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교회의 답을 안철수에게서 찾는가?
실패한 교회의 답을 안철수에게서 찾는가?
  • 최태선
  • 승인 2011.10.24 11:41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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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예수의 복음은 정신이 아닌 삶

왜곡된 복음 이해

"안 교수가 그리스도인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분명한 것은 그는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다. '이(利)보다는 의(義)를', '물질(財)보다 사람(人)을', '나(自)보다 남(他)을'. 이 가르침이 예수의 가르침이 아닌가. 이것이 바로 예수 정신이 아닌가? 안 교수의 자리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있어야 할 자리다. 안철수를 향한 환호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받아야 할 칭송이다. 있는 사람, 없는 사람이 서로 유무상통하며 천국 공동체를 실현했던 초대교회 정신이다. 저 사람들을 보라. 세상과 다른 가치관으로 세상을 구원하려 했던 초대교회를 배워야 한다. 왜 전도가 안 된다고 하는가? 왜 사람들은 교회를 외면하는가? 사람들이 환호하는 안철수에게 그 답이 있지 않을까." (신만교)

'안철수에게서 초대교회의 정신을 보다'라는 글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그에게서 예수의 가르침을 떠올릴 정도로 그는 달랐습니다. 그만큼 안철수라는 분이 하는 말이나 행동이 세상의 방식과 다르기 때문에 세상에 던진 파문이 적지 않았습니다. 신선함을 넘어서는 그의 사고가 기존 정치인들의 부패와 맞물려 더욱 빛을 발했습니다. 더구나 서울 시장으로 출마하라는 사람들의 열화와 같은 성화에도 불구하고 그는 초연한 자세로 조용히 물러났습니다. 명리에 연연하지 않는 그 모습이 그에 대한 관심을 더더욱 증폭시켰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독교 안에서도 그에게서 초대교회의 정신을 보았다고 말할 정도로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일부분 공감하면서도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사람에게서 예수의 정신을 보고, 교회 문제의 답을 그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글의 결론을 보면서 또 다른 절망을 느끼게 됩니다. 그만큼 오늘날의 교회들이 진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음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지향하는 방향이 복음과 일치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아닌 것입니다. 그만큼 오늘날 복음에 대한 이해가 왜곡되고 본래의 의미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먼저 안철수에게서 예수의 가르침을 본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예수의 정신은 창조주와 맞닿아 있기 때문에 인간의 지문(指紋)이 닿아 있는 어떤 분야에서도 그것이 진리이며 묘수(妙手)입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무언가 바른 것이나 의미가 있는 것은 그러므로 예수의 정신의 일부를 담고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가 안철수에게서 예수의 가르침을 본 것은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의 문제 해결의 답을 안철수에게서 보아야 한다는 필자의 결론은 좀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교회 문제의 해결은 보다 더 근본적인 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복음 되게 하는 것

안타깝게도 기독교 역사는 예수의 복음을 예수의 정신으로 왜곡 축소하였습니다. 예수의 복음은 정신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며 삶 그 자체입니다. 어떤 신학자가 말한 것처럼 예수님은 '몸소 하나님나라'였습니다. 그분은 복음을 살아 복음이 되셨습니다. 복음은 이론이나 이상이나 정신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내야 할 구체적인 삶의 지침이며 수렴해 나아가야 할 영원한 지향점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정신을 보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보고 복음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작은 차이가 사실은 영원히 복음과 진리로부터 멀어지는 분기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나라는 어린아이들의 나라입니다. 어른들은 믿지만 믿는 대로 살지 않습니다. 어른들은 알지만 아는 대로 행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은 단순하게 들은 대로, 아는 바대로 실천합니다. 그래서 하나님나라는 아는 것이 많지 않아도, 능력이 없어도, 가진 것이 없어도 들어갈 수 있지만, 아는 것과 능력과 가진 것 때문에 망설이는 사람은 들어갈 수 없는 나라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고전 1:18)이라는 말에는 바로 그 같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들은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아는 게 많기 때문에 십자가의 도가 미련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복음을 복음 되게 하는 것은 복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복음은 배움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아는 것이며 복음을 살 때 느끼고 깨우치는 것이며 그 때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전 4:20)는 말씀에도 그러한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을 가르치는 것 역시 말이나 지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줌으로써 가르치는 것이며 그렇게 가르치는 자나 배우는 자가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 삶은 누구에게도 자신의 삶이며 체험이기에 분명할 수밖에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전인적이고 통전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변화는 점진적인 존재의 변화이며 이 세상에서는 결코 완성될 수 없는 수렴의 과정입니다.

