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엘 오스틴과 권정생
조엘 오스틴과 권정생
  • 최태선 목사
  • 승인 2021.12.08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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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오스틴이 시무하는 교회의 벽에서 수백 개의 현금 봉투가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교회에서는 7년 전에도 금고에서 현금을 도난당했다는 신고를 했었다. 조엘 오스틴은 <긍정의 힘>, <잘 되는 나> 등의 책을 쓴 번영신학의 대명사인 목사이다. 나는 이런 인간을 목사라고 부르는 것이 불편하다.

그는 근사하게 부자로 산다.

며칠 전 선물 받았던 <강아지 똥으로 그리는 하나님 나라>를 읽기 시작했다. 예전만큼 독서속도가 나지 않는다. 집중력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내 신앙이 헤이해진 탓이기도 하다. 어쨌든 책을 읽으니 반갑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처음부터 조금 마음에 걸리는 대목이 있었다. 책의 저자는 박사님이시다. 그리고 추천을 하신 목사님도 이름 뒤에 박사라는 호칭이 붙어 있다. 글쎄다. 다른 책에서는 그래도 상관없을 것이다. 아니 그런 사람을 골라 추천의 글을 받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그런데 권정생 선생을 소재로 하고 제목에도 하나님 나라가 들어가 있는 책에서도 그렇게 한다는 것은 좀 찜찜한 느낌이 든다.

적어도 권정생 선생과 하나님 나라를 소재로 한 책이라면 박사님들이시더라도 적어도 이 책에서만큼은 박사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박사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가장 감사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내가 박사가 아닌 것이다. 내가 박사가 되었다면 나는 내가 날마다 쓰고 있는 종류의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하이너 장로를 통해 확신하게 되었다. 그는 대학을 가지 않았다. 진로를 결정해야 하던 시기에 같은 방에 거하던 사람이 했던 “네가 대학을 가면 노동자와 함께 살 수 없다.”는 말을 듣고 그는 진로를 바꾸어 농업학교에 진학했다. 그 결과 그는 브루터호프 공동체의 장로가 될 수 있었고, 영적인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그것도 존경스럽고 훌륭한. 만일 그가 대학을 나오고 박사님이 되었다면 그는 그렇게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은 소유와 존재가 분리되지 않는다. 특히 박사와 같은 성취(소유)를 내려놓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박사라는 자의식은 그가 누구건 그의 무의식을 장악하고 놓아주지 않는다. 결국 그런 사람은 하이너와 같은 방에 거하던 사람의 말처럼 노동자와 같은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없다. 여기서 함께 살 수 없다는 말은 평등하게 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책을 펼쳐들자 마자 내 눈에 들어오는 내용이 있었다.

"형은 지가 젤 불쌍하면서 남들 불쌍하다는 말만 해!“

벗이었던 이현주 목사님이 권정생 선생에게 한 말이다. 권정생 선생은 한때 거지였던 시절이 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동화작가로 널리 알려지게 되고 경제적 형편이 나아졌다. 그러나 그분은 작은 흙집에 살면서 소박한 음식을 먹었다. 자신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생활비만 쓰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는 인색하지 않았다.

부는 영혼을 잠식한다.

나는 이 사실을 늘 기억한다. 사람은 누구나 부를 사모하기 마련이다. 부는 자아를 부풀리고 실제로도 다른 사람들의 대접을 이끌어낸다. 그걸 통해 사람은 자신이 존귀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걸 마다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여간해서는 힘든 일이다. 설명할 필요가 없다. 스스로 존귀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이 자신의 영혼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물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나도 안다. 나 역시 부에 흔들리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훈련이 필요하고 극한 환란이 필요하다. 권정생 선생은 거지라는 혹독한 훈련을 거쳤다.

