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자연', 길자연과 장자연
두 '자연', 길자연과 장자연
  • 곽건용
  • 승인 2011.05.23 17:58
  •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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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두 사람 모두 사랑해야 하나 방법은 달라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제가 고등학생 때 교회 학생회에서 여름 수양회 갔을 때의 일입니다. 그때 강사로 오신 목사님이 있었는데 그 분이 했던 설교를 비롯해서 다른 것은 다 잊어버렸지만 한 가지는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 분은 남달리 설교를 오래 하시는 분이었는데 이와 관련해서 자기가 설교를 '길고 자연스럽게' 한다고 해서 이름이 '길자연'이라고 하더군요. 이 분이 지금 뉴스에 오르내리는 바로 그 길자연 목사입니다. 지금은 나이도 들고 살도 쪘지만 그때는 30대의 젊고 잘 생기고 패기만만하고 설교 잘 하는 목사였습니다. 설교가 길긴 했지만 말입니다.

제목에서 말한 '두 자연'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 세계가 두 개란 뜻이 아니라 '자연'이란 이름을 가진 두 사람과 관련해서 이야기입니다. 오늘 얘기할 두 '자연'은 '길자연'과 '장자연'입니다.

길자연과 장자연은 이름 빼고는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길자연은 70대의 개신교 목사로서 서울의 한 대형교회를 담임하고 있고 '한국기독교총연합'이란 단체의 회장직에 세 번 도전 끝에 성공했는데 그만 그것이 돈을 뿌려 당선됐다고 측근 중 한 명이 '양심선언'(이걸 이런 이름으로 불려야 할지 난감하긴 하지만)했고 또 다른 누군가가 소송을 제기하는 바람에 법원으로부터 직무집행 정치 처분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선 무효가 된 셈입니다. 이 양반은 이래도 버티고 있는 모양인데 앞으로 일이 어떻게 될지 자못 궁금합니다.

이런 소동보다 길자연이란 이름을 세상에 더 널리 알린 사건은 이른바 대통령 '무릎 꿇리기 사건'입니다. 한국에서는 매년 국가조찬기도회란 것을 합니다. 개신교 국가도 아닌 나라에서 왜 이런 모임을 갖는지 모르겠지만 좌우간 이 기도회에는 대통령 내외도 참석하는 게 관례입니다. 대통령의 종교와 무관하게 말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국가조찬기도회가 열렸는데 이 기도회의 사회를 맡은 길자연 목사가 참석자 모두에게 통성기도를 하자며 모두 무릎을 꿇으라고 해서 대통령 내외도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 길자연 목사. ⓒ뉴스앤조이
그 사진이 보도되자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하는 게 뭐가 문제냐?'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대통령은 공인(公人)인데 어떻게 공적인 자리에서 특정 종교에만 해당하는 행위를 하느냐?'고도 합니다. 저는 여기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지만 오늘 설교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으므로 하지 않겠습니다. 한 마디만 하자면 이 사건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무릎을 '꿇은' 대통령 내외보다는 무릎을 '꿇린' 길자연 목사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한 마디로 공사(公私)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국가조찬 '기도회'지만 그것은 동시에 '국가' 조찬기도회인데 그 차이를 구별하지 못했던 겁니다.

한편 장자연 씨는 2년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당시 스물아홉 살이었던 여배우입니다. 근래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연예인들이 여럿 있었지만 장자연 씨가 화제의 인물이 된 까닭은 그가 남긴 유서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유서에서 자기가 연예인으로서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사실 이게 대단한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겨우 단역을 면한 조연 배우에 불과했습니다) 연예 관계자들은 물론이고 정관계, 재계, 언론계 사람들에게 억지로 술접대에 성접대까지 했다고 썼습니다. 그 때문에 한국사회는 발칵 뒤집혔고 과연 접대를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 검찰이 수사했지만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올해 장자연 씨가 다시 뉴스에 오른 것은 그녀가 친구에게 썼다는 편지를 한 TV 뉴스에서 보도했기 때문입니다. 이 편지에는 접대 받은 사람들에 대한 더 구체적인 정보가 있었다는데 필적 감정 결과 편지가 가짜로 밝혀졌고 경찰이 더 이상 수사하지 않겠다고 해서 덮이고 말았습니다. 다시 한 번 흐지부지된 것입니다.

