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나치라는 괴물스런 정권이 선거를 통해서 정권을 잡고, 독일인의 열렬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본회퍼의 고민은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본회퍼는 앞으로 딱 두 가지가 기독교 신앙의 큰 축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바로 '기도'와 '사회정의를 위한 실천'이다."
사회학자인 조동호 교수(퀸즈칼리지 사회학과)가 히틀러 정권에 저항했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의 목소리를 오늘의 그리스도인을 위해 되살린 이유는 무엇일까. 조 교수는 "본회퍼의 신학이 근대 문명이 대중들을 우민화하는 흐름에 대한 강력한 안티테제라 여겼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미주뉴스앤조이 아카데미가 기획한 공개 특강 마지막 날인 7월 25일, 조 교수는 "사회학적으로 사회를 분석해내는 능력이 탁월한 신학자"라고 본회퍼를 평가하며 그의 신학과 사상을 통해 오늘날 교회와 사회를 성찰했다."본회퍼는 현세성을 중시한 신학자다. 그는 죽음 이후의 피안에서의 삶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삶에 집중했다. 특히 인간의 위엄이 훼손되는 것에 분노하면서 그것을 막아야 한다며 몸을 던졌다. 인간의 위엄은 각각의 개별 인격 속에 있는 신성, 곧 타자성(다름)과의 열린 만남 속에서 나오는 것이고, 이는 절대 타자인 하나님이, ‘너’ (타자) 속에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본회퍼는 그런 관계가 모아진 공동체가 하나님의 성도의 공동체라고 여겼다." (조동호)
이번 공개강좌는 '모더니티, 사회학과 신학에 나타난 성취와 극복'이라는 제목으로 6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강사로 나선 조 교수는 에밀 뒤르켐부터 막스 베버, 카를 마르크스, 테오도르 아도루노까지 훑으면서 모더니티의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가 뒤엉키며 변증법적으로 전환되는 모습을 먼저 관찰했다. 이어 마지막 두 번의 강의를 통해 칼 바르트와 본회퍼의 신학을 소개하며 서구 근대 사회에서 계몽이 야만으로, 해방이 새로운 노예화로 전환되는, 역사의 진행에 대한 신학적 대안과 교회의 대응에 대해서 논의했다.
조 교수는 "칼 바르트와 본회퍼는 당대의 충격적 경험 속에서 시대의 징표를 본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본회퍼의 경우는 유대인을 비롯한 소수자들을 배제하고 학살하는 나치 정권과 그런 정책을 비호한 독일 기독교회에 신학연구와 행동을 통해 단호히 저항했다.
"본회퍼는 세계대전, 나치즘, 홀로코스트 등을 보면서 서구 문명의 본질에 대해서 회의하면서 질문하기 시작한다. '서구 문명의 본질이 대체 무엇인가', '그 안에서 교회의 자리는 무엇인가', '왜 이런 일들이 생기는가'.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 독일의 탁월하고 이성과 정의와 계몽을 부르짖는 독일의 유명한 지식인들이 떼거리로 지지하고 나온다는 점이다. 교회에서도 거기에 반대하는 선명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젊은 신학자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것이다." (조동호)
"그리스도는 히틀러를 통해 우리에게 오셨다"고 외치며 권력에 빌붙는 독일 교회를 보며 경악했던 본회퍼는 나치라는 괴물스런 정권에 열광하는 독일 사회와 교회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조 교수는 본회퍼가 썼던 '10년 후'라는 글을 인용해가면서 그의 신학 사상을 더욱 자세히 살펴나갔다. '10년 후'는 히틀러가 집권한 후의 10년 후를 말하는데, 히틀러 암살모의에 가담한 동지들에게 새해 선물로 나눠준 짤막한 글이다. 이 글에서 본회퍼는 저항운동의 신학적 윤리적 근거를 성찰한다. 특히 본회퍼는 "어리석음에 관해"라는 대목에서 히틀러 시대를 가능케 한 당대 독일인들의 상태를 예리하게 분석한다.
