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크기 따지지 말고 영혼 위해 몸 던져라
교회 크기 따지지 말고 영혼 위해 몸 던져라
  • 김성회
  • 승인 2011.08.10 10:48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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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신학생 컨퍼런스, 이재철 목사의 ‘신앙과 인생’

<미주뉴스앤조이>에서 주최한 제 3회 신학생 컨퍼런스는 기존의 방식을 탈피해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질문하고 강사가 대답하는 형태로 진행이 됐다. 참가자들은 "한 달에 쓰는 책값이 얼마인가"라는 가벼운 질문부터 "왜 이렇게 어렵게 목회를 해야하는가"라는 목회자로서의 존재에 대한 고민까지 쏟아냈다. 1회 강사로 나선 이재철 목사와 참가자들의 대담을 옮겼다.

안식달을 맞아 마틴 루터의 고향을 7월 말에 일주일 동안 여행했다. 가장 마지막 날 찾아갔던 아이스레벤이라는 도시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아이스레벤은 마틴 루터가 태어난 도시다. 마틴 루터가 태어난 집은 기념관이 되어 있는데 그 집 옆에 성 베드로 성당이 있다. 마틴 루터가 세례를 받은 곳이며 삶이 시작된 곳이다. 그런데 그 도시가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이유는 바로 그 도시에서 마틴 루터가 죽었기 때문이다. 성 안드레아서 교회가 있는데 거기서 한 설교가 마지막 설교였다. 그리고 거기서 쓰러져 성 안드레아서 교회 앞 집에서 죽었다. 태어난 집과 죽은 집이 직선으로 200미터가 되지 않는다. 생과 사의 거리가 200미터가 되지 않는 곳이었다.

▲ 이재철 목사.
마틴 루터가 그 거리를 걸어갔는데 그의 삶을 통해서 세계의 역사가 바뀐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생과 사는 붙어있다. 글자 자체가 '과'라는 토씨 사이에 붙어있지 않은가. 우리 중에 20년 사는 사람, 90년 사는 사람이 있지만 그 자연 길이가 얼마이던 간에 생과 사는 붙어있다.

어떤 사람의 인생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역사의 지평에 영향을 미친다. 마틴 루터처럼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같은 독일에서 태어난 히틀러처럼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이번 2박 3일의 여정이 생과 사의 기로에서 우리가 어떤 길을 걸어가고 있는가, 내가 떠나고 난 뒤에 역사에 무엇을 남길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아이스라는 것은 얼음, 레벤이라는 것은 삶을 뜻한다. 마틴 루터가 태어나고 죽은 곳은 ice life라는 뜻이 된다. 한 인간의 삶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다는 뜻으로 읽혔다. 2월부터 안식월 중인데. 두바이와 사우디아라비아 지나면서 선교사 대회 참가하고 2월말부터 6개월간을 그냥 쉬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6개월만의 처음이다. 내가 말하는데 적절한 단어가 사용 안 되거나 표현력이 짧아도 양해 바란다.

“선교사를 볼 때 자녀를 어디서 공부시키는가 본다”


참석자 / 한인 디아스포라 사역으로 선교 사역을 감당했고 목회를 오랫동안 해오면서 많은 선교사들을 만났을 텐데 선교사로서 목회자로서 어떤 것이 가장 구비되어야할 자질인가. 한국 교회 선교가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 교회 선교의 현실은 어떻고 과제는 무엇인지. 한국 교회 선교의 미래를 위해서 목회자들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의견을 듣고 싶다.

