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주일과 월요병이 무슨 상관?
성령강림주일과 월요병이 무슨 상관?
  • 셰인 클레어본
  • 승인 2011.06.14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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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셰인 클레어본, '나는 '불'을 사랑하는 기독교인이다'

지난 주 전 세계 기독교인들은 가장 성스러운 날 중 하나인 성령강림절 예배를 드렸다. 펜테코스트(Pentecost, 성령강림절)는 50일을 뜻한다. 성령강림절은 부활 후 7번째 주일을 기리는 날이다. 이 날은 또 교회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다. 성령이 초대 교회에 불처럼 내려온 날이다. 그래서 성령강림절에 많은 교인들이 불을 상징하는 빨간 색 옷을 입고 예배를 드린다.
 
그런데, 성령강림주일과 월요병은 무슨 상관이 있을까? 2000년 전에 있었던 이런 종교적 사건이 다원주의, 후기 기독교 현대 사회랑 무슨 연관이 있기는 한 걸까?
 
난 엄청 많다고 말하고 싶다. 이유는 이렇다.
 

 

▲ 셰인 클레어본. (출처 : 심플웨이)

내 편견 하나를 고백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해보자. 난 그저 기독교인이 아니다. 나는 "불"을 사랑하는 기독교인이다. 난 서커스 학교도 다녔다. 나는 불을 삼키고 불을 뿜고 불로 곡예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아래에 동영상도 달아놨으니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난 태생적으로 성령강림절을 좋아한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성령강림절에 일어났던 일은 그냥 불보다 훨씬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2000년 전 초대 교회에 모였던 사람들이 불의 혀를 가지고 방언을 터뜨린 사건을 단순히 말하는 날도 아니다.

 

성령강림일에 일어났던 정말 중요한 일은 서로 다른 무리들이 서로를 이해했다는 점이다. 그 사건은 바로 성령이 그들 머리 위에 임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언어와 출신과 국가가 다른 사람들이 모여 화합을 이룬 신성한 순간이었다. 이 화합이야말로 지금 우리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성령강림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살피기 위해선 우리는 바벨탑 사건에 대해 먼저 살펴봐야 한다. 그림으로 치자면 배경 화면 쯤 되겠다. 성경에 의하면 지금 쓰이는 6,000개 이상의 언어가 분화하기 시작한 지점이 바벨탑이었다. 아마 예전 주일 학교에서 배운 바벨탑 이야기를 기억할지도 모르겠고, 밥 말레이가 부른 <바빌론 시스템>이 귓전에 떠오르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처음에 세상에는 언어가 하나뿐이어서, 모두가 같은 말을 썼다"(창 11:1). 아마도 초창기 인류는 자기 자신의 힘에 도취되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하늘에 닿는 탑을 쌓겠다고 나섰다. 이야기 자체가 끔찍해보이지는 않는데, 성경은 그 탑을 인간의 재주를 우상화한 것으로 봤다. 그들이 "그들의 이름을 날리기 위해"(창 11:4) 쌓은 탑이었다.
 
하나님에게 큰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 이야기는 하나님이 탑을 무너뜨리고 인간들을 흩어버리는 것으로 흘러간다. 인간에게 겸손을 가르치고 다시 땅으로 내려 보낸 것이다.  이 대목을 잘 살펴보면 중요한 발견을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흩어 놓으면서 각자 다른 말을 하게 만들었다. 지껄이다라는 뜻을 가진 배블(babble)도 여기서 나온 말이다. 이 이야기는 힘에 대한 중요한 해설이 됐다. 성경 속의 이야기는 "바빌론의 몰락"으로 마무리 된다. 제국적 힘에 대한 본질적 상징과 영화로운 세상이라는 거짓된 허상의 대표자였던.
 
왜 성령강림일의 의미를 되새기는 데 바벨탑이 중요할까? 성령강림일은 바벨탑 건축 계획의 대척점에 서있는 상징이다. 사도행전 2장에 따르면 2000년 전의 성령강림일에 "세계 각국 사람들"이 모였다고 쓰여 있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심지어 십여 개 국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적기도 했다. 큰 나라, 작은 나라, 유대인, 비유대인, 도시, 시골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은 전 지구를 대표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는 성령이 그들에게 왔다
 
그 다음에는 일어난 일은 모두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말을 이해하게 됐다는 것이다. 성경 본문은 말하는 사람의 대부분이 "갈릴리 사람"이었지만, 타 지방 출신들의 귀에 그들의 지방 말로  들렸다고 적혀있다.(행 2:6)
 
어떤 신학자가 "갈릴리 사람"이란 표현이 산간벽지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라고 했다. 산간벽지에 살다보니 사투리도 굉장히 심해서 보통 사람들은 알아듣기도 힘들었다고 본 것이다. 테네시 주 촌뜨기인 나도 첫 성령강림일에 모인 사람들이 촌사람이었다니 그게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갈릴리 사람들은 남들이 보기엔 교육도 제대로 못 받고 촌스럽고 개화가 덜 된 인물들이었으리라. 사정이 그러니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이 거기서 "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라고 의문을 품는 것도 당연했다.
 
