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크론 변이가 와도 우리는 음악을 듣지
오미크론 변이가 와도 우리는 음악을 듣지
  • 김세진
  • 승인 2021.12.06 0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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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을 버텨 내는 음악의 자세

                             

 “어느 날 세상이 멈췄어, 아무런 예고도 하나 없이.”

Life goes on’은 지금, 우리의 이야기다. 뮤직비디오는 마스크를 벗으며 시작한다.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다, 자전거에 뽀얗게 앉은 먼지를 손가락으로 훔쳐 공중에 훅 불어버리는데, 2020년과 2021년을 살아 본 자라면 누구나 이 답답함을 알 것이다. ‘셧다운된 도시에서 타의 반, 자의 반으로 자가 격리하며 두문불출하던 때 우리는 바깥공기를 그리워하며, 뉴스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는 바깥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또 어떤 도시는 사재기로 인해 마트에 먹을거리와 휴지가 동났다고 했다. 만약 지금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들어본다면 그는 무인도 모래 위에 SOS를 그려대는 김 씨거나, 저 멀리 어느 오지의 부족민일 것이다.

2021년 겨울 현재, 뉴욕의 지하철은 한 칸의 광고판이 모두 마스크 착용 픽토그램으로 채워져 있다. (오른, 왼쪽 위) 마스크를 쓴 어르신이 그 위에 얼굴 보호구까지 착용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돕는 모습.(아래)
2021년 겨울 현재, 뉴욕의 지하철은 한 칸의 광고판이 모두 마스크 착용 픽토그램으로 채워져 있다.(오른, 왼쪽 위) 마스크를 쓴 어르신이 그 위에 얼굴 보호구까지 착용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동승자가 돕고 있다.(아래)

세계사를 전쟁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듯이, 지금의 우리 역사는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구분될 것이다. 전염병 앞에 경제도, 선진국도, 어떤 의료체계도 속수무책이었다. 죽은 이들이 검은 봉투에 싸여 무더기로 줄줄이 뉘어 있던 곳은 다름 아닌 전 세계 경제를 주름잡는 월가가 있는 미국 뉴욕의 병원 뒷마당이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기온이 오르면 바이러스의 활동이 주춤해질 거라며 여름 이후에 희망이 있다더니, 그 희망을 조용히 취소했다. 그 기간이 길어지며 곧 끝날 거라는 생각이 언젠가 끝났으면 하는 소망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러던 그 와중에도 백신이 개발되어 실낱같은 희망이 생겼다.

 

백신의 부작용으로 몇 사람이 죽어 나갔지만, 그 희생을 딛고서도 다시 희망이 생기는 듯했다. 그러나 바이러스도 그게 무슨 소용이냐는 듯이 변이를 만드는 속도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 변이들은 발생 순서에 따라 라틴어 알파벳의 이름을 얻었는데, 2021년 말 15번째인 오미크론이라는 이름까지 얻었다(사실상 오미크론이 14번째라는 맥락에 대한 설명은 여기서 생략하겠다).

 

전 세계를 팬데믹에 빠뜨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발했을 때가 201912월이니 이제 꼬박 2년이 지났다. 그간 단 한 번의 셧다운도 없었던 한국에서 나는 살고 있었지만, 역시 이곳에서도 많은 이들의 삶이 단번에 모조리 바뀌었다. 많은 이가 재택근무에 익숙해졌고 온라인 수업에 선생도, 학생도 적응해갔다. 아이들은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가끔 바깥에서 친구와 놀 때도 마스크를 쓰고 뛰노는 것에 익숙해졌다. 만약 폐활량 검사를 한다면 지금 이 시기에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은 지금의 어른 세대보다 폐활량이 뛰어나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얼핏 좋은 재산이 생겼다 싶겠지만 그들에게는 온라인 바깥에서 친구들과 쌓은 추억이 별로 없을 것이다.

