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 영성 파괴하는 7가지 요소'
'공적 영성 파괴하는 7가지 요소'
  • 이학준
  • 승인 2011.07.04 23:50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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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한국 교회 패러다임을 바꿔라(2) 한국 교회 결박하고 있는 세력들

뉴브런스윅신학원의 이학준 교수(신학 및 윤리)는  ‘공적 영성’의 회복이 한국 교회 문제 해결의 핵심이라고 단언한다. 공적 영성의 결여가 이기적인 기복신앙을 낳고, 자기 주장만 강조하는 소통불능의 그리스도인을 양산했다는 것이다. 또 한국 교회가 사회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성도들 역시 책임 있는 시민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도 공적 영성의 부재가 낳은 결과로 봤다. 이학준 교수는 공적 영성을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안한다. 한국 교회에 만연한 기복주의, 개교회주의, 이분법적 사고를 뛰어 넘는 성서적 창조론과 구원론,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 이성과 신앙, 칭의론과 성화론을 엮어내는 통전적인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주뉴스앤조이>는 앞으로 이학준 교수의 공적 영성에 대한 문제 제기를 6차례에 걸쳐 나눠 실을 예정이다. (편집자 주)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다양한 시도를 통해 한국 교회의 위기 상황에 대처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구도자 예배, 열린 예배들을 중심한 문화 사역이 가장 대표적이라 볼 수 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전통적인 예배당의 모습을 대중에게 친근한 현대식으로 개량하고, 엄숙하고 경건한 찬양대보다 현대식 악기로 무장한 찬양단이 활기차고 경쾌한 복음송을 앞세워 예배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첨단 정보통신 장치와 기법들을 도입하여 현대적 문화 코드에 익숙한 사람들의 기호에 맞춰 예배를 재구성하거나, 또 교회 본당 주변에 선교관과 교육관뿐 아니라 사회복지관이나 도서관과 서점이나 카페 등을 건축하여 이웃에 친근한 교회로 자리매김하고자 합니다. 

위기 상황에 대한 한국 교회의 반응

▲ 윌로우크릭교회의 자체보고서인 .
이런 시도들이 교회로 하여금 오늘의 변화하는 문화를 이해하고 이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면에서 한국 개신교의 적합성 위기의 해결에 일정 부분 설득력을 갖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방법이 얼마나 한국 교회의 정체성 위기, 즉 신앙의 본질 회복에 도움을 줄지는 의문입니다. 사실 이 모델은 이미 윌로우크릭교회의 자체 보고서인 <Reveal>에서 거론되고 있는 바와 같이 개교회의 유지나 성장에는 일시적 도움을 줄지는 모르나 성도들의 영성의 지속적인 성장과 성숙에는 큰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 밝혀 졌습니다. 따라서 이들이 말하는 문화 사역이란 교회의 문화적 취향을 바꾸는 데 그치기 쉽고 복음의 깊은 본질적인 가치와는 얼마든지 무관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구도자 중심의 예배를 추구하는 교회와 목회자들의 경우, 초점이 대부분 '어떻게 하면 교회에 더 많은 사람들을 모을 것이냐'에 있지, 성도 개인으로 하여금 참된 하나님나라의 제자도의 삶을 살게하는 데 목적을 두지는 않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구도자 중심의 예배가 프로그램들이 교회를 찾아오는 개인들의 욕구와 흥미와 관심을 충족시켜주는 데 끌려가기 쉽습니다.

개인의 욕구와 흥미와 관심의 기저에 깔린 더 근본적 욕구와 영적인 고민들 및 사회의 고질적 병리 현상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단지 심리적이고 사적인 영성을 통해서 사람들을 만족하게 하는 경향이 농후합니다. 그런 교회들은 예배를 마치 방송의 오락프로그램이나 스포츠, 여가 등이 사회 안에서 수행하고 있는 역활과 유사한 것으로 전락시켜서, 많은 경우 개인의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평안과 양육에 목회적 초점을 맞춥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설령 치유가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개인적 치유일 뿐 더 근본적으로 그런 병리현상을 일으키는 제도와 문화에 대한 비판으로는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것은 복음의 본질에 못 미치거나 오히려 배치될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 개신교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구도자 예배와 같은 기술적 대응이 아니라, 복음의 근본 가치에 바탕을 둔 패러다임의 변화입니다. 여기서 교회의 기술적(기교적) 대응이 미시적이고 기능적인 부분의 조정만을 통해 문제 해결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근본적인 대응이란 지금까지 해오던 방법들이 더 이상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해결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해오던 통상적인 방법과 가치체계와의 철저한 결별과 함께 전혀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즉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패러다임은 공적 영성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라야 합니다. 

