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은 죽었으나 '무전 유죄, 유전 무죄' 사회는?
전두환은 죽었으나 '무전 유죄, 유전 무죄' 사회는?
  • 김세진
  • 승인 2021.12.08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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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옥수가 마지막으로 들었던 그 노래 'Holliday'

이제 곧 죽을 것이라는 걸 안다면, 마지막으로 무슨 노래를 듣고 싶은가. 시인을 꿈꾸었지만 탈옥수가 되어 버린 서른 중반의 한 청년은 유리 조각으로 자기의 목을 찌르기 전에, 이 노래를 틀어 달라고 요청한다. 경찰과 인질과 인질범이 서로 대치하는 상황에서, 특공대와 경찰 천여 명과 기자들로 둘러싸인 한 가정집, 총소리가 들리며 생사가 오가는 그곳에 비지스(Bee Gees)홀리데이’(Holiday)가 배경음악처럼 깔렸고, 1988년 가을 당시에 온 국민은 텔레비전 생중계로 이 음악을 함께 들었다.

 

비지스의 홀리데이는 그 제목답게, 들을 때마다 약간은 나른해진다.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듯 군더더기 없는 목소리는 백일몽을 꾸는 듯 약간 몽환적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짙게 깔린 스트링 소리와 튀지 않게 배치된 하프 소리는 너무 평화로워 온몸에 긴장이 풀어진다. 이 노래를 들으며 잠든 건 분명 나만이 아닐 것이고, 들을 때마다 그 당연한 수면 상태에서 한 시간은 더 있다가 깨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비명이 들리며 생사가 오가는 극도의 긴장 상황에서 들리는 수면제 같은 이 노래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배치의 아이러니는, 1999년 이명세 감독의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액션 신에서 묘사되었다. 목숨을 건 결투를 하는데, 주인공들은 슬로모션으로 움직이고, 이리저리 튀는 빗방울 사이에 햇살이 빤짝 부서지며 이 노래가 깔린다. 코믹하고도 아름답게 그려진, 이 아이러니한 미장센에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이명세 감독은 위의 1988년에 일어난, 일명 지강헌 사건과 이 노래를 기억했다고 한다.

1988.10.17일 자 경향신문
1988.10.17일 자 경향신문

'지강헌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한국은 영화보다 더 극적이었다. 지금도 우리는 영화에서만 보면 좋을 것들을 도처에서 맞딱뜨린다. 그러니 극적이라는 것은 오하려 가장 현실적인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데, 그 현실의 민낯, 무전 유죄, 유전 무죄를 처음 외친 사람은 다름 아닌 이 탈옥수들이었다. 당시 영등포교도소에서 공주교도소로 이감 중이던 차에서 12명이 탈출했고, 이후 9일째까지 네 명의 탈옥수가 잡히지 않았다. 이들에게 총 하나와 탄알 다섯 발이 있었기에 온 국민은 벌벌 떨었다. 언론은 그들을 흉악범이라고 떠들어댔으나, 사실 그들은 절도범들이었으며, 그들 중 세 명은 20-22, 리더 지강헌은 고작 35살이었다.

 

리더인 지강헌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했고, 현금과 자동차 등 556만 원을 훔친 혐의로 형량 7년과 보호감호 10년을 합쳐 모두 17년형을 받았다. ‘보호감호란 재범할 위험이 있다고 생각되는 자가 정해진 형기를 마치면 추가로 감호소로 이감해 머물게 하는 제도였다.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제도로, 가뜩이나 문제가 많은 이 제도는 모두에게 공정하게 적용되지조차 않았다. 이를 만든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은 새마을운동 중앙본부 사무총장으로 있으며 76억을 횡령했지만, 겨우 7년 형이 선고되었고, 그마저 28개월 후에 가석방되었다.