이재철 목사 / 주님께서 너희는 땅 끝까지 가서 내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다. 지상 명령이다.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2000년 전부터 땅 끝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살아왔다. 예수님께서 땅 끝이라고 말씀하실 때, 당시 사람들은 땅 끝이 평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구는 둥글다. 그러니까 한 방향으로만 계속 가면 내가 있는 지점으로 다시 오게 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땅 끝은 절대로 지리적 땅 끝이 아니다. 땅 끝은 내가 두발 딛고 서 있는 내 삶의 현장, 우리 집 안방이고 내 교회다. 선교를 지리적으로 보니 선교와 목회가 분리된다. 이러다 보니 선교를 고상한 것으로 여기게 된다. 목사가 자기 아내와 자식과 함께 살고 있는 이 방이 땅 끝이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이곳이 땅 끝의 출발점이라고 가르치셨다. 갈릴리가 출발점이었다. 자기 집 안방, 내 학교, 내 가게에서부터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지구 반대편에 가서도 선교사로 살 수 있지, 그렇지 못하면 종교 사업가 밖에 될 수 없다.

존경하는 어른 대천덕 신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미국에서 명문 대학을 졸업했다. 한국에서 (현재 성공회대학교의 전신인) 성미카엘신학교의 학장도 맡았다. 1964년에 강원도 황지에 들어가 선교를 시작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해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산으로 들어갔다. 당시의 강원도 황지는 청량리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밤새 가야했다. 역에서 내려서 세 시간을 걸어야 나오는 곳이었다. 대천덕 신부가 거기에서 예수원을 하면서 당신 딸과 아들을 그 분교에 보냈다. 이유는 하나였다. '내가 한국인을 사랑하고 내가 황지를 선교지로 삼았다면 내 자식도 여기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천덕 신부가 아이들을 그 분교에 보낼 때 두려움이나 고통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먼저 하나님의 나라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해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대천덕 신부는 선교비를 자식 교육에 쓰지 않았다. 자식들은 더 커서 자기가 선택할 시기가 왔을 때 나가서 자기가 일할 자리를 찾았다. 대천덕 신부는 종교 사업을 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선교사들을 볼 때에 그들이 자신의 자녀를 어디에서 공부시키는가를 본다. 나는 제네바에 3년을 있었는데 만약에 제네바가 아프리카 오지였다면 아이들을 데려갔을 것이다. 내 아이들을 데려가지 않고 혼자 갔던 이유는 가난한 제네바한인교회가 자립하지 못하고 봉급의 60%만 받고 일해 달라는데 그런 곳에 아이들을 데려가면 자녀 교육을 위해 갔다고 오해할까 싶어서였다. 내가 가는 선교지가 아이들을 공부시킬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선교지를 섬길 수 있겠는가. 내 수준에서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 수준에 맞추어 사는 것이 선교다. 선교의 가장 큰 문제는 선교지를 지리적 거리 문제로만 생각하는데 있다. 본질적으로 땅 끝이 어딘가, 내 수준에선 내가 시혜자가 되는 것. 본질적인 문제가 규명되지 않는 한 문제가 계속 생길 일이라고 본다.

우리가 그동안 안이하게 너무나 많은 선교사를 내보내 역풍을 맞았다. 영국을 보면 경제적으로 어려울수록 선교사의 파송이 더 많았었다. 영국이 경제적으로 어려울수록 젊은이들이 취직할 데가 없었다. 그런데 선교사로 나가면 자식 교육까지 다 되니 경제가 어려울 때 선교사 지망생이 폭증한 것이다. 선교의 본질을 깊이 생각하지 않은 것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 이재철 목사에게 질문하고 있는 참가자.
참석자 / 믿음의 길을 갈 때 자기가 가는 길이 하나님의 뜻인지 어떻게 알고 갈 수 있을까. 이성과 지성을 넘어서는 말씀을 들었다고 생각했을 때 그런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영성이 필요한 것 같다. 지성과 영성의 갈림길에 섰을 때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것, 하나님 마음에 얼마나 맞는가를 아는 것을 실생활에서 어떻게 알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좀 알고 싶다.

