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너희 뒤에는 우리가 있단다"
"얘들아, 너희 뒤에는 우리가 있단다"
  • 김종희
  • 승인 2007.07.02 12: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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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워싱턴 DC에서 열린 선교사 자녀 컨퍼런스

▲ 선교사 자녀 컨퍼런스가 6월 마지막 주간에 3박 4일간 워싱턴 DC에서 열렸다. 셋째 날 하루 종일 워싱턴 DC의 관광 명소를 둘러봤다.
목사 자녀들(Pastor's Kids)에게는 자기들만이 하는 독특한 마음고생이 있다.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교회에서 자기 모습과 학교에서 자기 모습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는 정반대의 모습을 스스로 확인하고는 놀라거나 남에 의해 발견되고는 부끄러워하기도 한다. 교인들의 과도한 시선과 학교 친구들의 은근한 비아냥거림도 작지 않은 고통이다.

교회와 가정에서 드러나는 부모의 이중적인 모습도 견디기 힘들다. 교인 자녀에게 해주는 것의 절반만이라도 내게 관심 가져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크다. 그런 마음이 때로는 반항적으로 표현된다. 특히 신앙생활을 제대로 안 해서 부모를 괴롭히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목사 자녀들은 목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또 다른 목회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정체성의 혼란은 웬만한 목사 자녀들이 사춘기에 겪기 마련이다. 그 시기를 잘 견디어내는 경우도 많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일그러진 삶을 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한 이러한 자녀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에 부모들은 자식을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해주려는 경우도 있다. 목사 부모가 자식에게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해주기 위해 교회에서 돈과 관련해 물의를 일으켜 교회가 몸살을 앓는 경우도 있다.

목사 자녀들 중에도 선교사 자녀들(Missionary's Kids)은 여기에다가 더 큰 고통이 추가된다. 부모야 자기가 좋아서 그 일을 한다고 하지만, 자녀들은 본인의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처음에는 말도 안 통하고 친구도 없고 제대로 된 교육·문화 환경도 없는 오지로 가서 청소년 시절을 보내야 한다. 부모들이 선교지를 돌보는 동안 방치된 자신들의 모습이 처량하기도 하고 부모에 대해 분노를 품기도 한다. 선교사들 역시 이런 자녀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 때문에 작지 않은 가슴앓이를 하곤 한다.

▲ 아침에 함께 모여 성경을 읽고 서로 기도 제목을 나누기도 했다.
PK, MK들만 따로 모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국에서는 PK, MK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전혀 없지는 않다. 정부의 예산까지 받아서 운영되는 프로그램도 있다. 그에 비해 미국의 한인 교회에서는 PK, MK에 대한 관심과 프로그램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런 점에서 미국에서 처음으로 열린 선교사 자녀를 위한 컨퍼런스는 의미 있다. 6월 27일부터 30일까지 워싱턴 DC에서 열린 컨퍼런스에는 탄자니아·러시아·중국·인도네시아·스리랑카·캄보디아·일본·네팔·타시켄트에서 70명 정도의 MK가 모였다. 이제 막 초등학교를 들어갈 나이에서 대학교 3학년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아이들이 한데 모였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또래 특유의 친밀감이 발동했다. 다양한 나라에서 왔기에 자기 나라 얘기를 주고받느라 식사 시간이 부족하다. 밤에도 잠을 자는 것보다 떠들고 장난치는 것이 더 즐겁다. 장난이 심해서 호텔 객실에 구멍을 낸 개구쟁이도 있다.

▲ 처음에는 서먹서먹하더니 하루 이틀 지나면서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언제 어디서든 놀기에 바쁘다.
▲ 마지막 날 예배에서 성찬식을 했다. 주님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빵과 잔을 나누면서 주 안에서 형제애를 다졌다.
▲ 헤어지는 시간이 가까워오자 둘씩 셋씩 짝을 지어 핸드폰 카메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작별 인사를 하더니 결국 눈시울을 붉게 물들이고는 부둥켜안고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3박 4일의 일정이 끝나고 헤어질 시간이 임박했다.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고 기도 제목을 교환한다. 둘씩 셋씩 짝을 지어 핸드폰 카메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작별 인사를 한다. 그러더니 결국 눈시울을 붉게 물들이고는 부둥켜안고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동병상련이라고 할까. 부모의 사역지는 다를지언정 MK라는 동일한 정체성이 이들을 진하고 단단하게 묶어준 것 같다. 처음에 이곳에 올 때는 부모에게 억지로 떠밀리다시피 왔다가, 다른 친구들과 얘기하는 가운데 부모를 더 이해하게 되고,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는 친구도 있었다. 힘들게 고생하는 부모에게 미안하다면서 선교사들과 자녀들을 위해서 계속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는 친구도 있었다. 강연이나 간증을 들으면서 우리가 얼마나 존귀한 존재들인지 깨닫게 되었고, 이런 기회를 만들어주어서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친구도 있었다.

