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
  • 윤영석
  • 승인 2011.10.03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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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현장] 1%의 심장부에 꽂힌 나머지 99%의 분노

▲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 참가자들이 만든 표어들이 주코티공원 바닥에 즐비하게 널려져 있다.
"기업들이 세상을 산 지옥으로 만든다"
"2만 5,000불보다 적게 번다면 당신은 이 곳에 있어야 한다"
"아메리칸드림은 악몽이 돼버렸다"
"월스트리트는 네로 황제고 로마는 불타고 있다!!!"
"아프간이 아닌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
"감옥이 아닌 일자리로 미국인들을 점거하라"
"생각은 체포할 수 없다"
"교육이여, 나는 부모다. 내 아들에게 미래가 있는가?"
"기후 변화가 아니라 체제 변화!"
"억압자는 강해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가 잠들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깨어나라, 일어나라!"

금융권의 횡포, 경제적 불평등, 정부의 교육 정책과 군사 정책 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세계 경제의 심장부인 월스트리트 한복판에서 터져나왔다. 맨하탄 남부의 주코티공원 바닥에는 위의 문구가 적힌 표어들이 행대를 이루며 하늘을 찌를 듯한 마천루들을 향하고 있다. 9월 17일부터 매일 12시가 되면 공원이 모인 사람들은 이 표어들을 집어들고 한 목소리로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고 외치며 행진한다.

▲ "내 소리를 내다간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 10월 1일, 브루클린다리로 향하고 있는 시위대. ⓒ Su Lee
10월 1일, 뉴욕 경찰은 브루클린다리의 도로를 막았다는 이유로 가두 행진을 하던 700여 명을 체포하며 강경하게 대응했다. 시위대는 경찰이 함정을 팠다고 반박했다. "경찰이 가두행진을 하는 사람들을 도로 쪽으로 유인했고 어떤 경찰 한 명도 도로로 걷지 말라고  말한 적 없었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미 도로를 막지 말라는 경고를 했다. 함정이 아니다"고 반박하고 있지만 사태는 계속 확산됐다. 보스턴에서는 20명이 뱅크오브아메리카(미국 최대 규모 은행) 본사를 무단 침입으로 체포됐고, 지난 9월 24일 경찰은 약 85명의 시위자들을 도로 및 인도 진입 방해, 체포 불응, 공무집행방해, 경찰 폭행 등을 이유로 체포했다.  이 과정에서 앤토니 볼로나라는 경찰이 평화 시위를 하던 여성들에게 페퍼스프레이를 뿌리는 등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논란이 확산됐다. 

아래는 경찰이 페퍼스프레이를 뿌리는 장면이다.

리더없는 저항 운동, '아랍의 봄'에서 '미국의 가을'로

도대체 월스트리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수백 명의 젊은이들이 체포를 불사하며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고 외치는 이 시위는 어떻게 시작됐는가. 언제 끝날지도 모른채 워싱턴 D.C., 시카고, 뉴저지, LA로 번져나가고 있는 시위의 배후 세력는 누군가.

캐다나의 반(反)소비주의를 주창하는 온라인 매체인 <애드버스터스>(Adbusters)가 내놓은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는 지난 6월부터 해커 그룹인 ‘어너니머스(Anonymous)’에 의해 확산됐다. 이후(9월 17일)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는 이름 하에 미전역에서 모여들었고 시위는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점은 이 시위를 이끄는 배후가 없다는 것이다. 이 시위에는 어떤 특정한 리더도 단체도 없다. 대신 노조와 지식인들의 지지선언만이 이어지고 있는 상태다. 뉴욕 대중교통 직원노조(TWU)와 뉴욕시 최대 교원노조인 UFT(The United Federation of Teachers) 등을 비롯해 미국 최대 노조 연합체인 산별노조총연맹(AFL-CIO)의 회장을 역임한 리차드 트럼카가 지지를 표명했다. <화씨 9/11>, <식코>의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 또한 시위대를 방문해 "월스트리트의 사람들이 "병적 도벽"(kleptomania)를 가지고 있고 "여기에 모인 젊은이들과 이들의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에게 바가지를 씌웠다"고 비판하며 지지를 선언했다. 

시민 운동가이자 철학자 코넬 웨스트 교수(프린스턴대)도 시위대를 찾았다.

"여기까지 오는데 여러분은 내가 영적 브레이크댄스를 추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모든 인종, 문화, 성별, 성적 지향의 사람들을 연합할 때, 엘리트들은 벌벌 떨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이 '미국의 가을'이라고 '아랍의 봄'에게 답장할 것이다···'혁명'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코넬 웨스트)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의 목적은?

이들이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에 참여한 이유는 무엇인가. 앞에 나열된 표어들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의 어려워진 경제 상황과 금융권의 횡포을 비판하기 위해 모였지만 뚜렷한 중점 이슈가 없다는 뜻이다. 

