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Everything will be O.K!
미얀마, Everything will be O.K!
  • 김세진
  • 승인 2021.12.15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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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시민 불복종 항쟁을 응원하는 한국 래퍼와 고등학생의 노래
세 손가락으로 독재와 군사 쿠데타에 저항하는 미얀마 시위대의 모습. shikshanews.com에서 인용.
세 손가락으로 독재와 군사 쿠데타에 저항하는 미얀마 시위대의 모습. shikshanews.com에서 인용.

정말 가고 싶던 회사의 면접에서 죽을 쑨 날, 친구는 나에게 “다 잘될 거야”라고 했다. 그런다고 죽이 밥이 되지 않을 것은 알았기에 하등의 위안이 되지 않았으나, 그 친구가 나를 생각하고 잘되기를 바라마지 않는 그 바람은 전달이 되었다.

스컬과 김디지가 지난 4월, ‘Everything will be O.K.’라는 곡을 발표했다. 이 곡은 미얀마의 군부독재의 폭력에 저항하며 민주화 운동을 벌이고 있는 미얀마 국민을 응원하기 위한 것인데, 제목만 보고는 얼핏 위로가 될까 싶었다. 사실 “잘 풀릴 거야”,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야”라는 말처럼 하기 쉬운 말은 없다고 생각해왔고, 때로 누군가 나에게 이 말을 하면 ‘할 말이 없으면 차라리 침묵하는 게 어때?’라는 시니컬한 반응이 튀어나오려고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얀마에서는 지금 바로 옆에서 친구가 죽어 나가고,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거리에 총소리와 비명이 가득한 상황이 아닌가. 그런데 그런 상황이라 오히려 그 말과 노래가 그들에게 힘이 되는 것 같다. 너무 고립되고 절망할 때는 함께하는 마음 자체가 힘이 되기도 한다. 힘듦을 알아주는 누군가가 우리 밖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희망이 되기 때문이다.

 

광주의 과거와 닮은 꼴, 오늘의 미얀마

우리도 그랬다. 1980년 5월 18일, 군부 정권이 지금의 미얀마에서처럼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고, 시민을 무고하게 죽일 때, 광주는 철저하게 고립되었다. 광주로 가는 모든 길은 통제되었으며, 서울에서 광주로 가는 길에는 무려 여섯 개의 검문소가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사이, 광주 시내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죽고 있었다. 밤낮으로 탱크가 시내 한복판을 다녔고 총성이 울려 퍼졌다. 그때 독일의 한 기자가 잠입해, 전두환 군사정권의 만행을 기록해 전 세계에 알렸으며, 그 덕분에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다.

5․18 이후 반독재 시위가 전국에서 벌어졌으며, 1987년 1월 서울대생 박종철 씨가 고문으로 죽고 6월 연세대생 이한열 씨가 최루탄에 맞아 사경을 헤매다 죽자, 6월 10일 민주항쟁이 크게 벌어졌다. 6월 26일 국민평화대행진 때는 시위 규모가 세 배나 커졌고 전국 16개 도시에서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다. 마침내 6·29 선언이 발표되었고, 이후 대통령 직선제 선거를 치르는 것으로, 민주화로의 첫걸음을 걷게 되었다.

한국이 같은 길을 걸었다는 것에 미얀마인들이 적잖은 위로를 받는 것 같다. 한국은 이제 더 이상 군사 쿠데타가 일어날 수 없는 나라가 되었기에 미얀마인들은 한국에서 희망을 보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5.18 당시에 불렀던 ‘임을 위한 행진곡'은 지금, 미얀마 현장에도 울려 퍼지고 있다. 이 노래는 지난해 10월, 왕실 개혁과 총리 퇴진 시위하는 태국에서도, 또 2019년 3월, ‘범죄자 송환 법’ 반대 시위를 하던 홍콩에서도 울려 퍼졌다. 광주의 아픔이 민주화의 시발점이 된 것을 기억하는 것이리라.

 

미얀마의 봄을 기다리는 21개국의 연대

미얀마 군사정권은 지난 2월 1일, 아웅산 수찌 국가 고문과 그가 이끄는 민주진영의 국민통합정부(NUG) 지도자들을 가택 연금하고 1년간 비상사태를 선포한 다음, 군인인 민 아웅 흘라잉에게 권력을 이양했다. 지난해 11월 치른 총선이 부정선거이므로, 그때 압승한 아웅산 수찌 정권을 조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들은 아웅산 수찌를 불법 수입된 워키토키(소형 무선 송수신기) 소지 및 사용 혐의, 코로나19 방역수칙 위반 혐의, 선동 혐의, 전기통신법 위반 혐의, 뇌물수수 혐의, 공무상비밀엄수법 위반 혐의, 자연재해관리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이 모든 혐의가 인정되면 수찌 고문은 40년 안팎의 징역형을 선고받게 된다. 이에 시민들은 12월 12일 현재까지 316일째 시민 불복종 항쟁(CDM)을 벌이고 있다. 

이후 군사정권은 쿠데타를 항의하며 시위하는 시민들에게 총을 쏘고 수류탄까지 던져 유혈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민주진영의 국민통합정부가 지난 9월 7일 쿠데타 군부와 일명 전쟁을 선포하며 ‘화요 선언'을 한 이후, 미얀마 전국에서 무장 투쟁과 시민 불복종 항쟁이 더욱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지난 가을, 일부 지역에 거대한 홍수까지 발생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12월 중순 현재까지 시민 불복종 항쟁으로 인한 사망자는 1,320명, 구금자는 1,080명을 넘었다. 그렇게 죽는 사람은, 광주 민주화운동 때처럼 그저 내 이웃이고 가족들이다.