이재철 목사 / 지금 내 곁에 계신 하나님에 대한 통찰력이 바로 영성이다. 내가 화장실에 가든, 안방에 있든 어디에 있든 그곳에 계신 하나님을 알아보는 것이다. 현존자 하나님, 언제나 나와 함께 하고 계시는 하나님에 대해 깨어있는 의식을 가지는 것이 영성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내가 바라는 것을 성취시켜 주기 위해 내 옆에 계시는 분이 아니시다. 내 곁에 계신 그분은 이분 곁에도 계시고 저분 곁에도 계신다. 사람의 계산상으로는 손해가 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책임져주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두 길을 놓고 어떤 길이 하나님을 원하시는 곳이 어딘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을 때 하나님의 뜻은 나에게 유리한 것에 가있지 않고 모두에게, 다른 사람에게 유리한 것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저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나를 당신의 통로로 쓰시길 원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선택의 기로에서 선택은 아주 쉽다. 아무리 하나님을 믿어도 그 통찰력을 접어두고 내 중심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이삭을 바치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을 때 아브라함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혹은 고민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아브라함은 고민이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안 죽이실 것이다 죽여도 살릴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인을 밑에 두고 아들에게 나무를 지우고 올라가자 이삭이 양이 어디 있냐고 묻자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다'고 대답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히브리 본문을 영어 성경은 "we will come back"이라고 했다. 내가 아니라 우리였다. 내가 믿음을 보았다. 성경이 뭐라고 하냐시면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하나님이 멈추라고 할 때 가장 먼저 한 일이 눈을 들어 숫양이 있는지 먼저 확인했다. 다른 면으로 보면 아브라함이 고민이 굉장히 많았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아브라함이 믿음의 수준에 올라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브라함이 갈등도 있고 번민도 있었겠지만 믿음으로 응답했다. 영성의 삶은 언제 어디서나 나와 함께 하시는 통찰력을 키우는 것이다.

참석자 / 목사님의 책을 읽어보면 자기 비움을 말했는데, 자기 비움을 실천하기 위해서 주님의교회를 내려놓으셨는지, 내려놓음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이었는지 듣고 싶다.

난 주님을 만나기 전 정말 타락한 사람이었다. 내가 지금 목사로 살아가니 미화시켜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노름꾼에, 술꾼에 심지어 마리화나까지 손을 댔다. 만약 마리화나가 내 몸에 맞았다면 중독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오늘날처럼 서울에서 마약을 구하기 쉬웠다면 마약도 했을 것이다. 그런 수렁에 있는 사람을 주님께서 내 처를 통해서 구원해줬기 때문에, 바울이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기는 심정을 잘 알았다. 비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자기와의 싸움이 어려웠다. 사람이 큰 싸움에서는 잘 이긴다. 작은 싸움에서는 넘어진다. 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것들을 다스리는 것이 어렵지, 자리를 내려놓고 하는 것은 어려움이 없었다.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였다.

참석자 / 장남으로서 부모님 섬기는데 어려움이 많다.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부모로부터 자립하는 것을 많이 배우고 있는데, 목회자가 어느 선까지 부모님과 가족들을 돌보는 것인지 기준선이 있다면 알려달라.

이재철 목사 / 그리스도인이 부모님을 모시는 것은 유교에서 이야기하는 부모를 공경하는 차원이 아니다. 이것은 그것 봐도 한 차원 더 높아야한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하나님은 안 보이신다. 안 보이는 하나님에게 어떻게 순종의 삶을 살겠는가. 안 보이는 하나님에게 순종의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은 보이는 누군가에게 순종하고 사는 것이다. 거기서 순종을 배워야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대신에 보이는 순종의 대상이 부모님이다. 부모님들이 어긋난 행동을 보여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모시는 마음이 순종하는 마음이다. 그것이 훈련이 되는 것이 단순히 부모와의 관계뿐 아니라 하나님의 관계로 연장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 부모와의 관계를 껄끄러워하는 그 어떤 장남도 자기 자식은 끔찍이 사랑한다. 그 아이가 자기와 같이 살까 말까를 고민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식은 결국 내가 하는 대로 나를 보고 배운다. 내가 부모와 거리를 두고 살면 반드시 내 자식도 거리를 두고 산다. 자기 부모에게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자기 자식만 사랑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안타깝다. 자식에게 내가 내 부모에게 하는 것처럼 나에게 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는 것은 히브리말로 카바드라고 쓰여 있는데 그것은 무겁다는 뜻이다.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그분이 살아오신 삶의 무게를 존중하는 것이다. 내가 기독교인으로 부모님들 모시고 사는 것은 내 마음으로는 못 배우고 못마땅해도 모시는 것이 아니다.