여하튼 설교자가 사투리를 쓰던 표준말을 구사하던,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것이 스와힐리어였든 중국어였든 일본어였든 간에 요점은 이것이다. 모두가 자기가 쓰는 말처럼 그 말을 알아들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한 개의 언어를 쓰며 높은 건축물을 구상했던 바벨 건축 계획과는 대척점에 서 있었다. 바벨탑에서 하나님은 허세부리는 인간들을 흩어버렸다. 그리고 성령강림일에는 하나님이 흩어진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모았다. 사람이 만든 "하나"의 공동체가 아니었다. 같은 말을 쓰는 공동체도 아니었다. 그러나 성령이 만든 공동체였다.
 
그들은 바로 하나님의 영이 새로 주신 표식이었다. 마치 DNA가 다 다른 것처럼, 지문이 다 다른 것처럼 창조된 그대로 다양성을 가지고 있는 공동체. 하지만 이 공동체는 서로 다른 가운데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공동체요, 서로를 이해하는 공동체이다.
 
나는 랍비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제국이라는 것은 같은 것을 만들어내는 속성이 있다고. 동전이나 아파트나 건물이나 죄다 똑같은 모양으로 짓는 것이다. 획일화가 제국의 표상이라면 다양성이야말로 하나님 창조의 표식이다.
 
사실 현대 교회도 화해 문제에 대해선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
 
성령강림절을 맞아 우리는 다양함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상기한다. 하지만 성령을 통해 "한마음 한 뜻"이어야 한다. 일치는 획일을 의미하지 않는다. 화음을 이루는 것과 개성을 지운 동일화는 같은 의미가 아니다. 사실 화음이라는 것은 다른 목소리가 많이 나야 이루어지는 것 아닌가. 초대 교회에는 그런 다양한 소리가 있었다.
 
성령강림일 만큼 중요한 것은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이다. 초대 교회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 모두를 함께 나누기 시작했다. 예전의 적은 친구가 되었다. 사람들은 칼을 놓고 십자가를 들었다. 사도행전은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행 4:34). 공동체의 모두는 상대방의 짐을 함께 짊어지고 손을 잡았다. 교회 탄생의 표식 중 하나는 교회가 자기를 버리는 사랑과 가진 것을 포기하는 급진적 공동체가 되어 가난을 종식시켰다는 점이다. 그들은 화해의 공동체였다. 그 곳에는 "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갈 3:28). 그들은 바로 새로운 "가족"이 된 것이다.
 
폭력과 인종차별과 증오로 벌집이 된 세상에서 바라보는 성령강림일의 비전은 우리에게 이 상태를 정리하라고 하기 보다는 좀 더 큰 꿈을 꾸길 원한다. 처음부터 만들 수 있었던 세상, 아니 만들어졌어야만 했던 세상의 모습을 말이다. 우리는 아직도 교회 안에서조차 인종차별과 분열의 지배를 감지할 수 있다. 초대 교회가 보여준 비전은 여전히 미완성인 상태다. "인종 간 분리가  가장 되어 있는 시간은 주일 오전 11시"라고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말했다. 하지만 성령강림일은 우리에게 인종차별과 인종분리라는 상처를 치유해주시는 하나님의 면모를 알려주는 날이다.
 
화해와 다양성의 비전에 영감을 얻어 전 세계 각국의 친구들이 "국경없는친구들" 운동을 이번 주에 시작한다. 성령강림일에 우리를 감쌌던 성령을 내가 일하는 월요일로 모시고 오는 더 좋은 방법을 잘 모르겠다. 우리가 함께 나눌 수 있는 것들을 가지고 모이는 것이 흩어지는 것 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묶는 단체가 "국경없는친구들"이 될 것이다. 이 운동은 기독교인도 무슬림도 유신론자도 무신론자도 함께 우정을 쌓아가는 단체가 될 것이다. 그 우정이 세계를 평화로 인도하기를.

국경없는친구들 웹사이트: www.friendswithoutborders.net



글·셰인 클레어본  / 번역·김성회 기자
심플웨이의 창립 멤버이고 활동가이며 영성가인 셰인 클레어본은 이번 와일드구스축제의 주강사로 나설 예정이다.
*This article originally appeared at www.redletterchristians.org and is being reprinted here by permission.
http://www.redletterchristians.org/pentecost-sunday-and-another-manic-mon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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