 

손님이 없으니 가게들은 할 수 없이 휴업을 거쳐 폐업을 했고, 더러 직장을 잃고, 목숨을 잃었다. 프리랜서 에디터인 나에겐 별다른 변화가 없는 듯했다. 어차피 출근은 안 했던 거였고, 출판사들에선 책 판매량이 줄었다고는 했지만, 그것이 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치진 않는 것 같았다.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너도나도 재택근무를 하니, 개인적으로는 프리랜서로의 장점이 없어졌지만, 사회적으로는 워라밸’(일과 여가의 균형)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겠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별수 없이 집에 콕 박혔다. 자주 가던 카페나 도서관에도 갈 수 없게 되었으니 종일 집에서 일이며, 잠이며, 밥이며, 뒹굴뒹굴하기 따위를 해결해야 했는데, 그때 하필 당분간 중단되었던 집 앞 아파트 공사가 재개되었다. 꼼짝없이 집에서 종일 그 잔인한 소음과 먼지를 고스란히 겪으며 잠을 설치고 예민해지기를 매일 반복하다가 결국 병을 얻었다. 그 덕에 체중은 불었고, 얼마간 있던 미모(?)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으며 그로 인해 한시적으로(라고 말하고 싶다) 자신감을 상실하고 무기력과 우울감이 찾아왔다. 소음 때문에 집중하기 어려워 일도 늦어졌고 병원비도 들었다. 드디어 나란 사람도 유행과 흐름에 뒤떨어지지 않으며 대세에 속하게 된 것이다. 팬데믹으로 인한 무력감과 불안감이라는 주류의 흐름에.

 

‘Life goes on’ 뮤직비디오에서 BTS 멤버들은 공연도 열지 못하고 나가지도 못한 채 집안에서 비디오 게임을 하며 피자를 시켜 먹으며(가사 중 “on the tabla”) 각자 널브러져 쉬기도(“on the pollow”) 한다. 화면이 바뀌고, 운전해서 터널로 접어든 멤버 뷔가 마침내 거기서 빠져나오지만, 그때 끝이 보이지 않아. 출구가 있긴 할까?”라는 노랫말이 흘러나온다. “언제 끝날까?”는 너무도 많이 던진 질문이다. “바이러스가 열에 약하다고 하니 여름에는 괜찮아질 거래.”, “가을에는 만날 수 있겠지”, “설마 겨울까지는 안 가지 않겠어?” 그날을 가까이에서 먼 때로 연기하면서, 점차 희망이 없어지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또 한 번 꽃이 피고 지고 비가 내리고 가물고 바람이 불고 멈추고 눈이 쌓이고 녹았다. 대체 끝나기는 할까. 한숨을 쉬며 이 말을 수없이 되뇌었기에, 코끝이 시큰해졌다.

 

하지만 결국 터널을 빠져나오지 않았던가. 그처럼 이 상황도 끝이 있을 거고 아무 일도 없단(다는) 듯이” “하루가 돌아올 거라고 BTS는 말하는 듯하다. 사는 곳은 다르지만 각기 저마다 고군분투하고 있는 다른 나라 사람들은 적잖은 위로를 받았는지, 이 노래는 한국어 가사인 노래인 데도 지난해 1130, ‘Billboard HOT 100’에서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올해, 마침내 터널을 빠져나올 때라고 생각했는지, BTS는 지난 11월 말과 12월 초에 로스앤젤레스에서 네 번의 콘서트를 열었다. 티켓 예매 때만 해도 델타 변이가 잠잠해지고 있었는데, 막상 콘서트 날짜 앞뒤로 오미크론 변이가 기승을 부렸다. 그렇지만 예정대로 콘서트가 진행되었다. 코로나와 함께 살기(‘With 코로나’)를 배워야 할 때일까.

 

“Life goes on”(삶은 계속되고) “I remember”(그걸 기억하겠다)는 그들의 메시지는 이적의 그것과도 다르지 않다. ‘당연한 것들에서 이적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바라는 것은 마주 보며 같이 노래를 하너무도 당연한 일상, 평범한 나날들일 것이다. 정말 우리가 살아왔던 평범한 나날들이 다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 버렸는데, 그것은 평범한 나날들을 의도치 않게 빼앗기면서 간절히 기다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적은 당연히 끌어안고 당연히 사랑하던 날, 다시 돌아올 거예요. 우리 힘껏 웃어요”, “잊지는 않았잖아요라고 말한다.