내 아버지는 나보다 30년 먼저 사신 분이다. 그 무게를 존중하면 병석에 누워있는 아버지도 내 멘토가 되는 것이다. 부모와 반드시 한 집에서 같이 사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양로원에 보낼 수도 있다. 형편에 따라서 하면 된다. 제일 중요한 것은 마음속에 부모님의 삶의 무게를 존중하는 것, 그것이 있느냐 없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그것만 있으면 부모님과의 많은 갈등의 부분이 해소된다.

특히 목회자의 가정은 투명한 유리가 꽂혀있는 쇼윈도우여야 한다. 누구든지 그 집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 부부는 어떤가, 자식은 어떤가, 세상 사람들대로 교육시키는가, 아니면 정말 하나님 말씀대로 교육시키는가. 부모와의 관계는 어떤가. 그걸 보여주기 위해서는 우리 목회자가 부모님과의 관계를 성경에맞추어 확립해가야 한다.

형제도 부모도 한 몸이 될 수는 없다. 오로지 부부만 한 몸이 될 수 있다. 부부는 0촌, 부모는 1촌, 형제는 2촌이다. 부부 관계, 아내와 남편은 서로가 0순위가 되어야 한다. 부모는 1순위다. 부모를 공경하는데 아내가 뒷전이어서는 안 된다. 내가 부인을 사랑하기 때문에 아내가 내 부모를 일촌으로 모시는 것이다. 요즘 보면 결혼하고 나서 자기 자식을 0촌으로 생각하는 여자들이 있다. 그 다음에 개가 1촌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웃음) 또 이 아들을 결혼시켜놓고 나서 아들이 운전하는데 엄마가 아들 옆에 앉는 사람이 있다. 며느리는 뒷자리에 앉고. 부부가 0촌이 될 때 바람직한 부부가 된다. 그것이 자식들에게 행복과 사랑의 교육이 되는 것이다.

참석자 / 아들과 관계가 어떤지. 아들에게 아버지인지 목사인지?

이재철 목사 / 나는 내 아이들을 목사의 자녀로 키우지 않았다. 대부분의 목사들이 자녀와의 관계에서 갈등을 낳는 경우가 많다. 목회자 자녀에게 요구되는 도식적인 모습을 요구하지 않고, 아이들과 가족들과 같은 가치관을 지니려고 했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길과는 다른 길을 걸어가려고 했다.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동의해줬고 잘 자라줬다. 목사의 아들이기 때문에 뭘 구속을 받거나 그러지 말고 하나님이 너를 이승훈으로 만들었으니 이승훈답게 살라고 가르쳤다. 자녀들 스스로 목사의 아들답게 처신하려고 애써주는 측면은 있다.

선교는 교가 아닌 도를 퍼뜨리는 것

참석자 / 미국 교회에서 미국 목회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선교의 본질에 가장 갈등이 많아서 한국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엔 한국 교회에서 선교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전도와 연결시킨다. 선교위원회 회의 때 전도 이야기만 하기에 선교는 더 광범위하다고 하니까 모두 나를 이단 보듯이 했는데, 왜 한국 교회는 ‘사회 문제(social witness)’까지 선교에 포함 못시키나.

이재철 목사 / 사람들이 전도만 한다고 할 때 그 전도라고 하는 것은 본래 의미에서 왜곡된 것이다. 예수 믿고 천당 가시오라고 하는 것은 실상은 전도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전도라는 말이 그렇게 바뀌었다. 선교는 어디 가서 사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는 말이 예전 번역으로 보면 태초에 도가 있으니라였다. 그 도가 예수그리스도시다. 예수 그리스도가 도인 것이다.