공적 영성은 다음 편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기독교 영성 속에 담겨있는 진리성, 보편성, 소통성을 말합니다. 십자가의 사건은 세상이 그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scandalous mystery)이지만, 그 메시지와 목적은 아가페와 샬롬이라는 가장 공적인 것입니다.  죄로부터 회개하여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바로 이 공적 코드가 우리 신앙DNA 속에 각인된다는 것입니다. 이 보편성(공공성-publicity)은 하나님의 신비성, 친밀성과 반대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삼위일체 안에서 하나님과의 친밀성은 보편성을 강화시켜줍니다.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와 이웃을 동시에 사랑하는 공적 사람으로 자라갑니다. 

한국 교회가 위기에 직면한 이유는 바로 우리 신앙을 건강하게 하는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공적 요소가 우리 영성과 교회 사역에서 점점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운 일제의 핍박과 한국전쟁을 거치는 동안 형성된 종파주의적 신앙 속에서 불가피하게 내세지향적 또는 개인경건주의 윤리관을 강화시켜 온 한국 교회는 이제 경제개발과 편승해서 받아들인 부와 번영의 신학으로 인해 그 개인 경건성과 하나님에 대한 친밀성 마저 이제 병들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수적 성장 위주의 사역을 오랜 동안 펼친 결과, 한국 교회는 또한 자신도 모르게 한국의 전통문화 속에 잠재해 있었던 여러가지 비복음적 요소들(기복주의, 권위주의)의 영향을 깊히 받게 되어, 기독교 고유의 특징인 역사성과 사회성, 즉 공적 영성은 더 희박되게 되었습니다.

정리한다면 한국 개신교 역사의 흐름 속에서 외적·내적인 요소 모두가 공적 영성의 결여를 강화해주는 결과를 가져다주고 말았으며, 한국 교회는 여러 가지 증상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신학적 깊은 성찰을 회피해온 결과 오늘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 교회의 공적 영성을 억누르거나 앗아가는 세력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한국의 기복주의와 미국 교회에서 들어온 소위 ‘긍정적인 사고방식’번영의 복음(Prosperity Gospel)의 영향이 짝을 이루어 한국 교회 강단의 중심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1. 기복주의

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 개신교 내의 기복주의는 한국의 전통적인 무속신앙의 숨은 영향, 미국 교회에서 들어온 소위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방식’, 교회 성장주의, 번영의 복음(Prosperity Gospel)의 영향이 짝을 이루어 한국 교회 강단의 중심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기복주의 문제점은 개인의 물질적이고 가시적인 축복을 절대시하는 반면 하나님을 수단화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성도의 삶과 가치의 중심에 서 계시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복을 가져다 주는 도구로 전락하는 게 결정적인 문제입니다.

2. 가족주의 : 정(情)과 연(聯)의 문화

한국 사회의 정과 연의 문화가 한국 교회 내부에 깊이 침투해 있다는 것은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니다. 혈연과 지연, 학연의 고리들이 노회와 총회의 여러 의사결정 과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어떤 교회들의 경우 교회가 지인들과 가족들을 중심으로 운영됨으로써 하나의 유사 가족주의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국 교회는 스스로 정실과 지역주의 등을 뛰어넘고, 지연, 학연, 혈연적 관계를 넘어 여러 배경의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음을 보여주는 참된 교회관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3. 개교회주의

한국 개신교는 교회의 근본적인 사명과 임무보다는 개교회 자체의 외형적 성장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같은 개교회주의는 개교회가 교인들의 신앙생활과 가치관의 중심을 차지해 버려서 성도들의 에너지들과 열정을 개교회 안으로 축소, 제한해버릴 위험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습니다. 개교회주의에 빠진 교회들은 예배의 신비에서 얻는 영적인 힘과 종교적 경험들을 성도들의 삶의 다양한 현장과 연결시켜주거나, 기독교 기관들을 통한 사회 변화의 동력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그 체험의 에너지들을 개교회의 또 다른 성장을 위한 계기로 사용하기에 급급합니다. 이렇게 교인들 삶의 대부분이 오로지 예배당 중심의 종교 생활에 제한되어 있는 동안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신앙의 경건성과 전문성을 가지고 빛과 소금이 되어야 평신도 일꾼들은 점점 고갈되고 있으며, 그 결과 우리 사회의 공적 영역에 개신교의 위상과 영향력은 약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4. 성장 논리와 우상 숭배