"…어리석음은 악보다 더 위험한 선의 적이다. 악은 저항할 수도 있고 폭로할 수도 있고 필요하면 강제로 막을 수도 있다. 악은 적어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기 때문에 자기파멸의 씨앗을 언제나 내장하고 있다. 하지만 어리석음에 대해선 방어 수단이 없다. 항의도 강제도 안 듣고, 논리도 소용없으며 편견에 모순되는 사실을 들이대도 그저 믿지 않는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사실을 반박하는 식으로 대응하기도 하도, 반박이 도무지 불가능해지면 사실들을 사소한 예외로 치부해버리고 만다.…" (본회퍼, '10년 후' 중에서)
흥미롭게도 본회퍼는 어리석음이라는 현상을, 지성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의 문제로, 심리 현상이 아니라 사회 현상으로 분석한다. 어리석음을 권력의 문제로 본 본회퍼의 분석은 오늘의 미국사회나 한국 사회의 유사 현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조 교수는 지적했다. 대중의 어리석음이란, 정치권력이건 종교 권력이건, 경제 권력이건, 권력층이 대중의 자발성과 지혜보다는 우둔함을 기대하는 데서 생겨나는 사회심리현상이라는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치권력이건 종교권력이건 권력의 난폭한 과시가 인류 대다수에게서 어리석음을 폭증시킨다. 일부의 권력이 다른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지적 능력 같은 인간의 어떤 능력이 성장을 멈춘다든가 파괴된다기보다는 권력의 횡포가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사람들이 독립적 판단 능력을 상실하고(얼마간 무의식적으로) 새로운 현상을 스스로 판단하기를 포기하는 것 같다.…"
"… 어리석은 사람과 대화를 해보면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사로잡은 슬로건, 표어 따위를 상대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는 주술에 걸려 있고 눈이 먼 상태이며 그의 본성 자체가 오용 남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수동적인 도구로 된, 어리석은 사람은 어떤 악도 저지를 능력은 있지만 동시에 그것이 악임을 알아차릴 능력은 없다. 사람됨에 복구할 수 없는 손상을 입힐 수 있는 악마적 인간 오용의 위험이 바로 이것이다.…" (본회퍼, '10년 후' 중에서)
하지만 조 교수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되, 어리석은 대중을 경멸하는 태도 역시 비판했다. 그같은 태도로는 "싸우려는 적과 똑같은 꼴이 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던 본회퍼의 경고를 상기시키면서 그의 "성취나 실적이라는 기준보다는 그 사람이 겪은 고통이 무엇인가에 집중할 때 보람 있고 건강한 사귐이 자라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우리가 인간을 경멸하는 태도로 기울 위험은 아주 심각하다. 우리들에게 그럴 권리가 없다는 것, 그런 태도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메마르게 한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다. … 우리의 적들이 저지른 최대의 오류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저지를 수 있다는 말이다. … 우리는 사람들을, 그들이 한 일, 하지 못한 일이라는 면에서 보기보다는 그들의 겪은 고통이라는 면에서 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 하나님도 인간을 멸시하시기는커녕 인간을 위한 인간으로 되셨다.…" (본회퍼, '10년 후' 중에서)
어리석음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조 교수는 오직 해방의 행동으로만 가능하다며, 하나님 앞에서 책임 있게 살고자 하는 내면의 자유만이 어리석음을 치유하는 유일한 약임을 강조했다.
"… 어리석음의 극복은 훈계로써가 아니라 오직 해방의 행동으로만 가능하다는 것도 분명해진다. 외적 해방이 내적 해방에 앞선다는 점도 분명하다. 따라서 외적 해방이 발생할 때까지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설득하려는 시도를 포기해야 한다. … '주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성서의 말씀은, 하나님 앞에서 책임 있게 살고자 하는, 내면의 자유만이 어리석음을 치유하는 유일한 약임을 알려준다.…" (본회퍼, '10년 후' 중에서)
나치에 의해 수많은 유태인이 잔혹하게 학살당한 것을 목격한 본회퍼는 인간의 위엄이 훼손되는 것에 분노하면서, 타인에 대한 건강한 거리두기를 강조한다.