뉴욕 베이사이드에 사는 제임스 한스(27)는 "연방준비제도를 통한 구제금융으로 납세자들의 삶이 더 힘들어졌다"며 "사람들이 아닌 기업을 위한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 시위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제이슨 티노그아니(24)는 "어떤 특정한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보단 이 운동을 통해서 여러가지 사안에 대한 정치적 목소리들이 꽃피는 문화 창조"를 시위 목적으로 뒀다. 제이슨은 하루 세번 열리는 시위대의 총회(General Assembly)에서 리더격인 조력자(facilitator) 역할을 맡고 있다.

시위대를 지지하기 위해 방문한 <델마와 루이스>, <의뢰인>의 수잔 서랜든은 "너무나 많은 이슈들이 있다는 것이 여러분의 약점이다. 한가지 안건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쉽게 묵살될 것"이라며 월스트리트 시위가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은 점 을 우려했다. 그는 또한 "이 운동의 얼굴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고 그저 불평하는 사람들처럼 보이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뉴욕타임즈>의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도 시위대의 초점 없는 시위에 대해 경고했다. 그는 "은행가와 혁명가"라는 제목의 10월 1일자 칼럼에서 "시위 참가자들은 때때로 아메리칸 인디언에게 저지른 만행을 이유로 20달러 지폐에서 앤드류 잭슨을 없애야 한다는 돈키호테 같은 이유를 주장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위대들이 "금융거래세(Financial Transactions Tax: 토빈세라고도 불리는 주식, 채권, 외환 등의 금융상품 거래에 부과하는 세금) 도입"과 "부자들에게 저세율을 허락하는 성과보수(carried interest: 계약된 성과 이상을 벌었을 때 적용되는 세율) 폐지" 등을 요구 사항으로 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반면, 시위대의 뚜렷한 목표 부재에 대한 비평에 관해 코넬 웨스트 교수는 <지금 민주주의를!(Democracy, Now!)>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월스트리트의 탐욕에 관한 이슈를 한두 가지 요구 사항으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민주주의적 각성(democratic awakening)"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누구에게나 발언권이 주어지는 총회 현장.
웨스트 교수가 말하는 '민주주의적 각성'은 오후 1시와 저녁 7시, 하루에 두세 번씩 열리는 총회를  보면 알 수 있다. 총회에서는 누구에게나 발언권이 주어진다. 발언권을 얻은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 총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발언자의 말을 반복한다. 공원내에서 확성기 사용이 금지된 것이 원래 이유겠지만 발언자의 의견을 동의하든 안하든 평등하게 존중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웨스트 교수는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혁명적'이라고 표현했다.

▲ "소수에게 집중된 부와 민주주의, 둘 다 가질 수 없다."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를 통해) 우리는 정치 의식 향상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렌즈를 통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직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 더욱 구체적인 요구 사항들을 강조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우리는 마틴 루터 킹 박사가 언급한 '과두제(寡頭制, oligarchs, 권력을 가진 소수가 다수를 지배, 기자 주)  의 권력이 모든 인종의 사람들에게 이양'되는 혁명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한 걸음씩 나아가는 과정이다." (코넬 웨스트)

경제란 살림(enlivening)을 위한 살림(housekeeping)!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가 벌어지는 주코티공원에서 두 블락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트리니티교회는 공교롭게도 작년2010년 1월말 "신학과 경제'라는 주제로 컨퍼런스를 열었다. 

이 컨퍼런스에서 강연을 맡은 캔터버리 대주교 로완 윌리암스는 "경제(economy)라는 용어의 근원은 '살림(housekeeping)'"이라고 말했다. 그는 "살림은 가정의 구성원이 실용적인 방식으로 성장하도록 허용하는 어느정도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가정(household)은 생명이 공적으로 살아가는 장소"라고 정의했다. 그렇다면 경제란 "우리가 실제로 살 수 있는 쉼터를 창조하기 위한 결정에 관한 것"일 뿐이다.

"제대로 된 가정은 연약한 사람들이 보살핌을 받고 아이들은 자라고 노인들은 쉴 수 있도록 허용하는 환경이다···훌륭한 가정은 공적 웰빙을 찾는다. 웰빙의 배경이 요구하는 한가지가 바로 '안정성'인 것을 명심해야 한다. '살림 이론'은 어떻게 우리가 우리의 지성을 가정에 포함된 모든 이들의 필요와 신뢰 간의 균형을 위해 사용하는지에 관해 이야기한다···사리사욕을 바탕으로 한 경제 풍조는 인간을 위한 쉼터를 지을 수 없다···서로 내재하며 살아가는 것(indwelling in one another)이 기독교 윤리의 바탕이다. 모든 신앙인은 혼자선 무력하고 관계 가운데 축복받는 자신을 바라보도록 부름 받았다.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혼자선 무력하고 관계 속에서 축복받는 나'가 경제를 다루는 시작점이다." (로완 윌리암스)

▲ 주코티공원 입구에는 안내부스(우)가 설치되어 있고, 참가자들(좌)이 교대로 시위에 관한 유인물을 배포한다.

▲ 주코티공원 한구석에서 잠을 청하는 시위 참석자들.
▲ 주코티공원 마주편의 빌딩을 응시하며 묵언 시위를 하는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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