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원주민으로 살고, 원주민으로 죽은 그의 노래
미국에서 원주민으로 살고, 원주민으로 죽은 그의 노래
  • 김세진
  • 승인 2021.11.19 0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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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Z의 'Somewhere over the rainbow'

너무 익숙해서 언제 처음 들었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다는 게 이 곡을 다시 들을 때의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즈의 마법사>를 비롯해, <조 블랙의 사랑>, <첫 키스만 50번째> 등 유명한 영화와 광고에 나왔고,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도 자주 들렸으니, 나도 모르게 이 노래가 내 몸 어딘가에 흡수되었나 보다.

내 어딘가에 숨어 있다고 해도, 기분이 상하지 않는 건, 이 노래 ‘Somewhere over the Rainbow’가 따스하고 맑고 부드러워서다. 내 안에 있다가 불쑥 튀어나와도 이것만은 감출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공기 반’인 목소리는 어디선가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처럼, 매섭고 도드라지는 부분 하나 없는 동그랗고 몽글몽글한 공기로 어깨를 감싸고, 알아차릴 틈 없이 살며시 나를 어딘가로 이끈다. 몸이 한껏 가벼워져서 구름 위에 앉아 편안하게 발을 구르며 밑을 보고 있는 것만 같다. 혹은 무지개 미끄럼틀을 타며 하늘을 나는 파랑새들("Somewhere over the rainbow, blue birds fly", 가사 중에서)을 보고 있는 건지도.

 

“Where troubles melt like lemon drops”라고 노래하는 부분에서는 몸이 늘어지게 쉬고 싶다. “걱정, 근심이 레몬 사탕처럼 녹아내리는 곳”이라니. 그곳에서 단 십분 만이라도 낮잠을 잘 수 있다면…. 그러고 나면 적어도 일주일은 버텨 낼 수 있을 것이다.

 

무심코 흥얼거리면서 흘려 들었던 이 노래에 관해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서는 조금 더 귀 기울여 들어 봤다. 그리고는 곧 두 가지 때문에 놀랐다. 하나는, 이 노래가 목소리와 우쿨렐레로만 이루어졌는데, 그것을 여태껏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 때문이다. 악기가 단지 하나뿐인데, 그것도 상당히 ‘어쿠스틱’한 자그마한 우쿨렐레뿐인데, 곡의 어느 부분이 비어 보이거나 부족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심지어 악기 구성을 들어보려고 마음먹기 전에 미처 몰랐을 정도다.(물론 ‘똥 귀’인 나만 그랬을 수도 있지만) 이 노래는 흐르듯 자연스러워서 ‘억지'를 부린 부분이 없는 게 분명하다.

 

다른 하나는, 가수 이스라엘 카마카비보올레(Israel Kamakawiwo’ole)의 모습이 목소리만으로 상상했던 모습과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IZ”라고 부르는 ‘이스라엘 카마카 비보 올레’는 이 곡 ‘Somewhere over the Rainbow’ 녹음을 단번에(원테이크로) 끝내 버렸다는데, 호놀룰루 레코딩 스튜디오에 녹음하러 들어온 그를 처음 본 엔지니어 밀란 베르토사(Milan Bertosa)는 자기가 본 사람 중에 가장 몸집이 비대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IZ가 앉아도 부서지지 않을 무언가를 찾는 것이었고, 건물 경비원이 튼튼한 철제 의자를 건네주어 그제야 앉을 수 있었다고.

거동하기 힘들 만큼 아플 때도, 그는 우쿨렐레만은 연주할 수 있었다.  늘 그의 곁에 있던 빈티지 마틴 우쿨렐레는 그가 죽는 순간에도 그와 함께 화장되었다.
거동하기 힘들 만큼 아플 때도, 그는 우쿨렐레만은 연주할 수 있었다. 늘 그의 곁에 있던 빈티지 마틴 우쿨렐레는 그가 죽는 순간에도 그와 함께 화장되었다.

 

엔지니어 밀란 베르토사는 새벽 세 시, 막 지옥 같은 작업을 끝내고 이제 집에 가고만 싶은 고단한 상태로 IZ를 만나 작업을 시작했지만, 그의 노래를 듣고 “이것이 내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아마 그도 343kg에 190cm가량인 풍채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이리 부드럽고 위로가 될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IZ의 눈과 미소를 보면 금세 이해가 된다. 눈과 미소에서 사람의 내면이 드러난다면, 그는 순수한 사람인 게 분명하다. 목소리가 공기를 울리며 공간의 색채를 만든다면, 그의 소리는 그곳이 어디든 안전하게 느끼게 한다. 그 거구가 자그마한 우쿨렐레를 들고 있는 모습은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우쿨렐레는 흔히 하와이의 전통악기라고 알고 있지만, 실은 포르투갈 이민자들이 ‘브라기냐’라는 민속악기를 하와이 목재 ‘코아’로 만든 게 시초다. IZ는 1959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도, 조부모도 하와이안이고, 그들이 태어난 곳이며, 이후에 이주한 후에도 IZ가 방학을 보냈던 니하우(Ni'ihau) 섬은 하와이 유산이 뿌리 깊게 내린 곳으로, 하와이군도 중에서 지금까지 유일하게 100% 하와이 원주민이 사는 섬이다. 하와이의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그곳은, 거주자의 초대 없이는 그 누구도 방문할 수 없는 곳이라는데, 긴 인생에 니하우섬 거주자 한 명쯤은 알게 될 행운이 내게 오기를 바랄 뿐.