따라서 안철수에게서 예수의 정신을 볼 수 있지만 그에게서 답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안철수가 훌륭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존경스럽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서 예수의 정신을 볼 수 있다는 필자의 말을 부인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답은 그리스도인 모두가 스스로에게서 찾는 것이며 그렇게 답을 찾아 모든 것을 버리고 미련하게 복음을 사는 사람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통해 드러나는 복음의 능력이 그리스도인은 물론 모든 사람들을 위한 답으로서 세상의 빛이 되고 희망이 된다는 말입니다.

사라진 제자(성령) 공동체

복음이 복음 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단순히 복음을 사는 것이 어렵기 때문만이 아니라 복음을 사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사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개인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하나님 백성 공동체인 하나님나라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개인으로서는 복음을 온전히 살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훌륭하고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혼자서 복음을 살아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지만 말씀만으로 살 수 있는 존재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릿 시냇가의 엘리야처럼 일시적으로 기적적인 하나님의 보살핌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보호를 받는 공동체의 지원이 없다면 개인으로서 복음을 살아내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말씀대로 살 때 경험하게 되는 세상의 저항은 단순히 박해 시대였던 초기 기독교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누구건 복음을 살려고 할 때 세상은 격렬하게 거기에 저항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방식을 따르지 않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세상의 저항을 맞게 되고 개인의 힘으로 그것을 거슬러 극복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소속되어 있는 공동체의 지원과 도움이 없다면 결코 개인으로서는 복음을 제대로 살기가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제자공동체에서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제자도의 핵심이며 제자들에게 주어진 하나님나라의 통치강령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산상수훈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실제로는 바닥에 떨어진 휴지조각 취급을 하게 되는 것은 초기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같은 공동체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개인으로서는 도저히 그것을 살아내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산상수훈은 완성될 하나님나라에서나 가능한, 현재로서는 실현 불가능한 이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산상수훈이 실현될 수 없는 이유가 사라진 제자 공동체, 혹은 성령 공동체에 있다는 사실을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떠올리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 기독교의 대세이며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좇아야 했던 이유는 새로운 공동체인 제자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그것이 불가피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모든 것들을 버리지 않으면 제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것을 가지고 제자가 되려고 하거나 아니면 무언가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제자가 되려고 하기 때문에 성령 공동체인 제자들의 공동체가 이루어질 수 없고, 하나님나라의 통치 강령이 사라진 교회에서 세상의 방식이 버젓이 위용을 자랑하는 것 또한 당연한 결과입니다.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옛 방식인 세상의 방식을 버려야 합니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 40년입니다. 열흘이면 갈 수 있는 길을 40년이나 걸어야 했던 이유는 이스라엘의 뼛속 깊이 아로새겨져 있는 애굽의 문화와 방식을 버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40년을 걸었어도 애굽의 문화와 방식을 온전히 버릴 수 있었던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40년 광야 생활은 그 정도로 옛 삶의 방식인 세상의 방식을 버리기가 어렵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강력하게 시사해줍니다.

기꺼이 모든 것을 버리고 제자가 되어 제자 공동체의 일원이 된 사람들이 체험한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나라에서의 성령의 역사는 제자 공동체의 필요를 공급하시며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며 또한 그분의 통치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무질서한 은사주의가 횡행하고 엉뚱한 성령의 역사가 난무하는 것 역시 성령 공동체인 제자 공동체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복음의 능력도 빛과 희망도 함께 사라진 것입니다.

