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사면과 필리오케 논쟁
박근혜 사면과 필리오케 논쟁
  • 김기대
  • 승인 2021.12.25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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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사면과 사면권 폐지는 별개다

박근혜의 사면으로 여론이 뜨겁다. 일부에서는 박근혜를 잡아 넣은 윤석열을 겨냥한 야권의 분열을 염두에 덫이라고 하지만 현재 체감되는 것은 도리어 여권 성향 지지층의 분열이다.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들에서는 지지 철회와 문대통령의 고뇌어린 결정이라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적어도 필자가 체감하는 SNS상의 여론은 95:5 정도로 탄핵반대론이 높고 표현수위도 거칠다.

이번 사면 결정과 맞물려 대통령사면권 폐지론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하지만 사면권은 박근혜 사면과는 별개로 다루어져야 한다. 어느 종교든 신자들이 맹신하는 경전도 도그마로 빠지는 것에 대해 비판할 있는 법인데 근대 민주주의의 형태인 삼권분립은 그토록 오랫동안 성역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사람들은 없다.

견제와 균형?’. 빛좋은 개살구같은 표현일 뿐이다. 대한민국의 삼권분립은 이미 무너진지 오래다. 사법권이초법적 권력을 휘두르고 준사법기관인 검찰이 망나니의 칼처럼 피를 부르는 시대에 유일하게 사법권과 검찰권을 견제하는 사면권이다. 정경심의 확인되지 않은표창장 위조 최은순의 확인된 잔고증명에 대한 검찰의 기소와 사법권의 판단이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검찰이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의 정무적 판단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하면 환호를 보내면서 대통령이 검찰에 대해서 한마디만 해도 삼권분립이 무너졌다고 게거품을 무는게 대한민국의 언론이다.

박근혜 사면에 반대하는 여론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사면권은 사법독재를 막을 있는 유일한 권한이다. 특히 대통령의 권력이라는게 의전 서열로 제일 위에 있는 것으로만 인식되는 대한민국 현실에서 사면권(설사 불의한 보수정권이 탄생한다 할지라도) 사법권력독재를 견제할 있는 마지막 보루다.

사면권 논쟁과 무너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비대해진 사법권력의 횡포를 보면서 동서방 교회의 필리오케 논쟁이 생각났다. 성부 성자 성령의 위격이 독립되어 있으면서 하나이고 위격은 평등하다는 삼위일체는 기독교의 가장 기본 교리다. 삼권분립이 삼위일체에서 나왔다는 주장도 있을 정도다. 그러나 평등한 삼위일체에도 기능적 서열은 있다.

과정에서 촉발된게 필리오케 논쟁이고 동서방교회 분열의 촉매제가 되었다. 필리오케(라틴어: Filióque) 라틴어로 'and the Son(그리고 아들)'라는 뜻이다. 교리를 처음으로 결정한 니케아 공의회에서의 결정은 헬라어로  “성령은 성부에게서 ()하시고( 에크 파트로스 에크포류오메논, τό εκ τού Πατρός εκπορευόμενον)”였다. 그런데 이게 라틴어로 번역되면서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크비 엑스 파트레 필리오크베 프로체디트, qui ex Patre Filióque procédit)” 바뀌었다.  '그리고 아들에게서(필리오케)' 첨부된 것이다. 논쟁은 지리하게 진행되다가 결국 정교회에서는 헬라어 원문으로, 서방 교회에서는필리오케 첨가된 것으로 고착되었다. 가톨릭 교회에서 분열된 칼뱅을 비롯한 종교개혁자들도 필리오케를 따르고 있다. 최근에 와서 정교회의 입김이 세진 세계기독교교회 협의회(WCC)같은 에큐메니칼 진영에서는필리오케를 제거하려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나 쉽지 않은 문제다.

필리오케의 합당성 여부는 논외로 하고 적어도 정치적 삼위일체(삼권분립)에서는 필리오케가 맞다. 민심은 천심이니 아래 도표 성부의 자리에 민심 또는 민의를 놓으면, 성자는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과 의회가 된다. 성령은 사법부와 검찰권력이다. 동방교회의 도표를 차용하면 민심(성부)으로부터 선출된 권력과 사법권력이 함께 나오지만, 필리오케를 따르자면 사법권력은 민심의 신뢰도 받아야 하지만 선출된 권력의 견제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사법부는 입법부에서 만든 법의 집행기관이고 법을 집행함으로써 행정부의 원활한 국정 운영을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의 성부의 자리에 있다. 이게 문제이기 때문에 견제를 위해서라도 사면권은 반드시 유지되어야 한다.

 

출처 : 나무위키
출처 : 나무위키

 

도스토예프스키는 사형을 목전에 두고 사면된 후 시베리아 노역형으로 감형되었다. 이야기는 목사들의 단골 예화 소재이기도 하다. 감형과 사면은 다르지만 어쨌든 도스토예프스키는 생사를 넘나든 이날의 경험으로 러시아의 대문호가 있었는데 실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적 재능을 높이 니콜라이 1 러시아 황제의 자작극이었다. 본래 사형시킬 마음이 없었지만 젊고 패기만만한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사형 선고를 내림으로써 본떼를 보여주고 싶었고 삶과 죽음을 경험한 도스토예프스키는 경험을 이후 작품에 담아 내었다.

재치있는 트윗으로 유명한 (김영삼 대통령의 이름을 패러디한) 김빙삼(金氷三) 박근혜 사면에 분노하는 사람들을 향해 어차피 허수아비(원숭이)였는데 정도로 분노하느냐는 글을 남겼다. 아마도 사면반대론자들에게도 이런 마음이 있을 것이다.

출처: 김빙삼 트위터
출처: 김빙삼 트위터

 

그러면 지지자들의 분노하는 지점은 어디인가?

도스토예프스키의 경우처럼 사면(감형)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뭔지 모호하다는 것이다. 하다 못해 문학청년의 문학적 재능을 높이 사려는 의도 조차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에게 주어진 삼권분립을 초월하는 권력을 이때까지 쓰지 않았냐는 것이다. 자신의 정무적 판단이 일개 검찰들한테 조롱당하고 관련자들이 수갑을 때는 침묵하다가 지금에 와서야 초월적 사면권을 쓰냐는 것이다. 그것이 분노의 지점이다. 도망가는 김학의를 급히 출국금지 시킨게 죄라고 따지는 검찰권력에 대해서는 함구하다가, 조국 법무부 장관 가족에게 멸문지화에 가까운 도륙을 일삼을 때는 가만있다가 지금에서야 지지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사면권을 사용하느냐가 핵심이다. 게다가 이석기 전의원은 사면도 감형도 아니고 전자 발찌를 찬 가석방을 함으로써 한번 그를 모욕했다.  지금까지 모욕을 견뎌내던 한명숙 전총리를 지금에야 사면함으로서 한명숙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박근혜에게 '의문의 1패'를 당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박근혜 사면은 신의 한수라고 표현하는 지지자들이 더러 있지만 이건 그냥 문대통령이쫄보라는 밖에는 이야기가 없다. 조중동과 영남 보수세력을 향한 진보진영의 겁먹은 구애는 언제쯤 끝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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