 

영국에서는 셧다운상태였던 지난해 4, 스무 명 넘는 가수들이 BBC Radio에서 온라인 라이브로 푸 파이터스(Foo Fighters)Times like these’를 함께 리메이크해서 불렀다. 자가 격리(‘Stay Home’) 캠페인의 하나로 뮤지션들은 각자의 집에서 노래한 다음, 이를 하나로 합쳤다. 원작자 푸 파이터스 외에 두아 리파(Dua Lipa), 앤 마리(Anne-Marie) 등이 참여했고 이를 영상과 음원으로도 만들었다. 이로 인한 영국 내 수익은 영국의 Child in Need, Comic Relief에 기부했고, 전 세계적인 수익은 세계 보건기구(WHO)의 코로나19 대응 연대 기금(Covid 19 Response Fund)에 전액 기부했다.

 

뮤지션들이 이 곡을 선택한 이유도 역시 희망을 주고, 함께 견디자는 의미를 담고 있는 가사에서 힘을 얻기 때문일 것이다. “It's times like these you learn to live again.(이런 때는 다시 사는 법을 배우지) It's times like these you give and give again.(이런 때는 나누고 또 나누지) It's times like these you learn to love again.(이런 때는 다시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It's times like these time and time again.”(이런 때는 다시 반복돼)

 

뮤지션들은 나라의 경계를 넘어서서 연합했다. 지난해 4월 데이비드 라이언 해리스, 에밀리 C. 브라우닝 등 13명의 뮤지션은 'Alone Together'(따로 또 같이)라는 제목의 앨범을 냈다. 여기에는 미국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프로듀서이자 키보디스트인 한인 나에스더 씨도 참여했다. 이로 인한 수익은 역시 세계 보건기구의 코로나19 대응 연대 기금으로 전달된다고 했다. 타이틀곡 Alive’살아 있는느낌으로 충만하다. 심심할 틈 없이 역동적으로 꿈틀대는 선율 위에 몽환적인 화음이 펼쳐진다. 몽글몽글 발가락을 까닥이며 음악을 듣기 시작하다가 끝내 일어서게 만드는 곡이다.

 

올해 3, 미국 매사추세츠주 피츠필드의 버크셔 커뮤니티 칼리지 체육관에서는 인상적인 일이 벌어졌다. 백신을 맞고 간이의자에 앉아 대기하는 시간에, 노란색 재킷을 입고 검은색 모자를 눌러쓴 나이 많은 한 남성이 돌연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을 연주한 것이다. 백신을 맞은 것에 안도하면서도 불안해하던 사람들은 그 소리에 고개를 들었고, 연주가 끝나자 모두가 박수를 쳤다. 그는 알고 보니 세계적인 첼리스트 요요마였다.

 

그는 그 일이 있기 몇 달 전부터 이미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서 #Songs Of Comfort(위로의 노래)라는 프로젝트로 연주를 녹화해 유튜브에 올리고 있었다. 집에서 혼자 연주하거나, 온라인으로 다른 이와 함께 연주한 영상인데, 공연장을 안 가도 그만큼 가까이 있는 느낌으로 쉬 들을 수 있으니 고마운 마음이 절로 든다. 특히 Yo-Yo MaWu TongRain Falling From Roof’는 연주자 바로 앞에서 찍은 영상이라, 그들의 손끝에서 울린 선율이 직접 들리는 것으로 착각하고 싶어진다. 현악기 특유의 떨림이 몸을 훑고 지나가는 듯 가까이 들린다. 요요마는 음악가라면 팬데믹에 이런 일을 해야 마땅하다는 듯이, 이 거장은 지금같이 어려울 때 음악의 역할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 때문에) 만질 수도, 포옹할 수도, 악수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음악이 하는 일은 소리가 공기 분자를 움직이는 것입니다. 공기가 피부를 가로질러 떠다니고 그것이 피부에 닿을 때, 그것은 마음을 움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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