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8일 아침, 이라크에 주둔하던 미군 마지막 부대가 이라크를 떠났다. 결국 2003년 3월 시작된 이라크전쟁이 8년 9개월 만에 완전히 종결됐다.

911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이유로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던, 미국은 곧이어 이라크를 겨냥했다. 사담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해야 한다는 명분이었다. 하지만 대량살상무기는 전쟁이 끝난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애초부터 있지도 않았던 대량살상무기 탓에 4,487명의 미군이 전사하고, 10만 명 이상에 달하는 이라크 민간인이 사망한 셈이다. 

개전 당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자유'와 '평화'라는 명분까지 얹으며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했다. 사담 후세인은 제거됐고, 이라크의 봄은 오는가 싶었다. 하지만 피폐한 경제 상황과 극심한 실업률로 이라크 서민들의 생활고는 더욱 가중됐다. 더욱 치명적인 문제는 치안 상황이다. 후세인이라는 독재자는 사라졌지만 언제 어디서도 안전을 기약할 수 없는 무법천지로 변해버렸다.

이라크전쟁 이후의 상황을 아사드 아둘 씨으로도 알 수 있다. 2007년 이라크를 빠져나와 시리아 등 제3국을 떠돌던 그는 2009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살기 위해 이라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그는 이라크에 "더 이상 희망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지난 12월 25일 아사드 씨의 자택에서 진행됐다.

"이라크는 공권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미군도, 경찰도, 군인도 통제를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나한테 총이 있고,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가서 죽이면 그만이다. 아무도 범인을 찾을 수 없다. 공권력이 무너져 수사할 여력도 능력도 없다. 사촌동생 집에 누군가 폭발물을 터뜨렸는데 범인을 찾을 길이 없다. 신고해서 경찰이 와서 한 번 보고 가더니 아무 연락이 없었다. 전쟁 이후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아사드 씨가 이라크를 떠나기 직전 실업률은 30~65% 사이를 오갔다는 통계자료가 말해주듯, 전쟁 이후 이라크인들의 살림살이는 더욱 피폐해졌다. 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가족들이 생명의 위협에 시달리는 것이었다. 아사드 씨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아버지를 잃어야 했다. 2006년 4월 어느날, 아사드의 아버지가 갑자기 실종됐다. 정체불명의 사내들에게 끌려간 뒤 소식이 끊겼다. 사내들이 수염을 기르지 않았던 것으로 봐서 정부기관에서 일하는 요원이라 추정할 뿐이다. 끌려간 이유도 모른 채 가족들은 밤새 초조하게 돌아오기만 기다렸지만 이틀 뒤 아사드의 아버지는 근처 시골길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밤새 아버지를 기다렸다. 날이 새기만 기다려 친구에게 차를 빌려 관공서를 찾아다니며 아버지의 인상착의를 설명했지만 아무도 모른다고만 말했다. 이틀 뒤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근처 시골길에서 아버지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가보니 손은 등 뒤로 묶여 있었고, 눈은 가려진 채 엎드려 있었다. 왼쪽 눈 위와 가슴에 총상을 입은 채. …"

후세인이 독재자였다는 사실에 아사드 씨도 동의하지만, 당시에는 수니파니 시아파니 나누면서 서로 죽이던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라크전쟁 이후 매를 맞거나, 살해당하는 일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영국의 여론조사기관 ORB가 2007년, 이라크의 성인 1,461명에게 '가족 중 자연사가 아닌 전쟁 폭력으로 숨진 사람이 있는지' 질문한 결과 희생자는 무려 103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아사드도 그중 한 명이다. 그의 아버지를 누가 아버지를 죽였는지, 왜 죽였는지 알 수도 없고, 범인을 찾는 건 의미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아사드 역시 잘 알았다. 다만 수니파였던 아사드 일가를 시아파 사람들이 공격했다고 추정할 뿐이다.

이라크의 종파 간 분쟁은 새로운 전쟁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한국이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으로 나뉘어 대립한다면, 이라크는 시아파와 수니파라는 종파로 나뉘어 갈등하는 식이다. 전 국민의 97%가 이슬람교도인 이라크는 수니파(32-37%)와 시아파(60-65%)로 양분되어 대립해왔다. 전쟁 이후 정치 세력이 뒤바뀌면서 피의 보복이 되풀이된 것이다. 생명의 위협이 갈수록 거세지자 아사드는 가족들을 이끌고 이라크를 빠져나와 시리아에 머물렀다. 이라크 전쟁 이후 난민 숫자는 400만 명을 넘어섰다고 추정한다.

아사드 씨는 "언제부턴가 외지에서 낯선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더 위험해졌다"고 말했다. 미군과 대립하던 이라크의 수니파를 돕기 위해 시리아나 레바논 등에서 알카에다 세력이 들어오던 상황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이들이 민간인들이 밀집한 시장이나 시내 한복판에서 무차별 자살폭탄 테러를 일으키면서 시민은 자살폭탄테러에 시달려야 했다. 아이들은 학교도 가지 못했고, 여성들은 납치나 테러가 두려워 시장도 제대로 갈 수 없었다.

미국의 이라크 철군 소식과 함께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는 소식이 여지 없이 들려오고 있다. 80만 명의 사망자를 낸 르완다대학살을 능가하는 희생자를 만들고도 전쟁의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은 채 오바마 대통령은 이라크전쟁을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고만 말했다.

아사드 씨는 "미국은 전쟁으로 석유를 얻었을지 몰라도 이라크가 얻은 것 절망뿐"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 참고 자료

"이라크전 희생자 무려 120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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