행에 올라탄 개혁정권, 스스로 무덤 팠다 

사법부가 기득권 세력의 보루 노릇을 하고 언론이 여론몰이를 하는 모습은 지금 한국 상황과 여러모로 닮은꼴이다. 

페트라 코스타 감독이 연출한 ‘위기의 민주주의’는 브라질 개혁정권의 실패를 지적하고 나선다. Ⓒ 넷플릭스
페트라 코스타 감독이 연출한 ‘위기의 민주주의’는 브라질 개혁정권의 실패를 지적하고 나선다. Ⓒ 넷플릭스

그런데 놓쳐선 안 될 중요한 지점이 있다. 바로 개혁정권이 정치개혁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개혁정권은 브라질 정계에 만연한 정경유착 관행을 타파하기보다 편승했다. 기득권 세력은 바로 이 점을 파고들어 정치 혐오를 부추겼고, 대중은 법을 무기로 개혁정권을 전복한 사법부에 열광한다. 

지우베르투 카르발류 전 대통령 실장은 “선거자금 융통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정치개혁을 이루지 못했다. 기업에서 선거자금 받는 일을 그만뒀어야 했는데 말이다”고 탄식했다. 이 지점에서 감독 페트라 코스타는 뼈아픈 지적을 남긴다. 

"사회 시스템을 개혁하겠다는 약속을 믿고 표를 준 정당이 변화가 거의 불가능하게 설계된 선거운동 자금 구조 안에 더욱더 고착되는 것을 보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우리나라라고 다를까? 앞서 적었듯 집권 여당 후보가 보수 야당 후보와 겨룬 스무 번 넘은 여론조사에서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게다가 최근 여론조사는 오히려 윤석열 후보가 상승세를 탔고, 지지율 격차는 더 벌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답은 현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국민적 여망을 등에 업고 집권했음에도 개혁성과는 피부로 와 닿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단적인 사례로 각종 개혁입법은 지지부진해 보인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노동계로부터 본래 취지가 퇴색했다는 비판을 받는 중이고 차별금지법은 10만 국민청원·삼보일배·도보행진 등 시민들의 간절한 바람과 행동에도 국회 문턱을 넘기엔 요원해 보인다. 

여기에 성폭력·부동산 등 비위에 여당 정치인의 이름이 자주 오르내렸다. 이런 상황이니 민주당을 향한 냉소가 팽배하고, 정권 교체 여론이 들끓는 건 당연한 귀결이겠다. 브라질 대중이 정치개혁에 실패한 개혁정권에 등을 돌렸듯이. 

하지만 내년 3월까지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현 집권세력이 한국 정치 특유의 역동성에 실낱 같은 기대를 걸어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정부여당이 정치 개혁에 실패한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저쪽에 비해 비리 수위(?)가 덜하다고 스스로를 기만하지 말자. 이런 자기 최면 때문에 권력을 넘겨줄 상황이 벌어졌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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