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의 혐의
이단의 혐의
  • 최태선 목사
  • 승인 2021.11.30 0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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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건물 없는 교회로 시작했다. 이재철 목사님의 주님의교회의 영향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분당 지역의 YWCA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없었다. 그래서 다른 곳을 수소문했다. 마침 한 투자은행의 지하를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 건물주가 성공회 신자였고, 그곳에서 성공회 집회가 가끔씩 열린다. 그런 모임이 열리는 경우 언제든 양보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지만 빌릴 수가 없었다.

결국 우리 교회는 아파트형 공장에서 시작되었다. 여러 모로 제약이 많았지만 교회가 건물이 아니라는 사실이 우리에겐 더 중요했다. 하지만 기존의 교회의 관습에 익숙한 한국교인들에게 건물이 없는 교회란 당시로선 생소할 뿐만 아니라 정식으로 교단에 등록할 수 없는 교회가 되어 항상 이단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의식해야 했다.

그러다 예배를 드리던 장소의 회사가 망했고 우리 교회는 방랑의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음식점, 보습학원, 사무실 등등을 전전하다 한두 사람씩 지방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교인이 줄었고 마침내 우리 교회는 우리 집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가끔식 가정교회가 화두에 오르기도 했지만 여전히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는 곳은 무언가 수상한 구석이 있는 교회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속한 교단의 예배 모범을 철저히 준수했다. 그래도 우리 교회에 와서 처음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예배 분위기에 녹아들지 못했다. 조금만 이상해도 이단이 아니냐는 의심을 하였다.

그렇다. 우리 교회는 늘 이단의 혐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받던 이단의 혐의는 기꺼이 받아야 하는 것이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그때는 교회가 커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교회가 커지는 것이 가장 주의해야 하는 것이며 규모가 교회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그걸 몰랐던 것이다. 크고자 하는 욕망이 분명 우리 교회에 있었다. 멋지게 교회를 성장시켜 본이 되고자 하는 잘못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는 지식이 거기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우리 교회보다 더 급진적인 교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아나뱁티스트 교회들이 진정한 교회가 무엇인가를 내게 가르쳐주었다. 진정한 교회에 대해 눈이 뜨이자 그리스도교 역사 속에 면면히 이어져 온 진정한 교회들(아나뱁티스트 이외에도)이 보이기 시작했다. 공통된 특징은 그런 교회들이 프란치스코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정통인 교회들에 의해 이단이라는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아나뱁티스트들은 가톨릭과 개신교 모두에게서 이단 판정을 받아 잡히면 화형을 당해야 했다. 그들은 오래도록 숨어서 예배를 드리다 미국 펜실베니아로 가서 공동체를 이루어 자신들의 신앙의 터전을 마련했다. 미국에 가서도 그들의 신앙은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화형을 당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무려 사백오십 년 이상을 고립된 공동체로 자신들의 신앙을 지켰다.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자동차를 타지 않는 둥 문명의 이기들을 거부하며 수공업 시대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광신적이거나 우스꽝스러운 사람들로 비쳤다. 영화 제목이 생각나지 않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아나뱁트스트의 한 갈레인 아미시 공동체는 조롱의 대상으로 그려졌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자신들이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사용했던 독일어다. 그들은 지금도 독일어가 일상의 언어이고 영어는 외국어이다. 그러나 그들이 사용하는 독일어는 오늘날 독일어와 다르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독일어의 고어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의 신앙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03년 아켈마인 총기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아미시의 우유를 수거해가던 잉글리시(아미시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잉글리시로 불렀다.) 한 사람이 아미시 학교 학생들 열 명을 인질로 잡아 교실 안에 억류했다. 그 사건이 알려져 헬기가 뜨고 미국 전역에 생방송되었다. 인질범은 아이들에게 총을 난사하고 자신에게도 총을 쏴 죽었다. 그런데 아미시 사람들은 자신들의 아이들에게 총을 쏴 죽인 범인의 가족을 찾아 그들을 위로했고 전국에서 답지한 성금도 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범인의 장례식에도 참여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실천한 것이었다. 그들의 아비투스였다.(그것은 그들의 삶의 방식이었고 그들의 반사행동이었다.) 그들의 아비투스를 눈으로 확인한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신앙과 신학에 의문을 제기했고 아미시들을 포함한 아나뱁티스트들은 살아있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아이콘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내가 아나뱁티스트를 알게 된지 십여 년 정도 이후의 사건이다. 아켈마인의 총기사건은 9·11테러를 다시 복기하게 만들었고 그때 미국이 아미시처럼 아프간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범인들의 가족들을 위로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설왕설래 수많은 칼럼들이 쓰였고 그런 과정을 통해 아미시를 비롯한 아나뱁티스들의 신앙이 참 신앙임을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무려 오백 여년에 걸친 긴 기간 동안 아미시를 비롯한 아나뱁티스트들을 이단의 혐의를 받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신앙이 참임을 인정받았다.

이런 경험과 배움이 있었다면 우리는 기꺼이 이단의 혐의를 짊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그것을 몰랐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이단의 혐의를 짊어질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아미시와 같은 아비투스가 없었다. 우리의 삶의 방식과 우리의 신앙적인 반사행동은 그들과 다르다. 그러므로 아무리 우리가 아미시의 신앙이 참임을 알았다고 해도 아미시처럼 행동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우리 교회는 결과적으로 문을 닫아야(나는 휴면 중이라고 생각한다) 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이단의 혐의를 받지 않으려 했다는 것은 우리가 정통의 범주에 머무르려 했다는 것이고 정통이 인정하는 신앙에는 산상수훈이 존재하지 않는다.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신화일 뿐이다. 그러나 아미시에게서 보듯이 그것은 신화가 아니라 아비투스(삶의 방식과 반사행동)가 되어야 한다.

내가 오늘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천안의 한 교회 기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곳 교인들의 집단 코로나 감염을 계기로 그들이 이단이라는 기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기도원에서 시작한 그 교회는 눈을 찌르는 안수기도로 이단의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런 것으로 이단의 혐의를 받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공동체가 공동체이어야 할 교회의 정체성을 또 다시 잠식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내게 다시 교회를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지는 알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은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다. 나는 하나님 나라(성령)공동체인 교회에 대한 나의 꿈을 버릴 수가 없다.

만일 그런 교회가 허락된다면 두 가지 면에서 기존의 공동체와 구분될 것이다. 하나는 산상수훈이 그 중심에 있다는 사실과 힘 혹은 카리스마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자발적인 동의에 의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곳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건물에서 벗어났다고 참된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다. 참된 교회는 말씀의 육화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공동체가 되는 것은 물론 지체들의 삶의 방식과 반사행동으로 말씀을 보여주는 곳이 되어야 한다. 그런 곳에 하나님 나라가 열리고 임한다. 개개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드러날 것이다. 결국 참된 교회는 하나님을 보여주는 곳,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곳이다.

이런 교회는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당신의 몸인 교회를 세우실 수 있다. 주님이 부족한 나를 그런 교회의 반석으로 삼아주실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만일 그런 교회가 정말 세워진다면 그 교회에서는 모두가 기꺼이 이단의 혐의를 받아드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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