보통 한국의 개교회주의는 ‘교회 성장’으로 표출되어 왔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성장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이라기보다는 성도 수와 헌금의 증가를 말합니다. 성장이 축복의 기준이 됩니다. 또 여기에는 교회가 성장해야 힘이 생기고, 힘이 있어야 일을 할 수 있다는 식의 힘의 논리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를 위해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게 됩니다. 성장논리에 매몰된 교회들은 세상 기업의 경영 논리들과 리더십 모델을 신학적인 점검없이 앞다투어 받아들입니다. 성장과 지배와 힘의 논리는 사회적 다윈주의(Social Darwinism), 즉,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논리입니다. 이 논리들에 사로잡혀 있는 교회는 아무리 여러 종교적인 틀과 종교 언어로 치장한다고 해도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힘과 부를 섬기는 것이 되고 맙니다. 

5. 이분법적 사고 : 교회와 사회의 분리

이분법적 사고란 세상을 신앙과 적대시하는 데서 비롯된, 교회와 세상, 현세와 내세, 신앙의 영역과 비신앙의 영역을 첨예하게 나누는 사고방식을 말합니다. 이분법적인 사고는 하나님의 창조의 선함을 부인하고 우주와 사회 속에서의 하나님의 주권을 부인하는 중대한 신학적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이분법적 사고는 한국 개신교의 사회성을 퇴화시켜 한국사회 안에서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고 활동해야 할지, 시민사회에 어떻게 관계하고 협력해야 할지를 모르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교회 사역을 지극히 국부적인, 즉 교회 내부적인 것에 제한시켜 버렸습니다. 이분법적 사고 안에서 교육받은 성도들은 세상에서 자신들의 올바른 역활과 위치를 선정하지 못하고 소극적이고 피동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즉 사회생활을 하는 이유가 세상 사람들을 전도하거나, 또는 교회 선교에 필요한 물질을 얻는 피상적인 종교적 목적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세상을 경계하고 적대시하는 이분법적 사고는 개교회 내부의 단결과 유대를 강화시키고 교인들의 신앙 정체성을 교회와 연결시키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이 교회가 소수의 핍박받는 종교일 때는 효과적이지만, 이제 교회가 막대한 인적·물적 자원을 가지고 그 구성원들이 사회의 여러 기관과 계층에서 지도적 역활을 감당하고 있으며 따라서 높은 수준의 사회적 책임이 교회에 요구되는 시대에는 적합하지 못합니다.

6. 이성에 대한 경시

일반적으로 한국 교회는 이성의 역활을 터부시하고 경계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한국 교회 안에서 신앙의 초월성은 종종 비상식이나 몰이성과 혼돈되고 오해되어 성도들로 하여금 삶에 대한 건전한 판단과 분별력을 길러주는 기회를 빼앗아 버렸습니다. 곧 감성과 직관과 직통 계시만을 중시하고 이성의 바른 사용을 통한 냉철한 신학적 판단은 경시하니 허상과 실상,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능력이 미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에 유달리 많은 이단이 난무하는 이유는 바로 개신교가 성화된 이성을 올바로 사용하여 정당한 신학적 비판을 하는 것을 경시하고, 그저 영적이고 초월적인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전혀 검증되지 않은 무분별한 권위를 부여한 데서 빚어진 일입니다. 다양하고 복잡적인 사회일수록 또 다문화 사회일수록 시의 적절한 담론의 형성과 공동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바른 이성의 사용이 요청됩니다. 신앙 안에서의 이성의 바른 자리에 대한 이해와 이의 사용없이는 한국 개신교는 한국 사회 속에서 선도적이며 계몽적인 역활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7. 단순 논리주의