네팔에서 사역하다가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부모를 따라 버지니아에서 생활하고 있는 박하임 양(13)은 네팔보다 미국에서 사니까 좋지 않으냐고 했더니 “네팔 사람들은 참 착해요. 빨리 돌아가서 네팔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요” 하고 대답해 기자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이번 컨퍼런스를 위해서 여러 사람들이 헌신했다. 어깨동무사역원(대표 이승종 목사)에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했다. 70명가량의 MK들을 위해서 그 이상의 자원봉사자들이 미주 곳곳에서 몰려와서 MK들이 조금도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섬겼다.

메릴랜드 벧엘교회를 다니는 박주연 씨(21)는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MK에 대해서 잘 몰랐는데 이번에 많이 배웠어요. 아이들을 보니까 저마다 작은 상처 하나쯤은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나이에 비해, 제 주변에 있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생각하는 것이 훨씬 성숙해요.” 총신대 신대원 교수의 아들인 김현곤 씨(22)는 “나도 PK이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에요. 어릴 때는 몰랐는데 아이들을 보면서 ‘아, 나에게도 이런 상처가 있었구나’ 하는 걸 이번에 느꼈고, 그런 묵은 상처들을 하나님께 고백했어요.” 박찬 씨(23)는 아버지가 우즈베키스탄에서 사역하고 있는 MK다. “지역마다 대학생 MK 모임이 있는 걸 압니다. 하지만 청소년 모임은 처음인 것 같아요. 선교지에서 보내는 사춘기는 정말 힘듭니다. 그래서 청소년들을 위한 이런 컨퍼런스는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들 자원봉사자들은 내년에 다시 열리면 꼭 참여하겠다고 큰소리쳤다.

▲ 자원봉사자들과 강사들도 함께 지내면서 더욱 가까워졌다.
재정은 열방을 섬기는 사람들(국제대표 양국주)이 맡았다. 수만 불이 드는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교회들을 방문해 후원을 요청했다. MK들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지내도록 해주려고 워싱턴 덜레스공항 힐튼호텔을 숙소와 행사장으로 잡았다. ‘아이들을 뭐 그리 비싼 데에서 재우냐’는 일부 목사들의 타박도 들었지만, 최선을 다해서 이들을 섬기고 싶었고, 자신들이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셋째 날에는 하루 종일 워싱턴 DC의 명소들을 관광했다. 풍성한 식사도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출은 다 되었지만 돈은 아직 반도 안 들어왔다. 행사는 끝났지만 마음고생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에도 후년에도 이 모임을 계속 가지려고 한다. 우선은 이번에 참여한 MK들이 그걸 바란다. 그리고 한국 교회와 세계 선교를 위해서 이 일은 꼭 필요하다. 이승종 목사는 “그동안 여러 선교지를 다녀 보았지만 선교사 자녀 문제가 이슈로 안 나오더라. 이들의 교육·정서·돌봄·문화 이해·사회 적응 등에 대해서 한국 교회가 무관심하다. 이번 행사를 통해서 작게라도 선교사 자녀들을 가슴으로 품어주자고 했다. 이들을 축복해주고 용기를 주고 싶었다. 그들 배후에 한국 교회가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너희에게 동무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처음 열린 행사이기에 부족한 점이 몇 가지 보였다. 너무 많은 것을 주고 싶었을까. 강연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었다. 아이들끼리 교제하거나 선배 MK들과 만나는 프로그램, 구체적인 문제를 갖고 상담하고 치유하는 전문 프로그램이 보강될 필요가 있어 보였다. 또 재정도 상당 부분 한국 교회에 의존했는데, 미국에 있는 한인 교회들이 재정으로나 자원봉사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필요도 있어 보인다. 물론 돈을 내면서 강의 한 시간 요청하는 몰지각한 이들 때문에 쉽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튼 한 단계 수준이 올라간 내년 MK 컨퍼런스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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