좀 예민한 문제입니다. 한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죽었지만 최근에 대단히 화제가 되는 인물이기도 하거니와 두 사람 모두 직접적으로 신앙적인 교훈을 주는 인물도 아닙니다. 하지만 모름지기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화제가 되고 있는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는 시도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주제가 좀 껄끄럽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기억과 망각

사람은 기억하는 동물입니다. 만일 사람이 기억을 하지 못했다면 역사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역사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전통이란 생기지 않았을 것이며 전통이 없었다면 문명도 가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의식적으로 기억해서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사람이 갖고 있는 특성입니다.

반면 사람은 또한 망각하는 동물이기도 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 글이 국어책에 있었습니다. 사십 년도 더 지난 일을 기억하는 걸 보면 사람은 기억의 동물이란 말이 맞긴 맞나 봅니다. 어떤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갖고 여러 사람에게 대답을 듣는데 한 노인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망각이지. 암, 망각이고말고.'라고 얘기했습니다. 제가 그 때는 '망각'이란 말뜻을 알았을 리 없지만 그런 글이 있었다는 사실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망각'과 '기억'이 묘하게 공존하는 사건이랄 수 있겠습니다.

'망각은 신의 선물'이라는 니체의 말이 아니더라도 만일 사람이 아무 것도 망각하지 않고 모든 것을 기억한다면, 그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그 방면의 전문가가 아니라서 틀린 말일 수도 있지만 제 생각에 사람은 자기가 겪은 경험을 뇌 어딘가에 보관하고 있는데 특별히 그와 관련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그냥 거기 저장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와 관련된 사건이 생기면 '클릭'이 되어 그 일이 기억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예수께는 줄곧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숫자가 많아졌다가 줄었다가 했지만 적어도 그분 곁에 아무도 없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 무서운 십자가형을 당하셨을 때도 멀리서나마 그 분 곁을 지켰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 뭘 기대하고 그렇게 줄곧 예수를 따라다녔을까요? 예수께 뭘 바라고 그를 따랐을까 말입니다. 하긴 그분이 기적을 행하기도 했고 여느 랍비들과는 달리 권위 있고 특별한 말씀도 하셨으니 잘은 몰라도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은 들었을 겁니다. 그러니 세속적인 출세와 성공을 기대하지는 않았을지언정 위대한 재야 랍비 예수의 제자 정도는 기대했을지도 모르지요. 물론 그 중에는 권력을 꿈꾼 이도 있었겠지만 말입니다.

예수 일행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던 중 한 부모에게서 나온 형제인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이런 청을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영광의 자리에 앉으실 때 저희를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너희가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나 알고 있느냐? 내가 마시게 될 잔을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을 고난의 세례를 받을 수 있단 말이냐?" 이들이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예,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다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희도 내가 마실 잔을 마시고 내가 받을 고난의 세례를 받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편이나 왼편 자리에 앉는 특권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 앉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미리 정해 놓으셨다."

이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열 제자가 야고보와 요한을 보고 화를 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놓고" 말씀하셨습니다. "가까이 불러놓고"라는 짧은 말도 공연히 들어가 있는 게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매우 중대한 말씀을 하시거나 열두 제자 이외에 다른 사람은 듣기 원치 않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도 알다시피 이방인들의 통치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은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또 높은 사람들은 백성을 권력으로 내리누른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사이에서 누구든지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 (마가 10:42-45).

그때가지만 해도 제자들은 이 말씀의 뜻을 알아듣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까지도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다가 그분이 부활하신 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부활의 경험이 역설적으로 고난과 섬김의 말씀을 기억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그들은 깨달았습니다. 예수가 어떤 분이고 자기들이 어떤 길을 가게 될지를 말입니다.