한국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진리의 복합적이며 상호 유기적인 측면들을 무시하고 모든 진리를 한두 개의 원리로 축소 또는 단순화시킴으로써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고민과 필요에 창조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회 구조와 실천이 상대적으로 미분화되었거나 또는 교회가 핍박을 받는 상황에 일을 때에는 뜨거운 열정과 단순한 신앙 원리에 기초를 둔 헌신과 방법론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합화, 전문화된사회 안에서 교회가 상당한 지분을 갖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 때에는 과거의 단순한 논리를 기초로 한 실천은 위험합니다. 사회는 오히려 교회가 보유하고 있는 정신적·인적·물적 자원의 양에 비례해서 사회적인 책임과 지도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복잡한 사회 현상을 심도있게 분석하고 비평하며 그 기반 위에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만큼의 복음과 현장을 연결하는 해석적 능력이 필요합니다. 신앙을 단순 논리로 접근하는 사고방식 이면에는 더 이상의 영적 성숙을 포기한 채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잣대의 크기 안에다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하고 가둬두려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초월적인 역사를 빙자하여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방기하거나, 인간의 순수한 동기와 열정을 앞세워 마땅히 해야 할 분별의 과정을 생략해서는 안 됩니다.

▲ 한국에서 열린 모 부흥회에서 금이빨이 나도록 기도하는 참가자들.
신앙 본질 잃고 사회적 적합성 상실한 한국 교회

위에 언급된 세력들은 지금 한국 개신교가 왜 신앙 본질을 잃어가고 그 사회적 적합성을 상실해가고 있는지 잘 보여 줍니다. 이들 세력들이 교회를 지배한 결과, 점점 이기주의, 아집, 독선, 물신숭배 등이 교회에 자리잡고, 교회는 점점 시민사회와 소통하는 능력은 물론 사회내의 영적 도덕적 리더쉽의 능력을 잃어 버리게 되었습니다. 이런 세력들은 안으로는 개인이나 일개 집단의 사적 이기적 목적을 종교적이름으로 추구하게 하고 밖으로 사회와 소통하는 능력을 배양해주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무서운 것은 이런 세력들이 교회 내의 정서와 문화 내에 깊히 들어와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한국 교회의 갱신과 변화는 이런 세력들에 대한 냉철한 비판은 물론, 이런 세력들을 대체할 수 있는 성서적 비전과 가치, 그리고 이를 오늘의 현장 속에 제대로 담을 수 있는 새로운 신앙 패러다임을 필요로 합니다. 즉 정서와 문화의 병든 것은 도덕 규범으로 해결하기 어렵고, 그 근본을 고쳐주는 새로운 영적 지향성을 요구합니다. 

이학준 교수 / 뉴브런스윅신학교

* 이학준 교수가 출간한 <한국교회, 패러다임을 바꿔야 산다>에 나온 내용 중 일부를 필자가 재구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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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oon5 2011-07-10 10:58:35
이런 학자인척 하는 상투적인 추상적인 잡글 때문에 한국 교회가 더 헷갈리는 것이다.. 뭐가 사회적인 적합성을 한국교회가 잃어 버렸는데? 뭐가 사회적인데? 사회적 적합성이 상식이라는 말을 하는거야? 아니면 사회적 합의를 말하는 거야.. 질린다.이런글..

링컨 2011-07-06 11:45:35
이런 문제제기들은 자주 언급되고 지적되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오늘날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회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잘 지적하고 있군요.
적용은 인격을 가진 각자가 자신에게 처한 상황에서 펼쳐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윌로우크릭교회가 저런 자기 진단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공적 영성의 회복이라는 문제는 상당한 안목이 있기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요.
문제는 중요한 내용을 정말 중요하게 보지 못하는 것도 있지 않을까요.
무슨 특별한, 기가막힌 내용이 정말 우리가 알지도 듣지도 못한 전혀
새로운 내용이 있을까요? 있기는 할까요?
이렇게 정리해준 뉴조에 감사를 드립니다.

짜장라면 2011-07-06 01:21:40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시기 바랍니다. 한 두 문장으로 압축해서 표어화해서 다들 공감하고 현실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그러한 논의가 되길 바랍니다.
그냥 허공에 대고 지르는 뜬구름 잡는 소리엔 이젠 질렸습니다.

독자 2011-07-06 00:41:43
여기까지는 이미 귀가 닳도록 들은 상투적 분석과 비평. 다음 글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