이방의 빛과 산 위에 있는 동네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들을 당신의 백성 삼으신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통해 온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것이 그분의 원의였습니다.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사49:6)라는 말씀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통치를 보여줌으로써 땅 끝까지 구원이 이르게 하는 빛이 되어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의인 열 명만 있으면 소돔을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시던 여호와의 모습은 세상 구원의 일종의 서곡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택함 받은 선민이라는 자의식에 사로잡혀 다른 민족들을 업신여기며 심지어 그들이 구원 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니느웨로 가지 않은 요나, 여호와의 말씀을 성 중앙에서 선포하지 않고 성 외곽에서 선포한 것은 그러한 이스라엘의 의식이 표출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새이스라엘인 그리스도인들 또한 똑같은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그들 역시 세상의 빛이 되어야 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마5:14) 그리스도인들은 부르심을 받아 성령공동체인 제자공동체를 이루어 빛으로 드러나는 산 위의 동네가 되어 온 세상을 구원하는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보호하심 속에 이루어지는 평화(샬롬)의 나라인 하나님나라를 세상에 보여줌으로써 세상이 잘못된 곳임을 깨닫게 해주는 교회(사회, 나라)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방식에 절망한 사람들과 세상의 방식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이 교회로 다가와 세상의 방식을 버리고 하나님나라의 방식을 따르는 제자공동체의 일원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살아 하나님나라의 방식과 하나님나라를 보여주어야 하는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세상의 방식대로 살면서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교회들이 사사건건 문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들어 기독교 정당이 창당되었습니다. 정말 몰라도 너무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래도 너무 몰라 그럴 수 있다고 치겠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선거 한 번 치르고 나면 사라질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교회 한 복판에서 '고지를 점령하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문제는 더욱 심각합니다. 힘과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들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무력함과 비폭력 저항의 영성을 영원히 배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은 효율적으로 하나님나라 건설에 참여하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세상의 방식으로 이루는 하나님나라는 결코 하나님나라일 수 없다는 것 역시 영원히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교회는 마음을 새롭게 하여 다시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 는(행4:32) 성령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구성원 가운데 아무도 핍절한 사람이 없는 하나님나라를 세상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교회 문제의 해결은 예수 정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제자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복음을 살아 하나님나라의 모습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을 때 이루어집니다. 그것을 다만 이상으로 여기고 지금 우리가 실천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영원히 교회일 수 없고, 구원은 착각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배워야 할 것은 예수님의 정신이 아니라 예수님의 삶 자체입니다. 복음을 사는 제자들의 공동체가 세상의 빛으로 드러날 때 세상은 어둠에서 벗어나 자신의 실체를 보게 되고 거기에 절망한 사람들이 환하게 빛나는 산위에 있는 동네인 교회로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그 때 복음은 명실상부한 '기쁜 소식'이 되어 사람들에게 다가갈 것입니다. 교회 문제 해결의 답은 거기에 있습니다. 그 답은 단순히 교회 문제 해결의 답이 아니라 온 세상을 구원하는 문제 해결의 답입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하나님의 평화, 그리고 하늘의 기쁨이 넘치는 성령공동체인 교회를 향해 초기 교회 성도들과 같이 좁은 문으로 들어서려는 용기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몹시도 그립습니다.

최태선 목사 / 어지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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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은 2011-12-16 17: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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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rican 2011-11-01 04:41:27
예, 그렇습니다. 각자의 은사에 따라 주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합시다, 그리고 기다려 줍시다... 때가되면 주안에서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룰것이며, 비록더딜지라도 정녕코 이루어 질것입니다...진지한 댓글에 감사를 표함니다

wordservant 2011-10-31 13:51:38
"american"님, 말없이 섬기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역사가 오메가 포인트(하나님의 종말)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되어,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선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한국교회 현실은 세상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의 악한 행실을 보고, 고발하고 비난하고 있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미꾸라지"이론을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교회의 "미꾸라지"들을 속아내는 개혁작업을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해야합니다. "물은 다시 맑아진다"고 하셨는데, 물론 하나님의 섭리로 그렇게 되겠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사람을 통해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말없이 섬기는 많은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미꾸라지"들을 몰아내는 일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악한 행실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앞으로 러시아 정교회처럼 될 확률이 큰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한국교회 현실은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좋아질 현실이 아닙니다. 말없이 섬기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제는 악한 행실을 하는 교회 지도자들을 따르지 않아야 할 때입니다.

Man 2011-10-31 12:13:32
안철수 교수.

정치판에 나오기에는 너무나 순진한 사람인데. 정치꾼들의 수작에 여지 없이 말려들어 가고 있는게 안타깝네.

최규하 대통령이 생각나네.

학자가 될 양반들이 정치판에 들어서서...

american 2011-10-30 11:34:51
안철수 교수님의 양보와 배려정신은 흙탕물속의 정치판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연꽃 처럼 아름다운 미덕 임에 틀림 없읍니다.christian 이냐, 아니냐 를 떠나서 이것은 지성인으로써 당연히 지켜야할 덕목인데,,,, 세상이 너무 혼탁스러워서 이런일들이 굉장한것처럼 느끼고 보여지게 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봄니다....좀외람된 이야기지만 보이지않게 음지에서 예수님의 삶을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몇몇 미꾸라지들이 가끔 흙탕물을 만들지만, 물은 다시 맑아지고 샤르뎅 신부의 말처럼 오메가 포인트를 향해 더아름답고 향상된 삶이 주안에서 이루어 지고 있음을 저는 늘도 보고 느끼고 있읍니다....말없는 대다수의 christian 에 의해서 역사는 앞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확신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