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훈련, 부려먹기 위해? 보내기 위해!
제자훈련, 부려먹기 위해? 보내기 위해!
  • 손경호
  • 승인 2011.05.27 14:4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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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기윤실 호루라기, 예수님이 원하시는 제자훈련이란

한 목회자가 운영하는 어린이 캠프 홍보물을 보고 적지 않게 놀랐다. 어려서부터 히틀러의 사상을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며 히틀러가 마지막까지 믿을 수 있었던 유일한 조직 운운하며 히틀러식 훈련을 강조했다. 히틀러식 훈련으로 그리스도를 위해 끝까지 충성하는 사람들로 만들겠다는 의지였다. 참된 제자훈련의 동기를 깊이 생각해 보자.

한국 교회의 양적 부흥의 배경에는 제자훈련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제자훈련의 파워와 영향력은 70년대 이후 교회부흥의 절대적인 공로자였다. 그러나 제자훈련으로 양산된 고급인력을 어떻게 사용해 왔는가? 개교회를 살찌우고 헌신보다는 힘을 앞세우는 메가파워를 형성하는 데 쓰이고 있지는 않는지.

본래 제자훈련의 목적은 단일 교회 성장에 집중 투자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교회가 어느 정도 성장해야 큰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은 이해한다. 그러나 그들의 욕심을 채울 수 있는 성장의 만족점은 끝이 없다. 이들이 훈련한 사람들은 단일 교회와 동일 체제를 위한 소비인력일 뿐이다. 지교회를 만드는 이유도 다른 체제의 교회들을 은근하게 위협(?), 흡수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제자훈련을 거친 사람들은 종종 독선과 우월의식이 심하다는 인상을 준다. 다른 사람들이 해내지 못한 일을 나는 할 수 있다는 특수한 생각으로 깊이 세뇌된 것 같다. 교회가 필요하지 않다 싶은 곳을 비집고 들어가 간판을 내건다. 그들의 논리는 다른 사람과 다를 뿐 아니라 특별하다는 선전이다.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느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라는 성경말씀과는 반대다.

엘리트 신앙훈련으로 다져진 그들은 어디서나 자신들의 특별함을 주장한다. 다른 이들의 사역은 비효율적이며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무시한다. 사도들이 세운 복음전파의 중요한 뼈대를 허물어버리는 일도 쉽게 해 버린다. 초대 교회 때는 복음의 터를 닦아놓은 곳에 다른 교훈의 터를 다시 닦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한 영혼의 귀하게 여기며 안쓰러울 정도로 애쓰는 작은 교회 사역자들에게 위협 대상이 되는 제자들을 키우는 것이 훈련의 목적은 분명 아닐 것이다.

다시 가르쳐야 한다. 조직과 과정에 세뇌되어 생명력 있는 헌신이 무엇인지 모르는 그들에게 죽어야 사는 예수님의 방식을 가르쳐야 한다. 조직이 전무하며 정교하게 짜인 훈련 과정이 없어도 몸으로 때우는 헌신자들을 키워야 한다. 예수님은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주머니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고 하셨다.

현대판 제자들은 여행을 위해 너무 무겁고 값비싼 것들을 갖춘다. 돈이 있어야 훈련 받을 수 있으며 환경이 뒤따라야 과정을 마칠 수 있다. 제자훈련으로 성공한 교회는 부자들이 많다. 엄청난 재정도 순식간에 모금할 수 있는 기동력이 있다. 그러다보니 단기 효과를 보려고 거대한 자금을 투입함으로써 재정을 낭비한다. 복음을 위해 훈련받은 노하우를 엉뚱한 데 이용하여 자금 챙기는 방법을 익혔기 때문이다.

이제는 보내기 위해 제자들을 양성시켜야 한다. 붙잡아 두고 끝까지 부려먹을 사람들은 훈련이 필요 없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교회는 훈련된 제자들을 우리 안에 가두어두지 않는다. 비우기 위해 훈련하며 보내기 위해 가르친다. 남김없이 보내신 예수님께서는 초유의 대형 교회를 하늘나라에 세워 가시기에.

손경호 / 보스톤성령교회 담임목사

이 글은 LA 기윤실의 칼럼 코너인 기윤실 호루라기에 실린 것으로, LA기윤실의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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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oh 2011-06-06 01:05:05
I have known Rev Sohn Kyung Ho and It has been my great joy that he stayed in truth all along the last two decades. It is my pleasure to see his writing in this place. I wish God richly bless that he continue to walk in truth as bef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