선교라는 것이 번역이 잘못 됐다. 교를 퍼뜨리는 것이 아니라 도를 전하는 것이다. 도를 전하려면 삶이 빠지면 안 된다. 내가 도 위에 있을 때만 선교가 되는 것이다. 도대로 사는 사람이면 참된 선교사다. 내가 가서 어떻게 사는가의 문제이다. 산다는 것은 결국 그분의 통로가 된다는 것이다. 그 삶이 배제되면 그 삶이 선교나 전도냐 어떤 말이 되던 간에 비본질적인 후유증이 파생되기 마련이다.

▲ 신학생 멘토링 컨퍼런스에서 김영봉 목사와 이재철 목사가 참가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김영봉 목사 / 대부분의 이민 교회에서 겪고 있는 문제라고 본다. 전도 일변도로 교육 받은 사람들이 어느 교회에나 있고 선교라고 하는 것이 도를 살고 함께 동행함으로써 하나님을 알게 하는 과정으로 생각하지 않고 어쨌든 전도하고 영접 기도까지 해야 선교라고 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참석자 / 삶을 살면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가 잘 될 때 주님을 위해 죽을 수 있다고 맹새하다가 안 될 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지 않는다는 감정적 우울증이 오기도 한다. 감정적, 믿음적 신앙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한 이후에도 인격적 만남이 있기 전의 삶으로 회귀하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 신앙적 갈등이 생긴다.

이재철 목사 / 감정으로 하는 문제, 믿음으로 하는 문제, 탕자가 돌아오지만 빗나가고 돌아오고를 반복하는 것을 불교에서는 돈오돈수, 점오점수라고 가르친다. 돈오돈수는 한 순간에 깨우치고 완성된다는 것이고, 점오점수는 수련을 통해 깨닫고 수련을 통해 갈고 닦는다는 것이다. 끊임없는 수련을 통해서 되어져간다는 것이다. 그 논쟁이 20년 전에 크게 있었는데 불교에 뜻 있는 승려들은 두 가지가 다 있어야한다고 봤다.

사람들은 사도 바울의 삶을 보고 다마섹에서 예수님 만나고 확 돌아서서 개신교의 선봉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아라비아 경건 훈련 3년, 고향 다소 칩거까지 무려 13년이 훈련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도 바울은 죽을 때까지 주님의 복음을 들고 나가면서 날마다 나는 죽는다 하며 주님의 은혜 속에서 살아가는데 그것은 훈련이다. 죽을 때까지 훈련이다. 그런데 그 훈련이라는 것은 부부지간도 마찬가지 다 연애할 때 사랑해서 하지 않나.

선교를 나갈 때 내가 가야 한다는 뜨거운 마음으로 가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 남녀 관계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감정으로 사랑해서 결혼하지만 훈련을 통해서 평생을 함께 사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훈련을 통해서 깊은 사랑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주님 안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훈련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

“남이 돌보지 않는 사람을 위해 목회하게 해달라 기도했다"

참석자 / 이민 교회에서 목회를 경험하다보니 많은 교회에 담임목사와 부교역자 간의 갈등이 있다. 결국 부교역자가 담임목사에 대한 안티 세력을 데리고 나가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되고, 빠져나간 교회가 또 분열하는 아픈 모습을 보게 된다. 목사님이 생각하시는 가장 중요한 목회란 무엇인가.

이재철 목사 / 안티 교인 몰고 나가면 같은 일이 반복된다. 목회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목회는 소명으로 하는 것인데 그 소명은 인간에 대한 소명이다. 정말 한 심령, 한 인간을 위해서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소명에 내가 나를 드리는 것이 목회다. 그 때 그 과정을 통해서 당신이 열매를 이루어 가시고, 그 열매만 쓴 열매로 끝나지 않는 것이다.

