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기 전에
늦기 전에
  • 정준경 목사
  • 승인 2023.05.29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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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경목사의 우면산 아래서

가정의 달 5월입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5월을 보내는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 부모들은 자녀들을 생각하면 후회되는 것도 많고, 미안한 것도 많습니다. 자녀들도 부모님을 생각하면 늘 죄인이 된 심정입니다. 배우자에게 서운한 것이 많은 부부도 많고, 배우자가 짜증이 나는 부부도 많습니다.

소중한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지만 우리는 모두 허물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가정을 불행하게 만들어 놓고 살아갑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적이 필요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기적을 일으킵니다. 모든 것을 치유하고 회복시킵니다. 사랑은 표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알 수 없으니까요.

저희 아버지는 엄하신 분이셨습니다. 아버지는 외아들인 저에게 한번도 사랑한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늘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에게 한번도 칭찬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가 아버지가 반대하신 신학대학원에 입학한 다음부터는 저는 늘 아버지에게 불효자였습니다.

아버지는 20년 전에 췌장암으로 1년 동안 투병 생활을 하다가 주님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의식을 잃으셨다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바로 시골로 내려가서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왔습니다. 응급실에서 검사를 하더니 간성 혼수라고 했습니다. 간에 가스가 차서 의식을 잃으신 것입니다.

항문으로 약물을 넣어서 가스를 씻어내는 관장이라는 치료를 반복해야 의식이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의식이 없는 아버지는 주사기를 뽑아버리셨습니다. 할 수 없이 아버지의 두 손목을 침대에 묶었습니다. 아버지는 침대 위에서 몸부림을 치셨습니다. 의료진의 말을 듣지 않으셨고, 어머니와 누이들의 말도 듣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다 제가 아버지의 귀에 대고 상황을 설명해 드렸습니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몸부림을 치시던 아버지가 순한 양처럼 가만히 있으신 것입니다. 그날 이후로도 아버지는 여러 번 간성 혼수가 왔습니다. 그때마다 제가 병원 응급실에서 밤새도록 아버지를 간호했습니다. 의식을 잃은 아버지가 다른 사람의 말은 듣지 않으시는데 아들인 저의 말은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합니다.

그날 새벽에도 저는 병원 응급실에서 아버지를 간호하고 있었습니다. 관장을 몇 차례 반복하신 아버지는 의식이 반쯤 돌아오신 채로 침대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저는 간이 의자에 앉아서 졸고 있었습니다. 제가 졸다가 눈을 떴는데 아버지가 저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믿지. 내가 우리 아들 말은 믿지.” 이것이 의식을 잃은 아버지가 불쾌한 병원의 치료를 참으신 이유였습니다. 잠시 후에 아버지는 저에게 “아빠 때문에 네가 힘들어서 어떡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아빠가 힘드시죠. 제가 뭐가 힘들어요. 저는 괜찮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제 생애 처음으로 “아빠, 사랑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도 “나도 너 사랑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듣는 말이었습니다.

제가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며칠 전 주일에 소그룹 모임에서 한 집사님이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라고 했습니다. 집사님은 자기 집에 오신 아버지를 껴안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해놓고 어색해서 죽는 줄 알았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아들에게 “나도 사랑한다.”라고 말씀을 하셔서 정말 행복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저에게 “힘들어서 어떡하니?”라고 하셨을 때, 그 집사님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평생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행복해서 눈물이 났습니다.

그 후로 아버지가 간성 혼수가 오시고 의식이 반쯤 돌아왔을 때마다 우리 부자는 서로를 사랑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의식이 완전히 돌아왔을 때에는 한번도 서로를 사랑한다고 고백하지 못했습니다. 어색했기 때문입니다. 그해 12월에 아버지는 주님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맑은 정신으로 사랑한다고 한번도 말해보지 못한 것이 지금도 후회가 됩니다.

부모님도 아이들도 언제까지 우리 곁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늦기 전에 사랑한다고 고백해보세요. 기적이 일어납니다.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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