 

IZ는 6살에 우쿨렐레를 처음 연주하고, 11살에 형 스키피, 사촌 앨런 손턴과 함께 공연을 시작했다. 때로 관광객들을 위해 요트에서 공연하기도 했고, 부모가 ‘스팀보트 라운지’라는 공연장에서 일하면서 하와이 최고 음악가들과 만났다고 한다. 잊힌 하와이 전통 음악(멜레)을 계승하며 민속 음악 르네상스를 주도했던 이 음악가들은 갑판에서 우쿨렐레를 가지고 놀고 있는 이 형제들을 종종 무대 위에 세웠고, 공연 후에 돈을 주었다고 한다.

 

14살 되던 해에, 가족이 마카하(Mākaha)로 이사하면서. IZ는 여기서 만난 세 명의 친구들과 형과 함께 ‘Mākaha Sons of Ni'ihau’(니하우의 마카하 아들들)이라는 그룹을 만들었다. 그들은 하와이 전통 음악을 추구하며 자와이안(Jawaiian, 레게에 영향을 받은 하와이 음악) 등과 결합하며 다양하게 발전시켰다, 이후 발매한 앨범이 인기를 끌어 하와이뿐 아니라 미국 곳곳을 다니며 공연했다. 이들은 또한 하와이 주권을 옹호하는 목소리를 내었다.

 

그를 이해하기 위해 우선 하와이 역사를 아주 간략히 살펴보자면, 1788년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영국 제임스 쿡 선장은 폴라네시아인들이 살고 있던 하와이를 발견해 외부에 알렸고, 이후 온갖 나라 함선들이 들락날락하며 이곳에 전염병을 옮겼다. 거기에 내전까지 겹쳐 하와이 인구가 1/3으로 줄어들었고, 어쩔 수 없이 하와이는 점차 이민자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들이 가져온 종교와 플랜테이션 농업으로 결국 식민지화되었고 원주민 사회가 무너졌다. 하와이어는 금지당했고, 민속 종교는 기독교로 대체되었다. 토지는 백인 자본가들에게 넘어갔다. 경제, 정치, 문화, 인구수 등 모든 면에서 하와이안들의 입지가 좁아졌다. 급격하고 무리한 근대화로 인해 경제가 흔들린 하와이 왕국은 미국의 세력에 의해 공화국이 되었다가, 결국 미국의 50번째 주가 되었다.

 

하와이안인 IZ는 그저 ‘천혜의 낙원’으로만 하와이를 그리는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차원으로 하와이를 사랑했다. 하와이안들이 자기 땅에서 2등 시민으로 살아가며, 하와이 전통 문화가 단지 관광 산업의 도구가 된 것에 가슴 아파했다. 하와이 주권 회복을 바라는 열망과 환경 문제에 대한 시각은 노래 가사에 담겨 있다. 솔로 앨범을 통해서도 그런 작업을 했지만, 밴드와 함께 가장 먼저 세상에 내보낸 앨범의 제일 첫 곡을 보라. ‘Hawai'i '78’은 미키 이오완이 작곡한 곡으로 ‘카메카메하 대왕(하와이의 역사적 왕)이 지금 살아 돌아오면, 그들이 낚시를 즐기던 성스러운 바다 앞에 세워진 콘도들을 보고 어떻게 느낄까? 고속도로 내느라 산이 파헤쳐지는 걸 보며 뭐라고 할까?’를 생각하며 쓴 곡이다.

 

Cry for the gods, cry for the people

신들을 위해 울어, 사람들을 위해 울어

 

Cry for the land that was taken away

빼앗긴 땅을 위해 외쳐

 

And then yet you'll find, Hawai'i

결국 하와이를 찾을 거야

 'Hawai'i '78' 중에서

 

“좀 이상하게 들릴 것 같은데,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아. 왜냐면 여기 모든 장소가 일시적이라고 믿기 때문이야. 하와이안들은 두 세계에 살고 있어. 나를 위해 울지 마”라고 말하던 IZ는 38세이던 1997년 여름, 비만 합병증으로 인한 호흡 부전으로 죽었다.

 

<네이처 제네틱스>는 폴리네시아인 25%가 비만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며, 비만이 될 확률이 30~40% 더 높다고 발표했다. 더 많은 지방을 축적하고 에너지를 덜 쓰게 만드는 이 비만 유전자 덕분에, 이들은 과거에 폴리네시아 군도 내 24개 섬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살아남아 결국 태평양을 재패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와이를 노래한 이의 죽음을 하와이 전체가 애도했다. 운전하던 사람들은 해안선 도로에서 경적을 울렸고, 의사당에는 반기가 걸렸다. 그를 화장한 재를 카누에 실어 바다에 뿌렸는데, 그 순간을 함께하려고 만여 명이 마쿠아 해변(Mākua Beach)에 모였다. 다음 세상으로 가는 그를 축하하는 함성과 사람들의 눈물이 어우러져, 축제처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무지개 너머 어딘가'로 그를 보내던 그날의 기록, 그 해변의 햇살은 ‘Somewhere over the Rainbow’ 공식 뮤직비디오 2:41에서 볼 수 있다. 그 아름다운 장면을 놓치지 마시길.

 

이 글은 독립 음악잡지 <gem magazine>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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