"타인의 지배하려는 관계가 아닌, 나와 마주 서 있는 그대, 즉 그 둘 사이에 존재하는 장벽, 간격, 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 거리는 뛰어넘을 수 없는 거리다. 상대는 항상 타자이어야만 한다. 내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지배하고 통제할 수 없다는 뛰어넘을 수 없는 그 한도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회퍼는 본 것이다." (조동호)
사람의 위엄과 존엄의 장벽을 너무도 쉽게 넘어서는 일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회사 사장이 몽둥이로 자기 회사원을 매질하고 그 대가로 돈을 뿌리고, 권력자의 쾌락을 위해 힘없는 여인의 삶을 짓밟는 일이 연일 터지고 있다.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헌금과 직분으로 서열을 매기고, 상대방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저주를 일삼는 곳이 오늘날 교회다. 본회퍼는 이런 문제를 아주 심각하게 여긴 것이다.
"신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시도, 내 하나님, 우리 하나님, 나를 축복하는 하나님 따위의 망발은 집어치워야 한다는 것이다. 노르웨이에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사람을 죽였다. 기독교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타자를 죽인 것이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이다." (조동호)
조 교수는 이런 개인 간의 거리와 장벽을 존중할 때, 역설적으로 참다운 공동체가 가능하다고 본회퍼의 말을 들어 강조했다."어느 소설가가 '나와 너 사이는 저 별처럼 무한히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나와 너 사이에 존재해야 할 거리, 한도, 장벽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장벽을 존중하는 한 참다운 공동체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동화되고 융합됨으로 참다운 공동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무한히 떨어져 따로 존재하지만 공동체 안에서 하나가 되는 역설을 말한다." (조동호)
조 교수는 본회퍼의 신학의 핵심 주제를 타자를 위해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라고 요약했다. 교회 역시 "타자를 위해서 자신이 존재하는 사람들이 구성하는 공동체로 존재해야 한다"고 말하며 아래로부터의 시각을 주문했다.
"우리는 세계사의 대사변들을 밑으로부터, 쫓겨난 자, 의심받는 자, 박대 받는은 자, 권세 없는 자, 억눌린 자, 욕먹은 자의 시각에서, 요컨대, 고통 받은 자의 관점에서 보는 법을 한때 배웠다. 이때 시기심이나 질투심이 마음을 갉아먹지 않게 하는 것, 크고 작은 일, 슬픔과 기쁨, 강함과 약함을 신선한 눈으로 보게 되는 것, 인정, 인간다움, 정의, 자비를 인식하는 우리의 눈이 맑고 자유로우며 흐리멍덩해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사유와 행동으로 세계를 탐구하는 데 사람들의 행복보다는 그들이 몸소 당한 고통이 더 유용한 열쇠요 더 보람 있는 원칙임을 배워야 한다." (본회퍼, '10년 후' 중에서)
마지막으로 조 교수는 초대 교회가 박해 받을 때 비밀 훈련(Secret discipline)을 했던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회 속에서 완벽하게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면서도, 하나님나라를 이루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비밀 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본회퍼의 가르침을 인용했다. 조 교수는 본회퍼가 강조했던 기독교 신앙의 큰 축으로 '기도'와 '사회정의'를 위한 실천을 꼽았다.
"교회는 자기보전에 골몰하며, 화해와 구원의 말씀을 인류와 세상에 선포하지 못했다. 이전 시기의 말들은 힘을 잃고 사라질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두 가지로 제한된다. 기도와 사람들 속에서 정의롭게 행동하기다. 이런 기도와 행동으로부터 모든 그리스도인의 사유, 말, 조직이 새로워져야 한다." (본회퍼의 '디히트리히 빌헬름 뤼디거 베트게의 세례일에 즈음한 몇 가지 생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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갸들은 갸들과 손 잡더니만,.. 야는 야들하고 손 잡는군요.
페리씨가 신사도에 대한 것을 알고 그러시는지..아님 모르고 표를 얻기 위해 그러시는지?.. 알쏭 달쏭합니다.
암튼 신사도와 손잡은 페리씨는 비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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