 

지강헌 일당은 탈옥 후, 전두환 전 자택인 연희궁을 향해 갔다. 76억 횡령해도 겨우 7년을 선고받는데, 556만 원 절도에 17년 형기는 정말 억울했을 것이다. 이들은 숙박 업소도, 기차도, 유흥업소도 아닌 일반 가정집에 들어가 경찰을 피해 머물렀는데, 인상적인 건 아무도 해치지 않았을뿐더러, 머물렀던 곳을 떠나며 공범이라는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우리가 가고 나서 바로 신고하라라고, 고맙고 신세를 많이 졌다라고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북가좌동의 한 집에서 경찰과 대치하며 가족들을 붙잡고 인질극을 벌일 때도, 총구를 겨누면서도 귓속말로 미안하다며 절대 다치게 하지 않을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결전의 날, 경찰과 대치 상황이 길어지고 달리 희망이 없어지자, 방 안에 있던 다른 탈주범 두 명이 스스로 총을 쏘아 자결했다. 그들이 죽자, 지강헌은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잠잠히 있더니 홀리데이를 듣고 싶다고 한다. 동료에게 보내는 묵념이었을까, 자기의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었을까. 경찰이 구해 온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생애 마지막 음악이 재생되는 동안, 그는 자기 머리에 총구를 겨눈 채, 깨진 유리 조각으로 자기 목을 긋는다.

 

비장한 마지막 순간에 홀리데이는 위안이 되었을까. 그들은 죽음을 예견하고, 각오하고 있었다. 죽기 전날, 지강헌은 마지막으로 머문 집에 있는 대학생에게 아가씨. 떨어져 죽는 게 멋있어요, 총으로 죽는 게 멋있어요?”라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너무 놀란 학생이 성경을 읽어 주자, 듣던 지강헌 씨가 날 위해 마지막으로 기도해 주세요.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의 마음이 되게 기도해 주세요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같이 무릎 꿇고 기도하는데 그는 콧물이 바닥에 떨어질 정도로 많이 울었다고.

 

판사가 내린 판결은 시대적인 정치적 요구로 인한 잘못된 판결이다. 이 사회에서 목숨을 부지하기에는 너무나 살아갈 곳이 없다는 지강헌의 발언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이 죽은 후, 이 제도의 문제점은 재조명되었고, 마침내 2005년 보호감호 제도가 이중 처벌·과잉처벌로 인정되어 폐지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이 목숨 걸며 외쳤던 무전유죄, 유전무죄는 여전히 유효하다. “돈 없으면 죄 없어도 유죄, 돈 있으면 죄 있어도 무죄라는 말이 너무나 상식 밖이라 그걸 이해하자면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한 날이 우리에게 올까.

 

이들 모두는 마땅히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들에게서 나쁜 범죄자의 냄새가 아닌 인간다운 눈빛을 읽었고 후회의 마음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죄는 밉지만, 사람은 미워할 수 없었습니다. 부디 이 탄원서를 읽으시고 다시 한번 기회를 주셔서 희망의 빛을 벗 삼아 세상의 좋은 등대지기가 되게 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탈옥범 중에 유일한 생존자인 강 씨를 위해 탄원서를 낸 사람은 다름 아닌 인질들이었다. 선거공판에서 검사는 15년 형을 구형했지만, 인질 다섯 가정 중 세 가정이 탄원서를 냈고, 결국 그는 7년을 선고받았다. 누군가의 해석처럼, 피해자가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공포에 사로잡혀 가해자에게 동조하게 된 '스톡홀름 증후군'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렇게 볼 수도 있을까? 세상을 향해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으나 들어주는 이 없었던 이들의 마음을 그 가족들은 어렴풋하게나마 읽어 주었고, 이는 아마도 불공평한 사회에 대한 그의 울분에 충분히 동감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상사애 보지 않았을까. 그가 지금탈주범이라는 무시무시한 타이틀을 갖고 있지만, 한때 팝송을 즐겨 들으며 시인이 되고 싶었던, 휴식 같은 사람이고 싶었던 청년이라는 것을. 마치 홀리데이 가사처럼.

 

Ooh you're a holiday, such a holiday

, 그대는 휴식 같은 사람이에요, 정말이에요

 

It's something I thinks worthwhile

그만큼 소중하게 느껴지는 사람이죠

 

If the puppet makes you smile

꼭두각시처럼 웃음을 짓는다 해도

 

If not then you're throwing stones

누군가 돌을 던지며 비난하더라도

 

Throwing stones, throwing stones

돌을 던지고 던져댄다 하더라도

 

(중략)

 

Yet millions of eyes can see

많은 사람들은 알고 있는데

 

Yet why am I so blind

왜 난 아무것도 모르는 건지

 

When the someone else is me

다른 사람도 내 입장이 되어 보면

 

It's unkind, it's unkind

불공평하게 느낄 거예요

 

- Bee Gees 'Holliday'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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