나는 매달 삼십만 원을 기초연금으로 받는다. 다른 사람에게는 삼십만 원이란 돈이 많지 않은 돈이라는 걸 나도 안다. 그러나 내게는 큰돈이다. 정말 큰돈이다. 용돈이 하나도 없이 살던 지난 십여 년의 세월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힘든 시기였다. 내게는 아무런 결정권이 없었다.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무력함이 비참함으로 느껴지던 시기였다. 그런 시간이 십여 년 이어졌다. 그 시간이 내게 은혜의 시간이라는 걸 최근 들어 자주 실감하게 된다. 내게 인내라는 덕이 생겼다.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덕이다. 돈이 없어야 생길 수 있는 덕이기 때문이다. 복음은 바로 이 인내라는 덕을 기반으로 한다. 인내가 없으면 복음을 살아낼 수 없다!! 그래서 산상수훈에서는 가장 먼저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선언한다. 마음의 가난은 물질의 가난을 넘어 영적으로도 가난해진 상태이다.

내가 위에서 박사님들을 지적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분들은 자신들의 영적 상태를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다. 어쩔 수 없다. 박사라는 소유가 그분들의 마음을 가난해지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길 바란다. 나는 그분들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다. 그분들이 박사님이라서 많이 알고 좋은 글을 쓰실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글은 많이 알아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글은 심금을 울려야 하는 글을 써야 하는 곳이다.

권정생 선생이 글을 쓰고 그것도 동화 작가로 이름이 난 것은 그분의 글이 심금을 울리는 글이고 특히 어린아이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분이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름이 알려지면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지만 그분이 자신의 삶의 수준을 높이지 않았던 것은 그분의 마음이 이미 가난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십 년 된 아반테를 타고 다닌다. 큰 아이가 결혼하기 전에 타고 다니던 차이다. 처음에 삼 년도 안 된 새 차를 운전하면서 나는 내가 이렇게 좋은 차를 타고 다녀도 좋은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차가 한 번도 수리를 한 적이 없다. 소모품을 간 것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수리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브레이크 패드도 아직 갈지 않았다. 아반테는 내게 과분하다. 내게 자가용은 그것이 무엇이든 과분하다.(지금도 차의 소유주는 딸이다)

내가 오랜 기간 가난하게 지낸 덕이다. 나는 권정생 선생처럼 거지생활을 한 것은 아니다. 주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 나는 권정생 선생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 만한 재목이 아니다. 거지로 살라고 하거나 감옥에 가라고 하면 견디지 못하는 책상물림이라는 것을 그분은 아신다. 그래서 거지가 아니라 거지 같은 삶만을 살게 하셨다. 사실 내가 당한 경제적 파산의 경우라면 노숙자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주님은 나를 노숙자로 살게 하지 않으시고 가정도 흩어지지 않게 하셨다. 용도가 다른 것이다. 그래도 나는 과거와 달라졌다. 나는 동화 작가가 아니라 거지 목사가 되었고 가난 전도사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이현주 목사가 권정생 선생에게 하신 말씀은 복음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사막의 성자 푸코는 자신이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 이유를 가장 낮은 곳에는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께서 가장 가난한 자가 되셔서 가장 낮은 곳에 계시는 곳이다.

권정생 선생도 그것을 알지 않으셨을까. “지가 젤 불쌍하면서”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한다. 각자의 믿음의 분량대로 그것을 실천할 때 그들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임할 수 있는 비결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아직 “지가 젤 불쌍하면서”에 이르지 못했다. 그래서 권정생 선생을 존경해야 한다.

테레사 수녀님이 생각난다. 그분은 의식이 돌아오면 위급상황에 실려 간 병원에서 기어서라도 나왔다. 다른 사람들은 그분이 나아야 가난한 사람들을 돌볼 수 있다고 그분이 병원에서 나오려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그분은 “지가 젤 불쌍하면서”가 되어야 가난한 사람들을 돌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 복음의 삶이란 지가 젤 불쌍해지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푸코처럼 가장 낮은 곳에 계시는 주님을 만날 것이다. 지가 젤 불쌍했던 권정생 선생도 주님을 만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새삼 조엘 오스틴이 정말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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