지난 12월 12일 낮 12시, 한국뿐 아니라 독일, 뉴질랜드, 이탈리아,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타이완, 일본, 이스라엘, 영국, 아일랜드, 네덜란드,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등 21개 나라에서 ‘전 세계 미얀마 봄 혁명 연대’란 명칭으로 집회가 열려, 미얀마 독재정권의 탄압을 반대하는 시위를 했다. 이들은 저마다 세 손가락을 들고 있었다.

 

세 손가락 동맹

세 손가락은 미얀마 이전에 홍콩과 태국에서도 독재에 항거하는 의미로 통했다. 밀크티를 즐겨 마시는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화 운동을 ‘밀크티 동맹’이라고 부르는데, 말을 하지 않아도 세 손가락을 들어 올리면 이 나라들의 자유와 민주화를 지지한다는 뜻이다. 이 상징은 영화 <헝거게임>에 처음 나왔다. 영화에서는 그렇게 언급하지는 않지만, 이제 세 손가락은 각각 선거와 민주주의, 자유를 뜻하게 되었다.

아웅산 수찌 국가 고문 석방을 요구하다가 영국 주재 미얀마 대사관에서 지난 4월 쫓겨난 쪼츠와민 전 대사는 기자회견 중에 손가락 세 개를 들어 보였고, 말레이시아 프로 리그에서 뛰는 축구선수 헤잉텟 아웅은 지난 3월 골 세리머니를 하며 세 손가락을 들어 올려 출전을 정지당하기도 했다. 태국에서는 쿠데타에 성공한 쁘라윳 총리를 반대하며 그 앞에서 세 손가락을 든 학생들이 잡혀가기도 했다.

‘Everything will be O.K.’에서 김디지와 스컬은 이 상징을 언급했고(이들은 이 곡의 수익을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위해 쓰겠다고 한다), 서울실용음악고등학교 학생들도 ‘세 손가락’이라는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

 

1st Finger 그녀의 눈물을 닦아 줄 약속을 담은 손가락

2nd Finger 언젠가 우리 만나 함께 노래 부를 그날의 약속

3rd Finger 힘든 날을 함께 지킬 버팀이 될 손가락

Three Fingers 그녀의 눈물을 기억하는 우리만의 세상을 향한 약속

Everything will be O.K.

- ‘Everything will be O.K.’ 중에서

 

세 손가락 높이 세우고서

꿈꾸는 평화 위해 조국을 이끄네

이 밤이 다 지나면 모두 이뤄지리

우리 가슴에 항상 묵혀 왔던 말

우리 자유 영원하리

우리 이 거리엔 항상 자유의 웃음소리 들릴 수 있게

- ‘세 손가락’ 중에서

 

차가운 바람에 몸을 던진 사람들

자유의 달콤한 Everything will be O.K.

자유 자유

아버지의 고향

세 손가락 꽃 되어

피어나라 미얀마

- ‘미얀마의 봄’ 중에서

 

한국에서 ‘미얀마의 봄’을 부른 완 이화 씨는 미얀마 카렌족 출신으로, 미얀마 난민으로 입국해 한국에서 살고 있는 열다섯 살 소녀다. 그는 지난해 트로트 전국 체전에도 참여해서 유명해졌다. 그는 도무지 소녀의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절절하고 한 맺힌 듯한 목소리로 그도 “Everything will be O.K.”라고 노래한다.

그걸 보니, “잘될 거야”라는 말을 한낱 무시했던 건 내가 그만큼 힘든 건 아니어서였을까 싶기도 하다. 정말 막막할 때는 그 막연하고 흔해 뻔한 말인 “잘될 거야”에서 가느다란 희망의 실마리를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끝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지금이 영원하지 않을 거고, 언젠가 끝이 날 텐데, 네가 바라는 대로 될 수도 있을 거야’라는 말이 혹여 계속 버티게 하는 힘이 될는지도 모르겠다.

이 노래에 미얀마인들이 영어로, 또 서툰 한국어로 고맙다는 댓글을 남겼다. 한국어 문장은 무언가 어색하다. 문법이 정확하지 않아서다. 또 어떤 댓글은 완전히 똑같다. 아마도 한글을 잘 모르지만 고마운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 위 사람의 댓글을 복사해서 붙인 것 같다.

나는 인터넷에 발자취 남기는 걸 싫어하지만, 오랜만에 로그인을 하고 이들의 댓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이들이 언론과 인터넷이 통제된 상황에서 얼마나 힘들게 댓글을 남겼을까 싶고, 그렇지만 고립되지 않고 외부의 세계와 연결되려는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해서다. 한편으로는 이들이 혹여나 아이피를 추적당해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리면 어쩌지 걱정되다가도, 무엇보다 이들이 살아남아서 ‘좋아요’ 버튼 하나를 확인하기를 바란다. 그때 조금이라도 힘이 된다면 로그인하는 귀찮음쯤이야 백 번쯤은 할 수 있다.

미얀마에서 아마 오늘도 맨 팔에 자기 혈액형과 가족의 연락처를 커다랗게 쓰고, 혹시나 피를 많이 흘리거나 죽게 되어도 재빠르게 수습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고 거리로 나갔을 이들에게, 이 바람을 전할 뿐이다. “Everything will be O.K.”


* 이 글은 독립 음악잡지 <gem magazine>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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