제네바한인교회를 포함해 3번의 목회를 했는데, 내 경우를 말하자면 세 번 다 내가 자청하지 않았다. 세 번 다 내 자의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그 세 번이 다 사람에 대한 소명감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주님의교회를 시작하게 된 것은 여성 문인들과 우리집 2층에서 성경 공부를 하는데 어느 분들이 교회를 같이하자고 제안을 해오면서 시작됐다. 나는 그 교인들에게 "내가 워낙 타락한 사람이었고 신학교도 목회를 하러 간 것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고 내 인생을 예전처럼 답습하고 싶지 않아서 신학교를 간 것이었다. 난 술을 매일 마시고 마리화나까지 해본 타락한 사람이었다. 개척한 교회는 없던 것이 생기는 교회다. 성결한 목사가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며 거절했다.

그러면 성경 공부만 하자고 해서 시작했다. 그 당시에 대표적인 대형 교회 분란이 있을 때 나오신 분들이었다. 나를 아는 그 교회 교인들이 "나쁜 사람이다"며 놀지 말라고 했다. 마지막에는 친척들까지 전화를 해서 "이제 신학교 가서 새 인생 사는데 이력에 흠나는 짓 하지 마라"고 경고했다. 마지막에 그 전화를 받고 전화기를 내려놓으면서 결심을 했다. 아 교회를 해야겠구나라고 결심했다.

나는 목회할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도하면서 "하나님 혹 제가 목회를 해야  한다면 남이 돌보지 않는 사람을 위해 목회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모든 사람이 놀지 말라면 내가 놀아주겠다는 간단한 생각으로 주님의교회를 시작했다. 주위에서 나를 아낀다는 모든 사람들이 놀지 말라는 사람들과 놀기 시작했다. 6가정인가 7가정이 시작했다. 그 사람들이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학력이나 신앙경력으로 부족한 분들이 아니었다.

100주년기념교회도 선교사 묘역을 지키는 교회를 세워야 되겠는데 나를 오라고 원로들이 부탁했다. 그래서 나는 할 수 없다고 사양했다. 그랬더니 그 어르신들이 울면서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다시 시작했다. 어른들이 그렇게 지키려는데 못 지키고 있는 사실에 그렇게 안타까워하시는데 그분들을 위해서는 내가 해야하지 않겠는가 생각했다.

큰 목회 작은 목회 따지지 말고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영혼이 누구인가, 그 영혼을 위해 몸을 던져라. 비움을 이야기할 때 비움과 자기 싸움을 혼돈할 것 같은데 편해지고 싶을 때 편하게 있고 싶을 때 나와 싸워야 한다.

*후속 기사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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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의병기 2011-09-06 14:46:32
너무나 주옥같은 내용입니다.^^

이깐돌 2011-08-21 07:15:55
히틀러가 태어난 곳은 오스트리아 입니다.

아톰 2011-08-13 00:11:17
'사회' 문제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는 사안의 성격상 '사회'에 직접 뛰어들지 않고는 탁상공론이나 그럴듯한 '분석'은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체험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고 하는 야그들은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체험 없이 말하는 사회 선교 야그가 답.답.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번도 체험치 못하고 애끓는 고민 없이 무책임하고 때로는 엉뚱하게 내뱉는 전문가연하는 분들의 얘기에 지쳐서리... 뭐 민중신학하던 분들이 민중을 '위한' 신학은 말할 수 일을지몰라도 '민중의' 신학을 말하기는 한계가 있다는 것과 같은거겠지요...

아톰 2011-08-12 07:56:23
"선교위원회 회의 때 전도 이야기만 하기에 선교는 더 광범위하다고 하니까 모두 나를 이단 보듯이 했는데, 왜 한국 교회는 ‘사회 문제(social witness)’까지 선교에 포함 못시키나."

뭐 이런 질문은... 다른 동네에 가서 질문해야 될 듯 합니다. 직접 체험한 분들, 현재 체험하며 신나게 즐기고 있는 분들에게 질문해야겠지요.

김창선 2011-08-12 00:00:49
참으로 귀한 말씀 감사함으로 받고 갑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