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뒤끝] 노회한 ‘정치브로커’의 초라한 퇴장
[뉴스 뒤끝] 노회한 ‘정치브로커’의 초라한 퇴장
  • 지유석
  • 승인 2022.01.06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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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이력 치명적 오점 남긴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
김종인 전 국민의 총괄선대위원장 Ⓒ 사진 = 지유석 기자
김종인 전 국민의 총괄선대위원장 Ⓒ 사진 = 지유석 기자

“대한민국에 국운이 없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선대위 완전 해체를 결정하자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한 말이다. 

김종인 전 선대위장은 그간 여야를 넘나들며 ‘책사’ 혹은 ‘킹메이커’로 통했다. 지난해 12월 5일 이준석 당대표가 잠적 소동을 벌이다 울산에서 담판을 벌인 일이 있었다. 이때 김 전 선대위장을 합류시키기로 이 대표와 윤 후보는 합의했다. 당시엔 여야의 기류가 엇갈렸다. 야권은 반색했고, 여권은 바짝 긴장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딱 한 달 만에 바뀌었다. 윤 후보는 김 전 선대위장을 사실상 ‘잘랐다’. 노회한 김 전 선대위장으로선 체면을 단단히 구긴 셈이다. 김 전 선대위장은 기자들 앞에서호칭 없이 "윤석열" 혹은 "윤석열이"로 불렀다니, 단단히 격앙했나보다. 

이번 대선은 보수 야당인 국민의힘으로선 정권을 탈환할 절호의 기회였다. 여기에 검찰총장직을 내던지고 곧장 정치판에 뛰어든 윤석열이 대선 후보로 확정됐던 지난해 11월 초만 해도 집권은 떼놓은 당상인 것만 같았다. 

후보 확정 직후 실시된 23개 여론조사 모두 윤 후보가 상대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10%p 차이로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한 달 후 ‘책사’ 김종인이 총괄선대위원장으로 왔다. 이제 남은 건 정권탈환 뿐이었다. 적어도 국민의힘 쪽 시선에선 그랬다. 

김건희 학력위조 의혹에 스텝 꼬인 김종인 

그러나 상황은 예상과 달리 흘렀다. 무엇보다 윤 후보 부인 김건희 씨의 학력위조 의혹이 터져나왔다. 이 대목에서 김종인 전 선대위장의 스텝도 꼬이기 시작했다. 

김 씨의 학력위조 의혹이 불거지며 공분이 높아가자 김 씨는 지난해 12월 26일 사과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김 씨의 사과에 진정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소셜미디어엔 남편 윤석열 후보에게 사과했다는 비아냥섞인 게시글과 패러디가 넘쳐났다. 

그런데 김 전 선대위장은 “내가 보기에 전반적으로 메시지가 괜찮았다”고 말했다. 또 “그간의 한 장애물이 제거됐다고 본다”며 기대감도 숨기지 않았다. 김 씨의 사과 회견 이후 봇물처럼 쏟아진 비난과 조롱을 감안해 볼 때, 너무 안이해 보였다. 

한편 윤 후보는 폭주하기 시작했다. 이재명 후보를 향해 “확정된 범죄자”, “같잖다”는 식의 수위 높은 발언을 거리낌 없이 내뱉었다. 아무리 수많은 선거를 통해 노련함을 닦은 김 전 총괄선대위원장으로서도 도무지 통제가 불가능한 행태였다.

김종인 전 선대위원장은 새해 벽두인 3일 “윤석열 대선 후보가 선대위가 해달라는 대로 연기만 잘하면 선거는 승리할 수 있다고 보장한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 MBC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김종인 전 선대위원장은 새해 벽두인 3일 “윤석열 대선 후보가 선대위가 해달라는 대로 연기만 잘하면 선거는 승리할 수 있다고 보장한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 MBC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이에 김 전 선대위장은 새해 벽두인 3일 “윤석열 대선 후보가 선대위가 해달라는 대로 연기만 잘하면 선거는 승리할 수 있다고 보장한다”는, 기념비적인 발언을 한다. 아마 이 발언은 오래도록 한국 정치사에 회자되리라 확신한다. 

윤 후보가 가만히 있을리 없었다. 모양새는 자진 사퇴지만, 사실상 윤 후보가 김 전 선대위장을 배제한 꼴이다. 

정치의 세계, 특히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한국 정치판이라면 김종인 같은 이도 실수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오만은 지적하고 싶다. 

앞서 적었듯 김 전 선대위장은 윤 후보가 결별하기로 마음을 굳히자 “국운이 없다”고 탄식했다. 국운이 없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윤 후보가 집권하지 못하면 국운이 다했다고 보는 건가? 아니면 자신이 배제되니 국운이 다했다고 보는 건가? 

아무리 좋게 이야기해도 김 전 선대위장은 닳고 닳은 정치브로커다. 이런 자가 정치판 주위를 맴돌며 ‘킹메이커’로 존재감을 과시한다는 거 자체가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한국 시민들의 정치의식은 이제 상당 수준에 올라와 있다. 노회한 정치 브로커의 잔꾀에 유권자들이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책사 제갈공명은 숱한 전투에서 남다른 책략을 과시했다. 하지만 그 스스로 오장원 북벌에서 자신의 책략이 다했음을 알고, 장렬히 죽음을 맞이했다. 

반면 ‘책사’를 자처하던 김 전 선대위장은 초라하게 퇴장하는 처지다. 물러날 때를 알지 못한 업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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