제자들이 그때 또 기억해냈던 것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회당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이사야 53장의 말씀을 그들은 기억해내고 그 말씀이 다름 아닌 예수에 대한 예언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들려주신 이 소식을 누가 곧이들으랴? 야훼께서 팔을 휘둘러 이루신 일을 누가 깨달으랴? 그는 메마른 땅에 뿌리를 박고 가까스로 돋아난 햇순이라고나 할까? 늠름한 풍채도, 멋진 모습도 그에게는 없었다. 눈길을 끌 만한 볼품도 없었다.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퇴박을 맞았다. 그는 고통을 겪고 병고를 아는 사람,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고 피해 갈 만큼 멸시만 당하였으므로 우리도 덩달아 그를 업신여겼다. 그런데 실상 그는 우리가 앓을 병을 앓아주었으며, 우리가 받을 고통을 겪어주었구나. 우리는 그가 천벌을 받은 줄로만 알았고 하나님께 매를 맞아 학대받는 줄로만 여겼다. 그를 찌른 것은 우리의 반역죄요, 그를 으스러뜨린 것은 우리의 악행이었다. 그 몸에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를 성하게 해주었고 그 몸에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의 병을 고쳐주었구나……. 야훼께서 그를 때리고 찌르신 것은 뜻이 있어 하신 일이었다. 그 뜻을 따라 그는 자기의 생명을 속죄의 제물로 내놓았다. 그리하여 그는 후손을 보며 오래오래 살리라. 그의 손에서 야훼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이사야 53장)

그리스도교의 심장은 '사랑'과 '긍휼'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기관이 뭐냐고 의사에게 물으면 아마 그 의사의 전공이 뭐냐에 따라 대답이 달라질 것입니다. 심장을 전공하는 의사는 심장이라 할 것이고 폐를 전공하는 의사는 폐, 뇌를 전공하는 의사는 뇌라고 말하겠죠. 비전문가인 제 의견으로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기관은 심장입니다. 아무래도 몸 구석구석에 피와 에너지와 산소를 보내주는 심장이 제게는 가장 중요한 기관이고 사람을 살아 있게 만드는 기관 같습니다.

우리 몸의 심장에 해당하는 것이 그리스도교에는 무엇일까요? 무엇이 그리스도교의 심장입니까? 무엇이 그리스도교로 하여금 살아 있는 생명체가 되게 해줍니까? 그리스도교의 심장은 사랑과 긍휼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여기서 힘을 얻고 여기서 파생되어 나온 것들입니다. 그리스도교로 하여금 살아 있는 생명체 되게 만드는 것은 신조(信條)도 교리(敎理)도 아닌 사랑과 긍휼입니다. 신조와 교리가 사랑과 긍휼이라는 심장으로부터 피를 공급받지 못하면 그것은 공허한 문구에 불과하고 죽은 시체와 다름없어집니다. 그리스도교의 생명은 사랑이고 동정(同情 compassion)입니다. compassion은 말 그대로 같이(com) 아파하는 것(passion)입니다. 그리스도교가 남과 같이 아파하지 못할 때 그것은 더 이상 심장이 뛰지 않는 송장일 뿐입니다.

길자연과 장자연, 이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의미이긴 하지만 모두 동정을 느끼기 힘든 사람입니다. 길자연 목사는 '과연 이 사람이 목사인가?'라는 의문이 들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는 어떤 모임에서 자기가 회장이 되려는 이유를 설명하다가 "내가 갖지 못한 게 무엇이고 부러울 게 무엇이겠습니까?"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두 벌 옷도 갖지 말고 돈주머니도 갖고 다니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닐지라도 자기에겐 없는 게 없다는 말을 이렇게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이 목사라니 참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한편 장자연 씨도 우리를 곤혹스럽게 만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소속사가 시켜서 했다지만 술접대에 성접대까지 해가면서 연예인으로 살아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사랑을 줄 대상이 누구냐에 너무 마음을 쓰지 말라는 교훈을 당신 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는 간음 현장에서 붙잡혀 와서 군중들의 돌멩이 세례를 받을 위기에 처한 여인을 구해주셨습니다. 예수는 군중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군중들을 모두 물리치신 후 여인에게 "나도 너는 정죄하지 않을 테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만 따로 모아놓고 그들만 사랑하시고 구원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도 종교적으로 보나 세속적으로 보나 부끄러울 것 없는 의인들만 모아놓고 그들만 제자 삼지 않았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하나 같이 내세울 것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분은 죄인과 세리와 창녀의 친구였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많은 것을 망각하며 살더라도 이 사실만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는 낮은 데 있던 사람들보다 더 낮은 데로 내려가서 그들은 높이 들어 올리신 분이란 사실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길자연, 장자연 모두를 사랑합니다. 물론 두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은 달라야 하겠지요. 길자연 목사는 애정이 담긴 비판으로 사랑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도 사랑하기에 그를 비판할 것입니다. 물론 잘 되기를 기도하면서 말입니다. 장자연 씨는 비록 그녀가 이미 죽어 우리 곁에 없지만 더 이상 그녀를 부끄럽게 만들지 않음으로써, 그리고 그녀가 죽음으로써 세상에 드러내려 했던 불의한 일들을 명백하게 밝힘으로써 사랑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들을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곽건용 / 나성향린교회 담임

* 곽건용 목사의 3월 27일 주일설교를 일부 수정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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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장로 2011-05-29 05:54:51
여러 분들이 말씀을 나누어주셨는데 곽 목사님의 이 설교는 이만하면 나름대로 시사성이 있고 괜찮은 것 입니다. 개념 없는 성령충만이나 기복적이나 무당 굿판 같은 설교보다는 훨씬 좋습니다. 뭔가 불편하신 분들의 심정ㅇㄹ 이해 하는데, 신앙의 색이 좀 다르다고 해야 하나요? 즉 총신 출신 목사와 장신이나 한신 출신 목사님들과의 시각의 차이 아닐런지...

박종철 2011-05-27 14:23:24
저도 30여년 전 한 부흥회에서 길고 자연스러운 설교를 들은적이 있는데요...시무하는 교회(왕성교회)에서 기도원을 지으려고 땅을 샀는데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으로 팀스피릿 훈련부대가 지나가면서 길을 닦아줘서 땅값이 어머어마하게 올랐다는 얘기를 그야말로 설교랍시고 하더군요...그후로는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가 재작년말에 기독실업인모임에서 우연히 봤습니다..

박종철 2011-05-27 14:15:23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서는 않되는 거지만 테레비나 신문에서 보던 CEO들 사이에 있어서 그런지 넓직한 이마며 얼굴에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인상에서...목회자라가 보다는 "CEO의 포스"가 강하게 느껴지더라구요...전혀 뚱딴지 같은 얘기입니다만...대통령이 CEO형인 나라의 국민이나 목회자가 CEO형인 교회의 교인이나 불쌍하기는 매한가지인것 같습니다...정작 당사자들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말입니다...

박종철 2011-05-27 14:00:57
저도 30여년 전 한 부흥회에서 길고 자연스러운 설교를 들은적이 있는데요...시무하는 교회(왕성교회)에서 기도원을 지으려고 땅을 샀는데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으로 팀스피릿 훈련부대가 지나가면서 길을 닦아줘서 땅값이 어머어마하게 올랐다는 얘기를 그야말로 설교랍시고 하더군요...그후로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데 재작년말에 기독실업인모임에서 우연히 봤습니다..

댓글님들아 2011-05-27 13:33:10
내가 독해력이 떨어지는지 좋은 설교인데 왠 비방악플은 뭔지... 도대체 이글에 문학적, 신학적으로 뭐가 비방받을 만한 구석이 있는지 도대체 모르겠네...그교회 교인까지 모욕을 당해야 하는건지...본인이 그렇게 하나님 음성듣고 좋은 설교 듣고 다니시면 제대로 논리적인 비판을 하시던가 은혜를 끼치시던가 하시죠...밑에 댓글님들아 한번 토론한번 벌여 봅시다. 글 내용은 정확이 이해 하시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